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텍스트(Text)에는 맥락(Context)이 있습니다.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정치적인 예술이 존재할 수 없듯이, 100% 순수한 예술도 없습니다. 문화 공연을 때로는 인문학적으로, 때로는 사회과학적으로 읽어봅니다. 마음에 안 들면 신랄하게 태클도 걸어보고, 재미있으면 '우쭈쭈' 칭찬도 합니다. 공연을 철학적으로 혹은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항상 성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시도가 비록 재미(Fun)는 없더라도, 최소한 '뻔'한 리뷰는 쓰지 않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의 장점이 뭐였을까. 글자들의 움직임을 잘 보여주는 영상, 적재적소에서 제 역할을 해내는 조명, 의도적으로 혼란스럽게 배치된 매혹적인 프레임, 돌출된 무대 뒤로 형상화된 이질적 날개까지 외적으로 꽤 충실했다. 무엇보다 오케스트라 피트 지휘석에서 열정적으로 지휘하는, 그 뒷모습만 봐도 반할 것 같은 김성수 음악감독이 있었다. 그의 재능은 유감없이 무대 위에 펼쳐졌다. 에릭 울프슨의 원곡을 편곡한 넘버도 그렇고, 그가 새롭게 쓴 곡들도 하나같이 마스터피스(특히 '갈가마귀'는 기립박수 받아 마땅하다)라 할 만한 근래 듣기 드문 결과물이었다.

에드거 앨런 포를 맡은 세 배우(마이클리, 김동완, 최재림)와 그리스월드를 맡은 세 배우(최수형, 정상윤, 윤형렬) 각각의 매력은 이 선율 위에서 춤을 췄다. 아홉 가지 조합으로 각각 다른 색깔을 뽐냈던 이들은 혼신의 연기와 노래로 빛을 발했다. 덕분에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는 마니아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으며, 지난 7월 24일 막을 내렸다. 그리고 성원에 힘입어 오는 13일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에서 콘서트를 연다. <에드거 앨런 포>의 음악적 완성도와 배우의 역량이 궁금하다면, 아마 13일 콘서트가 최적의 현장일 것이다.

그러나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에드거 앨런 포>가 인기를 끈 건 결코 이 작품이 '괜찮은 극'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귀를 즐겁게 하는 넘버 뒤에 숨어 있을 뿐, 극적으로만 봤을 때 이 작품은 낙제점을 면하기 어렵다.

음악적 완성도는 훌륭한데...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 프레스콜 31일,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의 프레스콜이 진행됐다. 이날 현장은 포 역의 마이클리·김동완·최재림, 그리스월드 역에 최수형·윤형렬 등이 출연했다. 이외에도 엘마이라 역에 김지우, 엘리자베스 역에 안유진, 버지니아 역에 오진영 등이 캐스팅됐다. <에드거 앨런 포>는 미국 천재 시인이자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의 일대기를 다른 작품이다. 오는 7월 24일까지 상연될 예정이다.

▲ 그리스월드의 비난 포와 그리스월드의 충돌은, 그리스월드가 자신의 저서에 포의 작품을 비난하면서 시작된다. 문학계의 주류이자 기득권이었던 그는 포를 인정할 수 없었고, 포 역시 문학을 획일화시키려는 그의 계략에 넘어갈 수 없었다. 패러다임의 충돌이 이 작품 내에서 더 잘 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김동완 배우는 자기만의 색깔을 확실히 찾았다. ⓒ 곽우신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 프레스콜 31일,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의 프레스콜이 진행됐다. 이날 현장은 포 역의 마이클리·김동완·최재림, 그리스월드 역에 최수형·윤형렬 등이 출연했다. 이외에도 엘마이라 역에 김지우, 엘리자베스 역에 안유진, 버지니아 역에 오진영 등이 캐스팅됐다. <에드거 앨런 포>는 미국 천재 시인이자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의 일대기를 다른 작품이다. 오는 7월 24일까지 상연될 예정이다.

