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스트 버스터즈> 포스터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 포스터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리부트의 모순과 위험

고전을 되살리는 일은 얼핏 과거의 얄팍한 상술로 치부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편견은 굳이 틀린 견해라고 보기 힘들다. 어느 업계나 마찬가지이지만 상업영화는 작품 철저히 상업적 논리를 좇았고, 이는 거기에 부합하는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인식과는 별개로 제작자들에게는 막중한 부담감이 작용한다. '다시 시작한다'는 말처럼, 리부트는 기존의 시리즈가 가지고 있던 원작을 새롭게 살려야 한다. 그러나 원작의 작품성을 해쳐서는 안 되며, 시대에 맞는 해석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많은 고전들은 시대상을 반영하는 상징 그 자체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리부트 작품들은 모순을 강요 받는다. 리부트는 원작의 미덕을 그대로 되살려야 하나, 그대로 살리면 안 된다. 거기에 더해 리부트와 원작 사이에는 최소 20년의 간극이 있다. 그래서 수많은 리부트 작품들은 감독의 자질과는 별개로 그 사이의 합의점을 찾는 데 실패한다. 가령, 호세 파딜라는 <엘리트 스쿼드> 시리즈를 통해 관료제와 조직 범죄의 메커니즘을 다루는 탁월함을 보였음에도 <로보캅>을 되살리는데 실패했다 그 이유는 1980년대에 시작된 신자유주의의 불안한 미래가, 21세기에는 문제 의식을 지닐 필요 없이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고스트 버스터즈> 역시 불안한 위치에 서있는 것은 분명했다. 괴짜로 취급되는 세 남자-와 더불어 추가되는 한 명-는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하여 뉴욕시를 구하고 사랑을 쟁취한다. 그들의 영웅담은 1980년대에는 아직 생소했던 CG와 SFX를 통해 매력적으로 포장된다. 하지만 2016년에는 진부한 서사일 뿐이다. 더불어 대형 스튜디오의 전유물이었던 특수효과들은 유튜브의 독립 영상 제작자들 사이에서도 일상적으로 다뤄지는 기술이 되었다.  <고스트 버스터즈>는 1980년대의 SF 코미디 영화로서의 의의밖에 남을 수 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30년의 괴리와 서사의 변화

리부트의 스토리는 원작과 비슷하다. 컬럼비아 대학에서 정교수 심사 중이던 에린(크리스틴 위그)은 오랜 친구이자 히긴스 대학의 물리학자인 애비(멜리사 맥카시 분)와 홀츠(케이트 맥키넌 분)와 함께 심령 현상을 목격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퍼진 유튜브 영상이 빌미가 되어 학교에서 쫓겨나 골방에 연구소를 차린다. 이후의 연구 활동을 통해 알게 된 뉴욕 지하철 직원 패티(레슬리 존스 분)가 일행에 합류함에 따라 "고스트 버스터즈"의 멤버는 4명이 되어 본격적인 유령 사냥을 시작하고, 그 와중에 뉴욕에서 벌어지는 심령 현상의 배후에 인위적인 음모가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된다.

얼핏, 작품은 원작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어쩌면 캐릭터의 개성에 있어서 오히려 후퇴하는 것 같은 인상마저 든다. 에린은, 원작의 최고 묘미였던 피터 뱅크먼(빌 머레이 분)의 능글거림과는 전혀 거리가 먼 푼수일 뿐이며, 홀츠먼은 그 동안 많은 매체에서 볼 수 있던 괴짜 너드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패티는 인종적 편견에 부합하는 흑인 아줌마고, 애비는 원작의 캐릭터들과 대입할 부분이 없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들이 원작의 캐릭터들과 연관성이 없기에 영화는 그 어떤 리부트 보다도 과감하고 전위적인 노선을 걷는다. 그것은 이들이 단순히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자동적으로 부여되는 -그리고 실존하지 않는-어드밴티지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여성이기 때문에, 남성들과는 전혀 다른 배경에서 위기와 맞서나간다. 그들은 원작의 레이(댄 애크로이드 분)의 여성화도, 이곤(고 해롤드 래미스 분)의 여성화도, 윈스턴(어니 허드슨 분)의 여성화도 아니다. 그들과 흡사한 부분이 있는 21세기의 여성들일 뿐이다. 

