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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미 I 교보설치작품 2016. 작가의 2009년 작 '그림이 된 남자'(아래)가 어떻게 작품으로 탈바꿈되는지 첫날 오프닝에서 관객에게 퍼포먼스로 보여주다
 유현미 I 교보설치작품 2016. 작가의 2009년 작 '그림이 된 남자'(아래)가 어떻게 작품으로 탈바꿈되는지 첫날 오프닝에서 관객에게 퍼포먼스로 보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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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15일 개관한 교보문고 광화문점 내 사유하고 감상하는 공간인 미술관 '교보아트스페이스'에서 3번째 전시로 '내 마음 속 서재'라는 부제 하에 6월 26일까지 유현미 전이 열린다. 전시구성은 작가가 했고, 전시조명은 '고기영' 라이트 디자이너가 했다. 일종의 아트 '협업'이다. 전시기획은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소장이 맡았다.

이번에 교보아트스페이스에 유현미 작가가 전시초대를 받은 건 그동안 '책가도(冊架圖)' 등 교보콘셉트와 맞는 주제를 작품소재로 많이 다뤄왔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서재, 소파, 화분이 있고 마치 작가의 작업실을 옮겨놓은 것 같다. 은밀한 조명에 잔잔한 음악(김문·임상우 작곡)도 흐른다. 북적이는 교보에 이렇게 아늑한 곳이 있나 싶다. 처음엔 낯설지만 금방 익숙해진다. 모든 이에게 행운을 비는 작가의 마음이 담긴 2011년 작 '길몽(Good Luck)'에서 보여준 그런 분위기가 여기서도 느껴진다.

우연히 말을 거는 것 같은 전시

유현미 I 교보설치작품 2016. 이런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의도성보다는 우연성을 강조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유현미 I 교보설치작품 2016. 이런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의도성보다는 우연성을 강조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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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의 특징은 완성품을 보여주는 기존 전시와 다르게 아직 미완성인 날 것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런 가운데 관객도 여기 작품을 완성시키는데 참여하고픈 마음이 일어나게 하는 방식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관객의 자발성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한 번도 전시장을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일수록 더 환영하는 식이다. 그래서 미술관 측도 전시장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그 문턱을 많이 낮췄단다. 달리 말하면 전시된 책이 살아 있은 생명체처럼 그들의 마음속으로 파고 들어가 그들에게 말을 거는 방식 말이다.

그렇게 관객이 책의 유혹 속에 빨려 들어가고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고 책이 자극하는 상상력을 펼치면서 자신도 모르게 카메라를 꺼내 이곳의 설치물을 두루 찍게 된다면 이번 전시의 의도가 적중된 셈이다. 이들이 찍은 사진이 어떻게 나올지 예상할 수 없기에 더 흥미롭고, 다 나름의 작품이기에 어떠한 결과가 나와도 상관은 없다.

관객이 전시의 주인공이다

유현미 I 교보설치작품 2016. 이런 작품은 관객에게 자기 나름으로 작품을 재구성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유현미 I 교보설치작품 2016. 이런 작품은 관객에게 자기 나름으로 작품을 재구성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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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이번 전시의 주인공은 관객이다. 작가도 이에 대해 "관객이 작가의 의도를 알든 모르든 상관이 없다 그러니 어떤 주제로 작품을 했는지 설명할 필요도 없다. 다만 관객 나름으로 전시를 즐기고 스스로 어떤 답을 찾으면 그만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작가는 전시에 가능한 개입을 줄이고 관객을 그만큼 더 전시에 참여시키는 방식이다.

소비자가 왕이라고 흔히 말하지만 문화소비자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번 전시는 미술을 전혀 몰라도 상관없고 갤러리를 처음 와 보는 사람일수록 환영한다. 그만큼 관객친화적이고 생활밀착형 전시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그 규모와 상관없이 발상이 참신하고 방식이 획기적이다. 아니 무엇보다 상호소통에 초점을 두어 민주적이다.

바로 이런 콘셉트는 "작가의 죽음과 관객의 탄생"이라는 '롤랑 바르트'의 유명한 말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1963년 '백남준'이 독일 부퍼탈 첫 전시에서 열면서 제시한 "전시의 주인공은 작가가 아니라 관객"이라는 정신과도 일맥상통한다.

'조명아트'는 이번 전시에 결정타

유현미 I 교보설치작품 2016. 유현미 작가는 이렇게 만든 조형물을 사진 찍어 최종작품을 완성한다.
 유현미 I 교보설치작품 2016. 유현미 작가는 이렇게 만든 조형물을 사진 찍어 최종작품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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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무엇보다 라이트디자인과 조명아트이다. 이번 전시를 이토록 멋지게 연출하는데 협업을 한 사람은 유현미 작가의 중고시절 동기동창인 고기영 조명아티스트다. 그녀는 한국에서 조명아트 분야에 선구자다.

