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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온리유 참가자들과 한 자리에 모였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는 바로 그대. 온리 유.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온리유 참가자들과 한 자리에 모였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는 바로 그대. 온리 유.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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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공항에서 만나 제주공항에서 헤어졌다, 우리들은. 만날 때는 어색했으나, 헤어질 때는 아쉬워 포옹을 하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또 했다. 고작 2박3일을 함께 보냈을 뿐인데 어느 사이엔가 마음 속에 깊은 정이 쌓인 것이다.

다시 만나요.
행복하세요.
만나서 정말 기뻤어요.
사랑해요.

우리가 서로에게 속삭이듯 한 말이다. 그냥 해본 말이라고? 아니다, 그 순간만은 진심이었다. 여자들은 저마다 가슴에 깊은 사랑을 담고 사는 존재가 아니던가.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 사랑을 서로에게 넘치도록 나눠주고 싶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러면서 같은 여자라는 연대감을 높일 수 있었다. 전부 다 '온리유' 덕분이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여자들이 제주로 수다 여행을 떠났다. 여행이라는 멍석을 깔아준 건 '사단법인 제주올레'. 제주에 제주올레가 만들어지면서 여자 혼자 떠나는 여행이 대세가 됐지만, 여전히 홀로 여행 떠나기를 두려워하는 여자들은 많다. 그런 여자들을 위해 (사)제주올레(www.jejuolle.org)가 멍석을 깔았다.

낙천리에서 보리밭을 만났다. 소녀가 되어 보리밭길을 걸었다.
 낙천리에서 보리밭을 만났다. 소녀가 되어 보리밭길을 걸었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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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석 이름은 '수다가 필요한 여성들을 위한 제주 힐링 여행 온리유'. 5월 19일부터 21일까지 2박3일 일정으로 진행된 '온리유'는 온전하게 여자들만을 위해 준비된 여행이다. (사)제주올레는 4월에 한 차례 '온리유'를 진행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5월에도 '온리유' 멍석을 깔고 전국에서 여자들을 불러 모았다.

이번에 모인 여자들은 전부 12명. 서울과 경기도, 부산 그리고 제주 등에서 온 여자들은 30대부터 7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이들과 제주에서 2박3일을 같이 보내면서 울고 웃었다. 그리고 함께 외쳤다.

"온 세상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나."

여자들이 모여서 수다만 질펀하게 풀어낸 것은 아니었다. 여성학자 오한숙희씨가 함께 막힘없는 수다를 풀어내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가 바로 '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던 것이다. 그러니 여행의 즐거움은 두 배, 세 배를 넘어서서 무한대로 확장될 수밖에 없었다.

이쯤 되면 '온리유'가 어떤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기에 즐거움이 무한대로 확장되었는지 궁금할 터. 그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으련다.

길 위에는 아름다운 것들이 너무 많다.
 길 위에는 아름다운 것들이 너무 많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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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제주공항에서 만난 일행 8명은 제주올레 12코스에 있는 '노을과 어울림' 무인카페로 이동했다. 거기에서 일행을 기다리는 4명의 참가자와 합류했다. 이로써 참가자 12명이 전부 만났다. 처음이니 당연히 서먹하고 어색하지. 그래도 요령껏 눈인사를 나누고, 목에 건 이름표를 곁눈질하면서 낯을 익혔다.

참가자 12명 가운데 4명이 딸이 보내준 여행이었다. (사)제주올레에서 '온리유' 참가자를 모집할 때 '가정의 달 5월에 엄마와 아내를 위한 선물로 딱 좋은 여행'이라고 홍보했는데, 딸들이 엄마에게 여행을 선물한 것이다. 딸과 함께 온 '엄마'도 있었다. 그렇다면 아들은? 아들 가진 엄마들은 알아서 '생존'하자. 나도 아들 가진 엄마다.

여행이 끝난 뒤, '온리유'에는 엄마만, 아내만 홀로 보내라고 얘기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홀로 온 사람들은 마음을 열고 친구를 쉽게 사귀지만, 일행이 있는 사람은 일행을 챙기느라 일행과 교감하느라 새로운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와도 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제주올레에 왔으니, 올레를 걸어야지. 이날 우리 일행은 제주올레 12코스를 8km 남짓 걸었다. 안내를 맡은 천혜경 선생에게서 제주의 풀과 꽃, 나무, 제주올레에 깃들인 이야기를 들으면서. 걷는 걸음은 더뎠으나, 아름답게 펼쳐진 제주 바다를 보면서 걸으니 발걸음이 어찌나 가벼운지, 바람에 날려갈 것만 같았다.

이날 밤, 오한숙희 선생을 만났다. '온리유' 오프닝 토크가 시작된 것이다. 한 자리에 모인 참가자들은 편안한 자세로 앉아 오한숙희 선생의 막힘 없는 수다를 들었다. 모인 사람들은 전부 세대를 넘어서서 '여성'이라는 동질성을 가졌다. 살아온 날이 다르고, 살아갈 날이 다르지만 여성이라는 동질성은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면서 강한 연대감을 형성하게 했다.

이럴 때 나오는 말이 있지. 여자라서 행복해요. 호호.

