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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노라면> 표지.
 <사노라면> 표지.
ⓒ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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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이른바 아이엠에프(IMF) 사태가 터졌다. 우리는 한 나라가 빚으로 파산하는 개인처럼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전혀 겪어본 적 없는 강력한 충격파였다. 구제금융 명목으로 우리에게 돈을 빌려 준 국제통화기금은 메시아처럼 다가왔다. 다행히 나라는 살았지만 많은 개인이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엄혹하기만 한 한 시절이 찾아왔다.

<사노라면>은, 대하 역사 만화인 <조선왕조실록>으로 유명한 인기 만화가 박시백의 만평집이다. 모두 1998년부터 2001년을 배경으로 하여 아이엠에프 환란기를 겪은 우리 사회와 개인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들이다. 일간지 <한겨레>에 '박시백의 그림세상'이라는 이름으로 실렸던 것들이다.

부제는 '그 시절, IMF의 추억'이다. 아이엠에프 환란기가 어떤 때였는가. 많은 기업이 줄줄이 무너지고, 직장에서 잘린 평범한 직장인들이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나앉았다. '명태'(명예 퇴직자)와 '황태'(황당하게 퇴직당한 사람), '동태'(한겨울에 강제로 쫓겨난 사람) 같은 삭막한 말들이 유행했다. '추억'이라는 말을 붙이기 민망했다.

그런데도 작가는 그 해묵은 만평들에 굳이 '추억'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았다. 이렇게 책 한 권으로 엮어내기까지 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IMF의 추억이 다시 현실이 됐다

"따지고 보면 그런 일들은 어느 때고 있었다. 아무리 호황기였다 해도 해고와 파산, 그에 따른 절망과 좌절 같은 일들은 누군가에게는 일어나는 일이었고 오늘날 또한 그렇다. (중략) 그런데 그 시절은 조금 달랐다. 다수의 우리가 그러한 위험에 직면했고 먼저 그런 일을 당한 이웃들에게 애틋한 동질감을 가졌더랬다. 모두가 주위의 아픔을 제 일처럼 여기고 주변의 약자나 실패한 사람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냈던 때였다. (4~5쪽)

말하자면, 세상은 함께 살아가는 것임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는 것. 가령 이런 식이다. 억수같이 쏟아져 내리는 장대비 서슬에 전기가 나갔다. 집이 물에 잠기기 시작한다. 위험한 상황이다. 식구는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 간신히 집 뒤 언덕으로 피신한다.

그런데 갑자기 아빠가 집으로 간다. 잠시 후, 아빠는 엄마가 "저깟 우환덩어리"라며 한숨을 내쉬는 소 두 마리를 끌고 나온다('농부의 마음'). 농부의 순한 마음은, 길러봐야 손해인 소조차도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받아들인다. 애틋하다.

그런데 그런 애틋함이 안타깝다. 순한 농부의 세상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음습하게 살아가는 존재들이 있어서다. 가령, 국정원은 지금처럼 그때도 온갖 걱정거리를 안겨주는 곳이었다. 작가는, 집 팔아 가며 투자해 신기술을 개발한 중소기업 사장에게 외국 기업들이 준비중인 관련 기술 정보를 넘겨주는 선글라스 낀 정보요원의 모습을 그리면서 "이런 장면을 보고 싶다"고 적는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정치 전면을 거의 떠나지 않은 지금의 국정원을 떠올리는 이가 많으리라.

국회라고 달랐겠는가. 작가는, 더 많은 자리와 더 좋은 자리를 위해 매일 싸우기만 하면서 얻은 '식물 국회'를 치켜세운다. 그러면서 "이름 그대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식물처럼만 하여 다오"라고 조롱한다(식물 국회).

작가를 따라가며 찬찬히 생각해 본다. '식물 국회'는 그들에게 너무 과분하다. '기생충 국회'나 '바이러스 국회'라고 하면 어떨까. 국민들이 열심히 일 하라고 보낸 공복인 주제에 오히려 국민들 위에서 군림하며 기생하는 그들, 여느 흉악한 범죄자들보다 훨씬 더 사회에 깊은 해악을 끼치는 짓들을 서슴지 않는 그들 아닌가.

'지방 선거'(1998년)는 현재 우리에게 특히 시사적이다. 6·4지방선거를 눈앞에 두고 있는 현재 상황을 되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방 선거'에서 작가는 전라도와 경상도 출신의 지각 있는(?!) 두 인물을 나란히 대비한다. 그들은 각각 "지금꺼정은 선거 때마다 찍어 줬는디 요번에 안 찍을라요" "선거 때만 되모 한 표씩 척척 찍어 줬지만도 요번에 택도 없심더"라고 말한다. 작대기만 꽂아도 당선되는 전라도당, 경상도당의 폐해를 사람들에게 힘주어 일깨워 준다.

하지만 지역주의에 물든 사람들은 완고하기만 하다. "안그요?", "안 그런교?"라며 동의를 구하는 그들에게 사람들은 "쪼까 그렇기는 혀지만···"이라거나 "그렇다 캐도···" 하며 주저한다. 선거철만 되면 입으로는 기존의 거대 양당을 비판하면서도 손으로는 그들에게 표를 몰아주는 우리 국민들의 모순이 신랄하게 그려져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판을 양분해 점령하다시피하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과 새누리당은 모두 '새'자를 붙여놓고 있다. 하지만 6·4지방선거를 준비하는 그들의 태도에서 과거와 다른 모습을 찾기는 힘들다. '새'는 '새로운'과 달리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환골탈태하려는 몸부림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많은 이가 아이엠에프 시기를 '환란기'로 부른다. 근심과 재앙의 시기였다는 말이다. 작가는 그 근심과 재앙의 근원에 돈이 있었다고 본다. "피조물이면서도 자신의 창조주인 인간들의 세계를 전면적으로 지배하게 된 이들", 터미네이터처럼 "자신 자신의 의지를 갖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부터 독립하여 인간을 공격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 돈 말이다('터미네이터?')

그 돈이 만들어낸 근심과 재앙의 시대로부터 17년이 지났다. 우리 시대는, 작가가 거대한 공포의 터미네이터라며 우려하던 돈의 문제를 과연 얼마나 해결했는가. 불행하게도 그것이 만든 깊은 수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사람보다 돈을 중시하는 시스템에서 일어난 이번 세월호 사건이 그 뚜렷한 증거다. 이번 세월호 사건을 엄청난 충격 속에서 바라보는 많은 이들이 17년 전의 아이엠에프 사태에 빗대 '제2의 환란기'니 '국난'이니 하는 말들을 떠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아이엠에프에 '추억'이라는 말을 붙여 놓은 작가처럼, 우리는 언젠가 세월호 사건에 '추억'을 붙일 수 있을까. 지리멸렬하고 무능한 정부, 이번 사건의 정치적 이해득실만 따지는 정치권, 그리고 대통령 한 사람에게만 온통 초점을 맞추는 '기레기' 언론을 떠올리면 절망스럽다. 행동하는 국민들의 거대한 힘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가 아닐까. 최소한 아픈 기억으로라도 떠올릴 수 있게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사노라면 - 그 시절 IMF의 추억> / 박시백 지음 / Humanist / 2014. 4. 7. / 263쪽 / 15,000원



사노라면 - 그 시절, IMF의 추억

박시백 지음, 휴머니스트(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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