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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4일 저녁 뚝섬 한강공원. 스무 살 두 여대생이 간이의자에 앉아 엽서를 쓰고 있었다. 뭐라고 쓸 지 고민하는 듯싶더니 여백은 금세 빽빽이 채워졌다. 이 엽서는 다음번 방문자에게 전해진다. 엽서에 적힌 글귀는 이랬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엽서 주고받으면서 응원도 받고 또 해주는 게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이런 걸 보면 아직 세상은 따뜻한 것 같아요.^^ 이 편지를 받으시는 분, 그냥 한번 웃어주시면 좋겠어요."

이렇듯 격려의 엽서로 응원 릴레이를 펼치는 주인공은 쌈드림 최현우(29) 씨. 쌈드림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가치를 나누고 공유하는 문화 플랫폼'이다. 그가 덧붙여 말했다. "다양한 재료를 모아 음식을 만드는 '쌈', '꿈꾸다'와 '드리다'를 의미하는 '드림'을 합해 이름을 지었어요. 따뜻한 말 한마디, 한 줄의 응원 글귀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희망 배달부' 최현우 씨가 쌈드림을 알리는 배너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희망 배달부' 최현우 씨가 쌈드림을 알리는 배너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 정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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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실패로 시작된 쌈드림

홍익대학교 화학공학과 시절, 그의 꿈은 리포터였다. 학원을 다니며 발성과 발음, 억양부터 스피치, 뉴스 리딩을 배우며 꿈을 키워 갔다. 그러나 리포터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자신의 개성적인 외모를 리포터의 세계에서는 그리 선호하지 않았다. 깨끗하게 접고 입사원서를 쓰기 시작했다. '자신을 뽑아 주는 회사 한 곳 없으랴' 싶었건만, 지원한 100군데 회사 중 면접 보러 오라는 곳 없었다. 스물일곱 대학 졸업반 최현우 씨는 그의 표현대로 '처참했다.'

군고구마 장사, '꿈'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꿈붕어빵 장사를 해볼까 생각했다. 구체적인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기계값이 비싸 이 또한 접을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 '나만의 것'을 하고 싶은 마음은 자꾸만 커 갔다. 그때 떠오른 아이디어가 바로 쌈드림이었다. '희망을 잃은 사람들을 응원해 주자.' 그의 새로운 꿈이 싹트는 순간이었다.

"솔직히 쌈드림을 시작한 데에는 '취업용 스펙'을 쌓기 위한 마음도 있었어요. 내가 뭔가를 주도적으로 해서 어떤 실적을 낸 경험이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었거든요."

좌충우돌 첫 출발

'취업용 스펙'을 쌓으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해도, '희망을 나눠주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간절함이 없었다면 쌈드림은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쌈드림을 시작하기까지 최현우 씨가 겪은 맘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장소를 구하기가 무척 힘들었어요. 구청, 경찰서, 소방서, 학교, 시청, 파출소 등 곳곳을 찾아다녔어요. 제안서를 109군데나 썼지요. 일일이 돌아다니며 인사드리고, 손 편지를 써서 쌈드림이 무엇인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말씀드렸어요. 그러나 모두 거절당했죠."

장소를 구하느라 멱살을 잡히기도 하고, 청원경찰에 붙들려 쫓겨나기도 하고, 심지어 뺨을 맞은 경우도 있다는 최현우 씨. 그렇듯 우여곡절 끝에 2013년 5월 6일, 노량진 초등학교 앞에서 쌈드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쌈드림을 구상한 지 7개월 만의 일이었다.

지난해 11월 대방동 헌혈의집 공터에서 열린 쌈드림. 한 청년이 다음 방문객을 위해 응원 메시지를 쓰고 있다.
 지난해 11월 대방동 헌혈의집 공터에서 열린 쌈드림. 한 청년이 다음 방문객을 위해 응원 메시지를 쓰고 있다.
ⓒ 최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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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닫기 10분 전 방문한 첫 손님

"아, 망했다!' 였어요." 쌈드림 첫 날 그의 기분이 어땠는지 묻자 돌아온 대답이었다. 고배를 맛본 끝에 시작됐으니, '감격'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쁨'이나 '설렘'의 감정을 말할 줄 알았다. 그가 이야기를 이어갔다.