내마음을 앉히고 싶은 의자를 정성스럽게 만들었다.
 내마음을 앉히고 싶은 의자를 정성스럽게 만들었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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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배정은 3인 1실이었는데, 제주에서 처음 만나 같은 방에서 이틀 밤을 보내는 인연은 생각보다 깊을 수밖에 없다.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이를 넘어서는 연대감을 확인하고 좋은 친구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장이 심하다고? 경험하지 않고 속단하지 마시라. 확인하고 싶다면 '온리유'에 참가하심이 어떨지? 9월과 10월에도 '온리유'는 제주에서 계속된다.

특히 10월을 권하고 싶다. 몇 년 전, 10월에 한 달 동안 머문 적이 있었는데 제주의 절정은 10월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10월의 제주는 환상이다.

첫날밤은 인연의 문을 여는 날이라면 두 번째 날은 인연이 깊이를 더하는 날이니 수다 역시 깊어지는 건 당연하리라.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지는 것은 덤이다.

둘째 날은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었다. 제주올레 13코스에 있는 저지오름을 걸었다. 제주에 흩어져 있는 300개가 넘는 오름들은 오를 때마다 새롭다. 제주토박이 애랑언니가 오름에 대한 설명을 아주 잘해준다. 제주를 찾을 때마다 갔던 오름의 자태들이 하나씩 둘씩 떠오르는 건 그 때문이다.

일행은 낙천리 의자마을에서 의자 만들기와 빙떡 만들기에 도전했다. 의자 만들기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렇다고 아주 큰 의자를 만드는 건 아니고 미니어처라고 하나, 작은 의자를 만든다. 그거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직접 만드니 애착이 생긴다. 잃어버리지 말고 꼭 챙겨 가야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온리유'에 참가하든 아니든 낙천리 의자마을에 가거든 '수다뜰'에 들러 '추억의 도시락'을 먹으라고 권하고 싶다. 요즘이야 급식이 대세지만, 나 어릴 때만 해도 도시락을 쌌다. 그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게 바로 '추억의 도시락'이다. 이 도시락, 그냥 먹지 말고 뚜껑을 닫은 채 마구잡이로 흔들어서 섞어 먹는 맛, 아주 괜찮다. 대신 기운차게 흔들어야 잘 섞인다. 맛도 더 좋고.

낙천리 보리밭은 여자들의 마음을 제대로 흔들어 놨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보리밭 사이를 걸어가니 마음이 하늘로 날아오를 수밖에. 길을 나서면, 도보여행을 떠나면 평소에 보지 못하는 풍경을 볼 때가 많다. 푸르게 펼쳐지는 파밭이나, 당근밭, 감자밭, 보리밭이 바로 그것이다. 도심에서, 일상에서 지친 마음을 씻어주는 풍경이다. 그게 낙천리에 있더란 말이지.

제주 빙떡은 내 전문이여. 어머니는 자신있게 빙떡을 말았다.
 제주 빙떡은 내 전문이여. 어머니는 자신있게 빙떡을 말았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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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혜 선생이 진행한 미술 힐링 시간은 당혹감이 이어지는 시간이었다. 대체 몇 년 만에 쥐어보는 크레용, 색연필, 파스텔인가. 이걸로 그림을 그리라고? 만다라를 그리라고? 만다라를 통해서 내 내면을 보겠다고? 당혹감은 거부감으로 이어지고, 곧바로 막막함으로 변한다.

무언가를 그리긴 그려야 할 텐데 잘 못 그리면 어떡하지. 이상한 그림이 나오면 어떡하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이런 경험을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해보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날 저녁에도 오한숙희 선생과 함께 '힐링 수다'를 풀어냈다. 이야기를 나누고, 명상요가를 하면서 잠시 꿈나라를 헤매기도 하는 시간은 아주 빠르게 흘러갔다. 무엇을 어떻게 느꼈는지는 각자의 몫으로 남았으리라.

이별의 시간은 언제나 그렇듯이 빠르게 온다. 비양도가 보이는 협재 바다는 아름다웠다. 이곳에서 일행은 이별의식을 치렀다. 여행기간에 찍은 사진 '나의 한 컷'을 공개하고, 마무리를 하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비양도가 보이는 협재 바다에서 이별의식이 치러졌다. 여자들이여, 제주로 오라. 온리유를 만나라.
 비양도가 보이는 협재 바다에서 이별의식이 치러졌다. 여자들이여, 제주로 오라. 온리유를 만나라.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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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환갑을 맞아 새롭게 인생 2모작을 시작하고 싶어 '온리유'에 참여했다는 참가자는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면서 활짝 웃었다. 그 이는 한 번도 홀로 여행을 떠나본 적이 없지만 내년에 산티아고를 홀로 걸을 수 있는 용기를 얻기 위해 왔다는 이야기를 풀어냈다.

또 다른 참가자는 한 방에 묵은 친구들과 속마음을 터놓고 얘기했을 때 보듬어주고 충고도 해주는 게 너무 좋았다면서 좋은 추억으로 기억하고 싶다고 말했다. 헤어지기 전, 우리 일행은 서로를 보듬어 안고 등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사랑해요. 진심을 담은 말이었다.

오한숙희 선생은 마지막으로 말했다. 여행기간 내내 강조했지만 아무리 강조해도 넘치지 않는 말이다.

"온 세상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그것을 잊지 마세요."

○ 편집ㅣ손병관 기자



태그:#제주올레, #온리유, #힐링, #오한숙희,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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