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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2009년 7월 6일 전남 황전면에서 일어난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에 관한 이야기다. 당시 검찰은 청산가리를 탄 막걸리로 어머니를 죽인 범인으로 남편과 딸을 지목했다. 그 후 부녀는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고, 각각 무기징역과 실형 20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부녀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검찰 수사 결과를 수긍하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독자 대다수와 인연이 없는 이 부녀의 인생살이를 이 연재물에 담았다... -기자 말



(14화 : "아내 죽이려면 혼자 하지, 왜 딸을 끌어들여?" 편에서 이어집니다)



7월 3일 당시 백희정씨는 오전 0시 18분에도 휴대전화로 게임에 접속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부모가 모두 일터로 떠나 집에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백희정은 엄마가 차려놓고 간 아침 밥상을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날 엄마는 오후 5시경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백희정이 검찰에 자백한 내용을 살펴보자. 아버지는 오후 6시 10분경 일을 마치고 오자마자 아내 최명자씨가 있는 부엌으로 갔다. 아버지는 냉장고에서 막걸리 두 병을 꺼냈다. 막걸리를 창고에 가져다 놓고 막내딸 방으로 들어와 작은 목소리로 백희정씨에게 속삭였다.



"희정아, 창고에 가봐라."



아버지가 창고에 둔 막걸리와 청산가리


 
검찰이 밝힌 7월 3일 상황
 검찰이 밝힌 7월 3일 상황
ⓒ 공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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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희정은 이 말을 듣고 방을 조용히 나갔다고 했다. 백희정은 창고 문을 열어봤다. 당시 백희정씨는 창고 안 구석에 청산가리 봉지와 검정 비닐봉지에 담긴 막걸리 2병을 보았다고 했다. 백희정은 지문이 남을까 봐 막걸리병을 만져보지 않고 그대로 창고 문을 닫았다. 



검찰에서 백희정은 '막걸리와 청산가리를 확인하지 못한 게 지문이 남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말 그 이유 때문일까? 그날 백희정씨의 동선을 살펴보면 버스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날 백희정은 저녁에 순천 시내로 가야만 했다. 이 마을에서 순천 시내로 가는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꼴이다.


 
순천행 구례구역 출발 버스 시간표
 순천행 구례구역 출발 버스 시간표
ⓒ 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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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시간 구례구역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10분 후, 백희정이 사는 마을에 도착한다. 오후에는 백희정네 집 인근 버스정류장에 4시 10분경, 5시 15분경, 6시 15분경, 7시 30분경, 8시 55분경에 순천 가는 버스가 선다. 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지는 약 100m 정도 떨어져 있다. 넉넉잡아서 버스 도착 예상 시간 10분 전에 집에서 출발하면 충분하다.



그날 둘째 언니의 기억에 따르면 '그녀가 백희정을 순천에서 저녁에 만났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백희정은 아마도 오후 6시 15분쯤 버스를 탔던 것으로 보인다. 즉, 백희정은 아버지가 '창고에 가보라'고 말하자 창고로 가서 범행도구들을 대충 본 후에 버스정류장까지 달려갔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날 백희정에게는 대체 어떤 다급한 일이 있었던 것일까? 왜 그토록 시간이 없었을까?



이날 백희정은 순천 둘째 언니 집에서 조카들과 피자와 사이다를 먹었다.


 
피자 먹으러 순천으로 가는 백희정씨
 피자 먹으러 순천으로 가는 백희정씨
ⓒ 공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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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둘째 언니는 백희정을 순천 집으로 오게 했을까? 그건 막내아들을 친정에 데려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피자와 사이다를 실컷 먹은 후, 백희정은 막내 조카를 데리고 언니 집을 나섰다. 둘째 언니는 막내아들이 좋아하는 우유를 여덟 개 정도를 검은 비닐봉지에 넣었다. 



둘째 언니는 주말이었던 7월 5일, 막내아들을 데리러 갈 생각이었다. 그때까지 막내아들이 먹을 만큼 우유를 넉넉히 넣었다고 한다. 훗날 검찰 현장검증 때 백희정이 냉장고를 여는데, 7월 3일 밤 냉장고 안에 놔뒀다가 사건이 터진 후 방치된 우유가 보였다.



엇갈리는 진술, 과연 누구 말이 맞나


 
7월 3일 냉장고에 넣었다가 9월 초까지 방치된 우유
 7월 3일 냉장고에 넣었다가 9월 초까지 방치된 우유
ⓒ 공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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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둘째 언니 진술을 다시 살펴보자. 당시 둘째언니는 막내아들이 좋아하는 우유 여덟 개를 검은 비닐봉지에 넣었다고 했다. 사건 발생 후, 경찰은 당시 백희정씨가 우유를 담은 검은 비닐봉지 안에 막걸리를 함께 놔둔 것이 아닌가 의심하여 확인 작업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검찰 수사를 보면 경찰 예측이 틀렸다. 이미 막걸리는 아버지가 구입했고 그 시간대에 막걸리는 창고 안에 있었다.


 
7월 3일 창고에 놔둔 막걸리
 7월 3일 창고에 놔둔 막걸리
ⓒ 공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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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백희정씨 자백이다. 하지만 아버지 백경환씨 진술은 막내딸과 정반대다. 아버지인 백경환씨 증언에 따르면, 그는 7월 3일 오후 6시~7시 사이에 집에 도착했다. 당시 백희정은 외출하고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오후 8~9시경 백경환씨가 부엌 냉장고에서 막걸리 2병을 모두 꺼내서 마당 아래 창고에 가져다 놓았다. 여기까지 보면 아버지 진술이 막내딸 진술보다는 더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아버지는 순천에서 막차를 타고 온 막내딸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즉, 아버지가 막내딸에게 "창고에 가보라"고 알려주었던 때는 막내딸 옆에 외손자도 함께 있었다. 검찰은 두 엇갈리는 진술을 공소장에 이렇게 소화해냈다.



'백경환은 2009. 7. 3. 18:00경 냉장고에서 꺼낸 막걸리 2병과 약 17년 전에 이강춘으로부터 얻어다가 하얀 비닐봉지와 신문지 조각으로 감싼 채 창고 선반 위에 보관하고 있던 청산염을 꺼내 창고 바닥에 놓아두고 피고인 백희정에게 그 사실을 알려 주었다'



7월 3일 막차를 타고 돌아온 백희정은 가방에서 우유들을 꺼내 냉장고에 넣었다. 그리고 살인계획을 떠올리며 조카 옆에 누워 새벽에 게임 접속을 한다.



(제16화 - 나흘간의 기억 중 '셋째 날' 재구성 편으로 이어집니다)
 

태그:#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서형 , #나흘간의 기억 , #검찰, #부러진 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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