▲ 매의 날개, 천둥의 음성 <에드거 앨런 포>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포가 자신의 꿈과 문학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매의 날개'이다.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나 멋진 장면이지만, 그가 도달하고자 했던 그 세계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는 나오지 않아 감정이입하기가 다소 어려웠다. 최근 무대에서 잘생겨 보이기 시작한 최재림 배우의 열연은 돋보였다. ⓒ 곽우신


한 인물의 일대기를 표현한 뮤지컬의 성공과 실패는, 그 작품이 주인공 인물과 얼마나 닮았는지, 그를 얼마나 극 안에 담았는지, 하여 그 인물'다운' 극이 되었는지에 달려있다. 예컨대 <마타하리>는 주체적인 여성 '마타하리'와 거리가 너무 먼, 사랑 없이 살 수 없는 수동적 여성이 있을 뿐이었다. <로빈 후드>에는 숲에서 혁명을 꿈꾸고, 권력과 구조를 조롱한 민중의 영웅 '로빈 후드'가 없었다. 그저 정통 계승권을 가진 왕자에게 왕위를 돌려주려는, 충직한 신민만이 남았다. 반면 <빈센트 반 고흐>는 작품 전체가 그림으로 구원받고 싶어 했던 불운한 화가 '고흐'와 닮았고, <윤동주, 달을 쏘다>는 그 작품 안에 고뇌하는 지식인 윤동주가 담겨 동주다운 아우라를 뽐냈다.

그런데 천재 시인이자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의 일대기를 그린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는 전혀 '에드거 앨런 포'답지 않았다.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은 읽는 이로 하여금 불편하게 할 정도로 실험적이고 기괴하면서도, 단순한 음산함이 아니라 그 안에 인간의 내면을 꿰뚫어 보고 흥미를 자극하는 깊이가 있다. 신선하고 생경하면서도 읽다 보면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마성이 있었다.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 프레스콜 31일,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의 프레스콜이 진행됐다. 이날 현장은 포 역의 마이클리·김동완·최재림, 그리스월드 역에 최수형·윤형렬 등이 출연했다. 이외에도 엘마이라 역에 김지우, 엘리자베스 역에 안유진, 버지니아 역에 오진영 등이 캐스팅됐다. <에드거 앨런 포>는 미국 천재 시인이자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의 일대기를 다른 작품이다. 오는 7월 24일까지 상연될 예정이다.

▲ 포를 인정할 수 없는 그리스월드 프레스콜 현장에서 최수형 배우는, 전작 <살리에르>의 살리에르와 그리스월드를 비교하는 기자의 질문에 "살리에르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좋아해 거기에 빠져드는 인물이라면, 그리스월드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문학의 틀 안에 포를 집어넣으려고 한 인물"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시와 문학을 전파해야 하는데,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포의 욕망과 타락의 시를 가만 놔둘 수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곽우신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 프레스콜 31일,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의 프레스콜이 진행됐다. 이날 현장은 포 역의 마이클리·김동완·최재림, 그리스월드 역에 최수형·윤형렬 등이 출연했다. 이외에도 엘마이라 역에 김지우, 엘리자베스 역에 안유진, 버지니아 역에 오진영 등이 캐스팅됐다. <에드거 앨런 포>는 미국 천재 시인이자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의 일대기를 다른 작품이다. 오는 7월 24일까지 상연될 예정이다.

▲ 포를 시기하는 곰그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 유다로 분하여 예수를 비난했던 윤형렬 배우가 맡은 그리스월드는, 어딘지 모르게 유다와 겹쳐 보이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윤형렬 배우는 프레스콜 현장에서 기자의 질문에 "오히려 <레미제라블>의 자베르 같은 캐릭터"라면서, "포를 천재라고 인정하고 그의 시를 사랑하면서도, 자신의 신념이 무너지는 걸 인정할 수 없던 인물"이라고 평했다. 이처럼 배우들의 고민이 작품을 견인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 곽우신


대체로 천재는 시대로부터 외면받는다. 시대는 그를 품지 못했고, 천재는 자신을 거부하려는 세계 전체와 맞서 싸워야 한다. 개인과 세계의 싸움이라는, 패배가 예정된 전투이지만 천재는 온 힘을 다해 자신을 맞부딪힌다. 결과적으로 그가 파멸하고 사라질지라도, 인류 전체의 유산이 되어 후대에 수많은 이에게 영감을 불어넣는다. 그렇게 세계와의 싸움에서 천재는 작은 진일보를 이루고, 그 진보들이 쌓여서 역사의 수레바퀴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일조한다.

