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정치·사회에 관심을 가지는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듣는 말이 있다. 힘 있고 권력을 쥔 사람들이 하는 '관행'이라는 말을 우리는 참 많이 듣고 살고 있다. 마치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처럼 그들의 범죄는 관행이요, 우리의 범죄는 죄악이다.

"법적 행동의 근거를 착한 사람이 아니라, 실질적인 결과들에만 관심을 갖는 악인의 기준으로 바라봐야 한다"

미국의 위대한 법 사상가로 평가받는 올리버 웬델 홈즈(Oliver Wendell Holmes, 1841~1935년)가 법의 악용 가능성을 강조하면서 한 말이다.

돈을 가지고 권력을 앞세운 자들

내 목숨, 내 가정, 내 기업만이 살 수 있다면 그들에게 법은 한낱 코웃음에 지나지 않으며 범죄를 관행으로 일관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 앞에서 올리버 웬델 홈즈의 말은 깊이 와 닿는다.

254억 원의 벌금을 납부하는 대신 1일 5억 원의 고액 노역을 택했던 전 대주그룹 회장의 일명 '황제 노역'으로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켰던 사건을 봤을 것이다. 당시 사법부의 법 규정에 따르고 관행화한 판단은 국민의 법 감정에 비춰볼 때 이해할 수 없었던 판결이었다. 또한, 회장이 했던 하루 노역의 일과를 보며 국민이 느끼는 그 허탈감은 매우 컸으며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있는 자들이 권력을 등에 업고 돈으로 이루는 관행들은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다. 그것은 정치한다는 위정자들과 그 특권층에서 악용되고 있는 악습 중에 악습인 관용이 우리 사회에 그대로 전염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고위공직자 청문회에서 볼 수 있는 코믹한 광경은 이제 우리의 눈에는 익숙한 모습이다. 온갖 비리와 부정부패로 쌓은 재산 그리고 부동산 및 본인과 자식의 국방의 의무를 소홀이 한 것은 이제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면서 자격 운운하는 것 자체는 웃음거리가 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이제는 국민들이 그대로 아무렇지 않게 모방하고 따라 하고 있다는 데 있다. 내 기업만 내 가족만 잘 먹고 잘살면 직원들과 국민들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는 지도층의 모습을 보면 전염병도 이런 큰 전염병은 없을 것이다.

함게 침몰한 언론

이에 언론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고위공직자 청문회에서 그들의 모습은 오히려 적반하장이 아니냐는 듯 큰소리를 친다. 기업의 회장이라는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오히려 '잘 해보려다 그렇게 됐다'고 합리화를 하고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을 언론은 빼놓지 않고 여과 없이 국민에게 보여주고 있다. 물론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사실 된 보도를 해야 함이 마땅하다. 그렇다면 언론의 역할이 과연 그뿐인가. 선정적인 제목과 아무런 대책 없는 보도, 그것도 모자라 어뷰징 뉴스로 도배한다. '잘 보고 배워라'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우리는 이번 세월호 사건으로 언론도 함께 침몰하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희생된 시신이 하나둘 구조되면서 카메라 앵글은 하나라도 놓일세라 동분서주 움직인다. 희생된 유족들의 눈물을 하나라도 더 담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그러나 유족들의 항의와 그 비싼 고가의 카메라가 파손됐어도 그들은 유족들에게 아무런 항의조차 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자신의 본분을 다했다면 과연 그들 앞에서 왜 떳떳한 모습 대신 고개를 떨구어야만 했나.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언론은 늘 그래 왔다. 언론도 못 믿는다는 유족들의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닐 터이다. 그것도 관행으로 치부하면 그만인지 묻고 싶다.

범죄를 범죄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

로마 시대의 정치가·웅변가·철학자 였던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에 대한 동시대의 평가는 공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처지에서 보면 그는 뛰어난 정치가였으며 공공 관리였다고 평가받는다.

그가 한 말 중에 "범죄에 대한 최대의 동기는 벌을 피하려는 욕구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내게 한참을 생각하게 하였으며 고민하게 하였다. 그래서 반대로 생각해 보았다. 해석해 보면 벌을 피하기 위한 일종의 수단으로 범죄를 저질렀다는 말이 된다. 즉 범죄를 저지른 자의 처지에서 본다면, 자신이 저지른 범죄쯤은 별것 아니라는 생각일 것이다. 더 큰 욕망을 채우기 위해 이런 조무래기 범죄들은 언제든 해도 된다. 이것은 관용으로 합리화를 하며 또 해도 무관한 그들의 이기적인 발상과 물질만능주의가 그 본바탕에 내재돼 있는 것이다.

로마 시대의 정치가가 했던 말이 수 세기가 지난 지금 대한민국에서 흔히 일어나고 있으며 그대로 자행되고 있다. 침몰하던 그 순간 선박직 직원들은 선내에 생존자들에게 '탈출하라'는 명령 대신 그들의 회사와 수차례 통화를 했으며 자신들만 살겠다고 탈출했다고 한다. 벌금의 액수가 상상을 초월하는데도 하루 일당을 대신하는 노역으로 그 죄를 면하려는 자들이 넘쳐나고 있다. 외국으로 도피하고 검찰의 소환에도 응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기를 바라는 자들이 곳곳에 널려있다.

범죄와 관행을 혼동하고 권력과 힘을 앞세워 그 어떤 책임의식도 없이 무책임에 일관하는 자들이 많다. 법은 범죄와 관행을 구분해야 하며 엄히 다스려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착하고 약한 사람들은 소외되며 그것을 아이들이 보고 배울지가 더욱 두려워지는 현실이다.


태그:#범죄, #관행, #세월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평범한 한 아이의 아빠이자 시민입니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 우리 아이들은 조금 더 밝고 투명한 사회에서 살기를 희망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