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에는 갑과 을의 관계에 관한 심각한 논박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을 관통하는 주제를 가진 SBS <풍문으로 들었소>는 매우 시의적절한 선택이라 할 만하다. 그러므로 이 드라마가 불꽃 튀는 갑론을박의 장을 이끌고, 존재 본연의 부조리함에 대해 사고하게 만드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기대가 모아졌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초반 한정호(유준상 분)와 최연희(유호정 분)의 허허실실의 모습에 실소와 함께 호감을 느꼈고, 서봄(고아성 분)의 권력놀음에는 판타지를 느꼈다. 그들에 대한 공감과 대리만족의 느낌은 드라마를 보게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감정이입할 캐릭터는 점점 줄고, 상황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만 있다.

모호한 갑과 을의 설정...네 편, 내 편에의 판단은 각자의 몫

'풍문으로 들었소' 주인공들의 모습.

▲ '풍문으로 들었소' 주인공들의 모습. ⓒ SBS


이 작품에서 갑과 을이 누구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아니, 분명 정해져있는데 여러 상황설정이 그것을 헷갈리게 만든다는 것이 정확한 설명일 것이다. 유추해보자면, 한정호와 최연희가 갑이고, 그들의 고용인들이 을이며, 철저한 상하-주종의 관계다.

하지만 드라마 초반 미성년의 임산부 며느리 서봄에 대한 너그러운 씀씀이, 아기를 대하는 순수한 모습의 갑에 너무나 공을 들인 탓인지, 관계를 전복(?)해보려 노력하는 을들을 향한 응원의 목소리가 그리 크지 않다.

게다가 을이라 불리는 이들조차 그저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에 바쁘다. 이거야 원, 마음 줄 데가 단 한 군데도 없다니! 권력을 가진 이들을 단순히 갑이라 하기도 그렇고, 그 반대편을 을이라 부르기도 왠지 불편하고 마뜩치 않은 기분. 애초에 갑에게 감정이입할 만한 상황은 만들지 않았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러한 가름은 무의미하다. 드라마는 갑-을의 설정에 따른 네 편, 내 편을 명확히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니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순전히 보는 이들의 몫으로 남는다. 드라마를 보며 이렇게 골머리를 썩여야 하다니! 피곤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그것이 매우 신경 쓰이는 일이긴 해도, 크게 가치 없는 일은 아니다. 드라마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보는 기회가 그리 많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풍문', 이 드라마의 주요 키워드

'풍문으로 들었소' 한정호는 아들에게 거액의 유산을 미끼로 던졌다.

▲ '풍문으로 들었소' 한정호는 아들에게 거액의 유산을 미끼로 던졌다. ⓒ SBS


<풍문으로 들었소>는 내용, 풀어가는 방식 등에 있어 보통의 드라마들과는 많이 다르다. 구구절절 수많은 사건, 사고들이 꼬리를 무는 것도 아니고, 등장인물들의 반응도 대개 심심하리만치 조용하다. 다만 그 속에서도 인물들의 심리상태만큼은 매 회 크게 소용돌이치고 있다.

평범하게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인물들의 행적과 생각을 풀어내는 데 풍부한 상상력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 등은 이 드라마가 공감과 동시에 불만 또한 이끌 것임을 암시한다. 아쉽게도, 지금의 상황은 후자가 더욱 우세하다. 제목이 암시하듯,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야 할 장면들조차 그저 '풍문'으로만 들어야 하는 것이 한둘이 아니니 말이다.

한때 서봄의 언니 서누리(공승연 분)에게 씌워진 오명은 '서누리가 매달린 것이 아니라 재벌가의 아들이 그에게 목을 맨 것이다'라는 소문이 돌면서 진정되었다. 언니를 위한다는 명목의 루머는 날개를 달았고, 급기야 '목을 맨'은 '사랑에 죽자 사자 매달린'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자살했다'가 되고 말았다.

