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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길을 오르다가 무릎이 심하게 꺾여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비탈길을 오르다가 무릎이 심하게 꺾여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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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인도 코사니에서 머물기로 작정한 날짜를 일주일도 채 남겨놓지 않고 고통이 총체적으로 몰려왔다. 창자가 뒤틀리고 온몸을 장침으로 쑤셔 대는 듯한 고통과 함께 오한이 몰려왔다. 온몸으로 휘감아 오는 통증을 얼마나 견뎌낼 수 있는지 버텨 보겠다며 만용을 부렸다. 매일 산책을 나서던 내가 이틀 내내 코빼기도 보이지 않자 간디 아쉬람에 묵고 있는 가텀씨가 찾아와 약을 권했지만 나는 건방을 떨며 말했다.

"통증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입니다."

낮에는 그나마 견딜 만했다. 어둠이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밤이 되면 식은땀을 흘려가며 쓰려지듯 잠들었다. 이틀째 밤이 되자 창자가 찢겨나가는 듯했다. 이러다가 죽는 것이 아닌가 싶어 약에 대한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고 배낭을 뒤적거렸다. 하지만 오만방자하게도 한국에서 배탈이나 두통에 좋다는 상비약을 준비해 오지 않았다. 외상에 대비한 물파스와 후시딘, 밴드, 소독약 정도가 상비약의 전부였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과도를 꺼내 손톱 주변을 그어 피를 내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온몸을 휘감고 있는 통증을 주시해 가며 호흡을 가다듬어 보고 급기야는 손가락을 입안 깊숙이 집어넣어 강제로 위장을 비워내는 시도를 감행했으나 이틀 내내 먹은 게 별로 없다 보니 그 조차 효과가 없었다.

민박집 주인에게 약을 구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몸이 전혀 움직이질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통증을 잠재워 줄 만한 약을 복용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만 반복적으로 떠올랐다. '대체 이 통증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를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고 있었다. 혼미한 의식 속에서 답이 떠오르지 않는 원인을 찾다가 '이대로 죽는 것인가' 죽음을 코앞에 둔 사람처럼 혼자서 중얼거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기절하듯이 잠들었고 눈을 떠 보니 아침이었다. 다섯 시 삼십분, 매일 일어나는 그 시간에 정확하게 일어나 있었다. 내가 살아있나? 비틀비틀 일어나 본능적으로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에 퀭한 눈빛의 내가 있었고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져 있었다. 내가 죽은 것이 아니라 통증이 죽어있었다.

창자가 뒤틀리고 온몸이 쑤시는 고통 속에 보낸 나날들

북인도 코사니 앞에 펼쳐진 히말라야 설산. 저 설산 아래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다는 네팔 국경의 산악지대를 트레킹하기 위해 매일 아침 걷고 또 걸었다.
 북인도 코사니 앞에 펼쳐진 히말라야 설산. 저 설산 아래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다는 네팔 국경의 산악지대를 트레킹하기 위해 매일 아침 걷고 또 걸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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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들거리는 두 다리를 곧추세워 산책길을 나섰다. 아침 해가 떠오르는 저만치에 히말라야 설산이 훤히 보였다. 아무생각 없이 걷고 또 걸었다.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하기 위해 걷고 또 걸었다. 어젯밤 죽을 것만 같았던 통증의 원인을 되짚어 보았다. 통증의 원인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온갖 분노와 증오심 그리고 채식위주의 식단을 바꿔 사흘 내내 닭고기를 먹었던 일, 인도 현지인처럼 적응되었다고 만용을 부려가며 함부로 마셨던 물과 음식들, 그 모든 것이 하나로 귀결되어 왔다.

