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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계시나?"

목소리가 이웃집 아저씨입니다. 지난 18일(수), 비가 내리자 할 일이 딱히 없으신지 우리 집에 마실 나온 모양입니다.

모과청을 담기 위해 준비를 했습니다.
 모과청을 담기 위해 준비를 했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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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잘 오셨네! 글 안 해도 전화드릴 참이었어요."
"뭐하려고?"
"모과를 땄거든요. 모과청 담그려는데, 써는 일이 만만찮네요!"
"그래요? 그럼 나랑 같이 썰어보지 뭐!"

아저씨는 벌여놓은 내 일감을 보고는 놀러오길 잘했다는 표정입니다. 금세 팔을 걷어붙입니다. 혼자하면 꽤 걸릴 일을 후딱 해치울 것 같아 나로서는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집 모과나무에 모과가 주렁주렁

우리 집 모과나무입니다. 가뭄에도 튼실한 열매를 안겼습니다.
 우리 집 모과나무입니다. 가뭄에도 튼실한 열매를 안겼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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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추적 가을비가 계속 내립니다. 요즘 내리는 비는 달갑지 않습니다. 콩타작이 자꾸 미뤄지고 있습니다.

"비가 내릴라치면 쫘악 쫙 내리던지, 찔끔찔끔 감질만 내네! 일만 못하게 하고!"
"그래도 가을걷이 거반 끝나고 내리니 다행이에요."
"허기야, 지금 내린 비도 감지덕지지! 그간 오죽 가물었어!"
"가뭄에도 이렇게 튼실한 모과를 선물해줬으니 얼마나 고마워요."

아저씨도 올해는 가뭄 속에 과일 풍년이라며, 하늘이 주신 선물에 감사할 일이라 합니다.

우리 집 모과나무는 세 그루가 있습니다. 심은 지 10년 남짓 되는 데 올해 가장 많이 열렸습니다.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다닥다닥 엄청 달렸습니다. 빛깔도 예쁘고, 주먹만 하게 커서 탐스럽습니다.

모과나무는 5월에 꽃을 피웁니다. 모과열매는 못 생겼다 놀림을 받지만, 꽃만큼은 연분홍 새색시 볼처럼 색감이 예쁘고 소담합니다.

우리 모과나무는 봄에 꽃을 흐드러지게 피울 때부터 가을을 기다리게 했습니다. 꽃이 진 자리에 숱하게 열매가 달렸습니다. 비바람에 작은 열매가 땅바닥에 나뒹굴었는데도, 많은 결실을 안겨주었습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모과나무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가지가 휠 정도로 많이 양의 모과가 달렸습니다.
 가지가 휠 정도로 많이 양의 모과가 달렸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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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새 서리 맞은 나무들이 죄다 이파리를 떨궜습니다. 이젠 앙상한 가지만 남기고 매서운 추위에 맞설 채비를 합니다. 모과나무는 아직까지 이파리를 붙들고 버티고 있는 게 신비스럽습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단풍든 모과나무와 노란색 모과가 탐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멀리서 보면 나무에 참외가 달렸다고 할 정도로 모과는 모양과 크기, 색깔이 참외와 비슷합니다.
 멀리서 보면 나무에 참외가 달렸다고 할 정도로 모과는 모양과 크기, 색깔이 참외와 비슷합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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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열매는 멀리서 보면 나무에 참외가 달렸나 착각이 듭니다. 모과의 원래 이름은 목과(木瓜)라 합니다. 나모 목(木)에 오이 과(瓜)를 써서 '나무에 달린 참외'라는 뜻에서 유래된 듯싶습니다. 잘 익은 모과는 크기나 모양, 색깔까지 참외를 쏙 빼닮았습니다.

보배 같은 과일, 모과

아저씨가 겉이 촉촉하고 미끈미끈한 모과를 요리저리 만져봅니다. 그리고 코끝에 갖다 대봅니다.

늦가을에 거둔 모과. 모과향이 술술 풍깁니다.
 늦가을에 거둔 모과. 모과향이 술술 풍깁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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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고거 참 향 좋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과일가게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던데, 모과향의 은은함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런 소릴 안 할 거야!"

눈을 지극히 감고 모과 향기를 맡는 아저씨 표정이 진지합니다.

사람들은 모과를 보고 네 번이나 놀란다고 합니다. 모과가 못생겼다고 처음 놀라고, 못생긴 과일치고는 기가 막히게 향이 좋다고 놀라고, 또 향이 좋아 맛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맛이 없어 놀란답니다. 생과로 먹지도 못할 맛이지만, 그 효능을 알고 또 놀라지요.

