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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으로 날아가는 포성 소리 들으며 심었던 김장배추

11월 13일, 하루 종일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오늘 내리는 가을비를 두고 하는 말 같다. 가을비를 맞으며 김장배추를 뽑았다. 배추를 뽑다 보니 겉잎 절반은 벌레들이 먹어치워 속잎 절반만 솎아서 잘라내야 했다. 그래도 고맙기만 하다. 농약을 일체 치지 않은 배추가 아닌가?

그런데다 이번 김장배추는 아주 특별한 사연이 깃들어 있어 애착이 더 간다, 아내와 나는 지난 8월 20일 소낙비를 맞으면서 텃밭에 김장배추를 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고막이 찢어나갈 듯한 포성소리가 들려왔다. 난생 그렇게 큰 포성 소리를 처음 들었다.
지난 8월 20일 심었던 김장배추가 절반은 벌레가 먹고, 절반만 남은 속 배추
 지난 8월 20일 심었던 김장배추가 절반은 벌레가 먹고, 절반만 남은 속 배추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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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뉴스를 보니 그 포성소리는 우리 측 군이 북으로 쏘아올린 포성이라고 했다. 북한의 목함지뢰 사건, 우리 군의 확성기를 통한 대북방송, 북한의 고사포와 직사포 도발, 그리고 우리군의 포 대응... 북으로 쏘아 올린 바로 이 포성 소리를 들으며 우린 김장배추를 심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근처의 모 포부대에서 쏘아올린 탓에 포성소리가 그렇게 크게 들린 것이다.

그 당시에는 정말 일촉즉발의 준전시상태였다. 삼팔선 이북 넘어 연천군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전국의 지인들로부터 빨리 대피를 하지 않고 무얼 하고 있느냐고 전화가 빗발쳤다. 그러나 아내와 나는 김장배추를 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던 철학자 스피노자의 말을 떠올리며 우린 김장배추를 정성스럽게 심었다. 배추를 심은 뒤에는 물을 천천히 주고, 강선 활대로 미니하우스를 만들어 그 위에 한랭사를 씌웠다. 한랭사를 씌우지 않으면 배추벌레들의 천국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가을비를 맞으며 김장배추를 잘라냈다.
 가을비를 맞으며 김장배추를 잘라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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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올해의 김장배추는 북으로 날아가는 포성소리를 들르며 심은 아주 특별한 배추다. 그리고 여린 모종들은 한여름 더위를 이겨내고, 배추벌레들을 비롯하여 각종 벌레들의 끈질긴 공격을 견뎌냈다. 지독한 가뭄도 극복을 했다.

절반은 벌레가 먹고 절반만 건진 배추라 할지라도 이렇게 우여곡절을 거치며 자란 배추를 수확하는 감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다. 비록 배추 포기는 작지만 농약을 일체 치지 않은 싱싱한 무공해 배추가 아닌가!

절반은 벌레들이 먹고 남은 무공해 배추 수확

마침 친구 부부가 서울에서 와서 김장을 하는 것을 거들어 주었다. 그와 나는 4년 동안 함께 키운 배추로 김장을 함께하고 있다. 김장은 1년 동안 두고두고 먹을 가장 중요한 반찬이다. 김장은 주부들에게는 1년 중 가장 힘들고 버거운 작업이다. 나이 들어가면서 김장이란 아내 혼자 하는 일이 아니란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이웃이 함께 어울려 품앗이 하듯 함께해야 수월하고 재미도 있다.

친구와 나는 배추를 뽑아서 나르고, 친구의 아내는 그 배추를 다듬어 절반씩 자르는 작업을 했다. 그동안 아내는 부엌에서 김장에 쓸 양념을 준비했다. 소금과 새우젓은 지난 번 심장이식환자들 모임 때 곰소에서 사왔다. 고춧가루는 구례 혜경이 엄마한테서 구입했다. 나머지 래시피인 무, 마늘, 파, 당근 등은 내가 손수 농사를 지은 것으로 사용을 했다. 찹쌀을 물에 담근 후 진상면 서울 방앗간에서 빻아왔다.

