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달란드전 패배, 40년 만의 올림픽 메달 꿈도 막을 내렸다

네달란드전 패배, 40년 만의 올림픽 메달 꿈도 막을 내렸다 ⓒ 국제배구연맹(FIVB)


한국 여자배구가 리우 올림픽 8강전에서 네덜란드에 패해 40년 만의 올림픽 메달 꿈을 접게 됐다. 한국은 16일 네덜란드에 세트 스코어 1-3(19-25, 14-25, 25-23, 20-25)으로 패했다.

이전까지 한국 대표팀은 정말 잘해왔다. 그러나 하필 올림픽 메달로 가는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가장 경기력이 안 좋았다. 김연경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선수들 몸이 무겁고 몸놀림이 느려졌다. 상대가 너무 강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 선수들 스스로 큰 경기에 대한 엄청난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럴 때 가장 크게 나타나는 것이 바로 리시브와 수비 불안이다. 결국 그것이 최대 패인이 되고 말았다. 경기가 끝난 후 많은 팬들이 리시브에서 무너진 박정아를 향해 집중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이날 패배에 대한 아쉬움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컸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세계 최고 공격수인 김연경이 혼자서 양 팀 통틀어 최다인 27득점을 퍼부으며 죽기 살기로 뛰는 모습을 보면서 박정아에 대한 비난 강도는 더욱 거세졌다. 김연경이 최전성기인 지금이 올림픽 메달을 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자, 어쩌면 마지막 기회라는 안타까움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박정아를 대체할 선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이재영으로 교체를 해봤지만, 이재영도 리시브와 수비에서 똑같이 흔들렸다. 결국 이정철 감독은 네덜란드가 장신인 걸 감안해, 블로킹에서라도 우위에 있는 박정아를 끝까지 기용했다.

박정아가 못 했기 때문에 비난을 받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그것이 선수의 숙명이기도 하다. 그러나 조금만 경기 내용을 복기해 보면, 박정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박정아만 집중 비난을 받아야 할 일이 아니었다.

우선 김연경을 제외하고 국내파 선수들의 경기력과 몸놀림이 전반적으로 좋지 못했다. 믿었던 김해란 리베로마저 리시브와 수비에서 크게 흔들릴 정도였다.

김연경에 집중되는 공격을 분산시켜 줘야 할 라이트 공격수 김희진은 여전히 자기 몫을 해주지 못했다. 올림픽에서 가장 활약이 돋보였던 양효진도 초반에는 득점포가 가동되지 않아 애를 먹었다.

그러다 보니 세터도 흔들렸고,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김연경에 의존하는 모습이 더욱 확연해졌다. 이런 상태로는 세계적인 강팀을 상대로 이길 수 없다는 건 상식이다.

한국 배구 시스템이 낳은 '반쪽·수비형 레프트'가 화근

또 한 가지 간과해선 안 되는 문제가 있다. 박정아·이재영의 리시브 불안은 한국 배구 시스템이 낳은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어쩌면 한국 배구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를 그대로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에 불과하다.

박정아·이재영이 국가대표에서는 수비에 중점을 둔 레프트이지만, 소속 팀에서는 김연경과 마찬가지로 주 공격수들이다. 프로에서뿐만 아니라, 학교 시절부터 소속 팀에서 공격을 도맡아서 해오던 선수들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한국 V리그의 프로 팀이나 학교 팀에서 공격을 잘하는 선수에게는 리시브와 수비를 거의 시키지 않는다. 어린 선수에게까지 공격에 집중하라고 아예 수비를 면제시키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 대신 또 다른 레프트 한 명은 공격은 거의 하지 않고 리시브와 수비에만 치중한다. 이것이 소위 한국에서만 통하는 '수비형 레프트'라는 개념이다.

그러다 보니 공격을 잘하는 선수는 리시브와 수비에서 큰 약점을 갖고 있고, 수비를 잘하는 선수는 공격이 약한 소위 '반쪽 선수'만 양산되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 배구의 현실이자 비극의 출발점이다. 이런 시스템이 계속 유지되는 이유는 블로킹 높이가 낮은 국내 배구에서는 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강팀들과 경기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세계적인 강호들은 수비에 비중을 두는 레프트도 공격력이 막강하다. 자기에게 오는 공으로 상대의 블로킹 벽을 뚫어낼 수 있는 능력을 다 갖추고 있다. 후위에서는 강력한 백어택까지 구사한다.

이처럼 공격과 수비 능력을 겸비한 선수를 '완성형 레프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국의 김연경, 브라질의 가라이, 미국의 라르손 등이 대표적인 완성형 레프트다. 국제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레프트 2명 모두 완성형 레프트이어야 한다는 건 필수 요건이다.

결국 박정아·이재영의 문제는 한국 배구와 지도자들이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을 고질병에 가깝다. 박정아에 대한 비난이 선수 개인에게 돌을 던지는 차원에서 벗어나, 한국 배구가 발전적 방향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김연경의 올림픽 도전, 리우에서 멈출 수 없다

김연경에 대한 안타까움도 오래 간직할 필요가 없다. 김연경의 올림픽 도전은 4년 후인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도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연경의 도전을 리우에서 멈추게 할 수는 없다. 김연경의 현재 실력과 나이로 볼 때, 도쿄 올림픽에서도 전 세계적으로 그만한 레프트 공격수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 리우 올림픽에서 브라질 대표팀의 주 공격수로 활약한 셰일라(185cm)는 올해 나이 34세이다. 김연경의 4년 후 나이 33세보다 많다. 그 외에도 브라질 대표팀에는 가라이(31세·181cm), 파비아나(32세·193cm), 타이샤(30세·196cm), 다니엘 린스(32세·183cm) 등 주전 선수 대부분이 30세 이상이다.

다른 강팀들도 올림픽에서는 경험 많은 선수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30대 이상의 선수들이 반드시 포함돼 있다. 미국의 라르손(31세·188cm), 하르모토 디첸(31세·188cm), 세르비아의 니콜리치(35세·194cm) 등도 마찬가지다.

김연경이 몸 관리만 잘 된다면, 4년 후에도 전성기와 별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배구협회 등이 국가적 차원에서 도와줘야 한다. 세계선수권, 올림픽 예선전 등 중요한 국제대회가 아니면 국가대표에 차출을 피해줘야 한다. 성적에 대한 욕심 때문에 아시아권 대회까지 다 차출해선 곤란하다. 대신 국내 선수와 어린 유망주들에게 국제대회 경험을 더 많이 쌓게 해야 한다.

설사 김연경의 기량이 4년 후에 다소 떨어진다 해도, 그 차이는 국내 선수들이 앞으로 4년 동안 더욱 성장해서 메워줘야 한다. 기량이 어느 정도 되는 선수는 해외 리그로 진출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렇게 해서 김연경과 함께 도쿄 메달을 딸 수 있도록, 지금부터 다시 준비해 나가야 한다. 그 때를 위해서라도, 지금의 비난과 분노가 너무 나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여자배구 올림픽 박정아 김연경 네덜란드
댓글18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