모과청을 담기 위해 네 쪼각으로 갈라 씨를 제거합니다.
 모과청을 담기 위해 네 쪼각으로 갈라 씨를 제거합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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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는 시금털털한 떫은맛이지만, 특유의 향 때문에 천연방향제로 사랑을 받습니다. 서리가 내리고 모과나무 이파리가 떨어져나갈 요즈음에 모과는 더욱 향이 좋다고 알려졌습니다. 상큼하면서도 은은한 향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과향을 좋아합니다. 어디 인공 향수가 자연의 모과향만 하겠습니까?

차량 안이나 집 안에 모과 몇 개만 두어도 조금씩 뿜어 나오는 향기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합니다. 특히, 책과 함께하는 공간에 모과향은 잘 어울립니다. 정신을 가다듬고, 조용히 책장을 넘겨볼 여유를 담아서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하지만, 모과의 진짜 면모는 그 효능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의보감>에 모과는 '갑자기 토사를 하면서 배가 아픈 위장병에 좋고, 소화를 잘 시키고 설사 뒤에 오는 갈증을 멎게 한다. 또 힘줄과 뼈를 튼튼하게 하고, 다리와 무릎에 힘이 빠지는 것을 낫게 한다'라고 되어있습니다.

또 <본초강목>에는 '주독을 풀어주고 가래를 제거해주고, 속이 울렁거릴 때 먹으면 속을 편안하게 한다'고 합니다.

모과는 특히 목에 좋다고 알려졌습니다. 모과차를 꾸준히 마시면 감기예방은 물론 약해지기 쉬운 목을 보호하고, 기침을 멈추게 하는데 더 없이 좋다고 합니다. 목을 많이 쓰는 사람에게 따끈한 모과차는 그만입니다. 또한 칼륨, 칼슘, 철분과 비타민C 등이 풍부하게 들어있어 거칠어진 피부미용에 좋고, 인체 내에서 신진대사를 돕는 효능이 있습니다.

나박나박 썰어 모과청을 담그다

모과를 썰면서 낚시를 좋아하는 아저씨가 뜬금없는 말을 꺼냅니다.

"모과 딸 때 손맛 좋았겠어?"
"손맛이요?"
"살짝 건들이기만 하면 큼직한 게 손에 잡혀 떨어지는 맛, 그게 손맛 아녀?"
"그래요. 과일 딸 때에도 손맛이라는 게 있지요."

손바닥에 안겨지는 수확의 기쁨이 더해지는 맛이 손맛이 아니냐고 아저씨는 웃습니다.

모과를 딸 때는 감 따는 도구로 높은 가지에 달린 것도 수월하게 딸 수가 있습니다. 도구 주머니 속에 쏘옥 넣어 당기면 상처 없이 딸 수 있어 좋습니다.

모과청을 담기 위해 모과를 나박나박 썹니다.
 모과청을 담기 위해 모과를 나박나박 썹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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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박 나박 썬 모과가 한 대야 가득입니다. 다진 생강을 조금 넣었습니다.
 나박 나박 썬 모과가 한 대야 가득입니다. 다진 생강을 조금 넣었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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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서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모과를 4등분하여 씨를 발라내고, 나박나박 썬 모과가 대야로 하나 가득입니다.

이제 모과청을 담그는 일만 남았습니다. 썰어놓은 모과에 적당량의 설탕을 섞습니다. 감기에 좋을 듯싶어 김장할 때 남은 다진 생강도 함께 버무립니다. 벌꿀도 넣어봅니다.

우리가 담근 모과청. 잘 숙성하여 유용하게 쓸 생각에 기대가 큽니다.
 우리가 담근 모과청. 잘 숙성하여 유용하게 쓸 생각에 기대가 큽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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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이 씻어놓은 유리병에 차곡차곡 쟁여 넣고 나니 일이 끝났습니다. 준비한 유리병으로 4개가 꽉 찼습니다.

아내가 퇴근하고 돌아왔습니다. 내가 만든 모과청을 보고 웃음꽃을 활짝 피웁니다.

"올 겨울엔 모과청으로 우리 집 감기, 뚝이겠네! 아저씨네도 많이 드렸죠?"
"그럼. 아저씨 친구 분도 오셔 한 바구니 드렸는걸!"

아직도 나무 끝에 매달려있는 모과를 우리는 귀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이웃들과 나누기로 했습니다.

바구니에 담은 모과. 향이 집안 가득합니다.
 바구니에 담은 모과. 향이 집안 가득합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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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잘 생긴 모과 몇 개를 바구니에 담습니다. 거실 한편과 내 책장 위에 올려놓습니다. 모과의 기분 좋은 향이 집안 가득합니다.


태그:#모과나무, #모과, #모과청, #모과효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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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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