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아래 <트랜스포머4>)가 극장가를 휩쓰는 가운데 지난 10일 또 다른 할리우드 SF블록버스터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이 개봉했다. 6월 25일 먼저 개봉한 <트랜스포머4>는 흥행 성적과는 별개로 극장가를 휩쓸었다. <트랜스포머4>는 개봉 첫 날 전국 3600여 개 상영관의 절반에 육박하는 1512개 스크린을 독식(개봉 둘째 날에는 1543개로 증가했다)하며 42만여 관객을 동원했고, 개봉 3주차 주말까지 490여 만 명이 관람했다. 전편에 비해 다소 파괴력이 약해졌지만 '변신로봇'의 위력은 여전했다. 하지만 쏟아지는 혹평에도 <트랜스포머4>가 안정적인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스크린독점과 무관하지 않다.

<트랜스포머4>의 스크린독과점 논란에 이어 <혹성탈출2>는 '변칙개봉'으로 논란을 빚었다. <혹성탈출2>는 애초 지난 16일에 개봉할 예정이었으나 1주일 앞당겨 지난 10일에 개봉했다. 유인원의 기습공격(?)으로 <사보타주>, <좋은 친구들> 등 중소규모 영화들이 큰 영향을 받았다. <트랜스포머4>와 대담하게 맞붙어 비교적 선전하고 있는 <신의 한 수>도 타격이 컸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협공으로 중소규모영화들은 상영관을 잡기도 쉽지 않았다. 결국 같은 주에 개봉예정이었던 <사보타주>와 <주온: 끝의 시작>은 개봉 날짜를 변경했다. 매년 반복되는 일이지만 거대영화자본, 즉 블록버스터의 횡포는 언제나 관객들을 씁쓸하게 한다.

인간보다 주목 받는 외계인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은 7월10일 개봉했다.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은 7월10일 개봉했다. ⓒ 20세기 폭스 코리아

<혹성탈출2>는 1968년 시작된 <혹성탈출> 시리즈의 7번째 작품이다. 2001년 팀 버튼이 재창작(remake)한 <혹성탈출>까지 포함하면 8번째 작품이다. <혹성탈출> 시리즈는 1974년 CBS에서 TV극으로도 제작됐고 국내에 방영돼 꽤 인기를 끌었다. <혹성탈출2>는 2011년 재시동(reboot)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다. 재시동 시리즈는 원작의 출발점으로 돌아가 유인원 행성의 창세기를 기술한다.

돈 테일러가 연출한 1971년 <혹성탈출3: 제3의 인류>에서도 1968년판의 '프리퀄'(전편의 앞선 시간대로 돌아간 후속편)을 다룬 바 있다. <혹성탈출3: 제3의 인류>의 무대는 유인원이 지배하는 미래에서 인간이 지배하는 현재(1970년대)로 옮겨지는데, 당시에 활용한 영화적 장치는 시간 여행이었다.

1968년판에서 '유인원의 행성'(서기 2673년의 지구)에 불시착한 테일러를 도왔던 유인원 코넬리우스와 지이라 부부가 테일러의 우주선을 타고 시간여행을 통해 1970년대로 돌아간다는 설정이다. 그리고 그들은 과거에서 유인원의 시조인 '시저'를 출산한다. 미래가 과거를 잉태한 셈이다(이러한 시간설정은 <터미네이터>시리즈에서도 차용됐다).

재시동시리즈에서는 현대 관객의 눈높이에 맞게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서 유인원행성의 창세기를 다소 변경했다.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에서 시저는 제약회사 '젠시스'의 치매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한 의학실험 과정에서 지능을 갖게 된다. 인간을 공격해 영장류 보호소에 수감된 시저가 젠시스 연구소에서 치매치료제를 탈취해 인간에게 학대 받는 유인원들에게 투여하면서 유인원의 '반란'이 시작된다. 시저는 보호소에서 탈출한 유인원들을 이끌고 숲으로 사라진다. 2편은 그로부터 10여 년 후 젠시스 연구소에서 발생한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절멸직전에 놓인 인류와 유인원들의 대결을 그린다.

전작이 성공적인 재시동으로 <혹성탈출2>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는 컸다. 특히 맷 리브스 감독이 후속편의 연출을 맡으면서 기대감은 더욱 증폭됐다. 2008년 '낚시의 달인' J.J 에이브람스와 공모해 <클로버필드>로 관객들을 낚은 맷 리브스는 2010년 북유럽의 서늘한 흡혈로맨스 <렛 미 인>을 성공적으로 재창조해 관객과 평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재난SF영화와 판타지드라마에서 모두 실력을 검증받은 맷 리브스는 성공적으로 첫 발을 땐 <혹성탈출>시리즈를 본궤도 위에 올려놓을 적임자로 여겨졌다.