평소 보다 이른 시간에 군용 트럭을 몰고 내달리던 운전병이 차를 멈춰 세웠다. 내게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지나칠 때마다 눈인사를 나누던 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그가 다시 묻는다. 무엇 때문에 매일 아침마다 길을 걷고 있는가, 아니면 매일 아침마다 걸어서 어디에 가냐고 물었던 것 같다. 나는 적당히 대답할 수 있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그냥 '메디테이션', 명상이라고만 말해줬다. 그가 내 말뜻을 알았다는 듯 히죽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더니 다시 제 갈 길을 간다.

그에게 '걷기 명상'이라고 말했지만 매일 아침저녁으로 다섯 시간 이상 걷게 된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보름 전 쯤 가텀씨가 내게 물었다.

"다음 여행지는 어디입니까?"
"정해 놓은 여행지가 따로 없습니다. 내가 가는 곳이 목적지입니다. 다만 네팔로 들어가기 전에 저기 히말라야 설산에 가까이 가보고 싶습니다."
"내가 좋은 곳을 소개해 주겠습니다."
"네팔 국경지대라면 더욱더 좋습니다."
"저기 저, 히말라야 근처에 문시아리라는 지역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당신이 원하는 여행지겠네요."

코사니에서 훤히 바라다 보이는 히말라야 설산을 손짓하며 그가 말했다. 코사니에서 버스로 8시간 정도 걸린다는 문시아리(Munsyai)에 가면 히말라야 설산을 코앞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거기다가 문시아리에서 인도와 네팔 국경인 다르출라(Darchula)라는 지역이 가까이에 있다며 덧붙였다.

"문시아리는 아름다운 곳이지만 다르출라는 험한 산악지대입니다. 가끔씩 네팔의 반정부 게릴라들이 출몰한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상관없습니다. 가는 데까지 가보겠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걷는 시간을 한두 시간씩 늘려나갔다. 네팔 산악지대를 트레킹하기 위해서는 두 다리를 튼튼하게 다져야 했다. 인도에 오기 전에도 매일 두세 시간씩 산길을 걸었기에 쉬엄쉬엄 하루에 다섯 시간 정도 걷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북인도 고산지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히말라야 램버드.(정확한 학명은 알 수 없지만 북인도 사람들은 그렇게 부르고 있다.)
 북인도 고산지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히말라야 램버드.(정확한 학명은 알 수 없지만 북인도 사람들은 그렇게 부르고 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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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히말라야 램버드'(정확한 학명은 알 수 없지만 북인도 사람들은 그렇게 부르고 있다.) 라는 이름을 가진 한 쌍의 새가 나뭇가지에 앉아 있었다. 북인도 코사니에서 흔히 보는 새다. 녀석들은 언뜻 보면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까치를 닮아 있다. 하지만 까치와 달리 분홍빛 부리에 꼬리가 길고 화사하다. 긴 꼬리를 펼쳐 날아가는 모습은 환상적이다.

녀석들은 순박한 이곳 코사니 사람들을 닮아서 그런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람이 가까이 다가와도 멀리 날아가지 않는다. 그동안 망원렌즈 없이 가까이에 다가가 녀석들이 앉아 있는 모습을 몇 차례에 걸쳐 사진기에 담아냈지만 날아가는 모습을 포착하지 못했다.

가까이 다가가 몇 장의 사진을 찍고 녀석들의 날아가는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좀더 가까이 다가갔다.  날아가는 순간 셔터를 눌렸지만 녀석들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다. 녀석들은 나를 유혹하듯이 언덕길 아래, 저만치 나뭇가지에 앉았다.

비탈길 오르는 순간 '뚜두둑' 꺾인 오른쪽 무릎

언덕은 가파랗다. 언덕길을 내려서는데 이틀 내내 누워 있어서 그런지 두 다리가 힘에 부쳤다. 그럴수록 몸을 단련시켜야 된다는 생각에 가파른 언덕길을 내려섰다. 평소 그랬듯이 땀을 흘리고 나면 몸이 한결 개운해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후들거리는 두 다리를 곧추세웠다. 하지만 내 판단은 오산이었다.

