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관능의 법칙>은 2월13일 개봉했다

영화 <관능의 법칙>은 2월13일 개봉했다 ⓒ 명필름


최근 한국영화시장의 팽창세가 예사롭지 않다. <변호인>이 천만 관객을 돌파한 데 이어 설 시즌에 개봉한 <겨울왕국>과 <수상한 그녀>도 쌍끌이 흥행을 이끌고 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전산망에 따르면 2월 16일 현재 <겨울왕국>은 약 895만 명, <수상한 그녀>는 약 696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각각 900만, 700만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있다. 특히 <겨울왕국>은 개봉 한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있어 <아바타>에 이어 외국영화 사상 두번째로 천만 관객을 돌파할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한국영화시장의 팽창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중년관객의 증가도 그 요인 중에 하나일 것이다. 과거 중년관객들은 기껏해야 1년에 1, 2차례 정도 극장을 찾았지만 최근에는 2, 30대 젊은 관객들만큼은 아닐지라도 예전보다는 자주 극장을 찾는다. 특히 중년여성관객의 증가가 두드러진다. 이제 극장에서 4, 50대 여성들을 발견하는 것은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다.

<관능의 법칙>은 한국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중년여성관객을 겨냥한 로맨틱코미디다. 제작진이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관능의 법칙>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중년여성관객의 수요를 재빠르게 간파한 상업영화라고 할 수 있다.

<관능의 법칙>은 중년여성관객의 수요를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있기 때문에 이 영화의 흥행성적은 중년여성관객의 유효수요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가 될 수도 있다. <관능의 법칙>이 손익분기점을 가뿐하게 넘어선다면 앞으로 충무로에서는 중년여성들을 위한 영화들이 좀 더 많이 생산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영화의 저변을 좀 더 확장하는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

관능의 법칙 혹은 관성의 법칙

<관능의 법칙>은 홀로 딸을 키우고 있는 혜영(조민수 분), 젊은 후배에게 애인을 빼앗긴 '골드미스' 신혜(엄정화 분), 주체할 수 없는 성적 욕구 때문에 남편을 피곤하게 하는 미연(문소리 분) 등 세 여성들을 통해 중년여성들의 성과 사랑을 경쾌하게 그리고 있다.

 <관능의 법칙>은 혜영, 신혜, 미연 등 세 여성들을 통해 중년 여성들의 성과 사랑을 경쾌하게 그리고 있다.

<관능의 법칙>은 혜영, 신혜, 미연 등 세 여성들을 통해 중년 여성들의 성과 사랑을 경쾌하게 그리고 있다. ⓒ 명필름


<관능의 법칙>은 2012년 제1회 롯데엔터테인먼트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시나리오 공모전의 대상작품답게 이야기는 안정감이 있고 대사는 맛깔스러우며 귀에 감긴다. 유머는 과하지 않고 적당하며 세련됐다.

<싱글즈>, <뜨거운 것이 좋아> 등 여성 취향의 드라마를 꾸준히 만들어 온 권칠현 감독의 연출은 인상적이지는 않지만 안정적이다(팬시상품처럼 예쁘기 만한 그림이 다소 거슬리기는 하지만). 한국 영화를 대표할만한 세 여배우의 연기도 뛰어나다. 특히 조민수의 강렬한 눈물연기는 명불허전이다. 코미디에 연이어 도전하는 문소리도 희극배우로써 그녀의 가능성(적어도 지난 해 <스파이>보다는 만족스럽다)을 스스로 입증한다.

중년여성의 성적 욕망을 '쿨'하게 드러내는 전반부는 주연배우들의 묵직한(?) 연령대에도 불구하고 경쾌하고 발랄하다. 만일 전반부의 '쿨'한 태도를 끝까지 유지했다면 <관능의 법칙>은 중년 여성들을 위한 꽤 잘빠진 로맨틱코미디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가 되면 어김없이 꿈틀거리는 한국 영화의 신파본능은 <관능의 법칙>을 '관성의 법칙'으로 만든다. 한국 신파의 만병통치약인 '암'은 <관능의 법칙>에서도 변함없이 뛰어난 효력을 발휘한다. 특히 중년여성들에게 그 약효는 즉각적이다.

