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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고스트 메모리> 포스터
 뮤지컬 <고스트 메모리> 포스터
ⓒ 희망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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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7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귀신이 출몰한다는 경상북도 경산의 한 코발트 광산을 취재했다. 광산 곳곳에 보이는 부서진 인골들과 겁에 질린 듯 입을 닫는 주민들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후 밝혀진 괴담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수천 명의 민간인들이 보도연맹 회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코발트 광산에서 목숨을 잃게 된 것이 사건의 전말이었다. 그것도 정부의 주도하에 말이다. 방송 이후 사람들은 숨겨진 역사에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 덕분에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방송 이후 보도연맹과 민간인 학살에 대한 관련 자료가 쏟아지기도 했다.

코믹하지만 가슴 아픈 뮤지컬

마침 시기적절하게 경산 코발트 광산 민간인 학살을 다룬 뮤지컬이 최근 막을 올렸다. 바로 노래극단 '희망새'의 <고스트 메모리>다. 21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노래극단 희망새의 신작 뮤지컬인 <고스트 메모리>는 우리가 외면하며 잊고 있던 아픈 역사와 마주한다. <고스트 메모리>는 민간인 학살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잘 녹여낸 '웰 메이드' 뮤지컬이다.

<고스트 메모리>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인터넷 개인방송 BJ(Broadcasting Jockey)인 '왕코'와 '별성'은 '별풍선'(인터넷 개인방송 사이트의 캐시 아이템. 일종의 기부금 형식의 시청료) 대박을 위해 경산 코발트 광산으로 달려간다.

일확천금을 꿈꾸며 경산으로 가던 중 왕코와 별성은 얼떨결에 귀신 3명과 마주하게 된다. 그저 돈을 위해 코발트 광산에 찾아온 왕코와 별성은 귀신들의 소원을 이뤄주며 그들의 아픈 과거에 공감하게 된다.

"어느 날 둘러보지 못했던 주위와 과거의 슬픔이 나의 일이 되어 버릴 때가 있다. 그때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기억은 조작되고 왜곡되어질 때 사람들은 가짜의 현실을 살게 된다. 진실은 귀신이 되고 떠돈다. 이럴 때 모든 것이 공존한다. 우리의 작품도 코믹-공포-환타지-역사가 공존한다. 진실 찾기는 내 속에 있지도 모를 일이다." - 연출 조재현(뮤지컬 < 고스트 메모리> 브로슈어, 연출자의 말 중에서)

사실 민간인 학살이라는 주제는 무겁다면 한없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는 주제다. 하지만 <고스트 메모리>가 그려내는 이야기는 따뜻하고 부드럽다. 심지어 코믹하다. 그러나 그 코믹함과 따뜻함 뒤에 던져지는 서글픔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진다. 귀신들의 애절한 사연과 그들의 억울한 죽음이 지금까지도 제대로 밝혀지지 못했다는 진실이 전하는 슬픔은 배가 되어 다가온다.

뮤지컬<고스트 메모리>의 한 장면
 뮤지컬<고스트 메모리>의 한 장면
ⓒ 노래극단 '희망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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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포인트 세 가지

<고스트 메모리>의 감상 포인트는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바로 노래, 왕코와 별성의 코믹 연기 그리고 메시지다. <고스트 메모리>의 노래들은 강렬하게 관객의 가슴을 파고드는 힘이 있다.

특히 프롤로그에서 선보이는 <그저 사람이다>는 <고스트 메모리>의 메인테마라고 할 수 있다. 마치 '투쟁'의 현장에 나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힘찬 발성과 전주가 매력적이다. 만약 <고스트 메모리>가 성황리에 막을 내리게 된다면 <그저 사람이다>가 투쟁 현장에서 간간이 들릴지도 모른다.

<고스트 메모리>의 코믹함과 재미를 보장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왕코와 별성 역할을 맡은 배우 조석준과 김지영의 '합' 덕분이다. <고스트 메모리>에서 중요한 이야기 요소 중 하나는 역사에 무지했던 BJ들이 민간인 학살의 역사에 눈을 뜬다는 점이다.

한없이 밝고 명랑한 캐릭터들을 '찰지게' 연기한 배우들은 <고스트 메모리>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이 된다. 특히 조석준과 김지영의 '깨발랄'한 연기는 <고스트 메모리>의 필수 관전 포인트다.

"우리는 사람일 뿐이었다. 이 학살의 기억을 절대 잊지 말자". 이 말은 <고스트 메모리>가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특히 시체더미로 시작되는 오프닝 장면에서 부르는 <그저 사람이다>는 <고스트 메모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잊혀져가는 이들에 대한 기억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역사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킨다. 제발 누구든 기억해달라는 간절한 메시지는 우리의 마음에 와닿는 깊은 울림이 있다.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던 '민간인 학살'

<고스트 메모리>의 한장면
 <고스트 메모리>의 한장면
ⓒ 노래극단 '희망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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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학살은 이념과 사상을 떠나 모든 이들의 공감을 얻을 수밖에 없는 이슈이다. 비단 경산 코발트 광산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여전히 한반도 곳곳에는 밝혀지지 않은 학살의 흔적이 남아 있다. 전국 149개 시군구 중 114곳 이상에서 학살이 자행되었다고 하니(9월 27일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중) 그 규모가 얼마나 컸을지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다.

한국전쟁 당시 학살된 민간인의 수는 백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리가 무덤 위에 살고 있다는 말이 결코 농담이 될 수 없는 이유다. 우리가 밟는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을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이 죽었음에도 우리는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지 못한다.

<고스트 메모리>의 귀신들이 말한 것처럼 가장 무서운 존재는 귀신이 아닌 사람이며, 가장 무서운 이야기는 이 비극의 주인공이 우리가 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시체는 썩어 없어지고 기억은 먼지가 쌓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역사는 그렇지 않다. 밝혀지지 못한 역사는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우리가 결코 학살의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 <고스트 메모리>는 '대학로예술공간 혜화'에서 2일(목)부터 15일(수)까지 공연된다(9·10일은 공연이 없다). 비교적 짧은 기간이지만 없는 시간 짬을 내서 볼 가치가 있는 뮤지컬이다. 단체 관람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을바람 선선할 때 눈물 흘리기 좋은 공연이다.

뮤지컬 <고스트 메모리>의 한 장면
 뮤지컬 <고스트 메모리>의 한 장면
ⓒ 노래극단 '희망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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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뮤지컬, #희망새, #민간인 학살, #양민학살, #고스트 메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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