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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해외에 계신 동포 여러분>은 현재 만주에서 살고 있는 조선족, 그들의 이야기다.

책의 저자는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 <길 위에서 만난 세상>, <보이지 않는 사람들> 등, 주로 우리 사회 소외 계층의 인권 관련 책들을 쓴 시인이자, 르포 작가인 박영희씨. <해외에 계신 동포 여러분>은 지난 10년간 만주를 오가며 취재해 쓴 책 중 한 권이다. 저자는 앞서 <만주를 가다>와 <만주의 아이들>을 썼다.

저자가 만난 조선족은 13명. 저자는 도산 안창호를 떠올리게 하는 교육자 황해수씨 이야기를 시작으로 여성의 몸으로 팔로군이 된 김금록씨, 선친이 피눈물로 개척한 알라디촌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배명수씨, 목단강 조선족 시장의 '억척빼기 까막눈' 함정숙씨,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조선의 음악을 지켜온 동희철씨,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을 학술로 승화시킨 주재관씨, 왕청에 첫 한복점을 낸 후 아들과 함께 3곳의 한복점을 운영하고 있는 최계선씨 등 그들의 파란만장한 사연들을 들려준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이야기

2000명에 불과했던 장춘의 조선인 수가 갑자기 2만으로 불어난 것은 1930년대 중반부터였다. 만주를 점령한 일제는 해마다 1만 가구 이상의 조선인을 만주로 강제 이주시켰다. 당시 이를 집행한 기구는 '선만척식주식회사'와 '만석척식유한주식회사'였다.

잔뜩 기대에 부풀어 고국을 떠나온 이주자들의 실상은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한 해 피땀 흘려 소출한 곡물을 소작료로 지급하고 나면, 만척회사로부터 빌린 돈을 갚기는커녕 다시 빚을 내 농사를 짓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해외에 계신 동포 여러분>에서

<해외에 계신 동포 여러분> 책표지.
 <해외에 계신 동포 여러분> 책표지.
ⓒ 삶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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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일제에 속아 강제이주하거나, 일제의 수탈과 핍박 등의 사정으로 수 많은 조선인이 한반도를 떠나 만주로 갔다. 그리하여 1900년에 22만 명이었던 조선인 수는 일제강점기 중반에는 170만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어떤 이유로 만주로 갔든, 조선인의 처지는 처참했다고 한다. 책을 읽다 보면 여러 사람의 사연에서 굶는 날이 한 끼라도 먹을 수 있는 날보다 더 많았다거나, 신발 살 돈이 없어서 왕복 20리의 학교를 맨발로 다녔다는 등 비슷한 사연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오죽했으면 다른 가족의 생계를 위해 돈을 받고 딸을 파는 매혼까지 흔히 일어났을까.

사정이 더욱 처참했던 사람들은 가진 땅을 일제에게 빼앗기거나, 독립군과 관련돼 감시를 받는 등의 사정으로 일제의 수탈과 핍박을 견디지 못해 한반도를 떠나야만 했던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끼니를 해결하고자 여성의 몸으로 팔로군이 되어야만 했던 김금록(이주 당시 8세)씨. 일제의 수탈을 견디지 못하고 한밤 중에 소리 소문 없이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지라 그녀의 가족의 형편은 더욱 어려웠다. 쫓기듯 함경북도 명천군 삼포를 떠난 가족은 고생 끝에 량수에 도착했으나 거처할 집이 없어 땅을 파서 만든 움막에서 조선족의 삶을 시작했다고 한다.

조국 광복 후. 79만 명가량의 조선인들만 귀국, 반절도 넘는 조선인들은 귀국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1백만이 넘는 조선인이(1953년의 센서스 보고에 의하면 1950년대 중국 조선족 수는 112만 명) 만주 여러 지역에 살면서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과의 치열한 내전이나 문화혁명 등, 중국을 휩쓴 여러 차례의 격변을 겪으며 오늘날에 이른다.

<해외에 계신 동포 여러분>은 13명의 조선족을 통해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와 중국이 일제로부터 겪은 온갖 만행과, 만주로 이주했던 사람들이 겪은 갖은 고초, 당시의 만주 상황들을 보여준다.

"그동안 만주에서 항일군들이 누구를 위해 싸우고, 무엇 때문에 초계처럼 목숨을 버렸는가? 그런 조국 하나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고 기어이 두 패로 갈라지고 말았으니... 그 소식을 전해들은 나는 소년 시절의 기억들이 서러워 밥을 삼킬 수 없었네."
-<해외에 계신 동포 여러분>에서.

