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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상선암 수술 후 블로그에 투병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갑상선암 수술 후 블로그에 투병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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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블로거다. 사람들에게 블로거라고 얘기하면 꼭 '파워 블로거냐?'라고 묻는다. 그러면 난 웃으면서 '파워'는 아니고 그냥 '블로거'라고 대답한다. 그만큼 블로그라는 매체가 대중에게 영향력 있는 매체로 인식이 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블로그를 시작한 건 2013년 가을. 내가 '갑상샘암'이라는 병에 걸려 투병생활을 시작하면서다. 처음 갑상샘암 진단을 받았을 때 갑상샘이라는 장기가 우리 몸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던 상황이었던 터라 두려움과 공포를 달래줄 정보들을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아다녔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속시원한 정보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양한 매체에서 너무 많은 정보가 검색되었고 대부분 수박 겉핥기 식의 두루뭉실한 정보들뿐이었다.

갑상샘암 수술을 받고 몸이 조금 회복된 뒤 블로그를 개설하고 갑상샘암 투병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나와 같은 경험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느낀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치료를 받은 내용과 그 당시 나의 생각과 감정들까지 아주 세세하게 기록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사람들이 내 블로그를 방문했다. 나와 같이 갑상샘암을 이미 겪은 사람, 이제 막 진단을 받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 어머니의 갑상샘암 진단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자녀들. 사연은 다양하지만 '갑상샘암'이라는 병과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블로그를 찾아온 사람들이 남겨주는 응원과 감사의 댓글 하나하나에 나도 방문자들과 함께 위로받고 있다는 걸 느끼며 '의료 블로거'가 돼 있었다.

2014년 2월 갑상샘암 치료가 어느 정도 진행돼 이제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한 수준이 됐다. 그래서 예전처럼 병원을 자주 갈 일이 없기 때문에 갑상샘암 관련 포스팅을 자주 할 일이 없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나는 '블로거'의 인생을 살고 있었기 때문에 나의 일상 대부분은 블로그에 기록되고 있었다.

갑상샘암 투병생활을 하며 시작한 '의료 블로거' 활동

갑상샘암 진단을 받은 2013년 여름. 직장 동료들과 회식을 하다가 넘어져 앞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이가 썩어도 웬만해선 치과 문턱을 넘지 않는 나였지만 부러진 앞니를 보고는 치과에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앞니를 치료하기 위해 치과 몇 군데를 갔는데 치과마다 권하는 치료방법이 달랐다. 양쪽 치아 2개를 더 삭제하고 브리지를 씌우자는 곳도 있었고, 임플란트를 권하는 곳도 있었다. 그렇게 몇 군데 치과를 다니다가 부러져 반밖에 남지 않은 내 치아를 그대로 다시 살려서 쓸 수 있다는 치과를 찾았고, 그 치과에서 치료를 받았다.

어려운 시술이었지만 치료가 잘 마무리됐다. 치과 규모가 제법 큰 곳이었는데도 브리지나 임플란트를 권하던 소규모 치과들에 비해 치료비도 적게 들었다. 그래서 더 만족했다. 이미 지난 경험이지만 치과에서 부러진 앞니를 치료했던 후기를 썼다. 내 블로그는 '의료 블로그'의 성향을 띠고 있기 때문에 블로그 주제에도 잘 어울렸고 치과 선택 잘못 했다가 수백만 원씩 쓰고 후회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좋은 정보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경찰조사를 받기위해 '지능수사팀'으로 출두했다.
▲ 경찰서 경찰조사를 받기위해 '지능수사팀'으로 출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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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약 11개월의 시간이 흘러 2015년 1월, 스마트폰에 설치된 블로그 앱에서 알림이 울렸다. '보건'이라는 닉네임으로 전화번호를 남기고 연락을 달라는 글이 남겨져 있었다. 남겨진 전화번호를 검색해보니 지역 보건소. 당시 나는 블로그의 무한 가능성을 믿고 있던 터라 '내 인생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조그만 강의 자리가 생겼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는데, '내 블로그를 보고 보건소에서 그런 기회를 주려고 하나?'라는 생각에 부푼 가슴을 안고 보건소로 전화를 걸었다.

