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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들꾸들 물고기씨, 어딜 가시나>는 성석제 작가가 전하는 '소울푸드'에 관한 이야기다. 한 그릇의 음식 안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음식은 따뜻한 기억이기도 하고, 눈물 젖은 설움이기도 하며, 아스라한 추억이기도 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다. 성석제는 이 책에서 "어떤 음식을 맛있게 먹었을 때의 그 맛을 찾는 건, 그때의 자신을 찾는 것과 같다"(65쪽)며 평생 잊지 못할 맛을 '평생 잊지 못할 첫사랑'에 비유했다.

사람과 사람, 소울푸드 이야기 

<꾸들꾸들 물고기씨, 어딜 가시나> 표지
 <꾸들꾸들 물고기씨, 어딜 가시나> 표지
ⓒ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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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나라, 어떤 지방을 가든지 그 지역 고유 음식을 꼭 먹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탓에, 작가는 여행지에서 만난 음식들과 그 음식들에 얽힌 이야기들을 맛깔나게 들려준다. 어릴 때부터 우리 한식만 좋아하고 편식을 심하게 했더니 남의 나라 남의 땅에 가면 그곳 음식만 먹어야 한다는 벌을 받는 것이라면서, 작가는 '맛있는 벌'이라고(58쪽) 너스레를 떤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꾸들꾸들 물고기씨'는 키르기스스탄의 도시 발륵치에서 만난 이시쿨 호수의 송어에 붙인 말이다. 대충 꾸들꾸들하게 마르면 찢어서 먹는데 담백하고 짭조름하고 질겨 현지에서 파는 러시아 맥주와 기가 막히게 어울린단다. 작가는 북어와 꽁치의 맛이 함께 나서 '꾸들꾸들 물고기씨'에게 '북치'라는 이름을 하사했다고(162쪽) 한다.

곶감으로 유명한 상주가 고향인 작가는 잊을 수 없는 고향의 맛을 소개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무말랭이 무침처럼 생긴 발효 음식 '골곰짠지'는 다른 반찬 없이도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게 만든다. 단 것이 귀하던 어린 시절, 처마 밑에 매달린 곶감을 몰래 하나씩 따 먹던 기억은 골곰짠지와 함께 평생 잊을 수 없는 황홀한 맛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작가는 "내 고향의 음식은 대부분 때에 따라 흔하고 좋은 재료를 최대한 재료의 맛을 살리는 방향으로 조리하고 거기에 발효의 과정을 거친 깊은 맛을 더해 조화를 이룬다는 특징이 있다"며 "본질과 실질간의 거리가 짧으니 생활에서 멀어진 형식적이고 번드르르한 과정은 찾을 수 없다"고(259쪽) 예찬했다. 

'골곰짠지를 씹으면 눈 밟을 때 나는 소리와 비슷한 '꼬드득(오도독)' 소리가 난다. 밭에서 뽑아온 무를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소금에 절였다가 씻어서 말린 뒤 발효하는 과정을 거친 까닭에 마른 무의 질깃한 부분에 이가 박히며 '꼬' 혹은 '오' 소리르 내고 상대적으로 수분이 많은 생짜 무의 실질이 '드득(도독)'하는 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 실질의 소리는 가까이 있는 우리의 뇌리에 도달해서 또 다른 소리를 불러 일으킨다. 골곰짠지와 우리 각자의 어린 시절이 한 손씩 내밀어 추억과 본연의 맛이라는 박수 소리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고향의 황홀한 맛' 중에서, 256쪽)

작가가 쓴 소설의 절반 가까이는 상주를 무대로 한 작품들이라고 한다. 그만큼 고향마을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그는 "소설 쓰는 사람으로서 내 관심사의 가장 앞쪽에 있는 것이 바로 사람이 사람으로 사람답게 사는 풍경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인데 거기에는 삼라만상 중에 사람이 귀하고 높고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상주가 있었기 때문"이라고(260쪽) 했다.

내 인생의 황홀한 맛, 엄마의 김치찌개

책을 읽다 보니 내 인생 '단 하나의 음식'인 김치찌개가 떠올랐다. 너무나 흔해서 동네 분식점부터 고급 음식점까지 어디를 가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나한테는 평생 이것만 먹으라고 해도 상관없는 '음식 그 이상의 음식'이다.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맛의 세계를 경험하지 못한 탓에, 내 입맛은 굉장히 단순한 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경제력도 입맛을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살림이 가난하면 음식도 단촐할 수밖에 없으니까. 넉넉치 못한 형편에서도 엄마는 손맛이 좋았다. 산해진미를 먹으며 자라지는 못했지만, 특별히 못 먹고 자랐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순전히 엄마 덕분이다. 엄마의 음식 중 단연 최고는 김치찌개다. 

많은 식당에서 많은 김치찌개를 먹어봤지만 엄마의 김치찌개를 능가하는 걸 먹어본 기억이 없다. 엄마도 딸의 입맛을 잘 아는 탓에 집에 오는 날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항상 김치찌개를 끓여 내놓곤 했다.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이상하게 내가 만들면 절대로 그 맛이 안난다.

엄마한테 방법을 여러 차례 물어봤다. 언젠가는 소주를 넣으라고도 하고, 언젠가는 고기를 먼저 볶으라고도 하고, 또 언젠가는 양파를 좀 많이 넣으라고도 하고... 하여튼 그 맛이 아니다. 엄마의 김치찌개를 먹으려면 반드시 엄마가 손수 만들어야만 한다.

객지생활에 지쳐있을 때, 뭔가 정말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을 때, 울화가 치밀어 스트레스를 확 날려줄 음식이 필요할 때 항상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엄마의 김치찌개였다. 그런데 얼마전부터는 예전의 그 맛이 아니다. 엄마도 그걸 아는지 "맛이 좀 변했냐? 나이가 들어서 요새는 통 맛을 잘 모르겠다"고 하신다. 나는 애써 표정관리를 하며 "아니야, 그 맛 그대로인데. 역시 맛있어"라고 대답한다.

몰랐다. 엄마도 늙는다는 것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칠순을 맞은 엄마는 노인의 모습을 하고 내 눈앞에 앉아 있었다. 내 인생을 통털어 앞으로도 다시 없을 그 황홀한 맛이 사라진 것이다. 이제 다시는 그 맛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 켠이 휑하다.

<꾸들꾸들 물고기씨, 어딜 가시나>는 누구의 인생에나 하나쯤 있을 법한 '소울푸드'를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따뜻하기도 하고 아리기도 하다. 엄마의 김치찌개는 이제 흑백사진처럼 내 기억속에만 존재할 것이다.

가끔은 사진을 꺼내듯 그 기억을 되새기고, 이제는 내가 아이들에게 '소울푸드'를 해 주면서 늙어가겠지. 아이들이 자라고 나도 엄마처럼 나이가 들어 '엄마의 마음'에 가 닿으면 그 김치찌개 맛을 낼 수 있으려나. 오늘 저녁 메뉴는 또 '김치찌개'다.

덧붙이는 글 | <꾸들꾸들 물고기씨, 어딜 가시나> (성석제 지음 / 한겨레출판 펴냄 / 2015.11. / 1만4000원)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꾸들꾸들 물고기 씨, 어딜 가시나

성석제 지음, 한겨레출판(2015)


태그:#성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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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 농촌에서 하루 하루 잘 살기 위해.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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