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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라고 말합니다. 치통을 겪고 있는 사람은 이빨이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치통이 얼마나 아픈 것인지 모를 거라고 합니다. 요로결석을 경험해 본 사람을 요로결석이 얼마나 아픈 것인지 모른다고 합니다. 백 번 동의합니다.

가려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픈 것과 가려운 것은 분명 다릅니다. 하지만 가려움 때문에 겪는 고통 또한 통증으로 인한 고통 못지않습니다. 머리카락이 피부에 떨어져도 가렵습니다. 흐르는 땀 때문에 가려울 수도 있습니다. 이정도의 가벼운 가려움은 일상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피가 나도록 긁어도 시원하지 않고, 긁고 또 긁어도 멈추지 않는 가려움은 통증에 못지않은 괴로움입니다. 얼마 전에는 가려움 때문에 삶을 포기하는 끔찍한 사고까지 있었습니다. 가려움은 남녀노소,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습니다. 요즘 사람들만 가려운 건 압니다. 예전 사람에게도 가려움이 있었습니다. 미천한 백성에게도 있었고 만인지상의 임금에게도 있었습니다.

<용포 속의 비밀, 미치도록 가렵도다>

<용포 속의 비밀, 미치도록 가렵도다> (지은이 방성혜 / 펴낸곳 시대의창 / 2015년 12월 10일 / 값 15,000원>
 <용포 속의 비밀, 미치도록 가렵도다> (지은이 방성혜 / 펴낸곳 시대의창 / 2015년 12월 10일 / 값 15,000원>
ⓒ 시대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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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포 속의 비밀, 미치도록 가렵도다>(지은이 방성혜, 펴낸곳 시대의창)는 용포로 상징되는 사람들, 왕이나 왕가 사람들이 가려움 때문에 겪었던 남모를 고통과 가려웠던 이유를 밝히고 있는 내용으로 <승정원일기>를 출처로 하고 있습니다.

<승정원일기>는 조선 시대, 왕명의 출납을 관장하던 승정원에서 날마다 다룬 문서와 사건을 기록한 일기입니다. 초기의 것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불에 타 없어지고 현재는 1623(인조 1)년부터 1894(고종 31)년까지의 것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인조, 소현세자, 효종, 장렬왕후, 현종, 숙종, 경종, 인원왕후, 영조. 현빈궁, 사도세자, 혜경궁 홍씨, 의소세손, 정조, 순조, 고종까지.

이들이 공통적으로 가려움증을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가렵게 하는 원인은 천차만별입니다.

인조가 초록색 땀을 흘리며 가려워했던 건 담즙 속 빌리루빈이 옆구리혈관으로 역류했기 때문이며, 정조가 즉위 23년에 겪어야 했던 가려움은 감기와 체기를 치료하기 위해 약을 복용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흘린 땀 때문에 생긴 가려움이었습니다. 

왕가 사람들이 겪은 가려움증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역시 장렬왕후에 대한 기록입니다. 장렬왕후는 15세 때 44세였던 인조의 왕비가 됩니다. 인조에게는 이미 옹주까지 있는 소용 조씨가 있었습니다.

독수공방이라 가려웠던 장렬왕후

장렬왕후는 소용 조씨의 수작으로 쫓겨나다시피 경덕궁으로 밀려납니다. 장렬왕후는 남편의 사람을 충분히 받아보지도 못하고 부부 생활도 제대로 하지도 못했습니다. 장렬왕후는 얼굴이 붓고, 얼굴에서 열이 나고, 홍조와 가려움이 생겼습니다.

'과부나 비구니의 병은 보통 부인들의 병과는 다르다. 부부 생활을 하지 않는 과부와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지 않는 비구니는 자궁과 간 경락이 잘 순환되지 않아 병이 잘 온다고 보았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얼굴을 치료하는 약을 쓸 것이 아니라 간의 순환을 풀어주는 처방을 쓰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 <용포 속의 비밀, 미치도록 가렵도다> 72쪽

치료를 하면 괜찮아졌지만 재발하고 또 재발했습니다. 장렬 왕후는 왕가의 여인이었습니다. 체면을 중시하는 왕가의 여인이었기에 입은 침묵하고 있었지만 몸은 말하고 있었습니다. 

'몇 백 년 전에 돌아가신 왕실의 여인에게 외람된 얘기일지 모르겠으나 장렬왕후에게는 탕약도 필요했지만 인생의 반려자도 필요했던 것 같다. 입으로는 맛난 음식을 먹고 몸으로는 고된 일을 할 필요가 없어 편안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외롭다, 쓸쓸하다 말하고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도 필요하지 않았을까?

갑자기 얼굴에서 열이 오르고 홍조가 생기고 가려움이 생겼던 것은 입으로 말하지 못한 그 외로움이 몸에서 쌓이고 쌓여 둑 문을 막아버려서 아니었을까? 공감해줄 인생의 반려가 없었기에 1년 뒤 똑같은 증세가 재발하지 않았을까? 아마 현대에도 인생의 짝꿍이 필요한 수많은 장렬왕후가 있을 것 같다.' - <용포 속의 비밀, 미치도록 가렵도다> 77쪽

사람들이 겪는 가려움 중에는 의학적 처방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가려움도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현대판 장렬왕후, 장렬왕후와 크게 다르지 않은 입장에 있는 사람이 분명 있습니다.

전직 장관을 지낸 어느 여성분도 그렇고 현직 대통령도 장렬왕후만큼이나 인생을 동감해줄 반려가 없는 독신입니다. 혹시 이들이 가려워한다면 주치의들은 그들을 가렵게 하는 인자가 입으로는 말하지 못하는 걸 몸이 말하고 있는 건 아닌지를 두루두루 살펴봐야 할 거라 생각됩니다.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용포 속에서 은근슬쩍 극적 거려야만 했던 그 가려움은 지금도 예서 저서 계속되고 있는 또 다른 형태의 가려움일 거라 생각됩니다.

덧붙이는 글 | <용포 속의 비밀, 미치도록 가렵도다> (지은이 방성혜 / 펴낸곳 시대의창 / 2015년 12월 10일 / 값 15,000원>



용포 속의 비밀, 미치도록 가렵도다 - 승정원일기에서 찾아낸 조선 왕들의 가려움

방성혜 지음, 시대의창(2015)


태그:#용포 속의 비밀, 미치도록 가렵도다, #방성혜, #시대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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