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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성매매 특별법) 위헌 여부를 가리기 위한 헌법재판소의 공개변론을 앞두고 지난 2015년 4월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한터전국연합·한터여종사자연맹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성매매특별법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 한터전국연합 성노동자 "성매매 특별법 폐지하라"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성매매 특별법) 위헌 여부를 가리기 위한 헌법재판소의 공개변론을 앞두고 지난 2015년 4월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한터전국연합·한터여종사자연맹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성매매특별법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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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31일 헌법재판소는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21조 1항을 6 대 3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습니다. 21조 1항의 내용은 '성매매를 한 사람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는 것으로 성을 판 사람과 성을 구매한 사람 모두를 처벌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헌재는 결정문을 통해 이 같은 판결을 내린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건전한 성 풍속과 성 도덕이라는 공익적 가치는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등 기본권 제한의 정도에 견줘 결코 작다고 볼 수 없다." "성을 판매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와 사회가 효과적인 대안을 제시하면서 사회의 문화적 구조와 의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다"

저는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의견에 동조하는 바입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그들의 말처럼 성을 판매하지 않고도 모든 성 노동자들이 인간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게 국가와 사회가 보장할 수 있다면. 그렇게 된다면 굳이 '성 노동'이 필요하지도 않을 것이며, '성 노동자' 역시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현실은 이와 다릅니다. 대한민국은 그들의 삶을 보장해줄 수 없고, 해주지도 않습니다. 성매매처벌법 도입 후 지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러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향후에도 성 노동자들을 국가나 사회가 보살필 수 있을 것이라 생각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현실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매매처벌법이 제정되기 전인 2002년 여성부는 한국의 섹스산업 규모가 24조 원이라는 발표를 한 적이 있습니다. 형사정책연구원은 당시 한국의 성 노동자 수를 33만 명으로 추산했고, 학자들은 실제 최소 150만 명의 성 노동자가 존재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성매매산업은 규모가 크고 뿌리가 깊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회정화를 위한 것이라며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요? 청년 실업률이 12%를 육박하는 상황에서 이들 성 노동자들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자신들의 생계수단을 마련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국가가 엄청난 예산을 들여 이들의 삶을 보장할까요? 아닐 겁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지난 10년간 이들의 삶을 개선할 방법을 정부가 제공하지 못했음에도 생계수단을 버리고 굶어죽는 한이 있어도 우리 사회의 도덕을 위해 거리로 나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겐 '도덕'의 문제가 '실존'의 문제보다 중요합니다.

물론 국가가 성노동자들에 대한 지원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한데, 그 지원이라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아십니까? 2004년 <한겨레 21>에 실린 성매매 종사자의 이야기를 인용해보겠습니다.

"정부에서 직업훈련 과정을 이수하는 동안 한 달에 10만원을 지원한다고 했는데, 이게 바로 성급하게 법을 추진했다는 증거다. 10만 원 갖고 한 달을 생활해봤나? 못한다. 많은 빚을 져서 구원의 손길이 필요한 여성들은 이러한 시스템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성매매 시장에 진출한 여성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한달에 300만원 이상 버는 아가씨들도 많다. 그들이 새로운 직업을 찾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갑자기 수입이 줄어들었다. 그럼 어떻게 하나? 자신의 목표를 세워놓고 그동안 열심히 일했는데, 이제 와서 그 꿈이 깨질 판이다 ...(중략)... 우리의 직업은 사적인 영역이다. 왜 하지 말라고만 하나. 우리에게도 준비할 시간을 달라. 보호시설은 절대 못 간다. 평소 담배 피우고 술 마시며 자유롭게 살던 여성들이 교도소 같은 곳에서 어떻게 지내나. 보호기간이 끝나면 사회에 나와서 무엇을 할 수 있겠나. 나는 자신 없다. 원하는 여성들만 그런 시스템으로 보호하라, 다른 아가씨들은 제발 가만히 놔둬라."

집창촌 종사자의 증언에 따르면 국가의 지원이란 그들에게 매달 10만 원의 푼돈을 지급하며, 교도소와 같은 곳에서 한동안 직업훈련을 받으며 생활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된 지 10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이 같은 지원 정책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에게 자신의 직업을 포기하라고 종용하는 것, 타당한 일일까요? 또한 그들이 보호시설을 거쳐 사회에 나오게 된다고 하더라도 보호시설에 수용됐던 기록은 그들이 나쁜 이미지를 가진 채 사회에서 매도당하도록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러한 것처럼 말입니다.