그것은 서봄이 갑의 위치에서 고용인들을 쥐락펴락하는 와중에 벌어진 일로, 반전된 상황에 이르기까지 갑과 을의 역할에 대한 논란을 이끌어냈으며, 세상에 드러난 진실과 허구, 그 경계가 얼마나 모호할 수 있는가를 묘하게 비틀어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 작품에서 '소문', 그리고 그것이 발을 단 '풍문'은 그 역할이 매우 지대하다. 드라마는 매 장면, 꼭 보여줘야 할 법한 행적들을 일일이 보여주지 않는다. 예로, 우리는 아버지 한정호에게 억압받았던 지난날에 치를 떠는 한인상(이준 분)을 보게 되지만, 그 말을 뒷받침할만한 장면들은 과감히 생략되고 있다.

다니던 직장의 내부비리고발 사건에 연루되어 폐인이 된 오빠를 둔 민주영(장소연 분) 또한 마찬가지다. 그의 사연은 드라마의 큰 축이지만, 매우 피폐할 것이 틀림없는 그의 오빠의 모습은 단 한 장면도 제대로 묘사되고 있지 않다.

권력놀음 사이 극적 변화 보인 서봄의 행보, 귀추 주목돼

'풍문으로 들었소' 권력에 납작 엎드렸던 자신을 고백하는 서봄의 모습.

▲ '풍문으로 들었소' 권력에 납작 엎드렸던 자신을 고백하는 서봄의 모습. ⓒ SBS


우리는 이 드라마의 많은 부분(때로 매우 중요한)을 당사자들의 토로나 주변인들의 수군거림 등, 그저 '주워들은 풍월'로 퍼즐을 맞춰 나가야 한다. 그것은 매우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로, 드라마를 그저 즐길 거리로 여기곤 하는 보통의 시청자들에게는 매우 불친절한 일로 여겨질 법도 하다.

혹시라도 각 장면들의 묘사에 공을 들였다면 어땠을까. 한정호가 저지른 각종 비리에 대해 한인상이 받았을 무시무시한 억압에 관하여, 또한 민주영의 오빠 민지환의 비참한 상황 등등에 대해서 말이다. 그랬다면 우리는 드라마에 보다 더 큰 공감을, 그리고 갑과 을의 입장에 대해 가일층 감정이입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글쎄, 그것은 누구도 쉽사리 확신할 수 없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과관계를 헤집고 선과 악을 명확히 가르는 것, 그것이 이 드라마의 주된 목적은 아닌 듯하다. 가부장적인 분위기의 갑이 주로 부를 상징하며 횡포의 주인공이 되고, 을은 약자, 피해자이자 연민의 대상이 되곤 하는 흔한 갑을의 이야기는 아닌 것으로 보이니 말이다. 

한정호는 한인상에게 그가 물려받을 것들을 보여주며 미숙한 자비심, 섣부른 이상주의를 경계하라고 말한다. 그는 '지도자는 선한 품성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 선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힘이란 두려움을 주는 데서 나온다', '감상과 연민을 경계하라. 그것이 내가 원하는 상속자의 조건이다'라고 전한다.

한정호는 아들에게 '상속', 그리고 '이혼'이라는 미끼를 던졌다. 한인상은 서봄에게 '그간 힘의 속성을 너무 무시했던 것 같다'라고 말한다. 결국 그는 아버지에게 굴복한 것일까. 그것은 아직 알 수 없지만, 그러한 행태가 한정호만의 전유물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등장인물들은 작으나 크나 서로를 향해 올가미를 던지고 또 걸려들곤 한다. 갑, 을을 떠나 보통의 인간들의 적나라한 속살이다.

초반, 서봄이 권력이 취해 있던 모습은 많은 이들의 반발을 샀다. 그러나 그는 곧 '괴물 손에 커서 괴물이 될 뻔 했다'며 권력에 납작 엎드렸던 자신을 반성했다. 매우 극적인 변화다. 드라마를 풀 열쇠가 된 서봄의 앞날은 과연 어찌 될 것인가. 현실의 속내를 고스란히 비추고 있어 불편한 <풍문으로 들었소>. 하지만 우리가 이 드라마를 끝까지 지켜보아야 할 이유는 너무도 많다.

유준상 유호정 고아성 이준 풍문으로들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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