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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탈핵
ⓒ 한티재
<한국 탈핵>은 '탈핵 전도사'인 동국대 의대 김익중 교수가 지난 2년여 동안 탈핵에 대해 강의한 기록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이다. 그는 탈핵을 위한 전국 교수모임과 의료인 모임을 조직하는 데 주도적인 구실을 해왔다. 추천사를 쓴 김종철 선생은 "김익중 교수는, 내가 아는 한,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헌신적으로 탈핵운동에 몸을 바치고 있는 몇 안 되는 양심적인 전문가·활동가 중 대표적인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저자에 따르면, 핵 사고는 세 가지 조건에 따라 일어난다.

핵발전소 개수가 많다. 원자력 선진국이다. 원자력 수출국이다.

그동안 일어난 세 번의 대형 핵사고가 이들 조건이 충족된 상태에서 일어났다. 1979년의 미국 스리마일, 1986년 소련의 체르노빌,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 등. 한국은? 이 세 가지 조건을 아주 '훌륭하게' 충족한다. 저자가 탈핵 운동에 투신하여 열정적으로 활동하게 된 배경이다.

약 두 시간 동안 진행되는 내 탈핵강의가 말하려는 것은 딱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한국은 탈핵을 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14쪽)

저자 자신의 소개에 따르면, 이 책은 후쿠시마 핵사고, 핵사고의 확률, 한국의 위험 정도, 방사능의 건강영향, 핵폐기물, 핵재처리, 원자력의 대안 등 원자력과 관련된 이슈 전반을 다룬다. 어려운 학술적 내용보다 핵발전소에 관한 전체적인 관점을 정리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그중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몇 가지를 살펴보자.

4년. 원자로에 들어간 핵연료가 밤낮없이 물을 끓이는 시간이다. 10년. 4년 동안 물을 끓인 사용후 핵연료(고준위 방사성폐기물)를 찬물에 넣어 식혀야 하는 기간이다. 10만 년~100만 년. 고준위핵폐기물이 안전하게 보관되어야 하는 세월이다. 그런데 인류는 고준위핵폐기장 건설 기술을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 핀란드가 세계 최초로 고준위핵폐기장을 건설하고 있다고 하지만, 10만 년을 지탱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차이나 신드롬(China Syndrome)'이라는 말이 있다. 후쿠시마 핵사고에서 핵연료가 녹는 노심용융(멜트다운, melt down)이 일어났다. 녹아버린 핵연료는 지구상에 그것을 담을 그릇이 없다. 흘러내릴 수밖에 없다. 이를 '멜트스루(melt through)'라고 한다. 이 단어에는 우리말 번역어도 없다. 차이나 신드롬은 그렇게 녹아 흘러내리는 핵연료가 원자로 바닥의 콘크리트 바닥을 녹여가면서 더 아래쪽으로 파고 들어가는 현상을 말한다. 원래 이 말은 핵연료가 땅을 뚫고 지구 중심을 지나 미국 반대편인 중국으로 나온다는 농담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핵산업이 사양 산업이라고 단언한다. 가파르게 증가하던 세계 원전 개수가 지난 25년간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는 게 그 근거다. 그동안 선진국은 원전을 꾸준히 줄여왔고 개발도상국은 꾸준히 건설해 왔지만 전체적으로는 성장이 멈춘 산업이라는 것이다. 그런 추락세는 앞으로 더욱 가팔라질 것이라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잦은 원전부품 비리... 한국 원전이 더 위험한 이유

대한민국은 어떤가. 우리나라는 현재 원전 23기가 가동중이다. 운영 개수로는 미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에 이어 세계 5위다. 아주 높은 순위다. 더군다나 원전 밀집도는 좁은 땅덩어리로 인해 세계 1위에 '빛난다'. 저자의 계산에 따르면, 문제는 이렇게 많고 촘촘한 원전에서 5등급 이상의 심각한 핵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27퍼센트나 된다는 것. 우리나라는 현재 추가로 짓고 있는 5개의 원전과 신규부지가 결정된 삼척과 영덕의 원전 등을 합해 2014년까지 총 42개의 원전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한다. 27퍼센트의 확률이 늘어날 것은 뻔하다.

더 큰 문제는 가동중인 원전 중 30년 이상된 노후 원전이 두 개나 된다는 점이다. 저자에 따르면, 원전은 들어가는 부품 수가 200만~300만 개가 되는 기계일 뿐이다. 기계이니 고장은 피할 도리가 없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원전 고장 및 사고 횟수만도 670회나 된다고 한다.

그런데도 현재 만 34세인 고리 1호기는 2008년에 10년 수명 연장이 결정됐다. 2012년에 수명 30년을 채운 월성 1호기 역시 수명 연장 수순을 밟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후쿠시마에 총 10개의 원전이 일렬 횡대로 서 있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폭발사고가 일어난 것은 1~4호기뿐이었다. 모두 정확히 30세가 넘은 노후 원전들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후쿠시마 사고 이후 세계는 핵발전의 안전성을 심각하게 재고하게 됐다. 각국의 핵정책도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하지만 전체 원전 개수가 많아 핵사고 확률이 높은 한국과 미국, 프랑스, 캐나다 등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저자는 이들 나라가 낮은 경각심을 보여주고 있다고 비판한다. 한국에 대해서는 특히 더 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 네 개 나라 중에서도 한국을 가장 위험한 나라라고 판단하는데, 그 이유는 다른 나라에는 없는 또 다른 위험요인이 한국에는 만연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유난히 원전비리가 많다. 불량품, 중고품, 검증서 위조부품, 시험성적서 위조부품 등이 납품되었다. 한국수력원자력 전임 사장, 지식경제부 차관과 장관까지 비리에 연루되었다. 이렇게 고위관직에 있는 사람들까지 연루된 비리는 한국의 핵사고 확률을 특별하게 높이는 요인이라고 판단한다. (62~63쪽)

원자력은 싸고 안전하며 친환경적이라는 '신화'가 있다. 과연 그럴까. 원자력은 경제적이라는 '신화'를 보자. 정부 공식 데이터에 따르면 원자력의 발전단가는 39.12원이다. 석탄은 59.24원, 석유는 207.84원이다. 재생에너지 중에서는 수력이 73.69원으로 가장 싸고, 태양광이 660원으로 가장 비싸다. 그런데 이들 수치는 믿을 만한가.

