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다름 아닌 '전략공천' 때문이다.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을 밀어내기 위해서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을 공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도 제기됐다.

공천갈등은 앞서 광주 광산 을에서 출마하려던 기동민 후보를 서울로 데려오는 과정에서도 일어났다. 이 잡음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안 대표의 측근이라 할 수 있는 금태섭 변호사마저 등을 돌리고 떠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이에 안 대표는 지난 13일 "역대 재보선을 모두 조사해 보라, 대부분 전략공천이었고 경선하는 사례가 드물었다"고 발언했다. 기존에 있었던 공천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반응이다.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재보선 공천에 있어 원칙을 지켰다"는 것이다.

권은희 카드, 반드시 지금이어야만 했나

안 대표 스스로는 전략공천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번 재보궐 선거 공천은 아쉬운 점이 많다. 먼저 권은희 후보의 공천이 그렇다. 공천 발표가 있기 전, 권은희 전 수사과장은 정치권에 입문하지 않고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며 진실을 밝히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녀는 '국정원 대선개입'과 관련된 경찰 내부의 수사축소와 은폐 관련 의혹을 세상에 알리겠다며 지난 6월 사직서를 내고 경찰 신분을 내려놓았다.

이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다시 집중되었다. 1년 반이 넘도록 아직 끝나지 않은 국정원 댓글사건이 재차 중요한 이슈로 부상했다. 권 후보가 당선된다면 이 사건을 재조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며 반기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면도 존재한다. 대통령 선거에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이 사태에 대한 관심이 재보궐 선거 결과에만 집중될 수 있다. 이슈 자체의 위력이 압축될 우려가 있다. 대중의 시선이 선거의 당락에 쏠린 나머지 정작 사건의 핵심적인 부분에 대한 관심은 급속도로 휘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댓글사건과 관련해 경찰의 축소수사 의혹을 밝혀줄 주요증인이 출마하게 됐다. 권은희의 출마로 인해 이미 사건의 사법적 심판은 기대하기 힘들다는 여론도 있다. 특정 정당에 소속된 인물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도와 평가는 해당 정치집단에 대한 호불호에 따라 쉽게 결정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권은희가 야권의 후보로 선거에 나와야 했다면, 재판이 끝나면서 관련된 논란이 깔끔하게 일단락되는 시점이 어땠을까 싶다.

그리고 이 지점이 바로, 굳이 권은희 카드를 올해 재보궐 선거에서 야심차게 꺼내든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안철수 대표에게 묻고 싶은 부분이다. 광주 광산을 지역구는 '당선이 당연한' 곳으로, 권은희 후보가 과장으로 근무하던 수서경찰서와의 거리도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상당히 멀다. 그렇기에 '권은희가 후보로 출마한 것' 자체는 괜찮은 상황일지 모르나, 해당 지역구의 후보가 반드시 그녀여야만 할 당위성은 찾기 힘들다.

그렇다면 권 후보의 공천은 정말 천정배를 배제하기 위한 행보였던 것일까? 만약 이것이 측근영입이 아니라 반대세력으로 의심되는 정치인을 누르기 위한 것이었다면 그 대가가 너무 커 보인다. 이번 출마로 권 후보는 여당으로부터 '수사은폐 폭로를 정치권 진입을 위한 발판으로 삼았다'는 공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새정치연합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광주 광산을의 권은희 후보 출마는, 후보 본인이나 새정치연합 어느 쪽을 위해서든 그 효과나 정당성이 미지수인 것에 반해 기회비용과 위험부담은 상당하다.

김득중 쌍용자동차 금속노조 지부장이 지난 6월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7.30 재보궐선거 경기 평택을선거구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이날 통합진보당과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등 야권 4당 단일후보로 나서게 된 김 지부장은 "목숨을 뺏는 정치 끝내고 안전한 사회의 틀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 쌍용차 해고노동자 김득중 지부장, 7.30 재보선 출마선언 김득중 쌍용자동차 금속노조 지부장이 지난 6월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7.30 재보궐선거 경기 평택을선거구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이날 통합진보당과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등 야권 4당 단일후보로 나서게 된 김 지부장은 "목숨을 뺏는 정치 끝내고 안전한 사회의 틀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평택을 공천, 노동자 후보 김득중을 밀어줄 수는 없을까

평택을도 마찬가지다. 평택에서 벌어진 쌍용차 사태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사건으로 남았다. 25명 노동자들과 가족들이 죽음과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초래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2012년 대선에서도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쌍용차 국정조사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이 공약은 현재까지도 아직 이행되지 않은 상태이다. 당시 선거공약 중 하나로 이를 내세운 뒤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은 아직 묵묵부답이다.