에드거 앨런 포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가 추구했던 문학은 당시 미국 주류 문학과 궤를 달리하는 사조였다. 자신의 눈에 비치는 새로운 세상을 그리고 싶어 했다. 그는 평범을 거부했고, 죽음과 인간의 어둠에 천착했다. 인간의 밝은 면만이 낭만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둡고 기괴한 면 역시 낭만적일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인간의 어두운 단면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똑바로 마주하며 이를 극복하고 고양하려 했다.

도덕적 교훈에 매달리지도 않고, 주류 문학계의 관습을 비판하며 날을 세우던 그는 적이 많았다. 극 중 그리스월드로 대표되는 미국 문학계의 기득권은 그를 비난하기에 바빴다. 불운했던 삶은 포가 지속해서 글을 쓸 수 없도록 만들었다. 결국, 매의 날개를 달고 저 태양 높이까지 날아오르고 싶었던 갈까마귀, 에드거 앨런 포는 이카로스처럼 결국 추락하고야 만다. 하지만 그는 문장들 안에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뜻을 품었고, 인류 문학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 프레스콜 31일,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의 프레스콜이 진행됐다. 이날 현장은 포 역의 마이클리·김동완·최재림, 그리스월드 역에 최수형·윤형렬 등이 출연했다. 이외에도 엘마이라 역에 김지우, 엘리자베스 역에 안유진, 버지니아 역에 오진영 등이 캐스팅됐다. <에드거 앨런 포>는 미국 천재 시인이자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의 일대기를 다른 작품이다. 오는 7월 24일까지 상연될 예정이다.

▲ 갈가마귀, 포 갈가마귀는 본래 '갈까마귀'라고 쓰는 것이 바른 우리말 표기이나, 극 중 노래나 대사에는 "갈가마귀"로 등장한다. 그리스월드의 새 시 낭독회에 등장한 포가 노래하는 장면은, 그 신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위압감을 보여준다. ⓒ 곽우신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도 그랬어야 했다. 그가 "허세 가득한 사랑 얘기" 대신 손에 쥐고 싶었던 "천상의 성배"가 뭔지 나와야 했다. 포가 매의 날개를 달고 닿고 싶었던 그 끝은 대체 무엇이며, 불멸의 작품을 쓰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이고, 그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세상에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인지 묘사되어야 했다. 그래서 관객으로 하여금, 지속해서 그를 나락으로 빠트리려는 세계와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에 진정성을 느끼게끔 해야 했다. 거대한 흐름과 맞서서 자신의 모든 걸 거는 그 숭고미도 함께. 그러나 정작 이 작품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비범하고 독특한 시인의 이야기로 만든 뮤지컬은 지나치게 평범하고, 전형적이며, 그나마도 별로 완성도가 높지 않았다. 보고 듣는 데 치중하다가 극의 메시지나 이야기를 놓치는 게 우선 그렇다. 1막 내내 고조되며 기대감을 품게 하던 분위기가, 2막부터 급전직하식으로 허무하게 끝나는 것도 그렇다. "그저 지나치듯 한 번쯤" 볼 만한, "선을 넘으려는 수많은" 뮤지컬 중 하나일 뿐이 되어버렸다. 작품의 완성도는 음악적 완성도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OST는 사고 싶지만, 내 돈 주고 재연을 보고 싶지 않은 작품은 뮤지컬계에 이미 여럿 된다.

여성은 소비되고, 극의 개연성은 없고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 프레스콜 31일,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의 프레스콜이 진행됐다. 이날 현장은 포 역의 마이클리·김동완·최재림, 그리스월드 역에 최수형·윤형렬 등이 출연했다. 이외에도 엘마이라 역에 김지우, 엘리자베스 역에 안유진, 버지니아 역에 오진영 등이 캐스팅됐다. <에드거 앨런 포>는 미국 천재 시인이자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의 일대기를 다른 작품이다. 오는 7월 24일까지 상연될 예정이다.

