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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첫 주말, 고등학교 동창들과 유명산을 다녀왔습니다. 물도 맑고 깊지 않아서 아이들 놀기에 딱 좋습니다. 폭염이 어쩌니 해도 계곡 물에 발을 담그는 순간 더위가 싹 가십니다.

함께 간 세 친구들은 고2 때 모두 같은 반이었지요. 다들 착한지라 법 없이도 산다는 말이 어울릴 만큼 모두 반듯합니다. 남을 배려하는 자세가 몸에 배어 있고,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친구들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비상한 재주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함께 있는 동안 물 흐르듯이 이틀이 갔습니다. 무엇을 먹을지, 어디를 갈지, 뭐하고 놀지 전혀 의견 충돌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그냥 한사람이 아침 준비하면,

"찌개는 내가 하지."
"그래, 설거진 내가 할게."
"어, 방청소는 내가."

이 친구들은 누구도 자기 의견을 내세우거나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이 의견을 내면 대부분 OK, 간혹 딴 사람이 '이건 어때?' 하면 '어, 그게 더 좋네. 콜'. 모두 그 제안을 따라 즐깁니다.

내 의견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것, 참 쉽지 않은 자세입니다. 평생을 부딪치는 문제지요. 대부분 자신이 낸 의견을 '내 것'이라 생각하고 심지어 '내 의견'을 '나'라고 동일시합니다. 그래서 내 의견이 상대방에게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논리적으로 반론이 들어오면 일단 기분이 상하는데다가 '내 의견'을 방어하기 위해 상대를 공격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서로 감정이 상하지요.

'의견'이란 원래 '네것', '내것'이 없다지요. 인류 5백만년 동안 축적된 데이터 중에 그냥 하나를 꺼내놨을 뿐입니다. 그러면 그 의견을 탁자 위에 놓고 단지 그 의견에 대해서만 논의하면 되는데 마치 그 의견이 그 사람인 양 감정이 오고 가지요. 문제는 나만 고치면 되는 게 아니라 상대도 그런 자세여서 툭탁댑니다. 의견은 그냥 의견일뿐 '내 것'도 아니고 '나'도 아닙니다.
이 친구들의 비상한 재주는 매사에 '감정'이 아니라 '이성'적인 삶의 태도를 보이는 거였습니다. 학창시절 때는 몰랐는데 나이가 들어보니 참 근사해 보입니다.
▲ 세친구 이 친구들의 비상한 재주는 매사에 '감정'이 아니라 '이성'적인 삶의 태도를 보이는 거였습니다. 학창시절 때는 몰랐는데 나이가 들어보니 참 근사해 보입니다.
ⓒ 전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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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친구들과 산을 내려와 수유리에서 카페에 들렸습니다. 일요일 오전인데도 북적였습니다. 사람이 많다보니 삼십분이 다 되도록 주문한 차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여성분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바쁘더군요. 그래도 이 친구들은 누구하나 불평없이 그냥 도란도란 관심사를 얘기합니다. 뒤늦게 커피가 나와서 사르르 녹는 케이크까지 더 시켜먹고 일어섰습니다. 케이크값 계산을 하는데 그 여성 바리스타가 상냥히 미소지었습니다.

"아까, 커피...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호......아무 말하지 않아도 그 바리스타는 충분히 저희를 의식하고 있었네요. '커피가 늦어도 저 테이블은 불편해하지 않는구나'라고 말이죠. 한 친구가 역시 미소를 머금고 인사를 받았습니다.

"혼자 너무 바빠보이세요. 케이크 정말 맛있었습니다."

함께 있으면 언제나 즐거운 친구들입니다.
첨부파일
세친구.jpeg


태그:#친구, #감정, #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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