이런 이유에서 지난 6월 26일, 쌍용차 해고 노동자인 김득중씨가 평택을 지역구 후보로 출마하겠다며 나섰다. 이 소식에 정의당과 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정당 네 곳의 대표도 김 후보로 단일화를 발표, 지지 의사를 드러내며 화답했다. 부당해고로 생활고에 시달리며,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는 노동자들을 대변하기 위해서 김득중 후보는 "노란봉투 후보가 되겠다"고 발언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여기에도 어김없이 새정치연합은 해당 지역구에서 3선을 지낸 의원을 후보로 공천했다.

'단일화가 당선을 위한 묘약'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김득중 후보의 출마에는 노동자의 처우와 해고 노동자의 사활이 달려 있다. 더 선명한 명분이다. 지난 몇 번의 선거가 지나고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 쌍용차 사태에 양대 정당의 지리멸렬한 싸움을 두고만 볼 수는 없다. 지난 18대 대선에서 새정치연합의 전신인 민주당은 쌍용차 국정조사를 공약으로 걸었다. 새정치연합이 후보를 공천하지 않고 김득중 후보를 밀어줄 수는 없을까. 최소한 그 때의 공약이 진심이었다면 말이다.

당시 공약을 직접 언급하며 끝까지 선거에 임한 후보는 물론 안철수 대표가 아니라 문재인 의원이었다. 하지만 만약 안철수 대표가 그 때와 지금의 상황이 다르다며 책임을 회피한다면 이는 비겁한 변명이다. 민주당 후보가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을 약속한 지 2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새정치'를 말하고자 한다면 기존 정치세력이 풀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하지 않을까.

아니면 절박한 노동자의 목소리를 묵살할 정도로 당내 친노 세력을 배제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는 뜻일까. 만약 그런 의미라면 오히려 유권자의 분노를 살 일이다. 이제는 더 이상 여당도 야당도 믿을 수가 없어서 직접 후보를 내세운 지역구 주민의 뜻도 헤아리지 못하는 처사다. 이것이 어찌 '새정치'와 '민주'의 연합을 이름으로 한 정당의 태도란 말인가.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어느새 실종된 '새정치'를 찾아서

지난 2012년부터 촉발된 '안철수 현상'은 기존 정치세력에 대한 신뢰를 잃은 국민들의 바람이 투영된 것이었다. 이를 이해했다는 듯이 안철수는 '새정치'를 이미지로 내세우며 정치에 입문했고, 의원직에 당선됐다. 현재는 제1야당의 공동대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이제는 '새정치'라는 말이 그저 구호에 불과한 듯 느껴진다. '기존에 해왔던 방식'이라며 전략공천의 잡음을 잠재우려는 발언에서는 사태를 얼른 수습하려는 다급함과 더불어 구태정치의 익숙한 모습마저 엿보인다. 과거 답습을 정당성이라고 역설하려면, '새정치'의 간판은 내려놓아야 맞지 않을까.

유권자들의 열망과는 달리, 안철수 대표의 행보에서 그가 어떤 철학이나 가치를 추구하려는지 느끼기가 쉽지 않다. 애매하고 광범위한 단어 몇 마디로 걸어놓은 정당의 이름 말고,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체성을 확연히 드러낼 만한 구체적인 정책이나 방향을 제시 못하는 상황이다. 어느새 실종된 새정치를 찾아서, 유권자들이 대모험이라도 떠나야 하는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상황이 되어가는 것 같아 씁쓸한 미소가 번진다.

유행가요인 '썸'의 가사처럼 '신당인 듯 신당 아닌 신당 같은' 당이 되어 버리지 않으려면, 새정치연합은 더 확실하게 스스로의 가치관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 그 가치관이 옳음을 증명하는 것과는 별개로, 어떠한 것을 가장 우선시하고 추구하는지 드러내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이야말로 유권자를 위한 중요한 배려다. 유권자들은 선거에서 선택을 하기에 앞서 정당이 추구하는 가치관을 본다.

그 방법의 하나로 평택을 선거구의 야권후보를 김득중 후보로 단일화하는 방안을 안철수 대표에게 권하고 싶다. 지난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박원순 시장에게 후보직을 양보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던 것을 떠올려보자. 불가능할 것 같던 지지율 3%대 후보를 당선이라는 현실로 만들었던 그 민심을 생각해 보자. 당시의 서울은 시민을 위한 개혁이 화두였다. 지금의 평택은 노동자를 위한 쌍용차 사태 해결이 이슈다.

'새정치'가 말뿐인 선전구호가 아니라 시대정신을 이해하는 정치인의 자세라는 것을,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번 기회에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란다. 큰 변화를 위한 작은 시작이 안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태그:#안철수, #새정치, #재보궐 선거, #전략공천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