그림이라는 우리말의 어원이 누구는 '그리움'에서 왔다고도 하고, 누구는 '그림자'에서 왔다고도 하는데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음영을 주며 미묘한 뉘앙스를 조절하는 그림자효과가 이번 전시장의 이미지연출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것을 확인해보려면 이곳에서 우선 사진을 찍어 보면 알 수 있다. 누가 찍어도 사진이 멋질 수밖에 없다. 이런 조명은 음식에 비유한다면 달기만한 게 아니라 깊은 맛과 향을 내는 요리라고 할까. 조명을 강하게만 쓰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편하고 넉넉하게 할 뿐만 아니라 또한 정서적으로도 풍성한 충만감을 주는 형식이다.

유현미 I 교보설치작품 2016. 이 작품은 2011년에 발표한 '십장생 책가도'의 연작으로 3차원적 입체감이 나는 건 역시 빛과 조명의 효과 때문이다
 유현미 I 교보설치작품 2016. 이 작품은 2011년에 발표한 '십장생 책가도'의 연작으로 3차원적 입체감이 나는 건 역시 빛과 조명의 효과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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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연출한 빛 조명은 자연의 빛이나 태양빛이 아닌 예술품 혹은 발명품 같은 인공의 빛이다. 형태와 색채에 조형적이고 입체적인 빛이 더해져 공간을 생명체처럼 숨 쉬게 한다. 이렇게 이번 유현미 전시를 빛나게 하는 건 바로 고기영 조명아티스트의 공로다.

고기영 조명가는 "이번 전시에서 활용한 방식은 2차원 평면조명이 아니라 3차원 입체조명에 초점을 두었다"고 말한다. 또한 그녀는 "빛은 사람의 마음을 컨트롤하기에 감상자에게 내밀한 정신의 빛을 비춰 뭔가를 생각하고 상상하는 여지를 준다. 그리고 휴식과 충전의 공간이 될 수 있게 했다"라고 설명을 덧붙인다.

이미지에서 이미지로 횡단하다

유현미 I 교보설치작품 2016. 위 작품은 회화와 조각과 설치를 긴밀하게 결합시켜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다.
 유현미 I 교보설치작품 2016. 위 작품은 회화와 조각과 설치를 긴밀하게 결합시켜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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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미 작가는 돈 욕심보다 이미지 욕심이 많은 것 같다. 이미지의 표현방식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단다. 학부에서 전공인 조소 외에도 회화·사진·설치·영상·비디오 등 다양한 미술수업을 들었단다. 미학자 강유미의 말대로 그녀는 '미술장르 사이를 횡단'한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의 최종 결과물은 유목시대 가지고 다니기 좋은 '사진'으로 남긴다.

이렇게 작가는 이미지를 교차시키거나 융합하면서도 동시에 글쓰기에도 열을 올린다. 왜냐하면 그녀의 텍스트작업은 이미지작업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미 동화집 <나무 걷다>도 발간했다. 이런 면에서 전천후 작가다. 이런 독특한 시각방식이 독일의 세계적 아트북전문출판사 '하체칸츠(Hatje Cantz)'로부터 러브콜을 받아 사진집도 냈다.

소우주 같은 오브제들의 잔치

유현미 I 교보설치작품 2016. 유현미 작가는 숫자나 사물을 하나의 소우주로 본다. 이런 오브제를 통해 작가만의 이야기를 푼다
 유현미 I 교보설치작품 2016. 유현미 작가는 숫자나 사물을 하나의 소우주로 본다. 이런 오브제를 통해 작가만의 이야기를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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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번 전시는 교보문고라는 장소성에 책이라는 오브제가 미술로 만난 사건이다. 서재란 그야말로 삶을 통찰하고 인간의 창의력을 발휘하고 인간의 자유를 꿈꾸며 행복을 염원하는 곳이다. 그래서 인류가 앞으로 나아갈 대안도 모색해 보는 곳이기에 여기에 오면 지적인 긴장과 함께 동시에 미적인 도취도 맛보게 되지 않겠는가.

또 작가는 이런 '서가도'에 숫자와 오브제를 얹어놓는다. 이런 것은 관객 나름의 재해석을 통해 내러티브나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보라고 유도한다. 위 '9'라는 숫자를 보고 관객이 내 인생의 고비를 잘 넘겨야 한다고 해석한다거나, 또 왼쪽에 실험도구같이 생긴 '뷰렛'을 보고 내 삶에서 모험정신이 필요하구나라고 받아들인다면 바로 그런 예가 된다.