키 큰 소나무들이 즐비한 비탈길을 오르는 순간 오른쪽 무릎이 심하게 꺾이면서 '뚜두둑' 하는 파열음 소리를 냈다. 몸의 균형을 잃고 3미터 정도의 산비탈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굽이 없는 판판한 신발이 솔잎에 미끄러지는 순간 사진기를 챙겨가며 오른쪽 다리로 중심을 잡다가 그 사단이 났던 것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몸을 일으켰다. 그나마 사진기는 이상이 없었고 얼굴이나 다른 신체 부위에도 상처가 없었지만 꺾인 무릎에서 통증이 몰려왔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무릎의 통증을 진정시키기 위해 마사지를 하고 다리를 세웠다. 하지만 일어서자 마자 오른쪽 무릎이 힘없이 꺾이고 말았다. 숙소로 되돌아가려면 한 시간은 족히 걸어야 하는데 난감했다. 당장 산 속을 벗어나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산책길까지 나서는 게 문제였다. 한숨을 내쉬어 가며 그 자리에 속절없이 주저앉아 있는데 산책길에서 종종 만나는 멍멍이가 슬그머니 다가와 내 앞에 앉았다.

무릎 부상으로 언덕길 아래에 주저 앉아 있는 내게 다가와 내내 앉아 있는 멍멍이. 녀석이 신통해 셀카를 찍었다.
 무릎 부상으로 언덕길 아래에 주저 앉아 있는 내게 다가와 내내 앉아 있는 멍멍이. 녀석이 신통해 셀카를 찍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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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멍이는 수호신처럼 지켜 앉아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멍멍이를 쓰다듬어 가며 몇 번이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면서 "히말라야 설산을 걷겠다는 놈이 이게 뭔 꼴이냐, 신이 나를 벌 주는가 보다, 신성한 히말라야를 오르기에는 죄 지은 게 너무 많다고..."라며 신세 한탄했다. 그럴 때마다 멍멍이는 슬며시 고개를 돌려 알 수 없는 눈빛을 보내왔다. 그렇게 멍멍이와 일방적인 대화를 나누며 30여 분을 주저앉아 있었다.

"이렇게 한없이 앉아 있을 수는 없구나... 멍멍아, 이제 좀 걸어보자, 가는 데까지 가보자."

왼쪽 다리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멍멍이도 부스스 일어섰다. 산 속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겨우 자동차가 다니는 산책길로 나섰다. 도로가에 앉아 혹시나 지나가는 자동차가 있을까 싶어 기다렸다.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자동차가 보이지 않는다. 본래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산길이기에 언제 자동차가 지나갈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마냥 기다릴 수 없다. 어떻게 하든 숙소로 돌아가야 한다. 무릎 통증을 감내해 가며 길거리에서 주운 작대기를 지팡이 삼아 절름발이로 걸었다. 식은땀이 등줄기로 타고 내렸다. 등교를 서두르는 아이들이 평소와 다르게 절룩거리고 있는 내 모습에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얼마나 걸었을까. 멀리 내가 머물고 있는 민박집 근처의 뉴코사니의 호텔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평소 30분도 채 안 걸리는 거리를 절뚝절뚝 걷다가 주저앉아 쉬다가를 반복하며 한 시간 반 이상 걸은 듯싶다. 뉴코사니 건물들이 보이는 곳까지 뒤따라 오던 멍멍이가 저만치 언덕 위에 멈춰 서서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녀석에게 고맙다는 손짓을 보내다가 문득 녀석을 더 이상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아쉬운 예감에 사진기를 꺼냈다.

한참을 뒤따라 오던 녀석이 늘 앉아 있던 언덕에 멈춰서서, 절룩거리며 걸어가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한참을 뒤따라 오던 녀석이 늘 앉아 있던 언덕에 멈춰서서, 절룩거리며 걸어가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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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집에 도착하자마자 무릎에 물파스를 바르고 침대에 누웠다. 민박집 비노트씨에게 부탁해 병원에 갈 수 있는 차량을 알아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젊은 시절 운동을 하다가 발목이 접질려 퉁퉁 부어올랐던 경험이 여러 차례 있었다. 그때처럼 물파스를 바르고 하루 정도 쉬다보면 붓기와 통증이 가라앉겠지 싶었다. 하지만 오후가 되도록 통증은 가라앉지 않고 무릎은 점점 더 부어올랐다.

