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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오후 서울 관악구의 한 장례식장에서 백골로 발견된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가 치러졌다. 고인과 생면부지인 참석자들은 추도사에서 "같은 시대를 함께 산 당신을 국화꽃 한 송이 없이 보내드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라고 전했다.
 지난 14일 오후 서울 관악구의 한 장례식장에서 백골로 발견된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가 치러졌다. 고인과 생면부지인 참석자들은 추도사에서 "같은 시대를 함께 산 당신을 국화꽃 한 송이 없이 보내드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라고 전했다.
ⓒ 명량마주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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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대를 함께 산 당신을 국화꽃 한 송이 없이 보내드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지난 14일 오후 서울 관악구의 한 장례식장. 영정 사진 없는 제단 앞에서 누군가 추도사를 읽었다. 국화꽃 사이에 놓인 위패에는 이름 대신 '무명남'이라고만 쓰였다. 추도사를 읽고, 곁에서 고개를 숙이는 이들도 고인과 생면부지다. 그렇게 얼굴도, 이름도 남기지 못한 또 한 명의 무연고 사망자가 떠났다.

망자는 지난 4월 26일 서울 관악산 삼막사에서 서울대 방향으로 향하는 등산로에서 발견됐다. 피부층이 극히 일부만 남아있는 백골 상태였다. 지문이 사라진 탓에 신원을 확인할 수도, 가족을 찾을 길도 없었다.

그의 시신을 부검한 의사는 시체검안서 안 성명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란에 물음표만 남겼다. 시신이 발견된 근처 나뭇가지에 걸려 있던 매듭진 나일론 빨랫줄을 보고 자살이라고만 추정할 뿐이었다.

백골로 발견된 신원 미상 사망자... 시민들이 마지막 길 배웅

무연고 사망자가 발생하면 관할 지자체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아래 장사법) 등에 따라 연고자를 찾아 통보한다. 가족들이 사체 인수를 포기하거나, '무명남'처럼 연고자가 없는 경우엔 지자체가 대신 주검을 수습한다. 이 경우 별도의 장례식 없이 화장터로 직행하는 게 보통인데 이를 '직장(直葬)'이라고 부른다.

최근 이런 '직장'이 인간의 존엄성과 반대되는 일이라며 마을 사람들이 나서 장례를 치러주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날 '무명남'의 장례 또한 그 중 하나다. 진행은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지원하는 단체 '나눔과 나눔'이 맡았다. 이 단체는 지난 3월부터 서울시와 업무 협약을 맺고 서울에서 발생하는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식을 담당하고 있다.

이날 빈소에는 10여 명의 시민들이 휴일을 반납하고 찾아왔다. '나눔과 나눔'의 한 회원은 중학생 자녀 두 명과 함께 했다. 무연고 사망자의 마지막 길을 다큐로 기록하는 활동을 해온 명량마주꾼 청년활동가들도 참석했다. 영결식은 헌화와 묵념, 추도사 낭독, 고인을 위한 기도 순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추도사에서 "살아서도, 죽어서도 혼자인 무연고 사망자의 외로움을 바라보며 2015년 문명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한다"며 "비록 얼굴 한번 마주하지 못했지만 같은 공간에서 같은 하늘을 바라보았을 당신을 우리는 외롭게 보내드리고 싶지 않았다"고 전했다.

장례를 총괄한 박진옥 나눔과 나눔 사무국장은 "이번 무연고 사망자 장례식 지원 사업은 고립사 또는 무연사로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사망자에게 존엄하고 품위 있는 삶의 마무리를 지원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현재 '나눔과 나눔'을 비롯한 4개의 비영리민간단체와 서울시가 함께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고인이 어떤 사연으로 그 깊은 산 속에서 삶을 마감하셨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사회가 마지막 가는 길이라도 존엄하게 마무리해 줄 의무가 있다"며 "삶을 이어가는 것뿐만 아니라 죽음 이후도 걱정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이렇게라도 장례에 대한 걱정을 덜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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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장례식, #무연고 사망, #나눔과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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