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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동 한성대입구역 네거리. 누군가에겐 가로수 따위를 베어내는 아주 작은 일이었겠지만, 생명의 무게를 우리 스스로 묻고 가늠하는 일이 시작된 날. 여느 여름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지난 16일의 일이다.

성북구청은 좌회전 차선 확장 공사를 위해 도로 중간에 있는 가로수를 단번에 베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를 지켜보던 지역 예술가들과 주민들이 나서 공사를 중단시켰다. 도로를 확장하는 것보다 주민들에게 위안과 편안함을 주던 플라타너스 나무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이유였다. 사람들은 50년 이상 그 자리를 지켜온 나무 한 그루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사람의 편의를 위해 가로수 한 그루를 베어내는 일조차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성북동 플라타너스 나무를 보면서 케이블카 광풍 앞에 놓인 설악산 국립공원이 떠올랐다. 2015년 8월,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에서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조건부 승인하였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의 요지는 오색마을부터 끝청까지 460억 원을 들여 총 3.4km 길이의 케이블카를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당시 국립공원위원회는 멸종위기동물의 서식지 파괴, 아고산대 식생 훼손 등 많은 문제를 외면한 채 조건부 승인하는 것으로 설악산 파괴에 면죄부를 주었다.

지난 7월 양양군은 원주지방환경청에 환경영향평가서 본안을 제출했다. 제출된 환경영향평가서 본안은 작년 국립공원위원회의 심의 당시 근거가 된 '자연환경영향평가서'와 비교했을 때, 매우 많은 차이가 있었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노선 예정지에 서식하는 보호종의 종류가 늘어났고, 케이블카로 인해 훼손될 면적과 식생이 크게 증가했다. 또한 멸종위기종 산양의 주서식지 여부가 환경영향평가서를 통해 확실히 드러났다.

국립공원위원회에서 심의 당시 검토한 자연환경영향평가서와 최근 제출된 환경영향평가서 본안 비교 분석 자료
 국립공원위원회에서 심의 당시 검토한 자연환경영향평가서와 최근 제출된 환경영향평가서 본안 비교 분석 자료
ⓒ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 국민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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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케이블카 노선 상 산림청 지정 희귀식물이 1종에서 118종으로 늘어났다. 아무런 언급이 없었던 특산식물이나 특별산림보호대상 종도 각각 54종과 16종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케이블카 사업으로 인해 6종의 보호종이 소실될 것으로 나타났고, 훼손되는 수목도 352주에서 두배 가량인 603주로 늘어났다. 공사로 인한 상부정류장의 식생 영향 범위도 7배가량 크게 증가했다. 전반적으로 심의 당시 근거로 한 자연환경영향평가서보다 훨씬 더 많은 보호종이 케이블카로 인해 훼손될 것으로 나타났다.

예산에서도 많은 문제가 발견됐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비가 587억 원으로 심의 때보다 127억 원이 증가하였다. 이는 국립공원위원회 검토 당시 부실한 경제성 분석을 근거로 조건부 승인되었음을 보여준다.

심지어 부정한 방법으로 사업을 추진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최근 양양군 공무원 2명이 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케이블카 관련 경제성 보고서를 조작해 환경부에 제출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었다. 국가공무원이 앞장서 경제성을 부풀리고 보고서를 조작한 것이다. 이런 사실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이 경제성이 없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 됐다. (관련 기사 : 서류 조작 혐의·예산 증가... '엉망진창' 케이블카 사업)

국립공원위원회 심의 당시에 케이블카 노선 예정지가 산양의 주서식지 혹은 번식지인지 여부가 논란이 됐다. 당시 양양군은 케이블카 노선 예정지가 산양의 이동통로일 뿐 주서식지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국립공원위원회는 조건부 승인을 하면서 사업자인 양양군에게 '산양 문제 추가 조사 및 멸종위기종 보호대책 수립'을 요구했다.

케이블카 노선 예정지 인근에서 찍힌 산양(2마리)의 모습. 어린 산양의 모습이다. (영상캡쳐본)
 케이블카 노선 예정지 인근에서 찍힌 산양(2마리)의 모습. 어린 산양의 모습이다. (영상캡쳐본)
ⓒ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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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조사 결과, 케이블카 직접 영향권 500m 안에서 어린 산양이 6마리나 발견됐다. 이는 해당 지역이 산양의 주서식지라고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즉, 환경영향평가서를 통해 산양의 서식지임이 증명된 것이다. 또한 케이블카 예정 노선을 따라 일부 산양들이 활동한 사실이 나타났다. 산양의 행동 반경은 1㎢으로 굉장히 작다. 케이블카가 들어선다면 산양의 주서식지가 훼손될 것임이 명백하다.

또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노선 상에 무인센서카메라를 설치해 조사한 결과, 약 24마리가 서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산양이 800여 마리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악산에는 약 251마리가 서식하고 있다. 설악산은 전체 산양의 1/4 이상이 서식하는 '산양의 땅'인 셈이다. 오색케이블카 노선에만 설악산 전체 산양 개체수에 약 10%가 살고 있다. 케이블카를 놓게 되면 우리는 설악산 산양의 10%를 잃게 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국립공원위원회는 지난해 케이블카 사업을 심의할 당시 부실한 자연환경영향평가서와 경제성 분석을 근거로 사업 승인을 내준 것이다. 애초에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엉터리 보고서로 심의한 것이다. 따라서 지난해 국립공원위원회의 결정은 무효이며,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오색케이블카 노선 예정지는 심의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산양이 살고 있는 '산양의 땅'이다.
 오색케이블카 노선 예정지는 심의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산양이 살고 있는 '산양의 땅'이다.
ⓒ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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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도로확장 공사 중단 이후,  '도로확장 vs 가로수 보존' 주민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서 한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교통 편의와 나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단연코 나무입니다. 생명과 관련된 일입니다. 교통 편의를 포기하는 일은 단순히 아주 작은 불편을 감수하면 되는 일입니다."

결국 성북동 주민들은 플라타너스 나무 한 그루를 지켜냈다. 나무 한 그루가 가지고 있는 생명의 무게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성북동 주민들은 50년간 그 자리를 지켜주던 플라타너스 나무 한 그루가 가진 생명의 무게를 물었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예정지에 살고 있는 산양이 가진 생명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만약 케이블카가 들어서고 사라질 생명의 무게를 우리는 감당할 수 있을까. 우리도 이제 성북동 주민처럼 말해야 한다. "케이블카와 산양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단연코 산양입니다"라고.



태그:#설악산, #케이블카, #케이블카반대,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산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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