당장 숙소에 딸려 있는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힘들었다. 몸을 움직이기 힘들 만큼 통증이 몰려 왔다. 일단 통증을 잠재워줄 진통제와 상처 부위에 염증이 생기지 않도록 소염제를 복용해야 할 것이었다. 만약 무릎 인대에 조금이라도 손상을 입었거나 뼈에 이상이 있으면 내부 출혈이 생겨 염증이 생길 것이기에 일단 소염제를 복용해야 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거기다가 내내 누워 있어야 했기에 소화기관에 문제가 생길 것을 예방하는 차원에서의 소화제에 이르기까지 번역기를 이용해 영어로 된 처방전을 만들어 민박집 비노트씨에게 약국에 다녀와 달라고 부탁했다. 다 늦은 저녁에 코사니 마트를 다녀온 비노트씨가 처방전에 따른 약과 더불어 압박붕대와 식빵, 바나나 등의 먹거리를 걱정거린 눈빛으로 내밀었다. 그는 내가 부탁하지도 않았던 연고와 영수증까지 첨부하고 몇 루피의 잔돈까지 챙겨줬다.

민박집 비노트씨가 내가 만들어 준 처방전에 맞춰 약국에서 약을 사오고 영수증까지 첨부해 왔다.
 민박집 비노트씨가 내가 만들어 준 처방전에 맞춰 약국에서 약을 사오고 영수증까지 첨부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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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약을 복용하지 않기 때문에 쉽게 통증이 멈출 것이라 생각했지만 진통제는 잠시 잠깐 뿐이었다. 밤이 되자 통증이 더욱더 심하게 몰려왔다. 몸을 움직이는 족족 통증이 몰려왔다. 왼쪽 다리에만 힘을 쏟다보니 허리까지 걸려오면서 온 몸의 중심이 무너져 내렸다.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 몸둥아리로 어디를 가겠다는 말인가.' 네팔 반정부군 게릴라들이 출몰한다는 산악지대의 트레킹은 물 건너갔다. 그것은 나의 자만심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어떤 존재가 무릎 부상을 통해 내게 따끔한 일침을 놓고 있는 듯했다. 함부로 만용을 부리지 말라는 경고장을 내밀고 있었던 것이다.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난 다음날 아침에도 마찬가지였다. 압박 붕대와는 상관없이 무릎은 더욱더 부어올랐다. 무릎이 잘 접히지 않았다. 겨우 접힌 무릎을 펴는 순간 통증이 몰려왔다. 누워서 자리를 바꾸기도 힘들 정도였다. 이러다가 병원 신세를 져야 할 것인가 싶어 인터넷 검색했다.

인터넷을 뒤적거리며 무릎 인대에 관한 여러 가지 자료들을 세심하게 검토해 본 결과 십자인대가 파열됐을 가능성이 높았다. 십자인대 파열시 무릎에서 나타난다는 증상, "뚝"이 아닌 "뚜드득" 하는 선명한 소리가 났었고 무릎이 심하게 부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전문의들의 소견에 따르면 십대인대파열을 방치하면 평생 고생할 수 있다며 수술을 권하고 있었다. 만약 인대가 50% 이상 파열된 상태라면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인도 여정은 여기서 끝이다.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수술비는 감당하기 힘들 것이기에 결국 한국으로 돌아가 수술을 받아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속단하기에는 일렀다. 일단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나 MRA 정밀 검사를 받고 판단해야 할 것이었다.


태그:#복통과 오한, #히말라야 트래킹, #무릎 인대 파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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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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