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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섬서성 한성시 지천진 사마천 사당에 서있는 현판 사필소세(史筆昭世:역사의 붓으로 세상을 밝힌다는 뜻)
▲ 사필소세(史筆昭世) 중국 섬서성 한성시 지천진 사마천 사당에 서있는 현판 사필소세(史筆昭世:역사의 붓으로 세상을 밝힌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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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이 <사기>를 집필한 것이 지금부터 약 2100여 년 전의 일이다. 사마천의 출생에 대한 논란이 많지만 <난세에 답하다>에서 김영수 교수는 그의 출생 연도를 기원전 145년(경제 중원 5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사마천이 태어난 해는 <사기>나 후한의 반고(32〜92)가 펴낸 <한서>의 사마천 전에도 나타나지 않으며, 그가 죽은 해도 불분명해 사마천의 출생연도는 기원전 135년 설과 145년 설이 공존해 왔었다.

<사기>는 본기(本紀) 12편과 표(表) 10편, 서(書) 8편, 세가(世家) 30편, 열전(列傳) 70편 등 총 130편으로 구성된 방대한 분량의 책이다.

사기의 본기는 역사를 움직이는 근본, 즉 왕조와 제왕들에 관한 역사기록으로, 오제본기(五帝本紀)부터 효무본기(孝武本紀)까지의 12편으로 이루어졌다. 이중 오제본기는 황제(黃帝)를 비롯한 전설상의 인물 다섯 제왕의 기록으로 본편 중의 황제의 기록에는 우리 민족의 조상이라는 설이 있는 치우(蚩尤)와의 전쟁이야기도 들어있다.

표(表)는 연표(年表)다. 본기에 나오는 제왕과 제후들의 흥망을 기록하여 다양한 역사적 사실을 상호 연관시켜 열람하기 좋게 역어놓았다.

서(書)는 제도사(制度史)에 대한 기록이다. 인간의 사회와 문화에 관련된 각종 제도사로서, 예(禮)·악(樂)·율(律)·역서(歷書)와, 천관서(天官書)·봉선서(封禪書)·하거서(河渠書)·평준서(平準書) 등 8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당시 중국천하의 법도·규범·의식, 예악제도(禮樂制度), 악률(樂律), 성상(星象), 기상(氣象)과 군사(軍事), 역법(曆法), 별의 운행을 살펴 하늘의 뜻을 읽는 점성술 및 천문학, 하늘에 제사를 지낸 봉(封)과 선(禪)의 기록, 치수와 관개사업의 기록, 재정 및 경제발전기록까지 일목요연하게 서술하고 있다.

세가(世家)는 제왕의 창업과 수성에 공로가 높은 역대 제후들에 대한 기록이다. 춘추오패 등 유력 제후국과 유후 장량, 승상 진평 등 한왕조 창건의 공신들이 수록되어 있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사실은 사마천이 제후가 아닌 공자나 진승을 세가 편에 넣어 <공자세가>와 <진승세가>를 작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열전(列傳)은 사기 130편 중 절반을 넘는 70편의 분량으로 당시 중국천하 주요 인물들의 개인 전기에 대한 기록이다. 열전은 의로운 사람, 탁월한 사람, 기회를 포착하고 대성한 사람들의 행적을 열거해 후세에 전달한 것이다. 열전에는 사마천의 포폄과 애증, 그리고 찬양과 비판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 사마천은 당시에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하찮은 인물 군상들을 이 열전에 기록하고 있다.

중국 섬서성 한성시 지천진 사마천 사당에 있는 사마천의 무덤, 다섯그루의 측백나무가 사마천의 넋을 위로하듯 서있다.
▲ 사마천의 무덤 중국 섬서성 한성시 지천진 사마천 사당에 있는 사마천의 무덤, 다섯그루의 측백나무가 사마천의 넋을 위로하듯 서있다.
ⓒ 위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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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는 총 130권, 52만6500자로 이루어져 있다. 사마천은 이 책의 원 제목을 '태사공서(太史公書)'라고 지었는데, 지금 우리가 부르고 있는 '사기(史記)'는 후세에 붙여진 이름이다.