이처럼 말하는 최경환씨는 일제강점기 장백에서 항일연군과 또 다른 항일연군 사이에 밀서를 전달하는 등과 같은 일을 했던 항일소년단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이 책의 가치 중 하나는 우리 입장으로만 받아들이고 인식할 수밖에 없는 한국전쟁이나 해방 무렵부터 한국전쟁 당시와 전쟁 후까지의 북한의 실정을 이처럼 당시 만주에 있었던 조선인의 시각으로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간 주로 역사 전문가나 저술가들의 책을 통해 접했던 중국의 1900년 이후 다양한 역사를, 우리와도 깊이 연관이 있는 중국과 만주의 당시 상황들을 직접 겪은 당사자의 경험담을 통해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당사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들이라 생생할 뿐더러 훨씬 쉽게 이해됨은 물론이다. 저마다 사는 지역과 처지가 달라 워낙 많은 1900년대 만주와 일제의 만행, 중국의 역사들을 들려주고 있어 몇 번이고 더 펼쳐 읽어야만 누군가에게 말해줄 정도가 되겠지만 말이다.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 중국에서 한 세기를 살아가는 조선족,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아왔으며, 아직도 우리와 같은 이름을 고집하며 살아가는 그들은 한국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는 조선족, 그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해외에 계신 동포 여러분>은 조선족과 만주, 우리와 중국의 근대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자료가 될 것 같다. 

사실 이 책은 지극한 관심보다 조선족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과 일종의 소신 같은 것 때문에 읽었다. 2006년에 우연히 읽은 <길에서 만난 세상> 이후 그간 여러 권의 르포집을 남다르게 읽게 한 저자의 신간이라 솔깃했다. 조선족 13명을 인터뷰 한 쉽게 나올 수 없는 책인 만큼 누구든 책의 존재를 알려야 한다는 일종의 소신을 외면할 수 없어 선택한 것이기도 하다.

책을 통해 조선족들을 만나며 '잘 선택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까지 읽은 적 없는 소재라 흥미로웠다.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면서 조선의 말과 풍습 등을 놓지 않고 사는 그들이 애틋했다. 일제 강점기의 희생자들이라 할 수 있는 그들의 지난 삶에 동정이 일었다. 아울러 조선족에 대해 아는 것도 없으면서 범죄와 우선 연결하고 있음에 미안해졌다. 

조선족에 대한 올바른 이해, 필요하다

"우리와 피를 나눈 사람들이라 쉽게 내칠 수 없으나, 그렇다고 선뜻 받아들일 수도 없는 그들 같다. 잊을만 하면 보이스피싱이나 오원춘 같은 흉악한 범죄를 일으키지 않은가. 그들도 한국인들 때문에 많은 피해를 입는다더라. 중국과 한국 아무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그들이 한편으론 불쌍하긴 하다. 그래도 선뜻 받아들이긴 좀 주춤거려진다."

책을 읽던 중 '다른 사람들은 조선족을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해 물어봤더니 어느 누가 이처럼 말한다. 아마 많은 사람이 그렇지 않을까?

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 2013년 3월 펴낸 '외국인 밀집지역의 범죄와 치안실태 연구'를 보면, 2011년 기준 외국인 등록자 기준 10만 명당 외국인 범죄자 국적별 검거 인원은 몽골(7064명)이 가장 많았고 미국(6756명), 캐나다(4124명), 러시아(3785명), 태국(3634명), 파키스탄(2995명), 우즈벡(2986명) 그 다음으로 중국(2921명·조선족 포함) 등이 뒤를 이었다.

단, 미국의 경우는 형사정책원 자료에서 밝혔듯이, 미군 및 군속과 각각의 가족들은 외국인 등록을 하지 않으므로 분모가 실제보다 작게 선정되어 있고, 따라서 실제 범죄율보다 너무 높게 계산돼 있다. 이는 한국에 사는 외국인 중 중국인이 절반가량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상당히 낮은 수치인 것이다(출처 : 엔하위키 미러 '조선족' 2015년 1월 8일 기준 자료).

지인의 조선족에 대한 말이 생각나 책을 읽다가 문득 '그렇다면 조선족들이 우리나라에서 범죄를 일으키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궁금한 마음에 검색하니 이런 자료가 보인다. 그런데 왜 조선족들은 우리에게 보이스 피싱이나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로 더 인식된 걸까? <해외에 계신 동포 여러분>이 '또 다른 우리인 조선족'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와 편견을 바로 잡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해외에 계신 동포 여러분>(박영희)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4-11-26/ 1만 4000원



해외에 계신 동포 여러분 - 만주 그리고 조선족 이야기

박영희 지음, 삶창(삶이보이는창)(2014)


태그:#조선족, #일제강점기, #르포, #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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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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