이 사회는 유토피아가 아니며 그렇기에 단 하나의 도덕으로 인간의 모든 삶을 규정하며, 사회를 도덕적 무균실로 만들려는 태도는 올바르지 않습니다. 떄론 그러한 도덕적 근본주의가 누군가의 삶을 구렁텅이로 빠뜨릴 수도 있습니다. 이번 판결에서 헌법재판관 6명은 이 점을 잊고 있었습니다. '실존'이 '도덕'에 앞설 수도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성매매처벌법, 음성적 형태의 시장만 키워

이번 헌재 판결에서 조용호 재판관은 '전부 위헌'이라는 소수의견을 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성매매처벌법이 시행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성매매산업은 근절되지 못했고, 음성적 형태의 성매매 업소가 확산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주장처럼 그간 전통적 성매매 업소가 각종 단속으로 위축되는 동안 출장마사지, 노래방, 오피, 키스방 등 변종 성매매업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주택가에서마저 성매매가 일어나고 있으며, '해외 원정 성매매'도 늘어났습니다. 이처럼 음성화된 성매매업은 성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협합니다. 그들은 포주나 기도, 성 노동자 동료가 없는 곳에서 혹시나 일어날지 모를 폭력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왜 그런가에 대해서는 집창촌 종사자의 증언을 들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 범죄는 미아리, 청량리, 영등포에서 일어난 게 아니라 주로 출장안마, 노래방 도우미 그런 쪽에서 일어났어요. 유영철 사건 보세요. 그렇게 음성적으로 파고들다 보면 오히려 죽어가는 여성, 피해 보는 여성이 더 늘어날 수 밖에 없고, 경찰도 더 피곤해져요"(신동아 2004년 11월호)

사회를 좀 더 도덕적인 곳으로 만들겠다는 시도, 명분에는 동조합니다만 '실존'의 문제로 들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때론 도덕을 추구한다는 미명 아래, 성매매처벌법처럼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약한 곳에 위치한 자들, 그렇지 않아도 바닥에 있는 약자들을 더욱 약자로 만드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약자를 희생삼아 만든 사회적 도덕의 토대 위에 건전한 사회가 만들어질 것이란 기대는 온당한 것이 아닙니다.

얼마 전 국제엠네스티는 성매매를 비범죄화하자는 결의문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그들은 성 노동자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소외된 집중 중 하나이며 끊임없는 차별과 폭력, 학대의 위험에 놓여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의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성노동과 관련된 모든 측면을 비범죄화하고 이를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리는 방법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이와는 정반대의 길을 가려 합니다.

성매매 나도 반대한다, 그러나 위선은 부리지 말자

성매매의 만연은 헌법재판소의 다수의견처럼 우리 사회의 건전성을 해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를 이유로 150만 명에 달하는 종사자들의 밥줄을 끊겠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건전성만이 아닌 일부 구성원의 생계를 끊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들의 생계수단을 빼앗겠다는 것도 현실성이 떨어지는 생각이지만, 성매매처벌법이라는 법 하나로 오랜 기간 이어진 성매매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겠다는 것도 무모합니다.

이미 성매매처벌법은 실패한 법이 됐습니다. 지난 10년 성매매가 근절된 것이 아니며, 성 노동자들의 인권이 보장되지도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껏 도덕적 근본주의를 고수하며 마땅한 해결책도 없는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도덕을 내세운 위선이며, 사회 다수를 위해 사회적 약자, 소수의 인권을 도외시하는 비도덕적 태도입니다. 현실과 이상이 부합될 수 없다면, 우리는 그 중간에서 적절한 타협책을 찾는 것이 현명합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성매매는 여전히 공식적으로는 불법입니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2000년, 독일은 2001년, 뉴질랜드는 2003년 각각 성매매를 합법화했습니다. 이들 나라는 개인이 운영하는 사창제가 아닌 정부가 관리하는 '공창제'를 도입하거나 성 노동자들에게 면허를 주는 '면허제'를 도입했습니다.

이후 이 나라들은 국가의 관리 아래 성매매업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성매매업을 관리하자 비자발적인 성 노동자가 발생하지 않게 됐고, 범죄조직과 성 노동자들의 연결고리가 끊어졌습니다. 성 노동자들의 안전과 인권이 보장됨은 물론 이들은 각종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들의 모습을 본받는다면 어떠할까요? 성 노동자의 인권을 보장하고 그들의 성적 자기결정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지켜주면서, 사회적 건전성도 다소 담보할 수 있는 공창제 혹은 면허제를 도입하는 일,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요?

오늘 도덕적 근본주의를 고수하며, 우리 사회의 약자적 위치에 처해 있는 성 노동자들에게 또 한번의 굴레를 씌운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성노동자들의 이 같은 외침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외침을 마지막으로 글을 끝맺습니다.

"아저씨, 우리가 몸 팔고 싶어 파는 줄 알아요? 상황이 절박해서 막다른 길목에서 최후 선택을 한 거고, 돈이 되니까 저는 사실 후회도 없어요. 나 하나 희생해서 우리 집에 웃음꽃이 피어나는데, 나는 더한 일도 할 수 있어요. 책상머리에 앉아서 우리를 범법자, 살인자로 만들지 말란 말이에요."(주간조선 2004년 10월 21일자 1825호)


태그:#성매매처벌법 합헌, #성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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