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할아버지!"
"오냐, 어서오너라."

3달 만에 보는 외손자 강석이가 나를 찾아왔다. 나는 반갑게 맞았다. 중학교 1학년 강석이는 머리가 좋아서 영재교육을 받지만 학교 성적은 중상 정도로 어머니의 환대를 받지 못했다.  집에 있을 때에는 언제나 핸드폰을 들고 핸드폰과 씨름을 했다. 자연히 엄마와의 마찰이 생겼다.

"할아버지, 2월 4일이 엄마 생일이에요, 엄마 생일 선물로 행운목을 사려고요."
"그래 그게 얼만데?"

엄마 생일 선물을 산다는 말에 가슴이 울컥했다. 이 녀석이 제대로 커가고 있었구나,라고 생각했다.

지난 여름 방학 때 강석이와 강석이 동생 강재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는 집으로 왔다. 조용하던 집이 두 외손자가 오고 나서 이 녀석들이 옮겨 다니는 곳마다 신경이 쓰였다. 강석이는 우선 우리 집이 단독주택이고 마당에 화분과 나무가 있어서 거미가 있고 지저분하다고 깔끔을 떨었다.

"강석아. 거미는 이로운 동물이다. 파리와 모기를 잡아주니 우리 집 같이 나무와 화초에 농약을 쓰지 않는 집에서는 유익한 동물이란다."

라고 설명을 해도 아파트에서 깨끗하게 살아온 습성으로 우리 노인네 집을 더럽고 무서운 곳이란다. 내가 진공청소기로 집안을 청소하고 마포로 집안을 걸레질해도 더럽단다. 그뿐이 아니다 밥을 먹을 때 식탁에 놓인 숟가락과 젓가락 밥그릇을 싱크대로 가져가서 자신이 다시 닦아 왔다.

"강석아 할아버지가 깨끗이 닦아 놓은 것이다"라고 말해도 소귀에 경 읽기였다. 집에서 엄마가 차려준 밥이 아니어서 인지 밥도 숟가락으로 뒤적이다가 먹는 둥 마는 둥해서 김밥 천국 집에 데리고 가서 김밥과 돈가스를 시켜 먹였다.

슈퍼에 가서 햇반을 사고 재래시장에 가서 반찬으로 오징어 볶음, 김무침, 멸치조림을 사서 밥상에 놓고 먹였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시집살이를 호되게 당하는 것처럼 외손자의 밥투정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속수무책이었다.

강석이 동생 강재는 할머니가 해준 완두콩밥에 소고기 장조림, 갈치구이와 김치로 밥을 한 숟가락 가득 떠서 입에 넣고 맛있게 먹었다. 밥 먹이기 싸움이 끝나면 두 형제가 핸드폰에 매달렸다. 데스크톱 컴퓨터는 강석이에게 노트북은 강재에게 하게 하면 두 녀석 모두 사람을 죽이는 게임을 즐겨하고 있었다.

밤이 되고 10시에 내가 자던 침대에 강석이를 재우고 나와 강재는 방바닥에서 잤다. 밤 11시가 되었는데도 강석이는 침대 홑이불 속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잠을 자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참을성에는 한계가 있었다. 밥투정과 반찬 투정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컴퓨터와 핸드폰으로 사람 죽이는 게임을 밤새 하는 손자를 그냥 놔둘 수는 없었다. "이 놈, 잠자지 않고 무엇해!" " 핸드폰 꺼!" 크게 소리쳤다. 내가 외손자에게 화를 낸 것은 처음이었다.

다음 날 강석이가 집에 갔다 오더니 책가방과 세면도구를 챙겨가지고 동생 강재를 데리고 인사도 없이 썰물이 빠져나가듯 엄마에게로 돌아갔다.

"할아버지, 엄마가 용돈을 한 푼도 주지 않아요."
"잘하는 일이다. 나도 네 엄마 자랄 때 용돈을 주지 않았어!"
"행운목이 얼마냐?"
"3천 원이에요."

나는 행운목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엄마 생일에 선물로 행운목을 사겠다는 외손자의 말에 기쁜 마음으로 2만 원을 강석이에게 주었다.


태그:#행운목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