김장배추를 다듬어 소금에 절였다.
 김장배추를 다듬어 소금에 절였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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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재료를 준비해 놓고 뽑아온 배추를 소금에 절여 재웠다. 아내와 친구 부인은 밤늦게까지 파, 당근, 무채를 썰어 양념을 준비했다. 무채를 써는 동안 친구와 나는 마늘을 다지고, 생강 껍질 벗겨 준 뒤 바둑을 몇 판 두었다. 바둑은 정신을 집중하는 데 안성맞춤이다. 딱딱딱… 똑똑… 무채를 써는 도마소리와 바둑판에 돌을 놓는 소리가 적막한 밤에 멋진 드럼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김장에 쓰일 양념재료를 만들고 나자 자정이 훌쩍 넘었다.

밤새 만든 김장양념
 밤새 만든 김장양념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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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부부와 함께 담근 김장의 특별한 맛!

다음날 새벽 5시 밖에 나가 보니 어젯밤 재워두었던 배추가 숨이 죽어 곱게 가라 앉아 있었다. 너무 오래 재워두면 김장이 짜진다. 새벽잠을 설치고 우리는 절인 배추를 하나하나 씻어 냈다. 두 번, 세 번 씻어내자 간이 적당하게 맞아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씻은 배추로 차곡차곡 쌓아올려 물기가 쏙 빠지도록 했다.

김장배추 너머로 동이 트고 있었다. 임진강에 물안개가 피어오르며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했다. 아침 안갯속에 절인 배추들이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며 김치가 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식사를 하고 나니 오전 9시, 절인 배추의 물기가 충분히 빠지자, 찹쌀로 풀을 쓰고, 양념을 골고루 버무려 만들었다.

밤새 절인배추를 씻어 물 끼를 제거하고 있다. 멀리 아침 물안개가 아름답게 피어 오르고 있다.
 밤새 절인배추를 씻어 물 끼를 제거하고 있다. 멀리 아침 물안개가 아름답게 피어 오르고 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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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을 버무리는 것은 내 친구가 선수다. 그는 배추를 버무려 비비는 시범을 보여주며 "김치는 요렇게 비비는 거요"하며 씩 웃었다. 그가 들고 있는 김치를 보자 군침이 꿀꺽~ 넘어갔다.

"오늘 점심에 새 김치로 밥을 먹을 생각을 하니 저절로 군침이 넘어가네!"
"쌀밥에 김치를 북북 찢어 둘둘 말아 한 잎 오물오물 먹는 맛이란 기가 막히지."

잘 비빈 김치를 김장독에 차곡차곡 담갔다. 집 뒤곁에 땅을 파서 김장독을 묻어 두었다. 김장독 위에는 짚으로 움막을 지어 그늘이 지도록 했다. 말하자면 천연 냉장고를 만들어 놓은 샘이다. 눈이 폭폭 내리는 한겨울에 김장독에서 잘 숙성된 김치를 꺼내 먹는 맛이란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다. 서울아이들이 먹을 김치는 김치용기에 담았다.

양념을 골고루 묻혀 김치를 비비는 친구의 손 맛
 양념을 골고루 묻혀 김치를 비비는 친구의 손 맛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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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이들에게 줄 김장김치
 서울 아이들에게 줄 김장김치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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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를 비비고 담는 작업은 딱 12시에 끝이 났다. 김장을 마무리하자 이를 축하라도 해주듯 한 떼의 기러기들이 'V'자를 그으며 지붕 위로 끼룩끼룩 노래를 부르며 날아갔다.

"오우, 기러기들이 김장을 축하해 주네요."
"기러기야 고맙다!"

김치를 땅속 천연냉장고 김칫독에 묻어놓고 나니 아주 부자가 된 기분이다. 쌀만 있으면 금년 겨울은 무난히 나지 않겠는가? 친구 부부와 함께 새로 담근 김치를 식탁에 올려놓고 점심을 먹었다. 김치 맛이 입에 살살 녹는다. 북으로 날아가는 포성 소리를 들으며 자란 귀한 배추여서 그런지 아주 특별한 맛이 나는 것 같다.


태그:#김장담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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