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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청소년 특별면 '너아니'에 실렸습니다. '너아니'는 청소년의 글을 가감없이 싣습니다. [편집자말]
저번 기사에 언급한 토론회(?)때 있던 일이다. 당시 나는 50대 정도의 어르신(?)과 30대 여성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그 어르신이 나에게 물어왔다. 어떻게 학생은 시사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느냐는 취지로.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게 시사 문제로 발전되었네요. 역사면 어느 분야에 관심이 있는가? 고대사랑 근현대사요. 무슨 책을 읽어보았는가? 노태돈 교수의 삼국통일전쟁사 등이요.

그렇게 문답을 주고받았다. 내가 이렇게 대답하자 그분이 주옥같은 질문을 하셨다.

"학생. 혹시 환단고기 읽어봤나?"

처음 질문받을 때부터 설마 했다. 시민단체 사람들 중에 재야사학 측 사람들이 많다는 소리를 들은 적 있으 까. 그런데 그 설마가 역시나.

논쟁은 계속되었다. 이 질문에 나는 '아, 그 위서요?' 하고 대답했다. 환단고기가 왜 위서지? 그럼 위서를 위서라고 하지 뭐라고 하나요, 20세기 이전에 적혔단 근거가 있나요. 여기에 여차여차한 기록이 있는데... 아니 그러니까 당대에 적혔다는 근거 말이에요.

그렇게 30분간 열띠게 의견을 주고받았다. 지하철 막차가 끊기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환단고기는 위서

그날 경험은 색달랐다.(물론 이 뒤에 생긴 일도 색다르긴 마찬가지였지만...) 말로만 듣던 환단고기 진서론자를 실제로 보았으니까. '저걸 믿는 사람이 진짜로 있구나'라는 생각이었다.

사실 그들, 통칭 재야사학(비판하는 사람들은 유사사학이라고 부르지만 여기서는 재야사학으로 통일하겠다)자들이 진서라고 주장하는 '환단고기(를 포함한 재야사서)'는 이미 학계(재야사학자들은 강단사학이라고 부르지만 일반적인 학계로 통일하겠다)에서 연구를 통해 '위서'로 밝혀진 지 오래다. 학계에서 이들 사료에 대한 진위는 이미 '끝난 논쟁'이다.

재야사학자들의 주장과 학계의 반박 내용은 내용이 너무 방대하여 일일이 소개하기 어렵다. 사실 그 주장도 전문가를 제외하면 환단고기가 진서라는 '가정'하에 논리를 전개시키는 경우가 없잖아 있기도 하지만.

인터넷에 흔하게 돌아다니던 '환단고기가 진서인 60가지 이유' 따위의 글을 보면 '현재 역사에서 모호한 부분이 환단고기에서는 명확하게 나온다. 그러므로 진서'라는 논리를 전개하기도 한다. 결과가 맞아떨어지니 진서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진서'와 '위서'는 위와 같은 '인과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대에 작성되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가'에 있다. 앞뒤 인과관계가 맞아 떨어진다고 진서라 한다면 후대에 조작한 시온 의정서나 콘스탄티누스의 기증(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로마 교황에게 서방 영토를 맡겼다는, 중세시대에 조작된 문서)도 진서라 할 수 있겠다.

환단고기가 위서인 이유에 대해서는 경희대학교 조인성 교수의 '재야사서 위서론- 『단기고사』『환단고기』『규원사화』를 중심으로'를 인용해서 설명하겠다. (자세한 내용은 논문이나 관련 서적을 참고하길 바란다.)

"『단군세기』『북부여기』『태백일사』에는 청나라 때부터 사용된 지명이 자주 나오고 있다.

무자(戊子) 7년 영고탑(寧古塔) 서문 밖 감물산(甘勿山) 아래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시는 사당인 삼성사(三聖祠)를 세우고 친히 제사를 지냈다.(『단군세기』33세 단군 감물)
계해(癸亥) 2년 제(帝)가 영고탑에 순행해 흰 노루를 얻었다.(북부여기』하, 6세 단군 고무서)
무자년(戊子年)에 마한(馬韓)이 명을 받들고 경사(京師)에 와 영고탑으로 도읍을 옮길 것을 간하였으나 따르지 않았다.(『태백일사』「마한세가」하)

위의 나오는 영고탑은 청나라 시조 전설과 관련하여 생긴 지명이다. 따라서 영고탑이라는 지명은 청나라 성립 이전에 사용될 수 없는 것이다. …

한편『한단고기』에 실린 네 책 중 『태백일사』에는 '고기'로 여겨지는 문헌들이 자주 인용되고 있다. 이미 세조 때에 구서(求書)의 대상이 되었던『표훈천사』『대변경』『조대기』『삼성밀기』등(『세조실록』7, 3년 5월 戊子)과『진역유기』『삼한비기』등이 그것들이다. 이중 『표중천사』『대변경』『조대기』『삼성밀기』등은 그 이름만이 전할 뿐 『환단고기』를 제외한 다른 문헌에는 전혀 인용된 바 없다. 이 점에 유의하면서『태백일사』의 다음을 보도록 하자.

