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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의 탄생> 책표지.
 <질병의 탄생> 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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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이룩한 물질적, 기술적, 사회 구조적인 발전. 자연 그대로의 원시적 생활에 상대하여 발전되고 세련된 삶의 양태' 문명(文明)의 사전적 의미다.

45억 년의 나이를 가진 지구에서 우리가 조상으로 간주하는 인류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출현한 지는 약 300만 년 전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인간이 군집을 이루어 모여 살기 시작한 지는 불과 일만 년 전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황하, 아즈텍, 마야 문명 등은 길어봐야 몇 천 년에 불과하다.

문명사를 통해 인류의 질병을 설명하는 책, <질병의 탄생>이 이렇게 장황하게 시작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지구의 역사에 비해 인간인 우리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이 하나고, 또 하나는 그 짧은 기간 동안 인간의 기술적 물질적 진보가 급속도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문명 이야기를 좀 더 이어보자. 몇 천 년의 공동체 생활은 인간들에게 안정과 번영을 가져다 주었는데, 문제는 동시에 우리에게 가져다 준 것이 심각한 환경오염과 다양한 인간의 질병도 함께였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의사이자 예방의학과 교수라고 소개되어 있는데, 해박한 지식과 다양한 인류학적 관점으로 우리의 질병과 원인을 설명하고 있다. 한 마디로 문명의 진보와 함께 다양한 질병도 창궐하게 되었다는 것이 이 책의 골자다.

질병은 어떻게 탄생되었나

"14세기 유행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가량을 사망으로 이끈 페스트를 보면 그 발병 원인은 예르시니아(Yersinia)균에 의한 감염이다. … 중략… 페스트의 경우, 중세에 인적 교류가 활발해지고 사람의 주거 환경이 바뀌면서 숙주인 쥐와 페스트균이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게 되면서 사람 및 다른 가축에게까지 균이 전파되어 감염을 일으켰다는 역사적 맥락을 이해해야만 한다."

페스트 균을 옮기는 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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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화된 인간은 45억년이라는 지구의 나이에 비하면 찰나와도 같은 기간인 몇 천년 동안공동체를 형성하면서 가족과 사회를 위한 각종 시설물과 기계, 특정 농작물과 재화의 대량생산 등을 통해 번영과 발전을 누려왔다. 이렇게 짧은 기간 인류가 문명의 이기를 가속화하는 동안에도, 우리는 전혀 모르고 있었겠지만 수백 만년 동안 아주 서서히 진화해 온 인류의 유전자는 아직도 수렵과 채취의 시절의 수준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유전자, 즉 우리의 몸은 갑작스런 페스트와 같은 균의 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는 거다.

저자는 인류가 수렵과 채집의 생활을 청산하고 농경목축 생활로 전환하면서 많은 것이 변화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수렵과 채집을 통해 소규모 집단생활과 이동을 지속하던 선행인류들은 농경과 목축을 통해 군집을 이루게 된다. 또한, 정착을 하게 되면서 잉여작물의 생산이 가능해진다. 이는 탄수화물이 많은 곡물이 인간의 주요 영양공급원이 되면서 오늘날의 영양과다와 관련 있는 만성질병이 그 싹을 보이게 되는 계기이기도 하다.

질병의 탄생을 진단하고 있는 1부에서 저자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겸상적혈구빈혈증, 낭포성섬유화증, 페닐케톤요증, 혈우병 등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부모가 결함이 있는 유전자'를 자식에게 물려주어서 발병할 수 있는 확률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세포 내의 유전자 수가 3만개에 이르고 이 유전자를 이루는 유전자 코드의 수는 30억개에 이른다고 한다. 그 많은 유전자 코드 중에 유전자 변이가 일어날 확률이 높긴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대부분은 유전자의 기능에는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유전으로 인한 발병확률이 높지 않은 이유라고 한다.

질병을 탄생시킨 8가지 환경요인

인류의 먹거리가 열매나 견과류 그리고 채소와 같은 식물류에서 군집과 정착생활을 하게 되면서 잡식성으로 바뀌게 되는데 이것이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저자가 질병의 원인으로 꼽는 것은 기후의 변화다.

2013년 들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400ppm을 넘어섰다고 하는데, 1958년 찰스킬링(Charles Keeling)이라는 사람이 하와이에서 처음 이산화탄소를 측정했을 때 318ppm이었다고 하는데 불과 50여년 만에 80ppm이상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는 지구 대기의 평균기온을 상승시키고, 이러한 온도변화는 감영성 질환을 야기하며, 이렇게 변화된 환경에 대한 부적응은 어떤 질병을 유발할 지 아무도 모른다.

16세기 유럽의 식민지 확장은 태평양 섬의 원주민들의 생활양식을 바꾸어 놓게 된다. 근육질의 원주민들은 현대문명의 산물인 쌀, 밀, 설탕, 통조림, 음료수 등의 공격을 받아 비만이라는 재앙을 맞이했다.
▲ 폴리네시아 원주민 16세기 유럽의 식민지 확장은 태평양 섬의 원주민들의 생활양식을 바꾸어 놓게 된다. 근육질의 원주민들은 현대문명의 산물인 쌀, 밀, 설탕, 통조림, 음료수 등의 공격을 받아 비만이라는 재앙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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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요인으로는 햇빛이다. 비타민 D를 공급받는 좋은 방법이 자외선에 노출되는 것이라고 하는데, 피부암 발생을 염려하면서 햇빛을 피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설명에 관심이 간다. 비타민 D의 부족은 유방암이나 대장암의 발생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하니 말이다.

