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 서대문뎡에 있는 광서유년체육부(光西幼年體育部)에서는 권구(拳球)를 장려(獎勵)하기 위하야 이십사일에 전선권구대회(全鮮拳球大會)를 개최하리라는데 참가 단체가 20여개단체라 하고 운동장은 영성문안 중앙불교포교당(中央佛敎布敎堂)이라 합니다."
- 1927년 7월 23일 자 <동아일보>

위 기사에 나오는 권구(拳球)는 일제강점기 고무공과 함께 국내에 처음 들어와 소년부, 청년부, 장년부로 나뉘어 전국대회가 열릴 정도로 유행했다. 자료에 의하면 1920~1930년대 서울에는 동네마다 소년체육부가 있어 신장 150cm 이하 소년이 참가하는 권구대회가 자주 열렸다. 야구만큼이나 열기가 뜨거웠고, 심판의 편파판정 시비로 욕설과 주먹다짐이 일어나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

고무공을 주먹으로 쳐서 하는 야구식 경기인 권구는 해방 후에도 서울과 지방에서 크고 작은 대회가 개최됐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놀이문화가 다양해지면서 아이들 놀이가 되었다. 배트를 사용하는 야구는 시설이 갖춰진 넓은 운동장이 필요하지만, 주먹이 배트였던 권구는 골목이나 추수가 끝난 논밭, 개천가에서도 가능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권구는 사용하는 공에서부터 야구나 연식야구와 차이가 난다. 야구공은 딱딱한 가죽으로 싸여 있고, 연식공은 두꺼운 고무로 되어 있으며, 권구는 말랑말랑한 고무공을 사용했다. 또한, 야구와 연식야구는 선수들이 글러브를 착용하고 포수에게 안전장비가 필요하지만, 권구는 공격도 수비도 맨손으로 했기 때문에 장비가 필요 없었다.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 했던 흑백사진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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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1년 군산에서 열린 제1회 권구대회 우승 기념사진(기증 받은 사진입니다)

귀한 사진이다. 얼마 전 지인에게 기증 받았다. 흔히 보는 단체 사진이지만 반가움과 함께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군산의 야구 자료를 모으는 중이어서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까지 했다. '군산 의용소방대 제1회 권구대회 우승기념'이라는 글과 촬영 년도에서 군산 야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소중한 사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권구는 일본에서 시작됐으며 누구나 쉽게 야구를 즐길 수 있도록 장비와 게임방식을 간소화한 대중 스포츠였다. 그래서 그런지 사진에서 글러브는 물론 배트도 보이지 않는다. 대원들이 유니폼 차림도 아니다. 단지 우승 상패를 가슴에 품은 대원 앞에 고무공 두 개만 달랑 놓여있을 뿐이다.

1회 대회를 우승으로 이끌어서 그런지 23명 모두 만족스러운 표정들이다. 결승전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왼팔에 하얀 완장을 두르고 소매를 걷어붙인 사람들이 막 경기를 끝낸 선수로 보여서다. 

'단기 4284년 9월 30일', 촬영날짜가 어제 써넣은 것처럼 선명하다. 서기로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이듬해인 1951년으로 그해 1·4후퇴 때 미군 LST가 진남포에서 싣고 온 피난민 5만여 명 중 절반이 군산에 정착하여 난민 수용소나 산비탈에 움막을 짓고 살던 때였다. 그렇게 사회가 혼란스럽고, 끼니도 잇기 어려웠던 시절에 권구대회가 열렸다니 놀랍다.

민간인으로 구성된 군산 의용소방대는 1945년 11월 30일 발생한 '군산경마장 폭발사건'과 인연이 깊다. 당시 대형화재를 진압하다 대원 아홉 명이 순직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월명공원에 오르면 순직대원들 이름과 '의용불멸'(義勇不滅)이 새겨진 위령탑이 세워져 있다. 위령탑은 1961년에 세워졌으며 군산소방서는 해마다 유가족과 함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추모제를 지낸다.

지인은 자신의 아버지가 군산에서 이름난 한정식당(청춘옥)을 1980년대까지 운영했고, 군산 의용소방대 부대장이었으며 사진을 찍은 장소는 구 군산경찰서 뒷마당이라 했다. 그는 "몇 년 전 공용주차장이 된 구 경찰서 뒷마당은 1950~1960년대 군산극장이나 남도극장에 쇼가 들어오면 배우와 단원들이 청춘옥에서 점심을 먹고 축구와 권구시합을 했던 곳이었다"고 덧붙였다.