보건소 담당자와 통화하고 나서 내 기대는 와르르 무너졌다. 보건소 담당자는 내 블로그에 올린 치과 후기 글에 대해 '의료법 위반'이란 민원이 들어와 나를 고발한다고 했다. 너무 당황스러운 나머지 전화를 끊고 관련 사례들을 검색해봤다. 그러자 나와 같은 일을 당한 블로거들의 후기가 검색됐다.

대부분이 해당 블로그 글을 내리는 선에서 조치가 됐다고 했고, 일부는 경찰서에 출석해 조서를 쓰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런 경험이 있는 블로거들에게 댓글을 남겨 나의 상황을 알리고 조언을 구했지만 선처를 구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났다.

그 뒤로 보건소에서도 경찰에서도 연락이 없었다. 문제가 된 글을 비공개로 바꿔 즉각 조치했기 때문에 선처를 해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착각이었다. 3월 말 즈음 직장을 그만두고 제주도로 여행을 가 있는데 모르는 사람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메시지를 열어보니 경찰서 '지능팀' 수사관이라고 했다.

'정보'라 생각하고 남긴 후기가 '광고'로 의심받다니... 

경찰서로 가는 길에, 치료를 받았던 치과에 들러 '치료확인서'를 발부받았다. 내가 광고를 하기 위해 글을 쓴 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자료다.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담당 수사관에게 나와 같은 사례로 고발된 사례를 물어보니 우리 지역에선 내가 처음이란다. 그리고 일반인은 이런 '의료법 위반'에 대해 모르는 게 당연하지만, 법을 몰랐다고 해서 위법을 용서받을 순 없다고 말했다.

난생 처음으로 경찰에 출석해 1시간 30분 가량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나오는 길에 지문 채취기에 손가락을 찍었다. 이 사건이 검찰로 넘어가 기소되면 남는 '전과 기록'이라고 한다. '무혐의' 처분을 받으면 수사관이 삭제한다고 하지만 찝찝한 기분은 숨길 수 없었다.

네이버 블로그에 공지된 의료법 위반 주의 공지글
▲ 네이버 블로그 공지글 네이버 블로그에 공지된 의료법 위반 주의 공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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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블로그를 운영한 지 1년 하고도 4개월 가량 지났다. 내 블로그에는 치과 후기 말고도 다양한 병원 치료 후기들이 올려져 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간에 병원의 상호와 위치 등을 노출해 후기를 썼다면 '의료법 위반'이다. 기준대로라면 치과 후기 이외에도 내 갑상샘암 투병일기나 비염이 심해 동네 병원에 갔던 이야기들까지도 모두 불법이 된다. 하지만 여태까지 그 누구도 그 포스팅들을 문제 삼았던 적이 없다. 이번 '고발 사태' 이후로 나는 그 글들을 모두 '전체공개'에서 '제한공개'로 바꿔놓았다.

수많은 블로그 글들을 모두 검색해서 처벌할 수는 없다. 하지만 누군가가 투철한 신고정신을 발휘해 증거자료와 함께 민원을 넣으면 순식간에 의료법 위반을 한 블로거가 된다. 신고가 많이 되는 후기를 보면 치과나 성형외과 관련 내용이 많다. 치과와 성형외과는 경쟁 병원에 환자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광고비를 많이 쓴다. 그러다보니 경쟁 병원 후기글을 보면 보복성 신고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실제 환자도 아닌 블로거들을 모집해 돈을 주고, 마치 그 병원에서 치료받은 환자인 양 후기 글을 올리게 해 다른 환자들을 현혹한다면 분명 그 병원과 블로거는 처벌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나와 같이 사전정보 전혀 없이 병을 얻거나 병원 선택에 있어 고민하는 사람들은 나보다 먼저 경험한 블로거들의 '좋은' 경험담을 보면서 도움이 되는 정보를 얻기도 한다.

치료 후기를 올린다고 해서 무조건 '불법'으로 처벌하기보다는 적절한 대안을 찾아 양질의 정보성 콘텐츠가 계속 양산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해 보인다. 블로거들 또한 자신이 생산한 콘텐츠에 자긍심을 가지고, 스스로가 떳떳한 콘텐츠를 양산하는 문화를 스스로 만들어간다면 본의 아니게 고발당하고 억울하게 전과자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태그:#블로거, #의료법, #고발, #경찰조사, #병원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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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갑상선암 투병일기> 저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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