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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 끝에 기초연금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번 기초연금법 제정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위반과 야당의 전반적 무능 그리고 곧 있을 6·4 지방선거라는 정치적 셈법이 빚어낸 한국 노후소득보장체계의 비극이다. 그러나 법이 통과됐다고 해서 이 비극이 끝난 건 아니다. 어쩌면 기초연금법 통과 자체는 앞으로 벌어질 한국 복지국가 비극의 서막에 불과할지 모른다. 본 기사는 두 번에 걸쳐 향후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통제불능의 시나리오'를 소개하고자 한다. - 기자 말

지난 8일 보건복지부는 기초연금법의 세부 시행령과 시행규칙 그리고 고시안을 입법·행정예고하고 오는 28일까지 의견서를 접수하는 절차에 돌입했다. 이들 하위법령들은 법률이 규정한 바에 따라 국회의 통제권을 벗어나 정부의 재량에 따라 법제화된다. 이제 한국 복지국가 비극의 2막은 기초연금법 논쟁에서 국민들로부터 조명을 받은 바 없는 '목마'(木馬)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시작될 것이다.

'부자 노인'에 대한 부정적 여론 그리고 정부 대책

지난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의원들이 기초연금법안을 의결하고 있다.
이날 국회는 정부 ·여당의 기초연금법안을 재적 의원 195명 중 찬성 140명, 반대 49명, 기권 6명으로 가결됐다.
▲ 국회, 기초연금법 통과 처리 지난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의원들이 기초연금법안을 의결하고 있다. 이날 국회는 정부 ·여당의 기초연금법안을 재적 의원 195명 중 찬성 140명, 반대 49명, 기권 6명으로 가결됐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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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목마'의 극중 역할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다소 어렵더라도 먼저 그 등장배경과 주요 약력을 살펴봐야 한다.

기초노령연금(이제는 기초연금)은 2007년 제도입법 논의 당시, '모든 노인에게 13만~30만 원을 지급하자'는 한나라당(옛 새누리당, 당시 야당)의 주장이 국회에서 타협되는 과정에서 국민연금 재정안정화를 목적으로 한 급여축소안과 함께 세트로 도입됐다.

또한 도입 당시부터 가족의 해체와 부양의식의 저하 등을 이유로 '수급자격 판정 시 자녀의 부양능력을 따지지 않는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그러나 시행 이후 사망자에 대한 기초노령연금 지급이나 타워팰리스 거주 노인의 수급 등이 언론을 통해 수차례 알려졌다.

그러면서 제도 도입 4년 차인 2011년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과 분리돼 있는 재정 및 수급자 관리를 일원화하고, 수급자는 줄이는 대신 수급액은 늘리는 공공부조화 등 두 가지 재구조화 방안을 내놨다. 당시 정부의 기초노령연금 제도 개혁을 지지하는 근거로 주로 활용된 것은 '타워팰리스 거주 노인의 기초노령연금 수급'에 관한 언론 보도였다.

부유층 노인의 기초노령연금 수급에 대한 정부대책은 2013년 12월 말 보도자료를 통해 보다 구체화됐다. 당시 정부는 오는 2014년 7월부터 크게 다음 두 가지 개혁안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는 기초연금법의 위임전결 규정(법 제2조 제4호)을 근거로 현재 입법예고한 시행령에 갑작스럽게 등장한다.

첫째, 자녀 명의 6억 원 이상의 주택에 거주하는 기초노령연금 신청 노인과 그 배우자에 대해 주택 가격의 0.78%에 해당하는 금액을 소득인정액 계산 시 무료임차 추정소득으로 부과할 예정이다. 이는 자녀 집에 '무료로 임대료 없이' 살고 있기 때문에 이를 소득으로 간주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신청노인은 소득이 없더라도 무료임차 추정 소득만큼의 월 소득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소득과 재산이 없어 기존 기초노령연금에서 수급대상이었던 노인(단독가구)이더라도 공시지가 13억4000만 원의 자녀 주택에 거주하는 것만으로도 기초연금수급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 왜냐하면 공시지가 13억4000만 원의 자녀 주택에 거주하면 월 소득이 87만1000원으로 잡혀 소득 하위 70% 기준선(87만 원)보다 소득이 많아 기초연금 대상에서 제외된다. 거주하는 자녀 집이 6억 원 이상이면 그에 상응해 급여가 삭감되는 것은 물론이다.

