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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스로 '남성'이라고 생각하지만 여성용으로 분류된 옷을 즐겨 입는다. 딱히 큰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그저 그 옷이 편해서다. 나는 체격이 크지 않고 마른 편이기 때문에 '남성복'을 입으면 옷이 너무 크거나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몸에 제대로 맞는 옷을 입고 싶을 때는 '여성복'을 사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 내 쇼핑에 동행하는 사람들은 볼멘소리를 한다. 대부분 '그 옷은 너무 여성스럽지 않니?', '어떻게 남자가 여자 옷을 입어'와 같은 말이다. 나는 '여자 옷'을 사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나에게 '맞는 옷'을 사는 것일 뿐인데.

엠버의 트위터. 엠버는 "너는 여자처럼 언제 할거야?"라는 질문에 "저는 여자예요. 여자는 원하는 스타일로 사는 거예요. 이런 것 좀 그만합시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차별은 무시하면 안 되고 고쳐야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엠버의 트위터. 엠버는 "너는 여자처럼 언제 할거야?"라는 질문에 "저는 여자예요. 여자는 원하는 스타일로 사는 거예요. 이런 것 좀 그만합시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차별은 무시하면 안 되고 고쳐야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 엠버 트위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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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사람도 이럴진대 대중의 시선이 집중되는 연예인이라고 다를까. 지난 20일, 아이돌 그룹 f(x)의 멤버 엠버는 SNS를 통해 "너는 언제 여자처럼 할거야?"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저는 여자예요. 여자는 원하는 스타일로 사는 거예요. 이런 거 그만합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짧은 머리에 통 넓은 바지, 그리고 헐렁한 티셔츠. 대중이 여자 아이돌에게 기대하는 '전형적인' 모습과 거리가 먼 엠버에게, 이런 식의 질문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때마다 엠버는 불편한 질문에 침묵하는 대신 맞섰다. 누군가의 무례한 질문에 답하며 "차별은 무시하면 안 되고 고쳐야 하는 것"이라고 덧붙인 것처럼.

작년 7월, 엠버는 SNS를 통해 "여자와 남자가 단 하나의 겉모습에 구속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지난 3월엔 '사람들이 정해 놓은 선을 넘으라'는 메시지를 담은 노래 <borders>를 발표했다.

실체 없는 '여자다움'과 '남자다움'

f(x)(에프엑스)의 멤버인 엠버
 f(x)(에프엑스)의 멤버인 엠버
ⓒ SM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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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처럼', '남자처럼'. 혹은 '여자답게', '남자답게'. 우리는 이러한 말을 자주 사용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이 기준에 맞추어 행동하라고 요구한다. 나 또한 어린 시절부터 이런 말을 자주 들어왔다. 10대 때,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 혼자 상처받곤 했다. 하지만 20대에 들어선 이러한 종류의 질문을 무시했다. 최근엔 역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여자 같은 게 뭐고 남자다운 게 뭐죠?"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러한 질문에 제대로 답하는 사람은 없다. 애초에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것은 실체가 없으며, 이에 대한 모호한 규범들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성성과 남성성의 존재를 너무나 당연하게 믿으며, 이에 따른 적절한 행동 양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같은 경향을 비판한 사람이 미국의 철학가이자 젠더 이론가, 주디스 버틀러다. 그녀의 논의를 거칠게 요약해보자. 섹스(sex)는 생물학적인 성이고 젠더(gender)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성이다. 그런데 우리는 한 사람의 생물학적인 성(sex)에 따라 젠더를 부여하고, 그것이 본질적인 것인양 치부한다. 여성은 여성의 젠더(여성성)를, 남성은 남성의 젠더(남성성)를 가진다는 식이다.

하지만 젠더가 임의적이고 유동적인 것이라면(실제로도 그렇다) 왜 여성의 젠더는 흔히 '여성적'이라고 말하는 어떤 것으로 고정되어야 할까. 젠더가 여성과 남성, 단 두 가지로 구분되어야 하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주디스 버틀러는 더 나아가 생물학적인 성이 본질적이라는 통념에도 의문을 던진다. 결국 생물학적 성을 단 두 가지(여성, 남성)로 분류한 것도 사회가 만들어 놓은 하나의 담론일 뿐이다. 꼭 인간의 성별이 단 두 가지여야 할 이유가 있을까.

