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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지도 어언 2년이 훨씬 지났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 누구 하나 세월호를 잊은 이들은 없다. 잊자는 이들도 있지만 잊을 수가 없다. 세월호 참사를 6·25 이후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될 사건이기 때문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혀를 차거나, 안타까운 마음을 조아리는 것으로 세월호 사건을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결코 잊을 수 없다며 행동에 나선 이들이 있다. 이들만 행동에 나선 건 아니지만, 이들의 행동은 좀 남다르다. '가만히 있지 않는 강원대 교수 네트워크(아래 가넷)' 이야기다.

세월호, 교수들이 나섰다

이들은 그동안 세월호 관련 1인 시위, 토론회, 북콘서트, 두 차례에 걸친 추모문화제 등을 주도하며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활동을 활발히 펼쳤다. 그러면서 세월호 참사는 절망이기도 했지만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어 희망이라고 말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평범했던 학부모들이 거리로 나섰다. 2년여 세월이 흘러가면서 희생자 유가족들은 거리의 투사가 되었다. 아니 그들을 투사로 만든 건 박근혜 정부다. 시간이 가면서 정부는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비우호적이었고, 감시의 대상, 불온한 세력으로 몰아갔다. 그럼에도 유가족들과 이들과 동조하는 이들의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책은 이를 희망으로 본다.

"유가족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활동의 목표와 방향성 및 방법을 선정하고 시민사회 및 시민들과 연대를 맺기 시작했으며 다양한 유형의 호소문 및 성명서 발표, 서명운동, 촛불시위, 가두시위, 밤샘 농성, 장거리 행진, 북콘서트, 장기 집단단식, 입법청원, 법적 소송 등 동원할 수 있는 대부분의 수단을 통해 진실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이라는 목표를 위해 '행동'했다." - 본문 256쪽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대학생이나 교수들을 중심으로 식자들의 행동화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주민주화운동이 그렇고,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것도 그렇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강원대 교수들의 '가넷'은 세월호 참사를 보는 식자들의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어 주목된다.

<세월호가 남긴 절망과 희망> (가만히 있지 않는 강원대 교수 네트워크 기획 / 이병천 외 엮음 / 한울아카데미 펴냄 / 2016. 4 / 336쪽 / 2만2000 원)
 <세월호가 남긴 절망과 희망> (가만히 있지 않는 강원대 교수 네트워크 기획 / 이병천 외 엮음 / 한울아카데미 펴냄 / 2016. 4 / 336쪽 / 2만2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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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이 엮은 <세월호가 남긴 절망과 희망>은 여러 교수들의 글로, 1부에서 세월호 참사의 발생과 진상규명의 과정을 사회과학적·인문학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10명의 교수들은 법학·행정학·언론학·사회학 등의 분야에서 전공을 살려 세월호 참사를 분석, 원인과 문제점을 진단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구조과정과 진상규명을 놓고 보여준 박근혜 정부의 절망적인 국가 시스템은 물론, 유병언 일가에 초점을 맞춘 언론의 구태의연한 보도 태도와 오보가 낳은 폐해, 특별법 제정이나 특위와 관련된 불협화음 등, 우리 사회가 보여준 세월호 사건 이후의 '또 하나의 세월호 참사'를 학문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불량국가다

이병천 교수는 세월호 사건을 참사로 만든 건 박근혜 정부가 '독재 2.0시대, 불량국가'이기 때문이라고 일갈한다. 그는 "박근혜의 머리와 신체에는 유신독재의 뿌리가 한층 깊이 배어있다"며 아버지 박정희에게서 "유신독재를 보좌하면서 경험한 정치 방식을 이어받았다"고 말한다.

이는 이명박의 신자유주의 사고방식의 결과인 규제완화와 박정희의 유신 개발독재의 어두운 유산을 혼합하여 받아들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아직 박근혜는 '과거 적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병천 교수는 세월호 사건을 다루는 방식에서 볼 때 박근혜 정부는 '불량국가'라고 한다.