철학자 강신주 책을 읽다가 '들뢰즈'의 '사유의 이미지(l'image de la pensée)'라는 개념을 새롭게 알게 되었는데 이건 철학적 사유의 이면에 숨겨진 이미지를 말하는 것으로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상적인 면이 더 강조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유현미 작품 속에서도 그런 감을 주는 이미지가 살짝살짝 보이는 것 같다.

새로운 공간, 낯설게 보기

유현미 전이 열리는 교보문고(광화문점) 내 '교보아트스페이스" 입구 모습
 유현미 전이 열리는 교보문고(광화문점) 내 '교보아트스페이스" 입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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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학은 익숙한 것에서 낯선 것을 보는 데서 시작한다. '보들레르'의 시가 그렇고, '브레히트'의 서사극이 그렇다. 사실 교보문고만큼 누구나 알고 있는 장소도 없다. 너무 익숙한 공간이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이곳을 좀 더 낯설게, 새롭게 보면 어떨까싶다.

여기서 한국의 유망작가의 작품도 보면서 시각예술의 근본이 되는 환영이나 착란을 경험하거나, 현실에 근거한 비현실이 더 환상적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참 즐겁지 않겠는가.

21세기 문화융성시대, 우리의 행복지수를 높이려면 '도시전체를 하나의 미술관'으로 볼 필요가 있다. 교보문고도 이제는 라이브러리만이 아닌 갤러리개념을 도입할 때다. 그런 공간인식을 바꾸면 사회분위기도 변하고 우리의 삶도 더 윤택하고 더 활기차질 것이다.

유현미 작가자신도 교보문고하면 서울의 문화1번지로서 노스탤지어를 가지고 있단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책을 구입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 책도 만져보고 느끼고 거기다 그림까지 만나면 사막 같은 도심 속 오아시스될 거라고 말한다. 전시규모는 작으나 워낙 여기에 방문자수가 많아 블록버스터급 전시처럼 뭔가 큰 반응이 일어날 수도 있다.

동창인 두 작가의 기막힌 작업 앙상블

이번 전시에 대해 질문을 하는 '박현주' 뉴시스 문화부장(왼쪽)과 이에 답하는 '유현미' 작가(중앙) 그리고 이번 전시에 협업을 한 '고기영' 조명아티스트(오른쪽)
 이번 전시에 대해 질문을 하는 '박현주' 뉴시스 문화부장(왼쪽)과 이에 답하는 '유현미' 작가(중앙) 그리고 이번 전시에 협업을 한 '고기영' 조명아티스트(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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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두 작가에 대해 좀 더 설명이 필요하다. 유현미(1964-) 작가는 사적인 이야기지만 예술가집안이다. 남편은 설치미술가 '김범' 작가이고, 그녀의 시어머니는 '김남조' 시인이다. 작가는 1987년 서울대 미대 조소과 졸업했고 1992년 뉴욕대학(NYU) 대학원에서 창작미술을 전공해 석사를 땄고 또 1994년 동 대학원에서 포스트석사도 받았다.

유현미 작가의 개인전은 1995년 크리스틴 로스화랑(뉴욕), 1998년 금호미술관, 2000년 '블랭크 퍼즐', 크리스틴 로스화랑(뉴욕), 2007년 '차원의 경계', 서울 갤러리인 화랑, 2011년 일우사진상 출판부분 일우대단(서울)전시 등 20회 정도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일민미술관, 금호미술관 등에도 작품이 소장돼있다.

그리고 조명아티스트이자 라이트 디자이너인 고기영(1964-) 작가는 (株)비츠로&파트너스 대표로 이화여대 디자인대학원 겸임교수이기도 하다. 1987년 이화여대 조형예술 공간디자인을 전공했고 1989년 동 대학원도 졸업했다. 1992년 뉴욕 파슨스(Parsons School of Design)에서 조명디자인 전공(Architectural Light Design)을 마쳤다.

고기영 작가의 조명작품으로는 루이뷔통, 대우빌딩, GT타워, 두산연강홀 리노베이션, 삼성 타워팰리스, 여수세계박람회, 베트남 외교부청사, 중동 두바이 베이케이트 오피스 타워 등 국내외 유명 기업건물과 국립공공건물 작업이 있고, 창덕궁후원 부용지와 국립중앙박물관입구, 국립아시아 문화전당에 난이도 높은 조명아트작업도 도맡았다.

덧붙이는 글 | 관람은 무료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이다(문의 02 2076-0549) 광화문 동아일보가 뒤로 보이는 교보문고 입구로 들어가 오른쪽을 가다 바로 코너를 돌면 '교보아트스페이스'가 보인다



태그:#유현미, #고기영, #교보아트스페이스, #조명아티스트, #'하체칸츠(HATJE CAN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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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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