이는 중심 서사에서 캐릭터들이 개입하는 비중을 비교하면 더욱 여실히 드러난다. 원작의 주체는 확고하게 뱅크먼 개인이었다. 비록 그가 레이, 이곤, 윈스턴이 없었으면 마시멜로 맨을 물리칠 수는 없지만, 그들은 영화의 연출에 의해 뱅크먼을 보조 하는 단순 조력자에 그치고 만다.

그러나 리부트에서 캐릭터들의 비중에 우열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주인공들 중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에린이지만, 팀의 리더는 애비이고, 팀이 멋지게 활약할 기반을 만드는 것은 홀츠다. 비과학자인 패티는 뉴욕에 능통한 뉴요커로서 팀에서 생기는 위기를 두 번 이나 해결한다. 그들은 특정 주인공을 띄워주기 위한 조력자가 아닌, 동등한 팀원의 자격으로 위기를 헤쳐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한 캐릭터에게 집중되었던 서사는 흩어질 수밖에 없다.  불가피한 변화이다. 그 변화는 퇴보가 아닌, 새로운 방향으로의 전진에 더 가깝다.

물론 이렇게 되기 때문에 원작에 비해 이야기의 뼈대가 약해졌다는 인상은 지울 수 없는 사실이다. 원작에는 뱅크먼이 그리는 로맨틱 코미디가 중심 서사에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고, 그것이 '고저'라는 절대악과의 맞닥뜨리는 과정에 밀접하게 맞닿아 있었으나, 리부트 작품의 에린과 애비의 우정 회복은 그에 비해 중심 서사와의 상관 관계가 약한 탓이다. 

하지만 리부트는 "고스트 버스터즈" 팀 그 자체의 의기투합에 초점을 둔다. 그리고 그들의 비중을 동등하게 할애하며, 팀이 겪게 되는 사건에서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며 함께 위기를 극복하는 것으로 로맨스를 대신한다.

 <고스트 버스터즈>

<고스트 버스터즈>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미러링이 가져다준 엄청난 변화

원작에서 뱅크먼은 대학교수라는 직위를 이용해 여학생에게 은근슬쩍 추파를 던지고, 이후 "고스트 버스터즈"의 고객인 데이나(시고니 위버 분)를 잠재적 연애 대상으로 보고 지속적으로 추파를 던진다. 한편 데이나의 이웃인 튤리는, 데이나가 어떻게 반응하든 무조건적으로 자기 할 말만 밀어붙임으로서 연애를 갈구한다. 관객들은 그 모든 행위가 부적절한 시기에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는 것을 알기에 웃음을 자아낸다. 물론 두 인물의 결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뱅크먼은 데이나를 위기에서 구해내고 모두의 축복 속에 사랑을 쟁취하지만, 튤리는 모두에게 외면 받으며 아무도 모르게 사라진다. 이를테면, '너드'라는 캐릭터를 각자의 상반된 두 가지 모습을 통해 얻게 되는 결말이다.

