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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막 돌아온 큰아이가 학교 숙제로 내준 '가족소개'에 "누구를 쓸까"라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짓습니다.

"엄마 소개해야지."

역시 우리 딸입니다. '그동안 엄마가 회사까지 휴직하면서 너희를 돌봐주고 있는 보람이 있구나' 생각하며 어떻게 소개할 지 물었더니 아이는 큰소리로 엄마를 소개하는 내용을 말합니다.

"우리 엄마에 대해서 소개합니다. 엄마는 나랑 시험공부만 하면 괴물로 변합니다. 소리 지르고 화내고요. 그리고 때리기도 합니다."

'아니, 이럴 수가... 너 설마...'

엄마와 공부할땐 이렇게 해주세요
▲ 아이의 메모 엄마와 공부할땐 이렇게 해주세요
ⓒ 김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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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일요일의 일입니다. 월요일 날 수학 단원 평가가 있는 것을 잊고 토요일과 일요일에 신나게 놀고 주말 연속극까지 즐겁게 본 후 시험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뒤늦게 깨달은 시험의 존재가 저를 좀 예민하게 만들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초등학교 2학년 단원평가 보는데 애를 뭘 그리 고생시키냐는 남편의 구박에도 책상 앞에 앉아 아이를 밤 11시까지 문제를 풀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꾸벅꾸벅 졸고 딴 곳에 정신 파는 아이에게 '정신차려라', '이것도 모르니?'라며 언성을 높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반 친구들앞에 엄마를 그렇게 소개한다고 할것까지는 없지 않은지. 그리고 꿀밤 몇 대가 '때리지 않기'로 표현될 정도까지의 위협이었다니...

가만히 생각하니 1학기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부모님께 하고 싶은 말을 적으라는 신문고에 아이가 적어온 글이라며 남편이 보내준 사진. 바로 신문고 사건이었습니다.

제가 회사에 다닌다고 아이와 함께할 시간이 없었던 1학기 때나 육아휴직을 한 2학기 때나 아이가 보기에는 큰 변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바쁘기만하고 정신없고 혼내기 잘하는 엄마였던것 같습니다.

아빠, 엄마 많이 놀아주세요!
▲ 아이가 울린 신문고 아빠, 엄마 많이 놀아주세요!
ⓒ 김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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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이가 시험을 잘 보길 바라서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단지 어떤 일을 하기 전에 최소한의 예의로서랄까 '시험 보기 전에 준비'를 하길 바랬습니다. 저 역시 수많은 시험을 대하면서 시험 전날만 되면 '내가 왜 이 시험을 봐야 하지? 왜 이렇게 시험공부를 하고 있어야 하지?'라는 시험 전날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질문에 많은 시간을 버려 왔습니다.

그러다가 재작년 회사 다니며 뒤늦게 시작한 대학원 공부에서, 그저 최선을 다하고 배운 것을 정리하는 기쁨을 느끼는 것으로 시험을 대하면 그만이라는 깨달음 아닌 깨달음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엄마의 강제로 책상 앞에 앉히기는 아이에게 오히려 시험 공부 전날의 질문들을 더 강하게 느끼게 했던것 같습니다. 아이의 맘은 헤아리지 못하고 엄마 방식만 고집하는 참 무식한 엄마입니다. 

가족소개 주인공은 다소 섭섭한 저의 속마음을 숨기고 아이에게 '앞으로는 좀 친절하고 좋은 엄마가 될게. 엄마가 잘할게'라는 약속을 남긴 채 간신히 아빠로 바뀌었습니다. 아이는 이렇게 숙제를 마무리 했습니다.

'저희 아빠를 소개합니다. 우리아빠는 우리집 척척박사입니다. 고장난 작은 기기들을 다 고칩니다. 그리고 잠도 정말 잘 잡니다. 매일 아침 내가 아빠를 깨우러가면 아빠는 몇 분을 추가합니다. (중략) 나는 아빠가 정말 좋습니다.'

아이와 함께 하는 물리적인 시간보다는 아이를 조금 더 이해하고 아이의 자존감을 북돋울 수 있는 그런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육아휴직 기간 동안 엄마는 참 많이 내려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태그:#신문고, #육아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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