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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헝그리(Hungry)하게 키우지 못한 50대 학부모입니다. 삶의 목표를 잡지 못해 표류하는 아이와 은퇴 후 삶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가 현실적인 문제가 된 저의 처지는 일응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지난 2012년 지구 반대편 먼 이국 땅으로 가 요리학교를 다니면서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가는 아이(닉네임 빅맥)의 모습을 글로 담아봅니다. 이 글을 통해 점점 심각해지는 청년 실업문제와 베이비 부머들의 2막 인생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 기자말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듣는 괴로움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배운 적이 있다. 당시 독일어는 입시과목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에겐 '쉬는 시간'이 되었다. 강단에서는 선생님이 열심히 강의를 하지만 우리는 흘려 들었다. 시간이 흘러 수업진도가 한참 나갔지만 선생님은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강의를 하고, 그 시간은 점차 괴로움의 시간이 되어갔다.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괴로움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큰애의 고등학교 성적은 별로 좋지 않았다. 내가 독일어 수업을 들으면서, 어느 순간 이해의 끈을 놓친 것처럼, 큰애도 고등학교 교육 과정을 밟으면서 그 끈을 하나씩 놓아 버린 것으로 보인다. 3년 내내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고문(?)을 당한 것이다.

이해의 끈을 다시 잡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내가 그 사실을 인식했을 때는 이미 큰애의 마음은 돌아서 있었다. 완전히. 대학에 떠밀려 와서는 아예 생활의 끈을 놓아 버린 것으로 여겨지는 성적표와 출석부를 봐야했다. 이제는 게임의 세계로 도피하여 나오려 하지 않는 큰애에게 뭔가 충격적인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워킹 홀리데이였다.

호주는 여기보다 좀더 페어하지 않을까

ⓒ 외교부 워킹홀리데이 인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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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케이스로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축구 수업에서 킥을 잘 못해서 혼났던 적이 있다. 당시 우리는 킥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대로 된 훈련을 받지 못했다. 몇 마디 해주고 차례대로 킥을 시켰는데, 그 와중에도 잘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킥을 한 후 의기양양하게 자리로 돌아 가는 그 친구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나를 비롯한 남은 아이들은 무서운 체육선생님과 함께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끝까지 킥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은 들어보지 못한 채.

큰애도 뭔가 학교에서 제대로 된 트레이닝을 받지 못한 것이 아닐까?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설명 없이 강요만 당하다가 포기한 것이 아닐까? 설사 설명을 제대로 들었더라도 따라 할 수 없는 것을 하라고 강요 당하다가 포기한 것은 아닐까? 류현진 선수가 나한테 아무리 상세하게 야구공을 던지는 방법을 알려줘도 나는 류현진 선수가 던지는 것과 같은 강속구나 커브를 던지지 못할 것이다.

나는 큰애가 뭔가를 처음부터 차근차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할 수 있고, 잘 하는 일, 재미있는 일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어쩌다 한번 뒤처졌는데 그걸 만회하기 힘든 한국의 교육 체계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시작이 가능한 곳으로 보내고 싶었다. 제대로 알 수 있게 설명도 듣지 못한 상태에서, 아니면 내가 결코 잘 할 수 없는 일을 강요 당할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곳에서 아이가 새로운 기회를 잡기를 바랐다.

한국보다는 다양한 교육과 일자리의 스펙트럼을 가진 것으로 보여지는 호주에서 그러한 기회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차근차근 알아 들을 수 있게 설명을 듣고 삶에 필요한 무언가를 배워올 수 있지 않을까? 호주는 여기보다 좀 더 페어(Fair)하지 않을까? 그런 희망을 가지고 미지의 땅으로 아이를 내 몬 것이다.

주변에 호주 유학을 다녀 온 사람들에게서 호주에 대한 희망적인 이야기를 많이 들은 것도 영향을 미쳤다. 처음에는 유학을 보내고 싶었지만,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어 버린 큰애는 그것을 거부했고, 그래서 워킹 홀리데이를 선택한 것이다.

서로의 마음을 드러내는 기회가 되기를

큰애는 브리즈번에서 워킹홀리데이 생활을 시작했다. 농촌에서의 딸기 따기, 청소, 육우 공장에서의 잡일 등을 했다고 한다. 4개월여를 브리즈번에 있다가, 거기에서 알게 된 친구와 함께 멜버른으로 옮겼고, 그 곳 육우공장에서 남은 기간을 보냈다.

2년의 워킹 홀리데이 기간이 끝나고 귀국해야 할 때가 다가 오자 큰애는 나름대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한국에 들어 와서 어떻게 해야 할지 길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결국은 한국에서의 대학 생활을 포기하고, '윌리엄 앵글리스'라고 하는 쉐프 양성학교에 입학하여 영주권을 따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바로 입학이 안 되어서 10개월 정도의 어학 과정을 거쳐야 했다.

도합 약 3년여의 기간을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큰애를 지켜 보았다. 지금의 선택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다 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인생이란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 아닌가? 저 너머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큰애와 이제 1막 인생을 마무리하고 2막을 준비하는 나의 처지는 일응 비슷한 면이 있다. 큰애가 쉐프가 되어 가는 과정을 기록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드러내고,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날들과, 앞으로의 내 인생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나는 희망한다.


태그:#워킹홀리데이, #워홀러, #청녕실업, #교육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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