저자는 믿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근거가 있다. 정부는 국회의원과 시민단체의 수차례 요청에도 불구하고 각 에너지원에 따른 발전단가의 계산 근거를 한 번도 제시한 적이 없었다. 원자력의 발전단가에서 사고 발생 위험 비용, 원전해체 및 환경복구 비용, 사용후핵연료 처분 비용과 같은 중요한 비용들이 빠져 있다(2011년 현대경제연구원 보고서 참조)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데이터에 의하면, 원전 발전단가는 꾸준히 상승해 태양광발전 비용보다 더 비싸졌다.

태양광 발전은 처음 설치할 때는 많은 돈이 들지만 연료비가 전혀 들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평균 발전단가는 낮아진다. 한편 원자력의 경우에는 시간이 갈수록 그 단가가 높아지는데, 그 요인은 처음에는 들지 않았던 비용들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중략) 한국의 경우에는 태양광이 핵발전보다 17배 더 비싼데, 미국에서는 오히려 태양광이 싸다고 보고되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81, 82쪽)

저자는 우리나라 정부나 원자력 산업계에서 말하는 '원자력 르네상스'가 그들만의 구호에 그쳤다고 말한다. 세계 발전시장의 현황 분석 결과, 태양광발전 성장은 1996년부터 2012년까지 매년 50퍼센트 이상 급성장세를 보인 반면에(2010년과 2011년에는 연간 100퍼센트 성장), 원자력발전 규모는 꾸준히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1996년의 태양광 대 원자력 발전 규모 대비(단위: MW)는 0 대 7030이었다. 그러던 것이 2012년에는 32000 대 2920으로 크게 역전되었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만의 '원자력 르네상스'에 휩싸여 있는 대한민국의 재생가능 발전량은 세계 꼴찌 수준이다. 입만 열면 에너지 해외의존도가 높다고 걱정하는 정부가 순수한 국산에너지인 태양광이나 풍력 에너지를 갖다 버리고 있다고도 비판한다. 거의 매일 비가 와서 여건이 불리한데도, 독일이 세계 1위의 태양광 발전국이라는 사실도 정부를 못 믿게 하는 대목이다. 저자는 그 모든 게 정부 에너지 정책에 미치는 원자력계(흔히 '원자력 마피아'로 비유된다)의 과도한 영향력 때문이라고 말한다.

재생가능 에너지 비중을 높여야 하는 이유

저자의 결론은 명확하다. 핵발전과 재생가능발전의 경제성을 비교하면 재생가능발전의 경제성이 훨씬 높다는 것. 그러므로 탈핵을 통해 재생가능 에너지 비중을 높이자는 것. 저자가 이 책에서 제안하는 '한국 탈핵'의 구체적인 대안도 이와 관련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전체 전기의 30퍼센트를 원자력으로 생산한다. 나머지 70퍼센트는 석탄 중심의 화력으로 얻는다. 저자는 원자력으로 만들어지는 30퍼센트의 전기를,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는 태양광발전으로 대체하려면 전 국토의 2퍼센트 정도만 태양광 패널로 덮으면 된다고 말한다. 그동안 정부부처나 공무원들은 태양광발전을 하기에는 땅이 좁아 전 국토를 패널로 세 번이나 덮어야 한다거나, 태양광이 적고 발전단가도 비싸 불리하다고 말해왔다. 저자는 이런 말들을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일축한다.

우리나라의 전기 생산에서 재생가능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1년에 1.9퍼센트에 불과했다. 하지만 핵발전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고 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미국, 프랑스, 캐나다 등과 같은 고질적인 찬핵국가 중에서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신규 원전을 계속 건설하고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을 진행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전을 짓고 있는 중국도 핵발전 비중은 약 2퍼센트이고 재생가능발전은 약 18퍼센트이다. 우리보다 상대적으로 낫다고 하겠다. 더군다나 중국은 세계 풍력발전량에서 1위를 달린다. 저자는 원자력발전의 비중을 최대한 낮추고, 전기 수요를 관리하며, 재생가능에너지 비중을 높이고 있는 게 세계적인 추세라고 말한다. 하지만 한국은 그와는 반대로 가고 있다. 저자의 말마따나 '정말 독특한' 모습이다.

방사능은 얼마나 지독할까.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선생은 지구 생물권과 방사능은 상용(相容) 불가능한 관계라고 규정한다. 지구 생성 이후 수십억 년이라는 장구한 시간이 지나 방사능이 완전히 사라진 다음에야 생명이 출현하고 생물권이 형성되기 시작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원자력에 몰두하는 것은 지구를 원시 상태로 되돌릴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다. 그런 무시무시한 핵으로부터 벗어나는 날이 과연 오기는 할까. 많은 이가 이 책을 통해 '한국 탈핵'을 단단히 깨달았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한국 탈핵> (김익중 지음 | 한티재 | 2013. 11. 4 | 296쪽 | 1만 5천 원)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한국 탈핵 - 대한민국 모든 시민들을 위한 탈핵 교과서

김익중 지음, 한티재(2013)


태그:#<한국 탈핵>, #김익중, #한티재, #후쿠시마 핵사고, #원전 르네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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