▲ 엘리자베스와 포 포의 엄마인 엘리자베스는 인상적인 노래를 보여주지만, 그게 전부이다. 포는 왜 죽은 엄마에게 의지하고 집착하는지, 그가 절망할 때 왜 환상으로 나타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감정 표현이 애절하기는 한데, 그 애절함이 심금을 울리지는 못한다. ⓒ 곽우신


세부적으로 조금만 더 들어가 보자. 우선 여성 캐릭터의 활용이 (국내 많은 작품이 그렇듯이) 형편없다. 이 작품에는 세 명의 여성이 주요 배역으로 등장한다. 포의 첫사랑 엘마이라, 포의 사촌이자 그가 결혼하는 버지니아, 포가 어렸을 때 사망한 어머니 엘리자베스. 이 세 인물은 다분히 평면적인 데다가 지나치게 도구적이며, 잠깐 소비되고 버려진다. 세 여성 인물의 분량은 모두 합해도 어지간한 극 중 한 명의 보통 캐릭터에도 못 미칠 정도인 데다가, 그 작은 분량 안에서 나름의 존재감이나 비중을 보여주지도 못한다. (예컨대 <레미제라블> 판틴의 경우, 분량은 작지만 그 비중이 작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는, 중량감 있는 캐릭터이다)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 프레스콜 31일,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의 프레스콜이 진행됐다. 이날 현장은 포 역의 마이클리·김동완·최재림, 그리스월드 역에 최수형·윤형렬 등이 출연했다. 이외에도 엘마이라 역에 김지우, 엘리자베스 역에 안유진, 버지니아 역에 오진영 등이 캐스팅됐다. <에드거 앨런 포>는 미국 천재 시인이자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의 일대기를 다른 작품이다. 오는 7월 24일까지 상연될 예정이다.

▲ 버지니아의 열창 세 여성 캐릭터 중 그나마 가장 대사가 많은 건 버지니아인데, 그나마도 지나치게 기능적인 캐릭터이다. 포와 결혼하고, 포의 곁에서 죽은 그녀는 실제로도 포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친 인물이지만 작품 속에서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하다. ⓒ 곽우신


포는 기억도 거의 없는 엘리자베스에게 왜 그렇게 집착하는가. 그녀는 딱 두 번 등장하는데, 포가 지쳤을 때 위로하는 장면 한 번, 그리고 포가 죽을 때 안고서 저세상으로 데려가는 장면 하나. (그러니까 1막에 한 번, 2막에 한 번이다) 왜 포의 정신세계에 엘리자베스가 그렇게 중요한지 알 수 없다. 포는 대체 엘마이라를 왜 사랑했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그 엘마이라는 단순한 대사 몇 마디로 쉽게 떠나버린다. 포의 사랑은 왜 갑자기 또 버지니아에게로 향하는 것인지도 알 수 없으며, 그나마 버지니아는 '죽기 위해' 존재하는 캐릭터이다.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 프레스콜 31일,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의 프레스콜이 진행됐다. 이날 현장은 포 역의 마이클리·김동완·최재림, 그리스월드 역에 최수형·윤형렬 등이 출연했다. 이외에도 엘마이라 역에 김지우, 엘리자베스 역에 안유진, 버지니아 역에 오진영 등이 캐스팅됐다. <에드거 앨런 포>는 미국 천재 시인이자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의 일대기를 다른 작품이다. 오는 7월 24일까지 상연될 예정이다.

▲ 포와 엘마이라 실의에 빠져 있는 포에게 엘마이라가 찾아오고, 엘마이라가 읊어준 시와 응원으로 포는 다시 일어난다. 하지만 '매의 날개 리프라이즈'를 부르던 중 다시 허무하게 추락하고 만다. 비상과 추락이 너무 연달아 나오면서, 엘마이라의 응원이 우습게 됐다. 김지우 배우의 역량에 비해 캐릭터가 너무 작았다. ⓒ 곽우신


버지니아의 죽음으로 상처받은 후, 엘리자베스 묘비 앞에서 허우적거리는 포에게 사라졌던 엘마이라가 갑자기 툭 튀어나온다. (결과적으로 버지니아는 포를 다시 엘마이라에게 맺어주기 위해 죽었나 보다) 묘비 앞에서 사랑을 노래하는 포와 엘마이라는 보고 있노라면 이게 무슨 상황인지 멍해지다가, 엘마이라 덕분에 희망을 얻은 포가 바로 그다음 장면에서 어이없게 무너지는 걸 보면 화가 날 지경이다. 물론, 이 정도로 홀대받는 캐릭터를 위해 재능을 낭비하고 있는 배우들의 면면을 볼 때부터 화가 났지만. (이 세 인물을 위해 캐스팅된 배우들의 라인업은 얼마나 훌륭한가!)

