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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사람이 왜 모든 일을 농사짓는 농업과 농부에 빗댔을까 생각해 보았다. 대다수의 사람이 농업에 종사했으니, 농업은 모든 생명과 부와 학문의 원천이었다. 그러니 농업과 농부를 귀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농부들이 누구에게나 존중받았던 것은 아니어서 대부분 노동을 신성시하는 마음을 갖춘 현자들에 의해서만 그렇게 인식됐다. 현대 사회는 비중이 줄어든 농업을 포함해 수많은 노동 형태들이 생겨났다. 귀한 노동이 돈과 권력과 지위의 높고 낮음에 의해 호불호가 갈리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모든 인간의 노동은 귀하게 여겨져야 할 것이다.

"책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하는데, 이는 마치 농부가 오곡을 가꾸듯이 해야 한다. 또한 하나의 경서를 공부할 때마다 반드시 자기의 능력을 다하여 철저히 힘써야만 좋다. 공부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이 해야 한다.

첫째 경문을 충분히 외워야 하고, 둘째 여러 사람의 학설을 모두 참고하여 같은 점과 다른 점을 구별해서 장·단점을 비교해야 하며, 셋째 깊게 생각해서 의심나는 것을 풀이하되 자신감을 갖지 말고, 넷째 사리에 밝게 분별해서 그릇된 것을 버리되 감히 스스로만 옳다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 (56쪽)

"벗이 없다고 한탄하지 말라"

<책에 미친 바보>
 <책에 미친 바보>
ⓒ 미다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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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는 스스로 '간서치(看書痴)'라 했다. 책을 읽고 쓰면서 희로애락을 느끼는 바보같은 사람이라는 것인데, 번역자인 권정원씨는 이를 '책에 미친 바보'라고 했다.

그는 정조 시대를 살았던 인물로, 극도의 가난 속에서도 공부가 좋아 공부만 하며 살다가 나이 사십이 되어서야 비로소 등용됐으며, 죽을 때까지 15년 정도 벼슬 생활을 하면서 아름다운 조선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학자다. 그의 독서는 경서, 제자백가, 역사와 문물 제도, 음운학, 문자학, 역대 문집, 의서와 농서까지 다양해 서양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견줄 만한 인물이었다. 

농부로 살면서 마음이 맞는 벗들이 그리울 때가 많다. 이덕무의 시대에 친구들을 자주 볼 수 없었던 이유는, 오고 가는 길이 멀고 험할 뿐 아니라 변변히 대접하고 선물할 것이 없어 그랬을 것이다. 요즘은 언제든 연락할 수 있는 통신 기기가 있고, 이동 수단도 완벽하다. 그런데 서로 다른 직업 세계에 살다 보면 이야기를 맞추기가 어렵다. 친구를 그리워하면서도 함께 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운 벗을 만날 수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간서치가 이렇게 답하고 있다.

"간절히 원하지만 다정한 벗을 오래 머물게 할 수 없는 마음은 (중략) 나비를 맞는 꽃과 같다. 나비가 오면 너무 늦게 온듯 여기고 (중략) 조금 머무르면 소홀히 대하고, 그러다 날아가 버리면 다시 나비를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마음에 맞는 시절에 마음에 맞는 벗과 만나 마음에 맞는 말을 나누며 마음에 맞는 시문을 읽는 것. 이것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다. 그러나 어째서 이런 지극한 즐거움이 드문 것인가. 이러한 즐거움은 일생에 단지 몇 번 찾아올 뿐이다.

눈 오는 새벽이나 비 내리는 밤에 다정한 벗이 오지 않으면, 누구와 마주 앉아 이야기할 것인가. 시험 삼아 내 입으로 글을 읽으면 듣는 것은 내 귀요, 내 손으로 글을 쓰면 구경하는 것은 내 눈이라. 내가 나를 벗으로 삼았으니 이제 다시 무엇을 원망하랴. 모름지기 벗이 없다고 한탄하지 마라. 책과 함께 노닐면 되리라. 책이 없다면 구름과 노을이 내 벗이요." (120쪽) 

가난하면서 공부하는 재미를 알기 어렵고, 부유하면서도 절제하고 공부하는 즐거움을 알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덕무는 글을 읽으며 공부하는 재미에 푹 빠져 살다가도 어느 날 문득 배고픔을 느껴서 그 책을 팔아 허기를 메우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술 한 잔 맛있게 걸치며 친구와 함께 유쾌하게 즐긴다. 없는 살림에도 그런 행복을 찾을 수 있었으니 부유하고 가난한 것이 인생을 즐기는 데 장애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재밌고 안타까웠던 부분이다.

"내 집에서 가장 좋은 물건은 단지 '맹자' 일곱 편뿐인데, 오랜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끝내 돈 2백 전에 팔아버렸다오. 그 돈으로 밥을 잔뜩 해먹고 희희낙락하며 영재(유득공)에게 달려가 크게 자랑을 했다오. 그런데 영재도 굶주린 지 이미 오래 되었던 터라, 내 말을 듣고는 즉시 '좌씨전'을 팔아서 남은 돈으로 내게 술을 사주었다오. 이는 맹자가 직접 내게 밥을 지어 먹여주고, 좌구명이 손수 내게 술을 권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소. 그래서 맹씨와 좌씨를 한없이 칭송했다오." (155쪽)

귀는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들어야 할 것을 들어야 하고, 눈은 보는 것이 아니라 보아야 할 것을 보아야 한다. 사지가 아무 때나 움직이게 되면 병에 걸린 것이다. 말하지 말아야 할 때 말하면, 설화를 입어서 큰 손해를 보게 된다. 그러니 보고 듣는 것도 당연히 보고 들어야 할 것을 골라 들어야 할 것이다. 그 차이를 분명하게 느껴야 사람이 되어가는 것인데, 그 차이를 알아도 실행되지 않는 것은 사람의 부족함일 것이다.