찐뽕, 세카이쥬 등으로 불리었던 '공치기'의 추억

제1회 권구대회 우승기념 사진이니 그 후 대회가 얼마나 지속했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일흔이 넘은 지인도 모른다고 했다. 답답했다. 하지만 거리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도, 빈 깡통도 나무 조각도 소중한 놀이기구였던 시절 아이들에게 권구는 최고의 놀이었다. 필자도 코흘리개 시절 동네 형들과 치고 달리고 말씨름을 벌이는 등 해지는 줄 모르고 즐겼다.

1950~1960년대, 동네 어른들은 권구를 '주먹야구', 아이들은 '공치기'라 했다. '세카이쥬' '찐뽕', '짬뽈', '짬뽕'이라 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널리 불리지는 않았다. 당시 고무공은 문구점에서 한 개 5원씩 했으며 돈이 워낙 귀하던 시절이어서 몇 명이 하루 용돈을 모아야 장만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고무공을 소유하고 있는 아이는 인기가 좋았다. 자신이 마음에 드는 친구와 캐치볼을 할 수 있었고, 실력이 모자라도 시합 때 선수로 선발되는 특전도 주어졌다. 

공치기는 주로 동네 골목이나 신작로 앞 공설운동장에서 했다. 한팀의 선수는 3명도 좋고 10명도 좋았다. 수비도 타자도, 주자도 실수의 연발. 그럼에도 스릴과 박진감이 넘쳤다. 시합을 하기 위해 편을 가르는 과정도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 과정은 동네 형들에게 공치기 실력을 인정받는 자리이기도 했다.

아이들이 20명 가까이 모이면 편을 나누기 위해 벽에 나란히 기대고 선다. 그리고 꼬마대장(주장) 두 명이 눈을 가리고 교대로 '왼쪽에서 세 번째', '오른쪽에서 다섯 번째'라고 하며 자기 팀 선수를 지명했다. 아이들은 그때마다 자리를 옮겼다. 공평을 가하기 위함이었으나 먼저 뽑힌 친구와 같은 팀에서 뛰고 싶은 마음에 몸짓 발짓으로 사인을 보내는 귀여운 얌체도 있었다.

양 팀 주장이 '가위바위보'로 선수를 지명해 편을 나누기도 했다. 요즘의 '드래프트' 방식이다. 그때는 아이들이 주장 눈치 살피기에 바빴다. 이름을 부를 때마다 희비가 교차했다. 종종 눈치싸움도 일어났다. 펀치가 약하거나 동작이 굼뜬 아이들은 항상 불안해했다. 선수가 정해지면 약하게 구성된 팀 주장 건의로 선수를 한두 명 맞교환했는데, 그때 방출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라도 시합에 끼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아이도 있었지만···.

드래프트가 끝나면 시합에 들어가기 전 양측 합의로 경기 횟수와 규칙을 정했다. 수비가 땅볼을 잡아 1루나 2루로 달리는 주자를 맞히면 아웃이 되고, 타자가 헛스윙 했을 때 주자가 베이스에서 발을 떼도 아웃이 되었다. 도루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 원만한 진행을 위해 타자가 아무리 공을 멀리 쳐내도(그라운드홈런) 홈인을 못 하고 3루에서 멈추기로 합의를 보기도 하였다. 타자가 세 번 헛치면 아웃이고, 공수 교대는 야구처럼 스리아웃이 되면 했다.

수비가 공을 패스 받아 주자를 터치해도 아웃이 됐으며, 홈으로 들어올 때 '공이 먼저냐' '사람이 먼저냐'로 다툼이 일기도 하였다. 6~8명이 골목에서 할 때는 전봇대와 판자 울타리 기둥이 베이스가 됐으며 1루와 2루만 정해놓고 했다. 야구처럼 상대 팀 투수가 타자에게 공을 던져주는 방식(넣어주기)도 있었으나 '스트라이크냐' '볼이냐'로 의견이 자주 엇갈려 선호하지 않았다.

베이스는 운동장 축구 골대나 큰 돌멩이, 책가방 등을 사용했다. 공치기는 공격 범위가 무척 좁았다. 베이스 간 거리가 짧은 데다 타자는 2루와 3루 사이로만 공을 쳐내야지 1루와 2루 사이로 굴러가면 파울볼이 됐던 것. 볼을 높이 날리기보다는 빨랫줄처럼 직선으로 뻗어 나가야 강타자로 인정받았다. 땅볼을 자주 흘리는 친구에게 "너는 기(게)만 잡는 놈!"이라며 놀려대던 일들이 시나브로 떠오른다.

어린이에게 지구력과 조정력, 집중력 등을 길러줬던 공치기. 1982년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TV 보급이 전국 농어촌 지역으로 확산되고, 전자오락실이 봇물 터지듯 증가하자 서서히 자취를 감추더니 지금은 구경조차 어려운 추억의 놀이가 되었다. 흙먼지 풀풀 날리는 운동장에서 마냥 치고 달리던 그때 그 시절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