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딸! 아빠는 말이야. 아빠 사윗감이 글 좀 잘 쓰는 친구였으면 좋겠어."

책을 보고 있던 딸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직업은 별 상관 하지 않겠다. 다만 자기 생각과 자기가 하는 일을 글로 잘 드러낼 줄 아는 사람이면 아빠의 사윗감으로 오케이야. 문학을 전공한 사람이어야 한다거나 글 쓰는 능력을 타고 났다는 그런 사람 말하는 것이 아니란 거 알지? 글쓰기를 생활화하는, 즉 생각한 것을 실천하는 사람을 말하는 거야. 그런 사람은 언제 어디서라도 자기 길을 잘 헤쳐 나갈 것으로 아빠는 믿거든."

아직 그런 사윗감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내 희망이 꼭 현실이 될 것으로 믿는다. 참 기쁜 것은 딸이 이 아빠의 희망을 건성으로 듣고 흘려버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꼭 글쓰기를 즐기는 남자친구를 사귀겠다고 엄마에게 말했다니 말이다.

내 영향이었는지 딸 또한 글쓰기를 즐겨한다. 영문학을 전공한 딸은 대학 시절 영어 뮤지컬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극본을 쓰는가 하면 기획과 진행을 즐겨했다. 출연까지도 했다. 직장 생활을 하는 지금도 틈틈이 번역을 맡아 하고 있다. 딸의 생활 범주에 늘 글쓰기가 있다는 것이 이 아빠 마음을 든든하게 한다.

따지고 보면 글쓰기로 유명한 분들 말고는 글쓰기가 과소비적인 요소가 많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지만 반면 그로 인한 직접적인 소득이란 그야말로 미미하다. 바로 그런 점을 들어 글쓰기를 비생산적이라고 드러내놓고 말하는 사람이 내 주변에도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 중에는 그런 능력이야 돈으로 살 수 있다고 호언을 하기도 한다.

나는 여기서 거시적인 글쓰기의 효용성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겐 그럴 능력도 없다. 다만 글쓰기가 삶을 얼마나 효율적이고 아름답게 하는지 체험한 사실 하나만 밝히려 한다.

서예가인 내가 활동무대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옮겼을 때다. 2년 전 방문 전시를 했을 때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예상했던 것과 달리 작품 주문도 없었고 학습자도 찾아오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었다.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광고도 하고 여기저기 찾아다녔다. 실력을 보여줘야지 싶어 장소를 옮겨가며 전시도 열었다.

"한국에서 그렇게 활발한 활동을 하던 사람이 여길 왜 왔데? 경력도 좋던데 혹시……"

돌고 돌아 내 귀에 들어온 소문이었다. 방문 전시를 할 때는 엄지 손가락을 치키며 호감을 표시하던 인도네시아 미술 평론가나 문화부 신문기자들도 비슷한 질문을 내게 던졌다. 국내에서 기반을 가지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경력도 잘 쌓은 작가가 왜 떠나왔을까 하는 의심을 풀지 않았다. 아차 싶었다. 그들이 모두 저간의 내 사정을 알 리 없으니 그도 그럴 만했다. 그렇다고 일일이 찾아다니며 누누히 설명을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2003년부터 2009년까지 출간한 7권의 책.
 2003년부터 2009년까지 출간한 7권의 책.
ⓒ 손인식

관련사진보기


그때 신뢰를 회복하게 한 것은 글쓰기였다. 서예(이 또한 글쓰기다) 작가가 글쓰기(산문과 시)로 믿음을 산 것이다. 서예의 특성을 모르는 사람도 산문이나 시는 쉽게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활자가 지닌 힘일까. 아무튼, 열심히 글을 쓴 덕에 시간이 흐를수록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 숫자가 많아졌다.

문화행사 기획안을 만들 때도, 진행 과정이나 결과도 글쓰기는 큰 무기였다. 인도네시아 한인들의 문화사, 서예가가 느낀 이국의 풍정, 교민들 사는 이야기, 교민들을 배우고 가르치는 이야기, 작품과 창작 단상을 함께 엮은 책 등 6년 동안 일곱 권의 책을 발간했다. 이것은 모두 글쓰기의 힘이었다.

그런데 내가 글쓰기를 말하려는 진짜 핵심은 따로 있다. 다름이 아니라 글쓰기가 내게 그 어려운 시기를 견디게 한 절대적인 힘이었다는 사실이다. 글쓰기는 내게 어떤 일, 생각한 일을 할 수 있다는 희망과 믿음을 주었고, 결과를 산출하게 했다. 그리고 또 다음 일을 계획하게 했다.

나는 서예가다. 그러나 나는 서예에 입문하라고 말하기보다 글쓰기를 더 권한다. 퇴직한 사람에게는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글을 쓰라고 권하고, 현역에게는 성취를 더 높이기 위해서 글을 쓰라고 한다.

어떤 전문가에게는 전문가로서 사회에 이바지해야하므로 글을 쓰라 권하고, 전문성이 없는 사람에게는 전문성을 갖기 위해 글을 쓰라고 강조한다. 학생에게 하는 글쓰기 권유야 나까지 거들고 나설 것까지 있겠는가만 그래도 기회가 생기면 잔소리가 될 수 있는 말을 하고 또 한다.

내가 입버릇처럼 글쓰기를 권유하는 이유, 심지어 사윗감에게까지 글쓰기를 조건으로 내거는 이유는 다 나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더욱 확신을 두고 글쓰기를 권한다. 그리고 나는 오늘 또 내 나름의 글을 쓴다.


태그:#글쓰기 , #서예가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서예가. 2015년 5월 인사동에서 산을 주재로 개인전을 열고 17번째 책 <山情無限> 발간. 2016, 대한민국서예대전 심사위원장 역임. 현재 자카르타 남쪽 보고르 산마을에 작은 서원을 일구고 있음.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