정부의 부유층 기초노령연금 수급자 대책에 따른 사례
▲ (예시1) 공시지가 34억 원의 자녀 명의 아파트에 거주하는 경우(소득·재산=0)

- (현행) 소득인정액 0원(수급) → (개선) 221만 원*(수급 제외)
* 소득인정액(221만 원) = (34억 원 × 0.78%)/12개월

▲ (예시2) 한식당 운영(월 사업소득 58만 원), 자녀명의 공시지가 6억 원 아파트에 거주하는 경우(단독)
- (현행) 소득인정액 58만 원(수급) → (개선) 97만 원*(수급 제외)
* 소득인정액(97만 원) = 사업소득 58만 원+무료임차 추정소득[(6억 원 × 0.78%)/12개월]

출처 : 보건복지부 보도자료(2013. 12. 23.)
주) 2014년 선정기준액(소득 하위 70%) : 단독가구 87만 원, 부부가구 139만2000원

ⓒ 김성욱, 한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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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노인이 자녀에게 재산을 증여할 경우 기존에는 이를 노인의 소득으로 간주하는 기간이 3년이었던 데 반해 개혁안은 전액 소진시까지 노인 본인의 재산으로 간주된다. 이에 따라 2014년 기준으로 노인 단독가구의 경우 매월 159만 원, 노인 부부가구의 경우 196만 원이 재산 가액에서 매월 차감된다.

만약 자식에게 증여한 재산이 6억 원일 때 기존에는 최대 3년까지만 노인 본인의 재산으로 인정해 소득으로 인정되고 3년이 초과된 시점부터는 재산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개혁안은 기초연금을 수급할 수 있는 최대 재산가액(2014년 기준) 3억1680만 원을 제외한 나머지가 매월 소득으로 환산된다. 차감된 재산이 0원이 될 때까지 대도시 단독거주 노인은 14.8년, 중소도시 16.9년, 농어촌 17.5년간 기초연금에서 완전히 배제된다.

이외에도 10년 미만 3000cc 이상 자동차, 회원권 가액 100%를 소득으로 인정하는 조치 등도 이 개혁안에 함께 포함돼 있다.

'부양의무자 기준'의 변화

'목마'의 등장배경과 주요 약력을 살펴봤으니, 이젠 이것의 극중 역할이 무엇인지 본격적으로 탐색해 보자. 부유층 노인의 수급 자격을 제한하겠다는 것인데 무엇을 더 이해하고 탐색할 필요가 있겠느냐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대목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사실 기초(노령)연금은 단순히 국가가 가난한 노인에게 용돈을 주는 제도가 아니다. 물론 제도 형식만 놓고 본다면, 종전 경로연금을 대체하는 성격이 없는 것은 아니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2007년 국민연금 개혁에 따른 소득대체율 감소를 장기적으로 보완하려는 정책 목적도 명확하다.

이것이 소위 대체론과 보완론 논쟁이다. 즉, 전자는 기초노령연금이 공공부조제도의 일환이며 노인빈곤율 완화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집중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후자는 2007년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하락(60%→40%)에 따른 보상차원에서 도입됐기 때문에 기존 공공부조제도와의 어떠한 연계도 거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자녀 명의의 증여재산을 노인의 현 소득으로 환산하거나 노인이 주거하는 자녀 명의의 재산에 무료임차 추정소득을 부과하는 등의 정부안은 이들 두 가지 관점 중 대체론에 집중된 것이라고 하겠다.

먼저 증여재산의 경우, 정부 개혁안에서 거론된 사례와 그 논리대로라면 현 기초노령연금 제도 아래서는 최소 10만 원에서 최대 20만 원까지의 연금을 수급하기 위해 거액의 재산을 자녀에게 증여하는 도덕적 해이가 상당히 광범위하게 발생해야 한다. 문제는 이런 도덕적 해이가 실제 어느 정도 규모로 발생하고 있는지 공식적인 추정치조차 없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하자면, 정부가 언급하는 고액 자산가의 '부적절한 수급'의 문제는 확인되지 않은 사회적 사실이거나 과장된 담론일 가능성이 크다.

