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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통 받는 동물을 보아도 이효리씨와 같은 동정심을 느끼지 못한다. 동물을 예뻐하지도 않으며, 더구나 반려동물 따위는 한 번도 키워본 적이 없다. 더 솔직하게 고백하면, 나는 동물을 예뻐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옆에 다가오는 것조차 싫다. 나의 처가에서는 개를 키우는데 처가에 갈 때마다 그 개가 옆에 오는 것이 싫고, 개 역시 내가 자기를 싫어하는 것을 아는 듯 옆에 오지도 않는다. 나는 적어도 동물에 대해서는 냉혈한이다. 또 나는 동물이 인간과 평등하다거나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인간은 여러 면에서 동물보다 우월하며 다르게 대우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동물 혐오자의 고백과도 같은 위의 글이 동물을 식용으로 희생 시키는 오래된 관행을 비판하고 채식을 해야 하는 이유를 밝힌 철학자의 책에서 인용한 것이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최훈 강원대 교수는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에서 본인이 동물에게 '냉혈한'임에도 불구하고 채식을 하는 이유는, 육식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이 동물에 대한 감정과는 무관한 '이성'의 영역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동물 해방>은 동물권리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지침서 같은 존재다. 이 책은 무수한 채식주의자와 동물해방론자를 탄생시켰고, 세계 최대 동물권리단체인 페타(PETA)가 등장하는 사상적 배경을 마련하여 동물권리운동을 전 세계에 확산시킨 '동물 해방 운동의 바이블'로 불린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인 피터 싱어 프린스턴대 교수 역시 책 서문에 아래와 같이 밝혔다.

"우리 부부는 한 번도 개, 고양이 또는 말을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식으로 좋아한 적은 없다. 우리는 동물들을 '애호(love)하지' 않았다."

피터 싱어는 어느 동물 애호가와의 만남에 대한 일화를 통해 위와 같이 언급했는데, 그 여성은 "동물을 아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햄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다고 한다. 고기를 먹는 동물 애호가와 동물을 사랑하지 않지만 채식을 하는 싱어의 상반된 모습은 육식에 반대하는 것이 감성이 아닌 이성의 영역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랑만으로는 부족하다

동물 해방 <저자 피터 싱어 | 역자 김성한 | 연암서가> &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 <저자 최훈 | 사월의책>
 동물 해방 <저자 피터 싱어 | 역자 김성한 | 연암서가> &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 <저자 최훈 | 사월의책>
ⓒ 좌: 연암서가/우: 사월의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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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사랑의 힘을 부정할 수는 없다. 사랑은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동물을 위한 행동에 나서게 했다. 우리나라에서 동물보호운동이 시작된 배경에도 동물권 이론가들의 냉철한 이성보다는 동물에 대한 사랑이 주요한 자리를 차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구제역으로 생매장된 돼지들의 영상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여전히 삼겹살을 먹는 사람들이 많다. 돼지에게 연민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에게 생매장 영상을 보여주며 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면 '감성팔이'를 한다는 핀잔을 듣기 쉽다. 나 자신을 포함하여, 가슴만으로는 설득되지 않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사랑에는 이기적인 속성도 있다. 뱀이나 악어 등의 파충류를 애완용으로 기르며 살아 있는 쥐·토끼를 먹이로 주고 잡아먹게 하는 영상을 온라인에 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7월, 동물보호단체 '케어'는 이들을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내 반려동물을 위해서라면 다른 동물의 복지 따위는 무시해도 좋은 걸까? 내 반려동물이 아무리 소중해도 다른 동물을 불필요한 공포와 고통 속에 희생시키는 건 옳지 않다. 인도적으로 안락사한 먹이를 먹도록 반려동물을 길들이는 것은 반려인의 책무이기도 하다.

이 고발 사건에 대해 '케어'가 특정 동물만 보호하고 파충류는 차별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케어'가 고발을 한 이유는 파충류를 차별했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동물이 평등하며 보호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먹이로 희생된 동물을 차별하는 셈이다. 