중년여성의 '관능'이라는 신선한 소재는 신파의 관성에 의해 다소 빛을 잃지만 <관성의 법칙>은 최근 극장가를 지배한 진지한 신파사회고발극들이 다소 부담스러웠던 여성관객들에게 입맛 당기는 달달한 후식이 될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모든 장르를 신파로 귀결시키는 한국 영화 제작자들의 안일한 상업주의는 이제 심각하게 고려해 필요가 있다. 물론 매운맛에 대한 한국인 특유의 애정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모든 음식에 고춧가루를 넣으면 자칫 미각을 잃을 수도 있다. 고춧가루의 자극으로 미각을 마비시키는 안일한 조리법은 언젠가는 재앙으로 돌아올 것이다.

'바이탈섹슈얼우먼' 가장 많은 한국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이 2000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77%가 '40대에 성생활이 가장 만족스럽다'고 답했다. 또한 40대에 좀 더 잦은 성관계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남자의 경우는 20대의 성적 욕구가 가장 높았다. 연령대에 따른 여성과 남성의 성적 욕구는 다소 충돌한다.

2006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유럽성의학학회(ESSM)은 '바이탈섹슈얼우먼'에 관한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바이탈섹슈얼우먼'이란 '40대 이상의 중년 여성 가운데 건강한 성생활을 즐기며, 성관계에 있어 파트너의 만족과 로맨틱하고 자연스러움을 중요시 여길 뿐 아니라 대화를 그들 관계의 필수 요소로 여기는 여성'을 일컫는 신조어이다.

이들의 특징은 '남성에게 성적 문제가 있을 시 대화를 통해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찾으려는 의지는 보인다는 것'이라고 한다. <관능의 법칙>에서 미연은 남편 재호(이성민 분)가 발기부전치료제를 복용하고 있는 사실을 발견하고 치료를 위해 온갖 정성을 쏟는데 미연과 같은 중년여성을 적극적인 '바이탈섹슈얼우먼'이라고 할 수 있다.

 발기부전치료제를 복용하고 있는 재호에게 미연이 보약을 먹이고 있다.

발기부전치료제를 복용하고 있는 재호에게 미연이 보약을 먹이고 있다. ⓒ 명필름


이 연구는 2006년 한국을 포함해 14개국 18세 이상의 여성 1만4049명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는데 한국 여성들에 대한 연구 결과가 흥미롭다. 연구에 따르면 조사대상자 중 '바이탈섹슈얼우먼'은 절반에 못 미치는 48%였는데 한국 여성은 66%로 조사 대상 국가 중 가장 높았다. 특히 '성생활의 중요성' 부분에서 전체 응답자의 79%가 '그렇다'고 대답했는데 한국 여성은 무려 94%였다.

한국 중년여성의 대다수가 성생활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왜 성생활이 중요한가'라는 질문에는 59%가 '섹스는 커플의 행복과 안정감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답했으며 29%는 '자신이 매력적인 여성임을 재확인하는 수단'이라고 답했다. 한국 여성의 60%는 성관계를 행복한 결혼생활의 필수조건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바이탈섹슈얼우먼'이 많은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매우 자연스럽고 건전한 사회현상이다. 그것은 한국의 중년여성들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매우 건강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중년여성들이 자신의 건강한 성적 욕망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년여성들의 성과 사랑을 유쾌하고 솔직담백하게 드러내는 <관능의 법칙>과 같은 영화들이 만들어지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중년의 성과 사랑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려는 시도들이 보다 활발해 질 때 중년의 성을 보다 건전한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필자의 블로그 <나홀로연구소> http://blog.naver.com/silchun615에 중복 게재됩니다.
관능의 법칙 바이탈섹슈얼우먼 바이탈섹슈얼맨 문소리 조민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