이어지는 저자의 해박한 문명과 의료지식을 이용한 설명은 흥미롭고 이해하기도 쉽다. 오래 달리기나 걷기 등을 통해 유전자가 기억하는 수렵 채집 시절의 상태로 몸을 회복시키면 건강해질 수 있다는 설명에는 '꾸준한 실천이 어려워 힘들겠구나' 하다가도, 곡물이나 열매를 저장하면서 발생한 술의 유래를 설명하며 적당량의 술 섭취가 건강에 좋을 수 있다는 이야기에 이르면 인간사의 희망을 보게 된다. 다만 우리 아시아인들의 간에는 알데히드 분해효소가 많지 않아 과음이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설명이 덧붙여지기는 하지만 말이다. 신석기 시대 유물 중에 맥주잔이 있다 사실도 처음 알았다.

담배는 약 7천년 전 아메리카대륙에서 본격적으로 자라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불을 사용하던 인류의 조상들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우리 유전자는 연기에 감흥을 한다고 한다.

16세기 니콜라스 모나르데스(Nicolas Monardes)란 의사는 담배가 치통, 기생충, 입 냄새, 암 등에 이르기까지 20여가지 질병에 치료효과가 있다는 주장을 했다고 하는데 어처구니없게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이 유럽의 의료계에서 오랫동안 인정되었다고 한다.

폐암의 85퍼센트는 흡연 때문에 발생한다. 구강암, 신장암, 방광암, 위암, 자궁경부암, 백혈병 등도 흡연으로 인해 발병 위험도가 높아진다.
▲ 담배 피우는 사람들 폐암의 85퍼센트는 흡연 때문에 발생한다. 구강암, 신장암, 방광암, 위암, 자궁경부암, 백혈병 등도 흡연으로 인해 발병 위험도가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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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연기 속에는 4천여 개에 달하는 화학물질이 들어 있는데 이 중 발암물질로 분류되어 있는 것만해도 80여 종에 이른다고 한다. 현재 WHO 추산 흡연이 매년 5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다고 하는데 2020년이 되면 사망자 수는 1천만명이 된다고 한다. 알려진 데로 흡연은 폐암 외에도 구강암, 신장암, 방광암, 위암, 자궁경부암 등의 원인 된다고 하는데, 최근 흡연의 가장 큰 폐해로 지목하고 것은 '의존성'이라고 한다. 마약이나 게임에 중독되는 것의 가장 큰 폐해 역시 '의존성'인 것과 마찬가지 개념이다."

매년 2천개의 새로운 화학물질이 만들어진다

산업혁명, 농업혁명, 그리고 화석연료의 무분별한 사용 등은 과학과 기술발전의 원인과 결과가 되면서 특히, 화학산업의 비약적 발전을 보게 된다. 20세기 초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프리츠 하버(Fritz Haber)는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획기적인 장치를 고안했다고 한다.

이는 질소비료의 탄생으로 이어져 농업생산성을 증대시키기도 하지만, 이 암모니아는 폭약제조에도 사용되어 1차 세계대전 당시 사람을 죽이는 무기로도 사용된다. 그는 인류의 복지와 파괴에 동시에 공헌한 과학자가 되었다.

1775년 영국의 의사였던 퍼시벌 포트가 굴뚝 청소를 하는 어린 노동자들에게서 음낭암이 많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검댕에는 상당히 많은 발암물질이 들어있다고 한다.
▲ 18세기 산업혁명 시절 굴뚝 청소를 해야 했던 어린이 1775년 영국의 의사였던 퍼시벌 포트가 굴뚝 청소를 하는 어린 노동자들에게서 음낭암이 많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검댕에는 상당히 많은 발암물질이 들어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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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지정한 문명이 만든 질병 8가지는 전염병, 비만, 당뇨, 심장질환, 고혈압, 알레르기, 암, 우울증 등이다. 각각의 질병의 문명사적 유래와 원인 그리고 대책까지 친절하면서도 자세한 설명을 접하고 나면 질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무지에서 다소간은 벗어날 수 있다. 저자가 들려주는 지금으로부터 천 백여 년 전 이스터 섬의 비극적 운명을 대하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에 의문을 가져보자.

"폴리네시아인인 라파누이족은 서기 900년경에 이스터 섬에 정착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들은 큰 얼굴 형상의 모아이 석상을 세우기 시작했고 이 석상을 옮기기 위해 나무를 베어서 운반용 굴림대로 사용했다. 산림은 황폐화되었고 물고기를 잡는 데 쓸 카누마저 더 이상 만들 수 없게 되었다. 생활조건 또한 급속도로 나빠지면서 주민 간에 갈등과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고 서로 잡아먹는 일까지 벌어져 인구도 급감하기 시작했다. 1722년 네덜란드 인들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한세기 전에 1만 5천 명에 달하던 인구가 2천명에 불과하게 되었다."

'폐쇄적인 생태계인 지구환경의 자원을 현재와 같이 제한 없이 쓰게 되면 지구는 문명의 잔재만남기고 사라진 이스터 섬의 운명을 닮게 될지도 모른다'라는 저자의 생각에 큰 울림으로 공감하게 되는 슬픈 이야기다.


질병의 탄생 - 우리는 왜, 어떻게 질병에 걸리는가

홍윤철 지음, 사이(2014)


태그:#질병, #인류, #환경, #산업혁명, #농업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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