또한 동물학대는 많은 경우 동물에 대한 관심과 사랑에서 비롯된다. 휴가철마다 수많은 개들이 가족에게 버림받는 이유는 애초에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야생동물이나 멸종위기종들이 '희귀 애완동물'이라는 명목으로 거래되고 있다. 사육에 적합하지 않은 동물을 기르는 것이 그 동물의 복지를 심각하게 저해하는 행위라는 사실은, 희귀 동물을 소유하려는 사람들에게 무시되기 일쑤다. 이런 식으로 동물을 좋아할 바에는 차라리 무관심한 편이 낫지 않을까?

'동물을 위한 윤리'와 육식

지난 7월 14일, 동물보호단체 '케어'는 자신의 애완용 악어에게 살아있는 토끼와 기니피그를 먹이로 준 남성을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사진은 ‘케어’가 공개한 동영상 화면 캡처.
 지난 7월 14일, 동물보호단체 '케어'는 자신의 애완용 악어에게 살아있는 토끼와 기니피그를 먹이로 준 남성을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사진은 ‘케어’가 공개한 동영상 화면 캡처.
ⓒ 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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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개를 자동차에 매단 채 도로에서 끌고 다닌 일명 '악마 에쿠스' 사건에는 경악하지만, '산업'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대규모 동물학대에는 관대한 사람들이 많다. 음식·의복·장신구·오락·과학실험 등을 위해 동물을 희생시키는 관행은 그것이 아무리 잔혹할지라도 인간에게 혜택을 주니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런 생각이 정말로 옳은지 깊이 고민하거나 대안을 찾는 사람은 보기 힘들다. 무수한 동물을 희생시키는 현실이 인류가 존재하는 한 변치 않을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 결과, 밍크의 털가죽을 산채로 벗겨 모피코트를 만드는 잔혹한 방식에는 반대하지만, 모피를 입는 것은 타인이 간섭할 수 없는 문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개·소·돼지·닭을 비인도적으로 사육·도살하는 방식에는 반대하지만, 채식을 강요하지는 말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철학자들을 포함하여 동물에게도 '도덕적 지위'가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육식을 비롯하여 동물을 희생시키는 관행이 개인의 선택이 아닌 윤리의 문제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그런 행위가 옳은지 이성에 따라 추론하다 보면,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는 결론에 이른다는 것이다.  

물론 이 학자들이 사람들에게 생존을 위협하는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동물을 위한 윤리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윤리란 인간이 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만 의무를 부여한다. 즉, 우리가 동물을 희생 시켜 얻는 것들 중 삶에 필수라 믿었던 것들조차도 실제로는 필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동물 해방>에서 피터 싱어는 인간이 동물을 대하는 방식에 '종차별주의(Speciesism)'라는 이름을 붙였다. 종차별주의란 자신이 속한 종(인간)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 다른 종(동물)의 이익을 배척하는 편견이나 왜곡된 태도를 말한다.

여기서 '차별'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종차별이 불과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당연시했던 흑인·여성에 대한 차별과 동일한 패턴을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종차별은 (동물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유아·식물인간·지적 장애인에 대한 차별까지도 합리화한다. 

결국 동물 해방은 인간 해방이다. 종차별을 용인할 경우, 우리는 사람을 피부색·성별·지능으로 차별하는 것에 반대할 근거를 잃기 때문이다. 동물을 위한 윤리는 보다 많은 약자를 도덕적 배려의 범위에 포섭 시켜 보호하는 논거다. 더욱 평등하고 정의로운 세상의 토양인 것이다. 

'차별'에 반대하는 운동  

동물보호단체들의 연대체인 <인도주의 행동연합>은 중복이었던 7월 23일 광화문에서 시민들과 수박을 나누고 채식을 알리는 캠페인을 벌였다. 채식주의 캠페인은 한 사람의 변화만으로도 매년 수십 마리 동물들의 희생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다.
▲ "복날, 채식하세요" 동물보호단체들의 연대체인 <인도주의 행동연합>은 중복이었던 7월 23일 광화문에서 시민들과 수박을 나누고 채식을 알리는 캠페인을 벌였다. 채식주의 캠페인은 한 사람의 변화만으로도 매년 수십 마리 동물들의 희생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다.
ⓒ 조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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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동물을 위한 윤리는 너무나 급진적인 주장이다. 그러나 동물을 대변하는 운동은 단순한 감성주의가 아니라 차별에 대한 반대를 지향한다.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성은 그 나라의 동물들이 어떻게 대우받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는 간디의 명언처럼, 말 못하는 약자까지 배려하는 사회가 진정 정의로운 사회인 것이다. 