하지만 뱅크먼의 여성을 다루는 태도는 올바르지 못하다. 그는 유령을 보고 정신을 잃은 사서에게 생리 여부를 물으며, 비서인 재닌에게 청소부나 식당 종업원 같은 일이 어울린다며, 월급값을 하려면 타자라도 쳐야 한다고 독설을 퍼붓는다. 물론 이는, 뱅크먼이 '속물'이라는 캐릭터성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오히려 뱅크먼의 캐릭터는 데이나와의 상호관계를 통해 부각된다. 그는 속물적이고 엉뚱한 기질이 있지만, 여성에게 친절하며 여성을 존중하며 보호할 줄 아는, '로맨티스트' 영화의 주인공임이 강조된다. 데이나가 고저에게 빙의 되어 뱅크먼의 몸을 취하려고 할 때, 오히려 데이나를 다독이며 그를 진정시키는 연출에서 그 의도는 더욱 증폭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뱅크먼이 자신의 연애 대상에게만 인간적으로 대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오프닝의 사서에게, 비서 재닌(애니 포츠 분)에게 막말을 일삼는 것은 코미디의 단발적인 장면으로 끝나며, 재닌과의 대화는, 재닌과 이곤의 로맨스를 암시하는 부분으로 그친다.  요컨대, 원작은 여성 혐오에 대한 어떠한 문제의식도 없이 그 자체를 유머로 삼는다.

여기에 대해 리부트는 원작의 '미러링'을 통해 이를 과감하게 뒤틀어버린다. 그리고 이는  케빈(크리스 헴스워스 분)이라는 남자 비서로 대변되어 나타난다. 그는 잘생긴 미남이지만 멀쩡한 성인 남성이라고 보긴 어렵다. 비서 채용 면접에서, 케빈은 멀쩡한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캐릭터이며, 도무지 어떠한 업무도 못할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외모에 반해버린 에린의 강력한 주장에 의해 불가피하게 채용된다.

하지만 그의 멍청함은 영화 내내 드러난다. 그는 전화벨 소리가 들리는데 눈앞에 보이는 망가진 전화기를 보며 '전화기가 망가져서 받을 수가 없다'며 우두커니 서 있는다. 한낮인데도 불구하고 제멋대로 퇴근하고, 주인공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받은 전화는 재미가 없다고 끊어버린다. 반대로 그의 외모와 섹스어필이 열정적으로 강조된다. 

그의 존재로 영화의 메시지는 더욱 명확해 진다. <고스트 버스터즈>의 '여성 주인공'은 단지 성별의 반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원작을 비롯한 기성 할리우드 영화의 성차별적 기호를 뒤틀어 그 동안 대중들에게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정치적 부당함을 호소한다. 케빈이라는 캐릭터가 '금발 백인 남성'이며  "토르"로 대표되는 남성적인 섹시 배우 크리스 헴스워스라는 것을 통해, 이 영화가 마릴린 먼로 이래 할리우드가 무분별하게 소모해왔던 '금발 백치녀'라는 여성혐오적 캐릭터에 대한 풍자임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영화는 그 점을 신랄하게 풍자하되 이를 보복성 보상 심리로 돌리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비록 케빈의 면접 때 에린이 '만나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어보지만, 그 질문은 애비와 홀츠, 패티에 의해 제지된다. 케빈의 실수는 배려를 받고, 트로피의 대상이 아닌 한 명의 동료로서 구원을 받는다. 케빈은 풍자의 대상이 되기는 해도, 분풀이 대상이 되진 않는다. 아무리 무능력 하다지만 "고스트 버스터즈" 4인방에게 케빈은 어쨌든 소중한 동료이며, 케빈 역시 그들을 돕기 위한 '마음'만큼은 순수하다. 단순히 이곤의 연애 트로피로 존재했던 재닌의 위치를 대비하자면, 젠더 의식에 있어 영화의 태도는 깔끔하다.

 <고스트 버스터즈>

<고스트 버스터즈>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고스트 버스터즈>는 페미니즘 영화인가