그리고 그는 관객의 기대에 저버리지 않았다. 전편의 성공으로 제작비는 두 배로 늘어났지만 블록버스터 속편의 통과의례인 '크기의 저주'에 빠지지 않았다. 맷 리브스는 멍청한 물량공세로 시리즈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트랜스포머> 시리즈와 같은 어리석은 짓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는 볼거리의 크기보다 인물과 드라마에 더 집중해 <혹성탈출> 시리즈를 보다 높은 연령대의 관객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진지한 블록버스터로 확고히 올려놓았다.

때문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영화적 미덕인 화려한 볼거리를 기대했던 관객들은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인물(혹은 유인원) 묘사와 드라마에 치중하면서 상대적으로(<트랜스포머4>는 두 시간이 넘는 긴 상영시간의 대부분을 오직 볼거리를 위해 소비한다) 볼거리는 줄어들었다. 특히 유인원 간의 갈등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불가피하게 볼거리의 '크기'는 줄어들었다.

유인원들이 연출하는 볼거리는 여전히 진화의 초기단계에 머물러서 '동물의 왕국' 수준을 크게 벗어날 수 없다. 예컨대 영화 절정의 시저와 코바의 격투장면은 대도시를 초토화시키는 슈퍼히어로들의 '파멸의 스펙타클'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내셔널지오그래픽'의 확장판 정도로 따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도입부의 원시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유인원들의 사냥장면은 유인원이 등장하는 SF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독특한 매력을 한껏 뿜어낸다.

특히 앤디 서키스의 '동작 모사'(motion capture) 연기는 압도적이다. <반지의 제왕>의 '골룸'으로 명성을 얻은 앤디 서키스는 <킹콩>에서 처음으로 유인원 역할을 맡았다. 킹콩의 성공적인 구연으로 <혹성탈출> 1편에서도 시저역을 맡았다. 앤디 서키스는 단지 눈빛과 동작연기만으로 컴퓨터그래픽기술로 결코 모사할 수 없는 영혼을 불어넣었다(지난 해 개봉한 <미스터 고>와 비교해 보시라. 영화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그것이 배우를 대체할 수는 없다. 영화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이야기이며 연기는 배우의 것이다). '시저'의 압도적인 카리스마는 인간들마저 매료시킨다. 시저는 (인간배역까지 포함해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사상 가장 매력적인 정치지도자 중에 한 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저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사상 가장 매력적인 정치지도자 중 한 명이다.

시저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사상 가장 매력적인 정치지도자 중 한 명이다. ⓒ 20세기 폭스 코리아


다만 <혹성탈출2>에서 아쉬운 점은 인간이 주변부로 밀려 났다는 것이다. 유인원끼리 갈등이 이야기의 큰 줄기를 이루면서 인간은 들러리가 되고 말았다. 예컨대 유인원 지도자인 시저와 코바에 비해 인간종족의 지도자인 말콤(제이슨 클락 분)과 드레퓌스(게리 올드만 분)은 매우 평면적이고 단순하게 묘사된다. 오히려 인간들이 유인원보다 단순해 보일 지경이다. 게리 올드만 같은 뛰어난 배우를 이런 방식으로 소모하는 것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다.

그럼에도 <혹성탈출2>은 올해 개봉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중 단연 돋보이는 수작이다. 현대 문명에 대한 원작의 비판의식을 오롯이 살리면서 인물과 이야기, 볼거리를 모두 놓치지 않았다. 아마도 <트랜스포머4>의 아둔한 상업주의에 질려 버린 관객들에게 <혹성탈출2>는 좋은 해독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외계인, 할리우드 영화의 가장 정치적인 소재

올해 할리우드 SF블록버스터의 주된 경향은 '종족전쟁'이다. <혹성탈출2>, <트랜스포머4>, <엣지 오브 투모로우>, <엑스맨: 더 데이브즈 오 퓨쳐 패스트> 등 여름시즌에 개봉한 대부분의 SF블록버스터가 종족전쟁을 소재로 하고 있다. 올해 종족전쟁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아마도 미국에 대한 외부세계의 위협이 증대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혹성탈출>시리즈가 미소냉전과 베트남전쟁이 절정으로 치닫던 1968년에 처음 영화화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혹성탈출>은 냉전과 핵전쟁의 공포를 직접적으로 반영한다. <혹성탈출>에 이어 찰턴 헤스턴이 주연을 맡은 1971년 <오메가 맨>(이 작품은 윌 스미스의 <나는 전설이다>로 재창작됐다)도 중국과 소련의 핵전쟁으로 인류가 전멸한 이후를 다룬 이른바 '포스트묵시록'영화이다.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에 포스트 묵시록영화가 인기를 끈 것은 반전운동의 확산과 베트남전쟁 패배 등으로 미국의 위기가 절정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찰턴 헤스턴이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보수주의자라는 것이다. 그는 악명 높은 총기옹호론자로 전미총기협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찰턴 헤스턴이 '포스트묵시록'의 영웅으로 떠오른 것은 이 장르가 외부의 위협에 대한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공포를 직접적으로 반영한 것이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오메가 맨>의 포스터. 찰턴 헤스턴은 70년대 포스트묵시록영화의 영웅이었다.