"저녁 6시쯤부터 '손님'들을 기다렸어요. 알록달록하게 천막을 쳐 놓고, 간이탁자와 의자를 마련해 두었죠. 손수 제작한 '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엽서에 응원의 메시지를 적어두고요. 그런데 두 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안 오는 거예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저를 쳐다보니 쑥스러웠고요."

'이렇게 첫 날이 끝나나 보다' 했는데 문 닫기 10분 전 8시 50분에 드디어 첫 손님이 방문했다. 오랫동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20대 여성이었는데, 시험에 실패하고 고향으로 내려가려던 참이었다. 첫 손님은 그에게 말했단다. '마음이 복잡했는데 엽서를 받으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고맙다.'고.

쌈드림에서 만난 소중한 사람들

사실 최현우 씨는 6개월만 쌈드림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그 정도면 스펙 달성을 위한 목적을 이루는 것이리란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계획은 전면 수정됐다. 계속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랬기에 대기업의 러브콜도 뿌리쳤다. 까닭은 쌈드림을 이끌어 가면서 만난 사람들 때문이었다.

"한번은 어떤 여성분이 쌈드림에 오셨어요. 응원 메시지가 적힌 엽서를 드렸더니 엉엉 우시는 거예요. 30분 동안이나요."

최현우 씨 앞에서 펑펑 눈물을 쏟았던 여성은 트렌스젠더였다. 아버지 없이 태어나 어린 시절 보육원에서 자랐는데 원장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이후 중학교 자퇴→ 성전환 수술→ 7억 원 사기를 당한, 고통으로 얼룩진 인생이었다.

이 여성뿐 아니라 자살하려던 사람, 취업에 실패해 방황하던 사람, 우울증에 빠진 사람 등 가슴이 폐허가 된 이들을 여럿 만났다. 최현우 씨는 그들이 응원엽서를 읽으며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지는 걸 보았다. 쌈드림을 지속해야만 하는 이유였다. 방문객들에게 쌈드림은 작은 위로요, 다시 해 보라고 등 두들겨 주는 격려요, 세상 한구석엔 아직 온기가 남아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응원 엽서에 진심을 담는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당신'이지만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간다.
 응원 엽서에 진심을 담는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당신'이지만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간다.
ⓒ 최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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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작업, 그럼에도 가는 길

쉽지 않은 길을 자청해서 가는 최현우 씨도 생계유지라는 현실 앞에선 고민이 적잖다. 수익이 나지 않는 쌈드림을 지속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해서 그는 요즘 토요일마다 돌잔치 MC 아르바이트를 한다. 한 달 수입은 50만원. 이 돈으론 가장(家長)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가 없기에(그는 올해 2월 결혼을 했다), 다른 부업도 구상 중이다.

"쌈드림은 사실 되게 고독하고 외로운 작업이에요. 때론 계속해야 할까 고민이 돼요. 하지만 제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울림이 되고, 한 사람의 이야기가 또 다른 이에게 희망이 된다는 것이 참 감사해요."

지금까지 쌈드림을 다녀간 이들은 4천 명, 그 중 800명이 응원릴레이 엽서 쓰기에 동참했다고 한다. 쌈드림에서 피어오른 희망의 온기는 어디까지 번졌을까.

매주 화요일 오후 5시, 7호선 뚝섬유원지역 자벌레에 가면 '희망 배달부' 최현우 씨를 만날 수 있다. 잃었던 꿈이 다시 싹트는 곳, 쌈드림이 오래오래 지속되길 기대해 본다.

"쌈드림이 누군가에게 따뜻한 울림이 되면 좋겠어요." 이 소망이 쌈드림을 지속하는 원동력이다.
 "쌈드림이 누군가에게 따뜻한 울림이 되면 좋겠어요." 이 소망이 쌈드림을 지속하는 원동력이다.
ⓒ 최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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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쌈드림 , #희망,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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