결국 지금의 '여성성'과 '남성성'이 자연스럽다는 근거는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성이기에 여성성을 가지고, 남성이기에 남성성을 가진다'고 규정하며 여기서 벗어나는 사람들을 비정상 취급한다. 그러나 실상은 거꾸로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역할'을 개인이 따랐을 때, 그 개인은 소위 '정상적인 여성, 남성'이 된다. 성별에 따른 규범적 행동 양식을 정해 놓고, 그 양식을 맞추어 행동하며 '여자' 혹은 '남자'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언급했듯, 이러한 규범적 행동 양식은 실체가 없다. 때문에 이를 완벽하게 수행하는 사람도, 이 기준을 완벽하게 아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이런 옷은 너무 여자 같지 않을까?', '이런 일로 소리를 지르면 너무 남자 같지 않을까?'와 같은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다(정말 '여성성'과 '남성성'이 자연적이라면 이런 질문은 등장할 수 없다. 우리는 코가 가려우면 재채기를 하지 질문을 하진 않는다). 말하자면 우리는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24시간 자기검열을 지속하고 있는 셈이다.

경계를 가로지르며 산다는 것

f(x)(에프엑스)의 멤버인 엠버
 f(x)(에프엑스)의 멤버인 엠버
ⓒ SM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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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범의 내부에서 자기검열을 이어나가는 삶은 괴롭다. 그리고 규범의 외부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은 필연적으로 차별을 낳고, 이 같은 차별은 혐오와 폭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엠버가 마주한 상황은 단지 엠버의 것만이 아니다. 누군가는 짧은 머리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남자냐? 여자냐?'라는 질문을 받는다. 누군가는 가는 목소리를 가지고 부드럽게 말했다는 이유로 따돌림의 대상이 된다. 단지 '남자처럼' 입었다는 이유로 성희롱의 대상이 되거나 심지어 폭력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때문에 엠버가 발표한 노래 <borders>는 내게 감동적이 노래였지만 한편으로 슬픈 노래이기도 했다. 노래의 제목처럼 <borders>는 경계를 가로지르는 삶을 다룬다. 앞서 언급했듯, 이런 식의 삶은 녹록지 않다. 엠버는 이러한 상황에 맞서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 '싸워나갈 것'이며, 자신이 받는 '억압에 맞서 일어날 것'이라고 노래한다.

엠버를 응원하는 입장에서 이 노래는 감동을 준다. 하지만 그녀의 싸움이 나의 싸움이 되었을 때, 나는 슬픔을 느낀다. 왜 나는 나의 길을 가기 위해 싸우기까지 해야 할까. 왜 나는 굳이 넘어지고 또 일어나길 반복해야 할까. 내 앞의 규범과 경계들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

규범 자체에 대해 질문할 때, 우리의 삶은 달라질 것이다

가수 엠버의 솔로 앨범 사진
 가수 엠버의 솔로 앨범 사진
ⓒ SM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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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성용 의류'를 입는 것은 그것이 내 몸에 맞기 때문이다. 내가 나긋나긋하게 말하는 것은 그것이 상대방을 편하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깔깔거리며 웃는 것은 그것이 내가 행복을 표현하는 편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내가 자주 눈물을 흘리는 것은 슬픔을 느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것에 성별은 없다. 그저 나라는 사람이 존재할 뿐이다.

익숙한 규범에서 벗어날 때, 규범 밖의 사람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것이 아니라 규범 자체에 대해 질문할 때, 우리의 삶이 많이 달라지리라 생각한다. 누군가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기 검열을 멈출 수 있으며, 누군가는 차별과 혐오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는 그런 삶이 가능해지리라는 믿음을 유지하고 싶다.


태그:#엠버, #여성주의, #성별, #F(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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