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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2009년 7월 6일 전남 황전면에서 일어난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에 관한 이야기다. 당시 검찰은 청산가리를 탄 막걸리로 어머니를 죽인 범인으로 남편과 딸을 지목했다. 그 후 부녀는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고, 각각 무기징역과 실형 20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부녀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검찰 수사 결과를 수긍하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독자 대다수와 인연이 없는 이 부녀의 인생살이를 이 연재물에 담았다... -기자 말

(13화 : 웃으며 성폭행 증언한 막내딸 세 딸 돌아가며 성추행한 아버지 편에서 이어집니다)

검찰은 백희정씨가 사건 발생 3개월 전부터 살해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당시 백희정씨가 부모를 모두 살해하려고 했다는 얘기다. 대체 부모와 자식 간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당시 엄마는 막내딸이 집안일도 돕지 않고 밖으로 돌아다닌다며 야단을 쳤다고 한다. 백희정씨가 엄마에게 말대꾸하자 아빠는 '엄마에게 대든다'며 백희정씨 뺨을 한 대 때렸다.

아버지와 엄마 살해 공모한 딸

부모 살해 동기
 부모 살해 동기
ⓒ 공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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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희정씨는 눈물을 흘리며 아빠에게 소리쳤다.

"잘해준 것도 없는데 왜 때려!"

그리고 백희정씨는 곧장 집 밖으로 뛰쳐나와 부모를 죽일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바꿔 엄마만 살해하기로 했다. 백희정씨는 아빠는 간섭하지 않아 죽일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고 했다. 엄마는 술을 마실 때마다 '막내딸이 남자를 만난다'며 모욕을 주곤 했다.

2009년 4월, 어느날 밤 백희정씨는 살해 도구로 병이나 칼을 떠올렸다. 지문이 남지 않도록 장갑도 마련해야 했다. 백희정씨는 다음날 순천에 있는 한 문구점에서 면장갑을 샀다. 당시 구매한 면장갑은 부엌 찬장 위쪽 칸에 숨겼다.

백희정씨가 아버지에게 범행 공모를 제안한 것은 다음달인 5월이었다. 백씨는 아버지가 있는 안방에 들어가 이렇게 물었다.

"지금 무슨 생각하고 있지 않으냐?"

엄마를 죽일 생각이 없는지 떠본 것이다. 아버지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6월 중순이 되자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날씨가 무더웠던 평일 오후 2시쯤 백희정씨를 안방으로 불러들여 엄마를 죽이자고 말한 것이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반대로 백희정씨가 소극적이었다. 백희정이 제안은 받았으나 거절했고 아버지는 이후에도 뜻을 물으며 재촉했다. 당시 백희정씨는 어쩔 수 없이 '마지 못 해' 동의했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은 이 대목도 이해하지 못한다.

"아내를 죽일 거면 혼자서 하지, 왜 딸을 끌어들여? 뭐가 좋은 일이라고?"

정작 당시 둘은 서로 마음이 통하기 시작했다. 막내딸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막걸리와 청산가리를 어디서 구할 수 없느냐?"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겼다. 창고에 오랫동안 보관한 청산가리가 있다는 말을 이때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행동 개시' 날짜가 7월 2일이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공소장에 나온 범행 첫날, 7월 2일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백경환씨는 곡성에 있는 산림청 하청 작업장으로, 최명자씨는 자전거를 타고 희망근로 사업장으로 떠났다. 백희정씨가 아침에 일어났을 때 부모는 집에 없었다.

검찰은 백경환씨가 일을 마치고 오후 6시쯤 집에 왔다고 했다. 그리고 아내 최명자씨를 데리고 순천 아랫시장에 있는 장원식당에 갔다. 차를 타면 집에서 40분 정도 거리다. 백경환씨는 살해 전 '아내가 좋아하는 국밥을 사주고 싶었다'고 했다.

"국밥 먹고 막걸리만 따로 사가는 일은 드물다"는 증언

최후의 만찬
 최후의 만찬
ⓒ 공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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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최후의 만찬'을 위해 순천 아랫시장을 찾은 셈이다. 아랫시장에 장이 열리는 날은 끝자리가 2일과 7일이다. 당시 백경환씨 부부는 장원식당에서 국밥을 먹고 막걸리 3병을 샀다. 백경환씨는 구입한 막걸리 3병 중 2병을 냉장고에 보관했고 한 병은 부부가 함께 마셨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검찰 주장이다. 이제부터 의문점을 하나씩 살펴보자.

우선 국밥을 먹고 국밥 가게에서 막걸리 3병을 구매하는 게 흔한 일일까? 국밥 가게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은 '손님이 수육 같은 음식을 포장할 때 막걸리를 같이 사 가는 경우는 흔하다'고 했다. 하지만 '국밥을 먹고 나서 막걸리만 3병을 사는 일은 드물다'고 했다.

