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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3일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한국 경제가 비상상황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안보와 경제는 국가를 지탱하는 두 축인데 지금 우리는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위기를 맞는 비상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게 대국민 담화의 핵심요지였다. 서비스산업법과 이른바 원샷법 통과를 주장하면서는 "(한국경제가) 성장 모멘텀을 영영 잃을 수도 있다"는 '곧 나라 망한다'는 식의 말까지 했다.

그러나 비장한 그의 발언은 불과 두 달도 안 돼 허언이 됐다. 바로 대통령 자신에 의해서다.

박 대통령은 지난 7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최근 경제상황을 보면 긍정적인 측면도 많다."
"대외여건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이만큼 하고 있는 것은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이로써 우리 국민은 대통령의 말이 얼마나 진중하고 무게감이 있는 것인지 다시 한번 알게 됐다. 비상상황이던 우리 경제는 과연 두 달도 안 돼 긍정적으로 바뀌었나. 아마 대통령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진 않을 것 같다. 그런데도 180도 서로 다른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쏟는건 기억력이 원인인가 뻔뻔함이 원인인가.

경제 비상상황을 주장한 것은 이른바 '구조개혁'의 명분으로 국회에서 관련법 통과를 압박할 때였다. 그리고 경제가 긍정적이라는 말을 한 것은 총선이 임박해 야당에서 경제무능론을 들고 나오자 이에 대한 대응이었다.

그의 대국민 담화엔 이런 부분도 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의 실효성을 비난하는 여론에 대해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북측 최전방에서 근무한 탈북자들에 따르면, 확성기 방송 내용을 처음에는 믿지 못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믿게 되었고, 결국 목숨을 걸고 휴전선을 넘어 오게 되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또 한번 비장하게 의미를 부여했다.

"전체주의 체제에 대한 가장 강력한 위협은 바로 진실의 힘인 것입니다."

한반도 평화구상을 토론하는 세미나에서 초등학생의 반공 웅변을 듣는 것 같은 이 말이 대통령의 언어임을 알게된 뒤 필자는 우리 대통령에게 과연 '소통'이란 것은 가능한 것인가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주장의 말미에 소통하라는 주문을 빼놓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그건 부질없는 일 같다.

문재인 전 제1야당 대표는 대통령을 만나고 난 뒤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마치 벽에다 대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그간 보여준 대통령의 발언과 행동은 두달 만에 스스로의 발언을 뒤집는 등 일반적인 상식으로 분석되는 단계를 넘어서기 때문에 새로운 이해의 틀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린 입장을 바꿔서 그를 생각해봐야 한다. 이른바 내재적 접근법이다.

대통령은 지금 대한민국의 절대절명 위기를 혼자 맨몸으로 맞서고 있다고 생각한다. 안팎으로 국가의 발전을 이뤄나가며 북한의 위협에 맞서 나라를 지키고 있는 사람은 본인뿐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 시절처럼 북한은 호시탐탐 남침 야욕을 불태우고 있으며 그런 와중인데도 야당은 항상 발목을 잡고 시비를 걸면서 국가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한시라도 빨리 국력을 모아 단결하고 앞으로 전진해야 할 이때, 아무 것도 모르는 일부 국민들은 야당에 부화뇌동하고 있고 그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오히려 대통령에게 비난을 일삼기까지 한다. 이렇게 본다면 박 대통령은 지금 얼마나 땅을 치고 가슴을 칠 답답한 상황인가. 이런 판국에 무슨 대화고 소통인가. 내부의 적이나 마찬가지인 사람들과 대화를 하라니.

이런 인식을 가진 사람에겐 소통이란 말은 애당초 성립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선 트럼프같은 사람이 벌써 8년째 집권하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 스스로의 수준이 알려지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소통을 하라고 하는 것은 사실 매우 가혹한 것이다. 지금의 그에게 필요한 것은 소통이 아니라 '교육'이다.

그에게 소통보다 엄격한 가르침이 필요하다는 건 이미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시절에 측근이던 전여옥 대변인이 힌트를 준 바 있다. 2012년 삼성동의 자택을 방문했던 전 대변인은 이런 감상평을 남겼다.

"지적 인식능력이 문제가 있다 생각했다. 서재에 일단 책이 없었고 증정받은 책들만 있어 통일성을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여기가 서재가 맞나 했다."
"정치인들이 출판기념회하고 준 책들밖에 없더라."

사실 그간 대통령은 지식인 사회에 여러번 배움의 부족을 호소하며 자신을 가르쳐달라고 신호를 보냈었다. 얼핏 생각나는 것만 해도 "지금 나랑 싸우자는 거예요?" "그러니까 대통령 하려는 거잖아요" "4대악을 척결하겠습니다.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음.. 그리고 불량식품이요." "저한테 왜 그년이라고 하셨어요?" "북한이 날로 먹으려고 하잖아요." 등.

게으른 지식인들은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드러내면서 배움을 갈구하는데도 그저 비웃기만 했을 뿐 팔을 걷고 그를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상황은 계속 나빠졌다.

최근 테러방지법을 찍어눌러 통과시키는 것이나 진박이니 친박이니 하는 여당의 전쟁같은 공천쟁취 투쟁을 보면서 늦었지만 이제라도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이제 '소통'이 아니라 냉철한 가르침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는 소통을 할래야 할 수가 없는 사람이다.


태그:#박근혜, #대통령, #소통, #비상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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