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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경제민주화 입법 후속조치를 내놨다. 불공정행위 기업에 대한 과징금 감경 비율도 줄이겠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1일 공정거래법, 하도급법과 관련된 고시 및 지침 개정 방침을 발표했다. 상반기에 국회를 통과한 경제민주화 법안들을 경제현실에 맞게 작동시킨다는 취지다. 그러나 부당 하도급 행위에 대한 결정 등 일부 분야 내용이 개정된 법 내용에 비해 다소 소극적이라 오히려 입법 취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납품업체들과 '충분한 협의' 있으면 법 위반 아냐"

국회는 지난 4월 징벌적 손해배상을 골자로 한 하도급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법이 시행되는 내년 2월부터는 원사업체가 하도급 업체의 기술을 유용하거나 납품단가를 부당하게 인하하면 피해액의 3배 범위 내에서 징벌적 배상을 물릴 수 있다. 발주 취소나 부당 반품에 의한 피해에도 같은 기준이 적용된다.

공정위는 이날 이와 관련해 구체적인 법 위반 사례를 제시했다. 사실상 향후 어느 정도의 행위를 하도급법 위반으로 판단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밝힌 것이다.

공정위가 밝힌 부당한 '단가 후려치기'의 유력한 기준은 원사업체의 경영상 형편이다. 원사업자가 단가 인하를 실시했다 하더라도 경영적자 등 경영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고 인하 과정에서 해당 납품업체들과 충분하고 실질적인 협의와 부담 분담이 있으면 위법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원사업체의 수출 경쟁력 저하 여부도 하도급법을 피해갈 수 있는 단서가 된다. 공정위는 "다수의 제품을 생산하는 대기업이 특정 제품의 글로벌 가격경쟁이 격화되어 판매가격 인하 없이는 수출경쟁력 유지가 불가능하여 당해 제품에 부속되는 부품들에 한해 단가를 인하하는 행위는 하도급법 위반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는 내용의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재석 239명에 찬성 236명, 반대 0명, 기권 3명으로 가결되고 있다.
▲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법안' 본회의 통과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는 내용의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재석 239명에 찬성 236명, 반대 0명, 기권 3명으로 가결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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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준으로 위법 판단하면 다 법망 빠져나가"

원사업자-하청업체 간의 '충분한 협의'가 있었는지도 주요한 기준 중 하나다. 대기업이 판매 부진을 이유로 단가를 인하하더라도 납품업체와 충분하고 실질적인 협의, 교섭이 있으면 위법에 해당하지 않는다.

공정위는 "이 과정에서 합리적인 부담 분담이 있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 기준은 부당 위탁취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대기업이 다른 사업자의 신형모델 출시로 제품 판매를 중단하며 하청기업에 위탁한 물량을 취소할 때에도 '충분한 협의'와 보상이 있으면 하도급법 위반이 아니다.

반면 경영적자가 있더라도 적자 원인이 아닌 제품의 납품업체에 대해 단가를 인하하는 행위는 위법에 해당된다. 임금인상, 파업 등에 의한 비용을 납품업체에게 전가하기 위한 단가 인하도 법 위반 대상이다.

문제는 공정위가 제시한 하도급법 위반 제외 조건들이 상당히 모호하다는 점이다. 국회 정무위원회의 민병두 민주당 의원은 "'경영상 불가피한 이유', '수출 경쟁력' 등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이라고 지적했다.

하도급법 개정안 자체가 대기업이 부당 단가인하로 중소기업의 생존 기반을 위협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이렇게 '구멍'을 마련해주면 법을 만들며 의도한 억지력이 제한된다는 얘기다.

민 의원은 "이런 기준으로 위법 여부를 판단하면 대부분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다"면서 "공정위가 국회 입법 취지를 무력화시킨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원사업자-하청업체 간의 '갑을 관계'에서 실질적으로 '공정한 협의'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하도급법을 만든 것"이라면서 "보다 구체적이고 엄격한 요건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부당행위 기업에 과징금 감경 비율, 현재 절반 수준으로

공정위는 이날 과징금 부과기준 고시 개정안도 함께 공개했다. 감경 사유가 많아 최종적으로 불공정행위를 한 기업이 부담하는 과징금 수준이 낮아 법 위반 억지력이 떨어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다.

최근 3년간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한 부당공동행위 사건들을 보면 최종 과징금은 최초 산정 시보다 평균 60% 정도 깎여서 부과됐다. 김재신 공정위 경쟁정책과장은 "과징금 실질 부과수준이 상향되도록  감경사유와 비율을 대폭 정비했다"고 설명했다.

우선 가중대상이 되는 반복 법 위반 사업자의 범위가 확대됐다. 앞으로는 3년 동안 불공정행위로 2회 이상 적발되거나 3점 이상의 벌점을 받는 기업은 가중처벌을 받게 된다.

과징금 감경사유도 9개에서 6개로 줄였다.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체들만 운용할 수 있어 '대기업 면죄부' 비판을 샀던 자율준수프로그램(CP) 우수등급에 대한 감경도 폐지됐다.

김 과장은 "개정안을 과거 3년 간 처리한 담합 사건에 적용한 결과 과징금 감경비율이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낮아지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늦어도 내년 3월 이내에 시행될 예정이다.

한편 공정위는 남양유업 사태로 촉발된 본사-대리점간 불공정거래관행 근절을 위한 제도적 보완방안도 내놨다. 관련된 주요 불공정행위 유형으로는 주문하지 않은 상품을 일방적으로 공급하거나 할당 시켜 판매하는 행태나 판촉행사 비용을 전가하는 행위가 거론됐다.

또한 계약서에 부당한 거래조건을 추가하거나 대리점의 주문내역을 본사가 임의대로 변조하는 행위 등도 불법에 해당한다고 못박았다. 해당 내용이 담긴 특정 재판매거래 고시는 내년 1/4분기에 제정될 예정이다.


태그:#공정거래위원회, #과징금, #하도급법, #단가인하, #단가 후려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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