한편 국내외를 막론하고 <고스트 버스터즈>를 둘러싼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이 영화가 과연 '페미니즘'과 결부 되어야 하냐는 의구심이 있다. 비록 영화가 페미니스트들의 전략 중 하나인 '미러링'과 겹치는 지점이 있고, 케빈이라는 남성 캐릭터의 섹스 어필을 통해 드러난다고 해도 서사와 관련이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영화를 페미니즘 영화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고스트 버스터즈>의 갈등 구조는 캐릭터의 성별 이외에 그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주인공들이 상대하는 것은 기득권이 아니며, 악역 로완(닐 케이시 분) 역시 기득권에 피해의식을 느끼고 있는 사회 부적응자이다. 물론 주인공들의 존재를 무시하려는 이들은 주인공과 대비되는 권위적인 중년 남성들이지만, 거기서 기득권 남성들이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의 '임모탄 조'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분명한 페미니즘 서사를 지니고 있다. 거대한 음모에도 불구하고, 주인공들은 기득권 남성인 브래들리 시장(앤디 가르시아 분)의 텃세에 의해 정체성을 부정 당한다. 로완은 오컬트적 음모를 통해 신세계에서 난폭한 지배자가 되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네 명의 여성들은 그와 대비해 권력 구조와는 상관없이 순수한 신념을 위해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해나간다. 선악의 구도를 성별을 통해 분명하게 대비시킨다.

한편 그들은 외모적으로 남성 관객들에게 어필할 부분을 전부 배제한다. 애비와 패티는 비만 여성이고, 에린과 홀츠는 두 사람과 비교해 날씬하지만 그들의 몸매가 노골적으로 부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원작의 배우들이 그랬던 것처럼, 헐렁한 원피스 작업복을 입고 "고스트 버스터즈"의 영웅담에 집중한다. 영화는 캐릭터들이 외모에 의해 평가 받는 대신, 그들의 정체성 그 자체에 평가 받도록 의도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영화는 여성이 남성과 투쟁하는 대신, 남성들을 구원하는 데 페미니즘의 서사를 대변한다. 남성인 케빈을 로완의 술수로부터 구해내는 것은 네 명의 여성들이다. 또한 고지식한 뉴욕 시장을 구해내는 것 역시 네 명의 여성들이다. 뉴욕 시장은 주인공들과 대비되어, 권력은 있으나 위기 상황에서는 아무런 해결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모습만을 보여준다. 위기에 빠진 남자를 구하고 세상을 지킨다는 여성들, 그로 인해 그들은 "고스트 버스터즈"라는 자기 정체성을 세상에 확고히 한다.

거기에 더불어, CG를 바탕으로 표현되는 화려한 액션신은 영화가 지닌 메시지를 강렬하게 드러낸다. 그것은 단순히 플룻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이전까지는 육체적으로 아름답고 강인한 여성 배우들에게만 한정되어 있던, "강한 여성"의 이미지 또한 여성 모두 향유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엄연한 페미니즘 영화이며, 페미니스트들을 위한 영화이다.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영화의 단점에 대한 작은 변호

물론, <고스트 버스터즈>가 완벽한 영화는 아니다. 네 명의 여성들이 뭉치기까지 많은 시간을 소모한 나머지, 악당의 존재감이 흐릿하며, 그들이 본격적으로 활약하는 액션이 조금 미완성되었다는 인상을 감출 수 없다. 한편 빌 머레이의 부재는 그의 카메오 출연으로도 보완하기 힘들다. 영화의 유머가 단발적인 슬랩스틱 코미디에 의존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영화가 리부트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리부트는 30년 전의 영화가 지금 이 시기에 정립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이를 위해 원작이 가지고 있던 시대적 한계를 억지로 살리려고 하는 대신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세대를 위한 이야기로 채웠다. 영화의 부족함은 <고스트 버스터즈>라는 이름이 지니고 있던, 1980년대의 아이콘에서 2016년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 하기 위해 겪는 불가피한 탈피 과정인 것이다.

작품 바깥에서 둘러싸고 벌어지는, 과거에 대한 소모적인 집착만 이겨낼 수 있다면, <고스트 버스터즈>는 속편이 기대가 되는 작품이다. 영화는 원작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시도를 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고스트 버스터즈>라는 이름을 영화사적으로 의미 있는 이름으로 남기려는 야심을 드러낸다. 지구 상에서 영화를 보는 이들의 절반에게는 발칙하고 괘씸할 것이다. 그러나 그 야심은 유쾌하고 당당한 포부임에는 분명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필자의 블로그(http://surlight88hk.wordpress.com)에서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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