다른 동물은 거리낌 없이 먹으면서 개식용에만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복날 개식용 반대 피켓을 들면 매스컴에는 '동물보호단체들의 개식용 반대 캠페인'으로 소개된다. 게다가 이런 사람들이 스스로 '동물보호를 한다'고 자처함으로써 '동물보호단체는 개식용 반대 캠페인 후에 삼겹살 회식을 한다'는 편견을 양산하고 있다. 육식에 대한 문제제기 없이 개식용만 반대하는 것은 노예제를 내버려둔 채 인권을 주장하는 격이다.

동물보호단체들의 활동에 관련된 기사에 "미용을 위해 반려견의 꼬리를 자르거나 염색을 하는 건 학대가 아니냐"는 댓글, 심지어 "당신들부터 기르던 개를 버리지나 말라"는 엉뚱한 댓글이 달리는 것도 동물보호단체를 일부 애견인 집단과 혼동하기 때문이다.  

또한 동물을 대변하는 운동은 개별적인 동물의 구조와 보호·입양에 한정되지 않는다. 학대의 해결만이 아닌 '방지'를 목적으로 한다. 특히 산업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동물의 고통과 희생을 줄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가령 유기동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입양 캠페인뿐만 아니라 개·고양이 충동구매와 유기를 끝없이 양산하는 번식장과 펫샵을 규제하는 법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다시 말해서, 동물학대의 '가지'만 치는 것이 아닌, '뿌리'를 뽑는 운동이다.    

글로 쓰기엔 너무나 쉬워도 실행에 옮기는 데에는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요하는 일이다. 외국에 비해 턱없이 작은 규모로 운영되는 국내 동물보호단체들이 모든 것을 해내기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후원하는 사람들이 있어야만 단체가 활동을 유지할 수 있다. 변화를 원한다면, 나를 대신하여 현장에서 발로 뛰는 시민단체를 후원하는 것을 시혜나 자선이 아닌 '당연한 일'로 여기는 시민의식의 성숙이 필요하다. 

동물보호단체마다 고유한 특성이 있고, 각자의 방식으로 대중을 설득하게 마련이다. 얼마나 더 급진적인 목소리를 내는가에 따라 진보적이거나 보수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같은 사안에 대해 동물보호단체들마다 세부적인 전략이나 의견이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동물에게는 생명으로서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가치를 지향하는 한, 전부 세상에 필요한 단체들이다. 

내 경우, 동물에 대한 관심은 반려고양이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됐다. 이 관심이 감성주의에 머물지 않고 동물들의 목소리가 되겠다는 평생의 결심으로 이어진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괴로운 자기희생이 아닌, '누군가는 꼭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즐거운 사명감을 심어준 선배들 덕분이었다. 그 선배들은 우리나라에서 동물권리운동을 개척한 존경스러운 선구자들, 그리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활동이 옳은 일이라는 확신을 준 국내외 저자들이다.

이 글이 보다 평평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덧붙이는 글 | 1. 동물권과 채식주의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도서 리스트를 블로그에 정리했습니다. http://blog.naver.com/unchi/220285901037

2. 국내 주요 동물보호시민단체 후원신청 사이트 목록을 소개합니다.
케어 http://www.fromcare.org/sponsors/sponsor.htm
동물을 위한 행동 http://afa.or.kr/220271398280
동물자유연대 http://www.animals.or.kr/newmain/08member/member.asp
동물보호 시민단체 카라 http://www.ekara.org/ (오른쪽 상단에 정기후원 버튼이 있습니다)



태그:#동물권, #이성, #채식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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