"세월호 참사는 다름 아니라 시대흐름에 맞춰 변화하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을 깨고 대한민국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린 박근혜식 '배신의 정치', 그리하여 이명박 불량정부의 적폐와 위험을 여과 없이 상속하고 더욱 전진시킨 '규제완화'의 정치경제가 불러왔다." - 본문 83쪽


"재난안전과 복지안전 장치 구축을 위해 그리하여 구성원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시대정신이 부여하는 기본적 공적 책임을 공동화(空洞化, hollowing out)시키며 국가시민의 시민권 요구에 반응하지 않는 퇴행적 국가, 기본적 책임규율을 내던져버린 무책임하고 무능한 국가는 공공성을 담지하는 유능한 책임국가와 대비하여 족히 '불량국가'라 부를 만하다." - 본문 100쪽


책은 정부가 세월호 참사를 직접적 인과관계에서만 찾거나 '썩은 사과'에 해당하는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돌리려는 시도를 반대한다. 세월호 사건의 발생은 물론 그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국가 구조와 시스템, 제도'의 문제임을 지적한다. 한두 사람이 책임질 성질이 아니란 말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 정부의 태도에 분노한 시민들은 여기저기서 행동화에 나섰다. 세월호 참사 이후 대한민국호를 부여잡고 여기까지 온 사회를 진단하고 학문적으로 정의를 내린다는 게 단순하지는 않다. 하지만 '가넷' 교수들은 자성과 함께 학문적 접근을 차분히 해내고 있다.

그렇다고 책이 딱딱하지만은 않다. 1부의 학문적 접근은 2부의 문학적 접근과 어울려 그 심도를 높인다. '세월호의 문학'에서 열두 편의 시를 게재, 아픈 세월호 희생자들과 국민들을 위로한다. 두 차례에 걸쳐 열었던 추모문화제에서 낭독한 시들이 실렸다. 또 책은 4·16 인권선언을 별책으로 싣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은 깨어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정부의 불량국가는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원태경과 권혁소 시인은 이런 나라를 아래와 같이 읊는다.

"소 키우라면 돼지 키워야 하고/ 돼지가 좋다고 할 땐/ 개나 닭을 치는 게 나은 나라... 버스요금 석유값 공공요금/ 절대 올리지 않는다 안심시키곤/ 반드시 올리고 마는 나라/ 아니다 아니다 하면/ 그렇다 그렇다 생각해야 하는 나라..."- 원태경 <지금 우리나라에선> 중에서


"집권 여당의 국회의원들이 막말 배틀을 하는 나라/ 너희들의 삶과 죽음을 단지 기념사진으로나 남기는 나라/ 아니다. 이미 국가가 아니다./ 팔걸이의자에 앉아/ 왕사발 라면을 아가리에 쳐 넣는 자가 교육부장관인 나라/ 계란도 안 넣은 라면을 먹었다며 안타까워하는 나라..."- 권혁소 <껍데기의 나라를 떠나는 너희들에게- 세월호 참사 희생자에게 바침> 중에서


누가 한 마디로 세월호 참사를 말할 수 있을까. 정의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세월호는 계속 진행 중이다. 그래야만 한다. 다시는 그런 참사를 만들면 안 되겠기에. 책은 세월호가 대한민국을 절망하게 했지만 결국 희망이라고 말한다. "세월호 유가족의 변화 및 활동 모습은 한국 사회에 아직 시민 민주주의의 잠재력이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게 그 이유다.

그뿐이 아니다. 이들을 지지하고 연합을 통해 함께 한 시민이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유가족의 슬픔을 자신의 것으로 안고 강한 연대의식을 발휘한 시민들이 있다. 세월호 특별법 청원을 위해 550만여 명이 서명을 했고, 청원을 위한 국민대표단에는 하루 만에 1490명이 참여했다.

정부는 무능한데 국민은 유능하다. 정부는 불량한데 국민은 우량하다. 정부는 발뺌하는데 국민은 자책한다. 정부가 물러나니까 국민이 나선다. 이 훌륭한 국민이 있는 한 대한민국은 희망이 있다. 세월호 참사는 바로 이런 국민이 있음을 알려줬기에 희망을 말할 수 있는 것이려니.

덧붙이는 글 | <세월호가 남긴 절망과 희망> (가만히 있지 않는 강원대 교수 네트워크 기획 / 이병천 외 엮음 / 한울아카데미 펴냄 / 2016. 4 / 336쪽 / 2만2000 원)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세월호가 남긴 절망과 희망 - 그날, 그리고 그 이후

가만히 있지 않는 강원대 교수 네트워크 기획, 이병천.박기동.박태현 엮음, 한울(한울아카데미)(2016)


태그:#세월호가 남긴 절망과 희망, #가만히 있지 않는 강원대 교수 네트워크, #이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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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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