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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숲에서 하늘을 보다> 책표지.
 <우리말의 숲에서 하늘을 보다> 책표지.
ⓒ 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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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누군가와 통화를 끝내는데 저쪽에서 인사를 건넨다. "즐저 하시고 꿀밤 되세요"

'즐거운 저녁 되고, 꿀처럼 달콤한 밤 되라'니 결코 어려운 말이 아니다. 한데, 평소에 안 쓰는 말이라 쉽게 알아듣지 못했고, 그래서 되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나보다 한참 젊은 사람이 그것도 몰라? 그래서 어디 젊은 사람들과 이야기나 나누겠어요? 좀 젊게 살아봐!" 한다.

'왜 젊은이들이 주로 쓰는 말을 써야만 젊다고 생각할까? 아니 그처럼 제멋대로 줄여 쓰는 것이 젊은이들의 당연한 언어인가?'

자신보다 10살이나 어린 내가 자신을 좀 젊게 봐줬으면 하는 마음에 '즐저'니 '꿀밤'과 같은 말을 한 모양인데, 그날 이후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이 예전과 달라졌다. 뭐랄까? 좀 가볍고, 개념이 부족한, 물불 구분도 못하고 따라만 하는 줏대 없는 그런 사람 같다고 할까?

말, 즉 언어는 이처럼 누군가를 판단하는 어떤 기준이 되기도 한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 '혀 아래 도끼 들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 등 말과 관련된 속담이 많은 것은 한마디 말이나, 말하는 습관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말의 숲에서 하늘을 보다>(하우 펴냄). 이 책은 2005년 가을 저자의 <우리말 깨달음 사전>을 읽은 이후 신간이 나오면 꼭 읽고 있는 국어학자 조현용의 신간이다.

최근에 말을 하면서 깜짝 놀란 것은 우리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는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어떤 것에 대해서 평가를 해달라고 하면, 쉽게 '나쁘지 않아'라는 말이 나온다. 아마도 이 표현은 영어의 'Not bad(나쁘지 않다)'에서 시작된 말일 것이다. 그러니 한국 사람에게 자연스러운 표현은 아니었던 듯하다. 영어의 표현이 슬그머니 우리 생활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은 아닐까? (…) 그런데 문제는 이 말의 느낌이다. 이 말을 하고 있는 내 태도는 부정적이다, 분명히 좋다고 해도 될 상황인데도 그냥 나쁘지는 않다는 정도로 평가하고 만다.

영어에서도 이 표현은 아주 좋은 표현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그 정도면 되었다는 의사 표시로 보인다.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보면 칭찬에 후하다는 생각이 든다. 웬만하면 'Good'라고 한다. 어떨 땐 '굿'을 너무 지나치게 쓰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말이다. 당연히 영어권에서 '나쁘지 않다'는 표현이 칭찬일 리 없다. 지나쳐도 칭찬은 기분 좋은 에너지가 된다. 그런데 우리는 칭찬의 상황에서도 '나쁘지 않아'를 쓴다.-<우리말의 숲에서 하늘을 보다>에서.

아마도 '나쁘지 않아' 이 말을 습관처럼 쓰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아니 생각보다 많을지도 모르겠다. 내 주변에도 걸핏하면 쓰는 사람이 있어서 그리 어렵지 않게 들으니 말이다. 

얼마 전, 동네사람 몇이 모여 누구네 집에서 밥을 먹게 됐다. 다들 맛있다고 칭찬하는 것도 모자라, 하는 방법까지 물어볼 정도로 맛있었다. 그렇건만 이 말을 걸핏하면 쓰는 그녀는 "나쁘지 않네!"라고 했다.

사실 그동안 그녀에게 종종 들었으나 그런가 보다 무심코 흘려 넘기고 말았었다. 함께 어떤 물건을 보다가 의견을 물어도 "나쁘지 않네", 누군가를 보고도 "나쁘지 않네', 걸핏하면 하는 말이라 습관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만 것 같다.

그런데 책에서 관련해 읽다 보니 지난날들이 새삼스럽게 떠오르고, 그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활짝 웃는 것을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것 같다. 매사 부정적이다. 그리 유쾌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맘속 말을 하지 못할 것은 물론이다. 그날 음식을 대접한 사람의 입장으로 헤아려 보니 이다음엔 가급 부르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여의다, 썩히다와 삭히다, 시리다, 미안하다, 다시 봤다, 죽겠다, 품안의 자식, 끔찍하게 생각하다, 다시 봤다, 장유유서, 칭찬의 어려움, 알다와 알아차리다, 좋은 게 좋은 거다, 차라리 욕을 해라, 한국인의 이름'

책은 이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말들의 어원과 관련된 상식, 문화, 풍습, 역사 등을 들려주는 한편 무심코 쓰거나 당연한 듯 쓰는 말들을 돌아보게 한다.

참고로, 목차 중 '(한국어가)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단어? 한국어를 꼭 가르쳐야 하나? 세상에서 제일 배우기 쉬운 글자?' 이 3꼭지의 글은 국어학자로 그간 우리말을 꾸준히 연구해오고 있는 동시에 내ˑ외국인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쳐오고 있는 저자가 우리말과 우리말 교육에 대해 객관적으로 이야기 한 것이다. 

누군가는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표현의 글을 쓰는가로 나를 판단하기도 할 것이다. 이처럼 여러 사람이 읽을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다짐한 것 중 하나는 가급 우리말 그 기본만이라도 지키는 데 신경 쓰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까지 예사로 쓰던 단어나 표현이 과연 맞나? 사전을 찾아보곤 한다. 그리고 우리말 관련 책이 보이거나 기사 등과 같은 글이 보이면 가급 읽곤 한다.

저자가 그간 쓴 우리말 시리즈 그 특징은 우리말에 대한 설명으로 그치지 않고 자신의 말 습관이나 주변을 돌아보게 하거나 등과 같은 사색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말을 통해 바르게 사는 방법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말을 제대로 알고 우리말만 잘해도 바르게 사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고 할까? 이런지라 저자의 신간이 나오면 우선 읽곤 한다.

2013년부터 한 SNS 공간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있다. 그런데 종종 이게 무슨 말일까?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어림짐작 이해해야만 하는 말들을 만나곤 한다. 씁쓸하게도 자주 어울리는 그들끼리는 의사소통이 충분히 된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런 그들과 자주 어울리지 않거나 나처럼 SNS 공간도 생활 한 공간인 만큼 우리말을 바르게 쓰자를 고수하는 사람들은 선뜻 이해 못할 말들이 점점 더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거울 뉴런(mirror neuron)'이라는, 본능적으로 상대방의 행동이나 감정을 따라 하는 신경세포가 있다고 한다. 내가 재미삼아, 무심코 쓴 말이 누군가를 따라하게 하고, 나아가 우리말 오염에 거들게 된다면? 가급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기분 좋은 말을, 바람직한 말들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책을 통해 바래본다.

참고로, 저자가 그간 쓴 우리말 시리즈는 <우리말 깨달음 사전>, <우리말로 깨닫다>, <우리말, 가슴을 울리다>, <우리말, 지친 어깨를 토닥이다>가 있다.

덧붙이는 글 | <우리말의 숲에서 하늘을 보다>(조현용) | 하우출판사 | 2015-07-07 | 11,000원



우리말의 숲에서 하늘을 보다

조현용 지음, 하우출판사(2015)


태그:#우리말, #한글(한국어), #나쁘지 않아, #거울 뉴런, #조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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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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