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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죽음에서 살아돌아왔다. 큰 깨달음을 가지고.
 그는 죽음에서 살아돌아왔다. 큰 깨달음을 가지고.
ⓒ 매직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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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여행은 여자의 여행과 뭐가 다르지?

멀리 떠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이건 아마 대한민국의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거다. 삼일간의 휴가에 월차를 붙여도 일주일을 넘기기 힘들다. 모든 걸 다 훌훌 털어버리고 저 지구 반대쪽에 숨고 싶은데 그걸로는 모자란다. 그렇다고 직장을 관두고 떠날 수도 없다. 그렇기에 오늘도 가슴 속에 떠남을 품고 살아간다. 그리고 서점에 들러 대리만족이라도 하듯 여행 에세이를 한 권 산다. 하지만 꽤 많은 여행기를 봐왔어도 여전히 남자의 여행기는 뭔가 불편한 구석이 있다. 때로는 너무 거칠고 너무 솔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 역시 그렇다. '길 잃은 개'라는 강렬한 제목부터 장발을 휘날리며 설산을 배경으로  한 표지까지. 뭔가 비장함이 느껴졌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배신을 당해 죽으러 여행을 떠났다는 저자는 오토바이를 타고 인도와 영국 그리고 유라시아를 홀로 유랑했다. 그러다보니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맛집을 들른 이야기는 전혀 없다. 사기를 당해 다 고장 난 오토바이를 사게 되고 화가 나서 동행을 버리고 떠나고 돈이 없어 착취를 당하면서도 일을 해야 하는 에피소드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 혼돈 속에서 거리의 거지와, 개들이 나를 계속 쫒아왔다. 거지들은 나의 돈을 쫒았고, 개들은 나의 살을 쫒았다. (중략) 거리에서 얼핏 들은 정보로 오토바이가 있는 거리로 찾아갔다. 그 곳에서 맘에 드는 오토바이를 시중가의 약 3배가 넘는 돈을 지불하고 구입했다. 사기꾼에게 또 깨졌다. 겨우 3일 만에 이 나라를 떠나고 싶은 충동이 치밀어 올랐다."

사람은 모순덩어리다

그는 한국이 싫어 인도로 떠나 혼자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을 하지만 막상 힘든 일이 터지면 한국 사람이 반갑고 한국음식이 그립다. 또 여자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자신을 길 잃은 개라고 말하면서도 자신에게 다가오는 여자들을 쉽게 거부하지 못 한다. 그렇다. 사람은 모순덩어리다. 원래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난 걸.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 자신에 대한 혐오감만 키우게 될 뿐.

"그날따라 유독 한국말을 듣고 싶어서 한국이 운영한다는 게스트 하우스로 간 것이었다. 그 게스트 하우스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어느 정도 한국말을 잘 사용했음 특히 김치볶음밥과 라면 하나는 끝내주게 잘 만들었다. (중략)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이곳에 익숙해진 나를 보게 되었다. 고요한 외로움과 번잡함 중간에서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나를..."

인생도 여행처럼 끝은 항상 처음과 같다

한국에서 멀리 벗어났다가도 다시 돌아오고야 마는 이 여정은 그 누구의 여행기와도 같다. 처음과 끝이 같기에 여행이라고 부르는구나 싶다가도 어쨌든 변하는 건 없잖아하는 냉소적인 생각도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의 귀환은 뭔가 다른 구석이 있다. 그는 아버지와 말을 하지 않고 연을 끊다시피 살아왔다. 그런데 여행을 하며 그는 출발과 도착점이 같다는 여행이 우리네 인생에게도 적용되는 거라는 걸 느꼈나보다. 나라는 자아가 시작된 곳. 그렇기에 더 마주보기 힘든 피를 나눈 사이. 그는 길 위에서 방황을 하며 아버지의 향내를 조금씩 느낀 듯 했다.

"한 사향노루가 어느 상쾌한 봄날 신비로운 천상의 향기를 맡았다. 그 향기에는 평화, 아름다움, 사랑이 느껴졌다. 속삭이듯 유혹하는 그 향기에 이끌려 사향노루는 향기의 근원을 찾아 전 세계를 다 뒤질 요량으로 출발했다. (중략) 삶의 끝자락에 이끌려, 끈질긴 추적에 지친 노루는 쓰러졌다. 노루가 쓰러질 때 뿔이 배를 찌르자 갑자기 공기 중에 천상의 향기로 가득 찼다. 사향노루는 쓰러질 때 죽으면서 향기가 내내 자신 안에서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다시 만나자고.

"그리고 2012년 7월 20일 인천. 그는 나를 안아 주었다. 따뜻했다. 그의 품에서 사향 냄새가 났다."

덧붙이는 글 | 저자 장준영|매직하우스 |2015.05.11 | 페이지 320| 정가 14800원



길 잃은 개 - 절망 끝에 선 남자의 모터사이클 도망기

장준영 지음, 매직하우스(2015)


태그:#길잃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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