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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아이를 데리고 영유아건강검진을 받으러 갑니다. 검진을 받고 나니 병원에서는 5살 아이에게 적절히 해주어야 할 육아 지침서를 줍니다. 집으로 돌아와 읽어봅니다. 읽다가 "어! 병원에서 잘못 줬나?" 하며 다시 확인합니다. 분명 5살 부모용 안내책자가 맞습니다. 이상합니다. 학교에 가서 다른 친구들에게 뒤떨어지지 않고 잘 적응하려면 어떤 준비를 미리 해야 하는지에 대한 안내가 나와 있습니다.

우리 딸은 앞으로 학교를 가려면 2년도 훨씬 더 남았는걸요. 그 글을 읽고 나니 우리 아이가 남들보다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무얼해야 하나 조급하고 불안해지더군요. 게다가 진짜로 내년에 학교를 가야 하는 우리 7살 아들은 어쩌나요? 우리 아들은 아직 한글도 못 읽는걸요. 요즘 어린이집 7살 아이를 둔 엄마들은 모이기만 하면 학교 걱정, 아이 걱정입니다. 우리 아이가 학교 가서 잘 적응하고 잘 다닐 수 있을까 걱정이 태산입니다.

얼마 전 주말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들딸이 툭탁툭탁 다툽니다. 아빠는 오랜 운전으로 지쳐 있고 엄마도 너무 피곤해서 아이들이 다투는 소리가 너무나 거슬리고 신경쓰입니다. 집으로 돌아와 아빠가 아이들에게 잠깐 앉아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차 안에서 다툰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아들이 몸은 아빠를 향해 있지만 눈으로는 딱지를 보고 손은 딱지를 만지작거리네요. 아빠는 딱지 만지작거리지 말라고 했는데 아들은 계속 만졌고 아빠가 화가 나서 벌떡 일어나 뒤돌아섰습니다.

그런데도 아들은 또 딱지를 바닥에 내리쳤고 아빠는 결국 치미는 화를 가라앉히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 아이가 하는 행동을 보면서 저는 아연실색했습니다. 저 멀리서부터 스멀스멀 다가오는 불안감과 두려움에 아이를 붙잡고 이야기를 했는데 마구 떠들어대고 나서 정신을 차리니 아차했습니다. 아이에게 하면 안 되는 이야기를 해버렸네요. 그래도 시작은 괜찮았습니다.

"아들아, 아빠 오늘 운전 오래 해서 정말 피곤했고 엄마도 마찬가지고. 그렇게 피곤할때 너희들이 다투면 엄마 아빠를 정말 많이 힘들거든."

그런데 뒤이어 한 말이 이렇습니다.

"그런데 아빠가 너한테 얘기하려고 했는데 너 어떻게 했어? 계속 딱지 만지작거리고 딱지 치고 그랬지? 만약 학교에서 선생님이 너한테 뭔가 잘못했다고 얘기하는데 안 듣고 그렇게 딴짓하면 선생님한테 너 맞어. 그것도 반 친구들 다 있는 데서 말이야."

'교사 엄마'의 말실수...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이가 이야기를 듣다가 깜짝 놀라 날 쳐다봅니다. 잠깐이었지만 아이 눈빛이 두려움으로 일렁입니다. 그 순간 제정신으로 돌아왔습니다.

'앗! 하면 안 되는 얘기를 했구나.'

전 정말로 우리 아이가 가보지 않은 학교를 생각하면서 "와~ 그곳에 가면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 펼쳐질 거야. 정말 기대되고 설레~"라고 느끼길 바랍니다. MBC 수목드라마 <여왕의 교실>의 한 장면.
 전 정말로 우리 아이가 가보지 않은 학교를 생각하면서 "와~ 그곳에 가면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 펼쳐질 거야. 정말 기대되고 설레~"라고 느끼길 바랍니다. MBC 수목드라마 <여왕의 교실>의 한 장면.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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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에서 알게 된 엄마를 만나 아이에게 말실수를 했다며 주말에 있었던 이야기를 늘어놨습니다. 그 엄마는 자기도 요즘은 아이가 하는 말과 행동을 지켜보면서 '학교는 저렇게 하면 안 받아줄 텐데 어쩌나' 싶을 때가 많다구요. '어린이집이나 집에서는 웬만한 일은 이해해주고 넘어가지만 학교는 그렇지 않을 텐데' 생각하면 걱정이 많이 된다면서요. 아이 학교 갈 날 앞두고 나만 불안해하는 게 아니구나 싶어 마음이 놓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선생님이 널 때려!"라는 말, 게다가 학교에서 일하는 엄마의 말을 듣고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요?

