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철도노조가 파업을 철회했다. 국회에 철도발전소위원회를 구성하는 조건이다. 그럼에도 정부의 입장은 완고하다. 수서발 KTX법인 설립은 '철도개혁방안'이라는 자세를 굽히지 않고 있다.

반면 야당은 '민영화 방지' 조항을 법에 명시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철도노조는 정부의 신설법인 면허발급 자체를 부정한다. 일단 한고비를 넘겼을 뿐, 더욱더 위험한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가장 저렴한 해법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경쟁을 통한 철도개혁'은 선과 악이 배제된 정책의 범주이지만, 정책입안과 집행과정이 '민주주의의 결정원리'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독선적 정책결정

정부는 월권을 넘어 독재에 가까운 선택을 했다. 선거에서 승리한 정부여당은 정책결정권이 아니라 정책주도권을 가진다. 과거의 선택이 현재를 반영할 수 없기 때문에, 시대성을 감안하여 정책을 주도할 권한만 부여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정부는 자신의 정책을 관철하기 위해 여론을 형성하기도 하고(정책선전과 홍보), 여론을 수렴하여 정책을 결정하기도 하며(공청회와 토론회), 야당과 타협을 통해 현재의 대표성을 반영하는 정책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야당과 대화와 타협). '선거승리가 곧 정책결정권'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는 통로는 영영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정책주도권이 아니라, 정책결정권을 행사했다. 먼저 '경쟁체제를 통한 철도개혁'이라는 정부정책에 대한 대국민 홍보나 설명회가 거의 없었다. 철도노조가 파업을 선택하자, 파업의 부당성과 불법성만 집중 부각시켰을 뿐이다. 다음으로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 즉 공청회나 토론회도 열리지 않았다.

"수서발 KTX 문제는 정부, 코레일, 철도전문가들이 수차례 논의한 끝에 내놓은 방안이다"라면서 자신을 합리화시키고 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야당을 설득하지 못했고, 야당과 타협에 이르지도 못했다. 민주당은 정부가 코레일의 자회사 설립을 추진하자, '민영화 수순'이라고 판단하고 시종일관 반대했다.

다원주의 배제

정부는 민주주의의 권력분점 원칙, 즉 다원주의를 배제했다. 다원주의는 국가가 모든 권력을 보유하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 다른 직능단체와 공유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정부가 정책을 결정하기 전에, 다양한 이익집단과 시민단체의 의견을 반영한다는 의미이다. 반대로 다양한 이익집단과 시민단체의 의견에 부합되는 정책을 입안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권력은 국가에 집중되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 국가 내에 존재하는 모든 조직과 분점하고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물론 다원주의의 조건은 언론-집회-출판-결사의 자유, 그리고 조직설립과 활동의 자유이다.

그러나 정부는 다원주의를 철저하게 무시하였다. 처음부터 수서발 KTX법인 설립을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고 못 박았다. 그리고 이 문제를 철도노조와 대화주제로 삼는 것조차 거부했다. 파업을 이익집단의 범주를 벗어난 불법으로 간주하고 강제진압에만 몰두하였을 뿐이다.

노조는 이익집단이기 때문에, 임금인상 및 복리후생과 같은 구성원의 이익을 위한 운동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서발 KTX자회사 설립반대 같은 사업방향, 즉 경영권에 반대하는 파업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회사가 알짜노선을 가져가면 코레일의 경영이 악화되는 것은 뻔하고, 코레일 직원들이 심각한 근로조건 변화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경쟁이 아니라 강제를 선택

정부는 민주적 경쟁이 아니라, 통제를 통한 강제구조변경을 선택했다. 경쟁은 행위자가 어떤 특정한 목적을 두고 서로 앞서거나 이기려고 하는 다툼을 말한다. 경쟁에서 쟁점영역의 크기는 변화한다. 한 행위자가 어떤 목적을 달성하거나 어떤 가치를 증진시키려고 시도할 수 있지만, 이러한 노력이 다른 행위자가 갖게 될 가치를 감소시키거나 가치분배에서 완전히 배제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한 행위자의 성공이 다른 행위자의 완전한 패배가 아니라는 것이다. 본래의 경쟁은 모두가 win-win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는 제도인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경쟁을 위장한 강제를 선택했다. 먼저 경쟁에는 동등한 지위를 가진 두 행위자가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수서발 KTX법인은 코레일의 자회사 신분에 불과하기 때문에 경쟁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다음으로 신설법인이 KTX라는 알짜를 가져가고, 나머지 적자노선은 코레일에 남기 때문에 경쟁체계가 될 수 없다.

코레일 예측을 인용해 보면 신설법인의 영업이익은 개통 첫해인 2016년 82억 원, 2017년 336억 원, 2018년 366억 원이다. 마지막으로 신설법인이 이익을 먹고 설거지는 코레일이 떠안는 구조이기 때문에 경쟁으로 볼 수 없다. 수서발 KTX주식회사는 역무-승무-정비-유지보수-사고복구 등 대부분 업무를 코레일에 위탁하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여야와 코레일 노조의 합의서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정부는 수서발 KTX주식회사를 운영할 준비를 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운용계획 수립과 인력 선발에 나서고 있으며, 기획재정부도 철도 태스크포스(TF) 구성과 운영지원을 계획하고 있다. 철도발전소위원회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논의하자는 목적으로 만들었는데 말이다.  

국민의 주권기관인 국회마저 부정하는 행태이다. 분명 수서발 KTX주식회사 설립은 민주주의의 결정원리를 벗어났다. 민주주의의 권력분점형태인 다원주의를 무시했다. 경쟁이 아니라 통제를 통한 강제구조변경에 불과하다. 이제 국회가 정부를 제어해야 할 시점이다. 철도발전소위원회에서 처음부터 차근차근 과정을 밟아가기를 기대해본다.


태그:#철도발전소위원회, #수서발KTX법인, #철도파업, #철도민영화, #철도개혁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경남대학교 대학원 졸업(정치학박사) 전,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현, [비영리민간단체] 나시민 상임대표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