"귀는 당연히 들어야 할 것을 듣고, 눈은 당연히 보아야 할 것을 보며, 입은 당연히 말해야 할 것을 말하고, 코는 당연히 냄새 맡아야 할 것을 맡고, 사지와 뼈대는 모두 당연히 움직이고 멈추어야 할 때 움직이고 멈추어야 한다." (193쪽)

젊은 시절 먼저 말하고, 말한 대로 실천하려고 애쓴 적이 있다. 책을 읽고 토론을 하다 보면 깨달음을 얻게 되고, 알게 된 것을 자랑하고 싶었다. 어리석게도 언제나 말이 앞서게 됐고, 그 말대로 실천하려고 하니 두렵고 힘든 시기였다.

삶을 이해하지 못한 미숙한 젊은 날에는 공부에 집중했어야 했는데, 세상 살이에 먼저 매몰되었으니 굳세지지 않은 근육으로 세상을 만나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제는 알겠다. 어느 누구도 생각하고 말한 대로 실천하기 어렵다. 깨달았지만 생각해 보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을 말하고, 그 말한 것을 신중하게 행동으로 옮긴다면 좀 더 편안한 인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일이 많아지는 것은 말이 많은 데서 시작되고, 말이 많은 것은 마음을 단속하지 못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렇다고 입을 꼭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 할까? 그렇지 않다. 말을 하고 그 행실을 돌아본다면 그 말을 헛되이 하지 않을 것이고, 행동할 때 말한 대로 실천하고자 한다면 그 행실을 헛되이 하지 않을 것이다." (197쪽)

"도란 지극히 얕고 가까운 것에 있다"

이덕무는 도(道)라는 것은 삶에서 자연스럽게 발견되는 것이라고 한다. 사소한 것은 버리고 거대 담론을 쫓아 열심히 공부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노예를 부리는 것이 자유민의 일상일 때, 사람들은 노예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했다.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자본가와 권력자들은 노동자들의 삶이 얼마나 고귀하고 힘든 것인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노동자들은 자본가와 권력가의 어려움은 모른 채 사욕만을 채우는 속물이라고 비난한다. 모두가 처해진 상황에서만 자신의 삶과 진리를 이해하게 되니 진정한 도는 발견하기 어렵다. 이처럼 세상의 도가 혼란스러울 때 이렇게 하면 도를 얻을 수 있다고 이덕무는 말한다.

"도(道)란 일상 생활 가운데 지극히 얕고 가까운 것에 있다. 집안에 물을 뿌리고 깨끗이 쓸며 말을 따라 대답하는 것만큼 얕은 것이 없고, 부모를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일보다 가까운 것은 없다.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이는 거의 대부분 이것을 무시하고 높고 큰 것을 엿보며 먼저 하늘의 원리를 말하고 역의 법칙을 논하려고 한다. 단계를 뛰어넘고 차례를 따르지 않음이 이와 같다. 사람의 일도 모르면서 어떻게 하늘의 법칙을 알 수 있으며, 인간의 이치를 모르면서 어찌 역의 법칙을 알 수 있겠는가." (198쪽)

이덕무는 스무 살 남짓부터 많은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글에 담긴 지혜가 천명을 안다는 오십줄의 나보다도 높고 깊다. 그가 과연 글을 쓴 것처럼 살아간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찍 현명해 진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사람을 대하는데 있어서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았다는 것 또한 본받을 만한 일이다.

"사람의 허물은 항상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데서 심해지고, 사람의 재앙은 항상 남을 업신여기는 데서 생겨난다. 스스로가 옳다고 생각하면 남을 업신여기게 되고, 남을 업신여기게 되면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게 된다." (199쪽)

정조 시대는 유럽의 계몽주의 시대와 프랑스 대혁명의 시기와 겹친다. 유럽에서 인권과 민주주의가 싹트기 시작했다면, 조선은 백성을 중심에 둔 정치를 하는 시기였다. 비록 전제 군주가 없어지고 모든 권력이 민중에게로 되돌려지지는 않았지만, 신분에 관계없이 인재들이 등용되어 정치에 참여했으니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

조선 왕조 오백 년이 많은 위기를 극복하고 유지될 수 있었던 힘도, 이런 뛰어난 인재들이 자기 역할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권력을 탐하고 사리사욕을 채우는 위정자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으나, 그런 사람들 속에서 현명한 지혜와 깊은 지식으로 무장한 현자들이 존재했다. 오늘 우리가 평화롭고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은 그런 현자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고마운 세월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의 초안은 기자의 다음 블로그 '무일농원'에 게재돼 있습니다.

<책에 미친 바보> / 이덕무 지음 / 권정원 옮김 / 모우 김영진 그림 / 미다스북스 /2011년



책에 미친 바보 - 이덕무 산문집, 개정판

이덕무 지음, 권정원 옮김, 김영진 그림, 미다스북스(2004)


태그:#책에 미친 바보, #이덕무, #권정원, #김영진, #미다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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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없이 살아도 나태하지 않는다. 무일입니다. 과학을 공부하고, 시도 쓰며, 몸을 쓰고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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