전 정말로 우리 아이가 가보지 않은 학교를 생각하면서 "와~ 그곳에 가면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 펼쳐질 거야. 정말 기대되고 설레~"라고 느끼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가 학교를 다니면 아침마다 "엄마, 나 학교 빨리 가야 돼" 하며 눈을 반짝 뜨고 일어나길 바랍니다. 방학이 다가오면 "아… 방학 하면 선생님 친구들 얼굴 못 볼 텐데. 그럼 심심하고 재미없잖아" 이런 말을 하길 바랍니다. 저녁에 집에 오면 학교에서 친구들과 했던 재미난 일을 조잘조잘 떠들어대길 바라고, 수업시간에 호기심을 가졌던 내용에 대해 집에 와서 책을 뒤적이며 "엄마, 그런데 그건 왜 그래?" 하며 물어보길 바랍니다.

가끔 친구들과 다투거나 선생님 때문에 속상한 일도 있겠지만 그럴 때면 이러쿵저러쿵 투덜거리다가도 "내일 가서 다시 얘기해 봐야겠어. 어쩌면 친구가 그렇게 행동한 데는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었을는지도 모르니까. 엄마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라고 말하며 편하게 잠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세상에는 재미있고 신기한 일로 가득해. 그리고 사는 건 참 재미있는 거야. 앞으로 또 뭐 재미난 걸 배우게 될까?" 하며 학교를 통해 자기 안에 있는 아름다움을 찾고 세상이 가진 아름다움을 이해하길 바랍니다. 정말 진심으로 바랍니다.

교사로 만나온 학부모들... 그들의 불안함을 다시 헤아립니다

하지만 잘 알고 있습니다. 초등 6년 중고등 6년 대학 4년이라는 엄청난 시간을 학교를 다녔고 10년이 넘게 학교에서 일하면서 나는 학교를 떠올리면 뭔가를 꿈꾸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가득 차게 된다는 것을요. 우리 아이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일을 보면서 선생님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해라. 넌 어른한테 버릇이 없구나"란 말을 하며 우리 아이를 '매사 따지기 좋아하고 고분고분하지 않은 아이'라고 생각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안 하고 싶습니다.

우리 아이가 누구에게 물려받는 낡은 옷을 입고 상표가 없는 낡은 운동화를 신고 늘 깔끔하게 하고 다니지는 않아도, 그걸로 놀림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안 하고 싶습니다. 엄마 도움 없이는 할 수 없는 숙제와 학습 준비물 때문에 아이가 바깥일 하는 엄마를 원망하고 아침에 학교 갈 때마다 동동거리는 모습을 보며 살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안 하고 싶습니다. 아이가 시험 결과를 보면서 마음 속으로라도 '난 잘하는 게 없는 아이인가봐. 난 정말 바보인가봐"라는 생각을 하면 어쩌나 걱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가장 두려운 것은, 한동안 말수도 줄어들고 매사 짜증을 내던 아이가 결국 나에게 "엄마. 친구들은 내가 싫은가봐. 학교 다니기 싫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무 걱정이 많은 걸까요. 아니면 너무 많은 것들을 봐왔기 때문일까요. 아이에게 한 "너 그렇게 하면 선생님한테 맞어"라는 말이 어디로부터 출발해서 터져나온 말인지 글을 쓰다보니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공교육이 어디로 가야 하나요', '참교육은 무엇인가요' 수많은 고민과 담론이 오고갈 때 나도 이 말 저 말 보태며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학교 갈 날을 앞둔 지금에서야 공교육에 대해서, 참교육에 대해서 절박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부모로서, 교사로서 말입니다.

그동안 내가 만나왔던 수많은 학부모들이 내게 보여줬던 눈빛, 눈물과 여러 가지 사연들이 다시 내게로 되돌아옵니다. 그들이 느끼는 절박함과 안타까움과 두려움과 불안함을 난 얼마나 이해했을까요?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낼 날을 앞둔 예비 학부모가 되니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사인천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예비학부모, #공교육, #첫아이 학교 보내기, #아이 키우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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