극의 개연성은 심각하게 부족하다. 포의 천재성과 포의 불우했던 환경을 함께 보여주고자 했지만, 그 가운데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린다. 예컨대 그는 아무런 뒷배경 없이도 소설 <모르그 가의 살인 사건>으로 대중을 열광시키고, 그리스월드의 방해 속에서도 시 한 편만으로 현장을 장악하는 천재였다. 그런데 펜 한 자루로 문학계 전체를 들었다 놨다 했던 천재가 갑자기 왜 대중으로부터 외면받았는지 나오지 않는다. 그의 작품이 지나치게 독창적이라 당시 대중에게 이해받지 못했던 건지, 술과 약물에 취해 기량이 떨어진 건지, 문학계 권력이었던 그리스월드의 지속적 방해 때문인지 그냥 관객이 마음에 드는 걸 스스로 골라잡아서 상상해야 한다. (작품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부분은 너무 곁다리로 흘러가 버린다)

왜 그의 작품이 지금까지 전해지는지, 결과적으로 그리스월드가 왜 실패했는지도 상상에 의지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이다. 그리스월드가 죽은 포 앞에서 그의 작품을 영원히 잊히게 하겠다고 했는데! 그냥 생각을 중단하고 노래만 듣자는 마음으로 앉아 있으면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반면, 머릿속에 한 번 물음표가 생기면 도저히 해결되지 않은 궁금증 탓에 끝까지 찜찜하다. 역사적 사실로 존재하는 개별 사건들을 성기게 엮다 보니 따라가기가 어렵다. 극은 그 자체로 완성되어 있어야 한다. 미완성의 극을 배우들이 스스로 갈아넣고 채워넣는 건, 그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낼 일이지, 작품을 칭찬할 일은 절대 아니다.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 프레스콜 31일,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의 프레스콜이 진행됐다. 이날 현장은 포 역의 마이클리·김동완·최재림, 그리스월드 역에 최수형·윤형렬 등이 출연했다. 이외에도 엘마이라 역에 김지우, 엘리자베스 역에 안유진, 버지니아 역에 오진영 등이 캐스팅됐다. <에드거 앨런 포>는 미국 천재 시인이자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의 일대기를 다른 작품이다. 오는 7월 24일까지 상연될 예정이다.

▲ 마이클리의 '영원'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 익히 증명된 것처럼, 마이클리는 노래를 잘하는 배우이다. 다만 그의 대사 전달력은 여전히 난제로 남아 있다. <에드거 앨런 포>에서도 상당히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 그가 부르는 노래가 감동적이었던 것과는 별개로. ⓒ 곽우신


라이선스 작품이기에 국내 제작진이 건드릴 수 있는 부분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드거 앨런 포>는 훨씬 더 잘 만들어야 하는, 그리고 더 잘 만들 수 있는 작품이었다. 서사 안에서 더 빛을 발해야 하는 넘버가, 오히려 따로 떼어서 들었을 때 더 감동적이라면 심각한 거다. 대미를 장식하는 '영원'은 분명 훌륭한 노래이지만, 별 감흥 없이 흩어지는 것 역시 이 때문이다.

그래도 기대를 품자면, <에드거 앨런 포>만의 매력 포인트는 리드에서 상술했던 것처럼 확실히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욕하는 나도, 음악과 배우의 힘으로 여러 번 티켓팅해서 봤으니 말이다. 함량 미달의 결정체였던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도 초연 프리뷰에서 본 공연 그리고 재연으로 오면서 조금씩 나아지지 않았나. <에드거 앨런 포>도 재연에서는 더욱 나아지리라 믿는다.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가 최소한 '에드거 앨런 포'에게 부끄럽지는 않아야 할 테니.


에드거앨런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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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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