우려스러운 것은 후자, 즉 동거자녀 주택가격에 따라 무료임차 추정소득을 부과하는 문제에 있다. 한국 사회복지제도의 발달사를 볼 때 가구 단위가 아닌 노인 개인(부부)의 소득수준을 기준으로 조세를 조달하는 준보편적인 사회수당 성격의 기초노령연금은 한국 복지제도의 획기적인 진전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정부의 의도대로 동거 자녀의 재산을 노인의 소득으로 환산하게 된다면, 사회수당 성격의 기초연금은 사실상의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해 공공부조제도로 공고화될 것이다.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이와 관련해 정부와 여당의 놀라운 팀워크는 이 목마를 기초연금법 논의의 무대에서 전혀 보이지 않도록 했다. 반대로 말하면, 이는 야당이 범한 오류(실패)의 또 다른 측면이 되겠다. 국민연금 가입 기간과의 연동이나 20만 원 지급 문제 등에 가려 조명조차 받아본 적 없었기 때문이다.

부양의무자 기준이란 무엇인가. 간단하게 말하면, 수급신청자의 부양의무자(1촌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 즉 자녀와 사위·며느리 등 배우자)가 재산이나 근로 능력이 있으면 급여를 삭감하거나 수급 자격을 박탈 혹은 부여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말한다.

비록 몇 차례 개정을 통해 완화되긴 했으나 여전히 부양의무자 기준은 광범위한 복지사각지대를 발생시키는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지속적으로 폐지가 거론되고 있다. 실제 2012년 8월, 경남 거제의 한 노인은 사위의 소득이 기준 이상으로 발생하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격이 박탈됐고, 이에 실망한 노인은 유서를 쓴 후 거제시청 앞에서 음독자살했다. 이 사례를 일부 극단적 사례라고 치부하지 말자. 이는 여전히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 복지의 암울한 기록 중 하나다.

기초연금은 노후소득보장제도?

기초연금 대상자 선정 단위가 개인에서 가구로 전환되면 기초연금이 국민연금과 같은 노후소득보장제도로서 기능할 여지는 사실상 차단된다.
 기초연금 대상자 선정 단위가 개인에서 가구로 전환되면 기초연금이 국민연금과 같은 노후소득보장제도로서 기능할 여지는 사실상 차단된다.
ⓒ 보건복지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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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정부의 개혁안이 어떻게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과 같은 기능을 수행하게 될까? 정부 개혁안에서처럼 동거자녀(부양의무자)의 주택 가격 기준이 수급 자격 판단과정에 추가된다는 것은 기초연금 대상자 선정 단위가 개인에서 가구로 전환된다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될 경우 기초연금이 국민연금과 같은 노후소득보장제도로 기능할 여지가 사실상 차단된다. 국민연금은 개인 단위이지 가구의 재산 조건이 급여 수준이나 자격을 결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정부가 당신을 부양하는 자녀의 재산에 따라 국민연금을 차등적으로 지급하거나 수급자격을 부여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설마 그럴 리는 없다고 낙관하지 말자. 이러한 변화는 '부자 노인'의 기준이 언제 어떻게 변경될 것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당장 나와 관계없는 변화라고 손 놓고 있을 정도로 간단한 사안이 아니다. 이번 정부안이 등장하게 된 과정을 되짚어 보면 앞으로의 경로를 예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향후 어느 시점이 되면 정부와 일부 정치인, 보수언론 등은 국가재정여건이 어렵다고 '홍보'하거나 일부 부정수급자 문제를 반복적으로 이슈화할 것이다. 물론 전적으로 여론을 등에 업을 필요까지는 없다. 돈이 없어 부자 노인에게까지는 주지 못하겠다는데 대놓고 반대할 이는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차츰 정부가 마련하는 '부자'의 기준은 지속적으로 낮아지거나 복잡해질 것이고, 종국에는 지금의 기초생활보장제도처럼 자신과 자녀의 빈곤과 근로 무능력을 충분히 입증할 수 있는 이들에게만 지급해야 한다는 논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충분하다. 미국의 정치학자 폴 피어슨(Paul Pierson)은 이처럼 향후 복지가 축소될 개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 환경을 변화시키는 작업을 '체계적 복지 축소'라 명명한 바 있다. 지금의 시도는 그 시작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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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김성욱님은 협성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입니다. 이 기사는 지난 4월 한국사회복지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발표한 <기초노령연금 '부적정 수급자 문제'의 실증적 재검토>(공저 한신실, 중앙대 박사과정)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작성됐습니다.



태그:#기초연금, #기초노령연금, #부양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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