옛날에 환인(桓因)이 있어 천산(天山)에 내려와 살았다. (중략) 친하고 친하지 않음의 구별이 없었으며 상하가 차등이 없었다. 남녀가 권리를 공평히 하였으며(男女平權) 노소가 일을 나누니 이 시절에는 비록 법규와 명령이 없어도 스스로 화락(和樂)과 순리(循理)를 이루었다.(「환국본기」).
(상략) 너는 노고를 아끼지 말고 뭇사람들을 이끌고 하계(下界)에 내려가서 개천시교(開天施敎)하여 부권(父權)을 세우라(「신시본기」).

위에 제시한 것은 『조대기』로부터 인용된 것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 나오는 "남녀평등", "부권"이니 하는 말이 근대에 들어와 사용되엇던 것은 재언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조대기』는 근대에 쓰여진 것이 된다. 위와 같은 말들이 나오는 『조대기』가 세조의 구서(求書) 대상이 되었던 그것일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조대기』의 경우를 미루어 생각하면, 『환단고기』에 인용되고 있는 고기들은 모두 근대에 위조된 것으로 보아 무방할 것이다. 즉 서명(書名)만 빌려 왔을 뿐, 그 내용은 근대인이 쓴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강단사학(학계)는 친일?

​그러나 이러한 학계의 연구 결과를 재야사학 지지자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이 친일파 이병도의 제자고 그들은 친일 계보를 이어받은 식민사학자이기 때문에 한국의 역사를 왜곡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위의 어르신도 이러한 취지로 말하신 바 있다.)

이병도가 친일파인가는 제쳐놓고서라도 학계 일각에서는 그의 사관이 민족주의적(이병도가 실증주의 사관이긴 하지만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사료에 따른 해석이 아닌 경우가 있다는 의미)​이라는 비판을 하고 있다. (사실 이병도의 연구 결과 중 일부는 학계에서도 비판받고 있다) 그 전에 위와 같은 논리는 선샤인 논술사전의 비유에 따르자면, "분석철학은 영미제국주의 철학이기 때문에 배워서는 안된다"라는 발생론적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오히려 한국사 교과서와 같은 경우 학계의 의견보다 삼국유사와 같은 일종의 '설'에 따르는 등 민족주의 시각이 다분하다. 교과서에는 삼국유사에 따라 기원전 2333년으로 서술한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고조선의 건국 연도를 청동기가 시작된 것으로 생각되는 기원전 10세기(길게 잡아도 기원전 12~13세기) 이후로 추정하고 있다. (관련기사 : "단군왕검이 고조선 건국"…고교 국사교과서 '대담'해졌다)

정치권 내부에서도 이들과 맥을 같이 하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는데,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정치권이 민족주의 정서를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견해를 보인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익명의 역사학과 교수는 "고대의 영광을 통해 현재의 불만을 해소하려는 것"이라면서 "역사를 지나치게 국수주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관련기사 : '상고사' 지원 확대 배경엔 정치권 입김�민족주의 정서 활용 의도)

실제로 이러한 재야사학은 정치권과 어느정도 관련이 있기도 하다. 위에서 위서라고 언급한 환단고기를 논한 2014년 세계환단학회 창립기념 학술대회에는 놀랍게도 동북아역사왜곡대책 특별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축사를 맡기도 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환단고기를 포함한 통칭 재야사서들은 위에서 언급한 듯 이미 '위서'로 결론지어진 지 오래다. 이러한 자료를 인용하여 고대사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은 지양해야 마땅하다. 또한 민족주의적으로 서술된 교과서와 정치권의 움직임도 마찬가지다. 교과서에는 '설'이 아닌 학계의 연구 결과를 반영하여야 하고 정치권이 '역사'를 특정한 목적으로 이용하는 일은 없어야 햔다.

역사는 학문이다. 학문은 오로지 사실에 기초하여 사실로만 이루어져야 한다. 검증되지 않은 근거를 이용하여 학문을 훼손해서는 안된다. 훼손된 학문은 학문이라고 할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개인블로그에도 개재하였습니다.



태그:#환단고기, #재야사학, #한국사, #고대사, #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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