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과장님 저희 아이 어린이집 떨어졌어요. 정원이 17명인데 대기 19번이래요."
- 24개월 여자아이의 엄마인 A씨

"제가 직접 가보기 전에는 유치원 입학설명회를 왜 하는 거냐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동네 유치원에 와이프를 내려주고 보니 거기는 정말 보내기 싫더라고요. 그래서 집에서 15분쯤 거리에 있는 유치원 입학설명회에 같이 갔는데, 저희 동네 엄마들이 거기까지 와서 막 인사를 나누더라구요. 설명회 참석해보니... 그 유치원에 당첨되면 이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 4세 여자아이의 아빠이자 오는 12월에 둘째 출산 예정인 B씨

아이를 둔 사무실 직원들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는 수많은 직장인 엄마, '워킹맘'의 현실이기도 하다.

11월, 4~5세 자녀를 둔 부모들의 공통 관심사는 유치원 입학이다. 내년도 신입생을 미리 선발하겠다는 유치원들이 입학 설명회를 개최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최근 입학설명회에 참석한 회사 동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유치원 입학도 하나의 경쟁이 되어버렸다. 이처럼 말도 안 되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상담 문의하면 일하는지부터 묻는 보육원... '워킹맘'은 서럽다

직장인 엄마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조차 쉽지 않다. 사진은 지난 10일 오전, 한 학부모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전남대 어린이집에 들어가고 있다.
 직장인 엄마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조차 쉽지 않다. 사진은 지난 10일 오전, 한 학부모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전남대 어린이집에 들어가고 있다.
ⓒ 소중한

관련사진보기


회사 복직을 위해 그리고 나도 육아에서 도망치기 위해, 나의 쌍둥이 남매는 지난 2009년 10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태어난 지 9개월 만의 일이었다. 마침 딱 그 연령대에 두 자리가 비었단다. 아파트 단지 내 1층에 자리한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보냈다.

그때는 무상보육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초기에는 오전 10시쯤 어린이집에 가서 오후 3~4시쯤 데려왔다. 내가 출근을 하고 나서는 오후 5~6시 사이에 친정엄마가 아이들을 데려오셨다. 대개는 오후 5시에 아이들을 데려오시는데, 가끔 볼일을 보다 늦어지시면 오후 6시까지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있기도 했다.

그러나 무상보육이 시작된 뒤부터는 오후 5시만 되면 어린이집에서 인터폰이 왔다.

"할머니, '방글이'랑 '땡글이'만 남아있어요."

우리 아이들을 빼고는 모두 집에 갔으니 데려가라는 얘기였다. 오후 4시 50분에 아이들을 데리고 오기 위해 친정엄마의 일상은 더욱 바빠졌다. 우리 아이들이 마지막에 남지 않게 하기 위해 아이들을 데려오는 시각이 점점 더 빨라졌다.

무상보육이 시작되면서 아이들을 기관에 보내지 않으면 손해라는 생각이 팽배해졌다. 일하지 않는 엄마의 아이들은 오후 3~4시면 집으로 돌아갔다. 내가 어린이집의 선생님이라도 늘 늦게 돌아가는 직장인 엄마의 아이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같은 비용이라면 워킹맘의 아이를 맡기보다 일찍 하원하는 '전업맘(전업주부)'의 아이를 어린이집이 더 선호하는 이유이다.

아이를 보낼 요량으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전화로 문의하면 엄마가 일하는지를 먼저 묻는다. 엄마의 일하는지에 따라 기관의 상담태도가 달라진다. 가뜩이나 아이를 맡기는 엄마의 입장에서 약자가 된 직장인 엄마는 무상보육의 현실 앞에 또 다시 약자가 되어야 했다.

어린이집 방학... 회사 눈 밖에 날 각오를 한다

지난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동효자동주민센터 맞은편에서 전교조등 교육관련 시민단체 회원들이 무상급식-무상보육파탄위기해결과교육재정확대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무상보육 전면 실시하라" 지난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동효자동주민센터 맞은편에서 전교조등 교육관련 시민단체 회원들이 무상급식-무상보육파탄위기해결과교육재정확대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어린이집은 여름과 겨울, 1주일 2회 방학을 한다. 유치원은 최소 2주에서 길게는 5주까지 방학을 한다. 직장인 엄마는 방학이나 평일에 부모 참관수업을 할 때 무척 곤란하다.

휴직하고 복직한 이후로는 회사 눈 밖에 나는 한이 있더라도 여름·겨울방학에 맞춰 휴가를 신청한다. 그러나 막 겨울방학에 맞춰 휴가를 썼는데, 또 돌아오는 봄 방학(3월 입학에 맞춰 2~3일을 또 쉰다)에 다시 휴가를 낼 수 없어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냈다.

아무런 프로그램도 없이, 그래 봐야 대여섯 명밖에 안 되는 모든 연령의 아이들을 한 곳에 모아두는 시설에 맡겨야 한다. 비용을 아끼느라 봄방학 때는 난방조차 미리 틀어놓지 않는 시설이기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렇다고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이 악덕인 것도 결코 아니다. 그저 이게 현실일 뿐이다.

우리 동네가 특이한 건지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에 직장인 엄마가 많지 않다. 17~18명 정원인 한 반에 직장인 엄마는 3분의 1도 채 안 된다.

월말이 바쁜 업종에 근무하고 있으면서 매번 아이들이 방학을 할 때마다 말일, 그것도 12월 31일을 포함해서 휴가를 내기란 여간 눈치 보이는 것이 아니다. 직장인 엄마의 아이로 살아야 하는 쌍둥이는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방학을 시행하기 전 기관에서는 학부모에게 방학 시행 여부 및 방학기간의 보육 여부를 통신문으로 안내한다. 우리 아이들만 방학 때 나오기로 했다며 곤란해 하던 어린이집 선생님의 전화가 아직도 귓가에 울리는 것 같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대한 안 좋은 기사가 나올 때마다 직장인 엄마는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다. 혹여 나의 직업 때문에 아이가 잘못되지는 않을까 불안에 시달린다. 직장인 엄마들의 마음을 멍들게 하고, '전업맘'과 '워킹맘'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을 만드는 모든 정책과 매체의 기사들이 정말 유감스럽다.

대국민 복지,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 차원의 무상보육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주변의 도움 없이 온전히 엄마 혼자의 힘으로 아이를 돌보는 일은 회사에서 24시간 야근하는 일보다 더 힘들다. 그 사실을 알기에 아이를 기관에 맡기는 전업주부의 행동을 탓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무상보육이 시행된 이후 직장인 엄마의 아이는 오히려 차별을 받아야 하는 실정이다. 직장인 엄마들은 모두 이유를 알고 있다. 하지만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이들은 현실을 모르거나, 모른 체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무상보육은 시행됐지만 시설이나 교사의 처우 등등 보육 인프라 구축이 너무 열악하다. 직장인 엄마에게 무상보육을 위한 인프라 구축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미 과로에 시달리고 있는 유치원에게 자체적으로 해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국가가, 중앙정부가 나서야 한다. 특히 야간보육이 절실하다. 오랜 시간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시설과 교사가 필요하다.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아이를 맡기고 싶지만, 직장인 엄마의 아이를 받아주는 곳이 없다. 이 글은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잘못된 정책에 대한 지적이자, 대한민국 현실에 대한 개탄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이나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쌍디와 같이 크는 까칠한 워킹맘>과 네이버 카페 <다이슈 多 issue>, <꿈틀맘 카페>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유치원 입학의 어려움, #무상보육 워킹맘 역차별, #70점 엄마, #까칠한 워킹맘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