<오메가 맨>의 포스터. 찰턴 헤스턴은 70년대 포스트묵시록영화의 영웅이었다. ⓒ 워너


할리우드에 외계인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39년 <플래시고든>이었다. 이 영화에서 아시아인을 공공연하게 연상시키는 '몽고' 행성의 '밍' 황제가 할리우드 최초의 외계인악당으로 등장한다. 할리우드에 처음 등장한 외계인이 아시아인을 연상시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외계인이 처음 등장하는 최초의 SF영화 <달나라 여행>(1905)에서도 '달나라' 원주민은 아프리카나 남미의 원주민이 떠오르는 적대적 야만인으로 묘사된다. 외계인 영화가 제국주의적 시각에서 탄생했다는 걸 암시한다.

외계인장르가 대중적으로 부각된 것은 오손 웰즈의 전설적인 라디오극 <우주전쟁>이었다. 1938년 10월 30일 CBS 라디오극 <우주전쟁>을 듣던 뉴저지 일대 주민들은 진짜 화성인이 침공한다고 믿고 총을 가지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경찰서에는 수만 통의 문의가 빗발쳤고 외계인을 공격한 총격사건이 수 백 건이나 발생했다. 물론 그들은 외계인이 아니라 그들의 이웃을 공격했다. CBS는 방송 시작 전에 허구라는 사실을 수 차례 공지했지만 방송이 시작되자 공포에 질린 청취자들은 이성을 잃고 광기에 사로잡혔다. 이 사건으로 오손 웰즈는 법정에 서기도 했다.

1930년대 후반 할리우드에 외계인 영화가 처음 등장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대공황과 파시즘의 등장으로 외부세계에 대한 미국인들의 공포, 즉 배외주의가 크게 증폭된 때였다. 미소냉전과 군비경쟁이 막 시작되던 1950년대에 외계인영화가 크게 인기를 끈 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미소냉전의 공포와 매카시즘의 광풍은 할리우드의 영악한 상업주의와 결합되어 외계인영화의 황금기를 열어 놓았다. 이 시기에 <지구 최후의 날>, <우주전쟁>, <신체강탈자의 침입> 등 외계인영화의 고전들이 탄생했다.

할리우드가 외계인을 일방적으로 공포스러워한 건 1970년대까지 지속됐다. 외계에 대한 할리우드의 이분법적 인식에 변화를 준 것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1977년 <미지와의 조우>였다. 이 작품에서 스필버그는 할리우드 역사상 처음으로 외계인을 우호적 존재로 묘사했다. 스필버그는 이러한 자신의 세계관을 확장해 1982년 <E.T>로 대성공을 거둔다. 70년대 말 반전운동의 영향이기도 했다. 

이처럼 외계인 장르는 국제 정치의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미국은 올해 외부세계의 격렬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3월 우크라이나사태로 크림반도가 러시아에 병합됐고 이라크에서는 이슬람 반군이 바그다드 입성을 코앞에 두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미군은 승리 없는 철군을 앞두고 있다. 또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야만적인 공격으로 미국의 소위 '인권외교'는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는 시점에 할리우드가 종족전쟁에 주목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른다.

최근 할리우드 외계인 영화들의 흥미로운 경향은 더 이상 외계인을 악으로만 묘사하지 않다는 점이다. <트랜스포머4>에서 외계인은 선한 존재(오토봇)와 악한 존재(디셉티콘)로 나눠지고 오히려 CIA와 같은 내부의 적을 더 부각한다. <혹성탈출2>에서도 인간에게 우호적인 유인원과 적대적인 유인원이 대립한다. <엑스맨: 더 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에서는 다른 종족들이 연합해 인간과 맞선다. 외계종족에 대한 할리우드의 인식이 역전되기 시작한 직접적인 계기는 아마도 <아바타>의 대성공이 때문이다. 1970년대 수정주의 서부극을 우주로 옮긴 <아바타>에서 외계종족(나비족)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으로 묘사된다.

할리우드는 외계인을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했는데, 미국인들도 그럴까? 물론 미국 관객들의 지적 수준이 과거보다 높아진 건 분명하다. 하지만 그보다 해외시장이 북미시장보다 커졌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외국(외계)의 관객들이 자신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영화에 환호할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필자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silchun615에 중복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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