그보다 앞서 이들 부부가 트럭을 타고 집에서 40여 분 걸리는 순천으로 가기는 했을까? 이들 부부가 순천으로 간 것을 증명하는 CCTV 자료는 찾아내지 못했다. 이에 대해서 친척들도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인근에서 유명한 맛집들
 인근에서 유명한 맛집들
ⓒ 공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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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아내에게 국밥을 사준다면 더 맛있고 거리가 가까운 '괴목 국밥집'이 있었다. 괴목 국밥집은 전국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다. 게다가 순천 아랫시장에서 국밥을 사준다면 장원식당 옆에 있는 금봉식당(가명)이 더 유명하다.

백경환씨는 왜 굳이 국밥을 먹으러 먼 순천 아랫장까지 간 것일까? 백경환씨는 '동네 슈퍼에서 막걸리를 사면 들킬 염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가 이용한 장원식당 또한 내부에 CCTV를 설치한 곳이다. 백경환씨가 검찰에서 자백했을 때는 범행으로부터 50일 이상 지났기 때문에 식당 내 CCTV 자료도 남아있지 않았다.

당시 백경환씨는 검찰 자백에서 '아내와 막걸리 3병을 사고 아랫시장에 가서 반찬거리를 사 왔다'고 했다. 하지만 검찰은 반찬가게에 대한 탐문수사는 건너뛰었다.

이번에는 당시 통화기록을 통해 부부 행적을 살펴보자. 이날 최명자씨와 순천 둘째 딸 사이에 통화한 기록이 있다. 둘째 딸이 오후 6시 4분경에 엄마에게 전화했다. 대화는 14초 정도였다. 그날 밤 엄마는 둘째 딸에게 오후 8시 30분경에 전화한다. 총 통화시간은 53초였다.

막내딸에게 전화했더니 다른 남자가 받았다?

부녀 통화 기록
 부녀 통화 기록
ⓒ 공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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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어떠한 이야기를 했을까? 먼저 순천 둘째 딸이 엄마에게 전화한 이유를 살펴보자. 순천 둘째 딸은 엄마에게 전화해서 동생 희정을 찾았다. 엄마는 집에 없다고 답했다. 14초 동안 이뤄진 대화다.

그후 언니는 백희정씨에게 전화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동생 휴대전화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언니는 동생 휴대전화를 받은 사람에게 누군지 묻고 "왜 동생 휴대전화를 갖고 있느냐"고 물었다. 상대는 "백희정 동네 후배"라고 했다. 언니는 상대에게 위치를 물었다. 동네 후배라는 남자는 "순천의료원 근방"이라고 답했다. 언니는 "휴대전화를 찾으러 가겠다"며 차를 몰아서 순천 의료원 로터리(교차로)로 갔다.

순천의료원 네거리
 순천의료원 네거리
ⓒ 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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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니 그 '동네 후배'는 없었다. 다시 희정이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더니 전화를 받은 남자는 "마을로 돌아가고 있다"고 했다. 순천에서 마을로 가는 33번 버스 종착지는 구례구역이다.

그날 밤, 최명자씨는 둘째 딸에게 저녁 8시 30분 55초경 전화했다. 당시 통화시간은 53초다. 엄마는 과연 둘째 딸에게 순천에 다녀왔다는 말을 했을까? 이때 최명자씨는 "희정이 휴대전화를 찾으려고 구례구역으로 갔는데 '그 후배가 없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통화 내용상 당시 오후 6시 4분에서 오후 8시 30분 사이 부부 행적에 단서가 될 만한 통화기록은 없다. 물론 부부가 순천 시내를 다녀왔을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둘째 딸은 이 가능성을 부정했다. 순천에 사는 둘째 딸은 맞벌이 부부이며 어린 두 아들이 있다.

가족관계도
 가족관계도
ⓒ 공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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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맞벌이 부부라 당시 아이를 돌볼 여력이 없었다. 며칠 전부터 친정 엄마에게 전화해 애를 맡기려 했지만, 부모님 역시 일 때문에 지쳐서 순천까지 가서 외손자를 데려올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7월 2일, 부모님은 순천에 왔다가 둘째 딸에게 연락도 없이 돌아갔다. 이튿날, 금요일에도 부부 모두 일을 나가야 하니 외손자를 봐줄 수가 없어서 연락을 못했을 수도 있다.

검찰은 부부가 구입한 막걸리 3병 중 2병을 그대로 부엌 냉장고 안에 보관했고 한 병은 거실에서 꺼내 함께 마셨다고 한다. 즉, 부부가 막걸리를 마시는 와중에 어머니 최명자씨는 막내딸 휴대전화를 찾으러 자전거를 타고 구례구역으로 나갔다고 볼 수 있다.

구례구역까지는 자전거로 5분 거리다. 그리고 어머니 최명자씨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20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 백희정씨가 엄마에게 8시 49분 24초경 전화한다. 당시 통화가 연결된 기지국은 순천시 조곡동이었다. 백희정이 순천시에서 휴대전화를 찾아 전화한 것이다. 그 후 오후 9시 42분 29초에도 다시 전화하는데, 기지국은 순천시 황전면 수평리였다. 백희정이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전화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날 밤 백희정은 10시 46분경 게임에 접속한다.

(제15화 - '둘째 날(7월 3일) 재구성' 편으로 이어집니다)


태그:#나흘간의 기억 ,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순천 막걸리 사건 , #서형 , #구겨진 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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