2007년 13억 중국인이 열광하는 북경TV <새롭게 읽는 사마천의 사기>를 강의했던 한자오치(韓兆琦) 교수는 오늘의 관점에서 보는 <사기>의 사상적 의미를 다음 다섯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 진보적 민족관이다. 사마천은 중국과 주변 민족들의 원류에 대해 전국시대 이후 제기된 여러 주장을 수집하고 정리하여 전국시대의 중국과 그 주변의 국가나 민족은 모두 황제의 자손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이런 기록은 향후 2천년 동안 중국은 다민족 국가이면서도 우애로운 대가족 국가를 이루어 공생하는데 공헌했다.

둘째, 강렬한 민주주의적 성격과 비판정신이다. 사마천은 그 당시 정치 및 사회 현상에 대해 준엄한 비판을 가하고 있으며 권력자에게 아부하지 않고 있다. 사마천은 민주적인 군주와 관리를 칭송함과 동시에 독재자의 폭행을 비판하고 있다. 특히 한경제와 한무제를 대담하게 비판하고 있다. 사마천은 하찮은 인물이나 인생에 최대한 의미를 발굴하여 찬미하고 있는데, 유협, 골계, 의사, 식객 및 좀도둑 등에게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 진보적 경제사상이다. 사마천은 생활을 개선하거나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하였고, 경제는 국력의 기초라고 생각하였다.

넷째, <사기> 전체를 관통하는 인생관, 생사관, 가치관이다. 사마천이 <사기>에서 칭송한 인물은 거의 대부분 진취적인 기상으로 업적을 이룬 영웅호걸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이상과 포부를 가지고 목표를 향해 매진했고, 신념이나 원칙을 위해 목숨도 초개와 같이 버렸다. 그들은 갖은 고난을 무릅쓰고 목표를 이룰 때까지 끈질기게 노력했다. 사마천이 궁형을 당하고서도 <사기> 저술을 포기하지 않은 것처럼. 사마천은 이런 인간들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다섯째, <사기>에 기록된 인물과 사건은 매우 철학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기를 읽으면서 한신의 용병술이나 유방의 용인술처럼 삶의 지혜가 생긴다. 노중련의 정의감이나 인상여의 고매함을 접하면 그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 용솟음친다. 또는 여희나 조고, 강충과 같은 인간들을 접하면 인간 중에 저질이 있음을 깨닫고 그러한 음모나 술수를 경험하게 된다. 물론 이사처럼개인적인 이익만을 고려해 원칙을 저버린 인물을 접하면, 그런 행동이 결국 본인뿐 아니라 집안이나 나라 전체까지 몰락시키는 것을 보면서 득실에 연연해 원칙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한자오치 교수의 말처럼 <사기>에는 수많은 인간 군상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우리에게 교훈도 주고, 희망도 준다. <사기>를 읽으면서 이들의 활약상을 통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인생의 방향을 설정해 보자.

현재 중국 섬서성 한성시 지천진에 사마천의 사당과 무덤이 있다. 올여름 가족들을 데리고 사마천의 사당과 무덤을 찾았다. 사당에 들어서면 사마천의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글귀인 '사필소세(史筆昭世: 역사의 붓으로 세상을 밝힌다)'라는 현판이 보이고, 조금 더 걸어 언덕을 오르면 사마천의 무덤이 있다. 무덤 위에는 다섯 그루의 측백나무가 활기차게 뻗어 자라고 있었다. 중국이 나은 최초의 위대한 역사가 사마천이 잠든 사당과 무덤 앞에 서면 멀리 황하의 흐름이 보인다. 사마천도 여기서 황하의 물결들처럼 도도한 역사의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태그:#사마천,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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