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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콜센터 노동조합 김영아 지부장(오른쪽)과 심명숙 부지부장
 다산콜센터 노동조합 김영아 지부장(오른쪽)과 심명숙 부지부장
ⓒ 윤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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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김영아 지부장의 머리는 짧았다. 삭발을 한 지 아직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탓이다. 하지만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그녀의 얼굴에서 그늘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나란히 앉은 심명숙 부지부장은 한눈에도 지쳐보였다. 그는 다음 날부터 내리 3일을 일해야 한다고 했다. 이곳 다산콜센터에서 일한 지 3년이 넘은 그에게 명절은 줄곧 남의 일이었다.

추석을 맞는 다산콜센터 노동자들의 심경은 이들 두 사람의 표정만큼 복잡해보였다. 1년간의 길었던 싸움을 최근 '절반의 승리'로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난 9월 6일 사측과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기본급 3% 인상과 추석 상여금 5만 원 인상, 노조 간부에 대한 근로시간 면제 등이 협약에 담겨 있다. 하지만 정작 이들이 가장 절실하게 바랐던 서울시 직접고용은 뒤로 미뤄졌다. 이들은 효성ITX, ktcs, MPC 등 3개 민간 위탁업체에 소속돼 있다.

1년 전 이맘때 노조를 결성하다

지난 8월 파업을 앞둔 다산콜센터 노동조합의 집회 모습
 지난 8월 파업을 앞둔 다산콜센터 노동조합의 집회 모습
ⓒ 점좀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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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지난해 9월 노조를 결성했다. 추석을 앞두고 있던 때였다. 김영아 지부장에게 노조를 결성한 이유를 물었다.

"둘째가 태어난 지 100일 지났을 무렵부터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입사한 뒤로는 매일 늦게 끝났다. 한 달에 한두 번은 강제로 주말 근무에 배치됐다. 또 한 달에 1시간 정도 퇴근 후에 남아서 교육을 받아야 했고, 시험기간에는 1시간 정도 문제풀이를 시켰다."

그가 속한 MPC는 다른 두 업체보다 2년 늦게 위탁업체로 선정되었다. 그러다 보니 실적평가에서 다른 업체들에 밀리지 않기 위해 막무가내로 교육시간을 늘렸다고 한다. 조기출근도 문제였다. 회사는 출근시간인 오전 9시보다 20분 먼저 나오도록 요구했는데, 그 시간을 맞추려면 돌도 채 지나지 않은 아이를 새벽같이 깨워 어린이집에 맡겨야 했다.

"우리는 근로기준법 상의 위반 사항을 지적하고 불법을 바로잡으라는 요구를 했던 것이다."

심명숙 부지부장의 말대로 노조의 요구는 대부분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는 것이었을 뿐, 거창하지 않았다.

"업무가 끝나면 매일 20~30분씩 석회를 진행했고, 한 달에 한 번은 여기에 업무테스트가 더해졌다. 이럴 거면 시간외 수당을 지급하라는 것이었다."

법적으로 4시간을 일한 뒤에는 30분씩 휴식을 주도록 돼 있었지만 이들은 점심시간을 뺀 나머지 7시간을 꼬박 전화를 받아야 했다. 그나마 점심시간조차 1시간을 온전히 쓸 수 없었다. 통화가 길어져 점심시간을 넘기기 일쑤였고, 통화가 끝난 뒤에 통화내용을 기록하는 후처리 작업에도 시간이 들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선 녹음된 통화 내용을 다시 들어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이다. 게다가 회사는 점심시간이 끝나기 10분 전부터 자리에 앉아 대기할 것을 요구했다.

노조가 생긴 뒤로는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고 한다. 일찍 출근하거나 늦게 퇴근하는 일도 사라졌고, 더 이상 점심시간 끝나기 10분 전에 대기하고 있지 않아도 된다. 주간조도 휴식시간이 생겼고, 야간조는 휴식시간이 1시간 반에서 2시간으로 늘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업무시간 뒤에 하던 업무테스트도 석 달에 한 번 업무시간에 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것들도 있다. 무엇보다 열악한 노동환경이 그렇다. 500명에 달하는 인력이 일하기엔 사무실이 작다 보니 주간조와 저녁/야간조가 같은 책상에서 같은 컴퓨터와 헤드셋 장비를 번갈아 사용해야 하는 처지다. 온종일 다른 사람의 귀와 입과 손이 닿았던 장비를 다시 만져야 하는 일은 곤욕스러울 수밖에 없다.

"탁한 공기와 끊이지 않는 소음도 심각한 수준이다. 전화를 걸어온 민원인들조차 '주변이 왜 그렇게 시끄럽냐'며 따질 정도니 하루 종일 소음에 노출되는 우리는 어떻겠는가."

노조가 생기고 나서 서울시가 공기청정기와 화분을 놓아주었지만, 공간문제에 대한 근본적 대책을 어떻게 마련할 지에 대해서는 아직 말이 없다. 심리상담사와 안마사도 소개해주긴 했지만 심리상담은 몇 달을 기다려야 받을 수 있고, 그나마 안마사는 급여문제로 몇 달 뒤 그만두었다.

추석을 앞둔 이들의 바람

이들을 답답하게 하는 건 좁은 공간과 탁한 공기, 시끄러운 소음뿐이 아니다. 1시간당 몇 통화를 했는지, 통화가 끝난 뒤 후처리 작업에는 얼마가 걸렸는지 등 온통 시간과 횟수만으로 측정돼 매겨지는 업무 평가도 길게는 하루 13시간을 감정노동에 시달려야 하는 이들을 답답하게 한다.

"교통, 수도 관련 민원은 물론 서울시와 25개 구와 관련된 온갖 민원들을 해결해야 하는 게 우리 일이다. 업무 범위에 제한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통화를 길게 하면 안 된다. 하루 통화 수가 적으면 업무 평가를 낮게 받기 때문이다."

서울시민이 원하는 것이라면 어떠한 질문에도 답을 해줘야 하면서도 최대한 빨리 통화를 끝내는 게 이들에게 동시에 주어진 임무다.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럴 거면 업무 범위를 제한하거나 평가 체계를 바꿔야 하지만 이는 서울시의 권한으로 돼 있어 이번 단체협상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이번 임단협 과정을 통해 민간위탁 간접고용 문제가 본질이라는 점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업체에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임금도, 인력 확충도 모두 서울시가 정해준 범위 안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 평가도 마찬가지로 서울시에서 내려주는 대로 업체에서 시행하는 것이다. 업체랑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른바 '악성민원'도 골칫거리다. 황당한 요구를 하거나 무턱대고 화를 내는 경우다. 하지만 이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먼저 전화를 끊어서는 안 된다. 정해진 절차에 따라 경고를 하거나 악성민원으로 등록을 할 수 있을뿐이다. 하지만 대개 다산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화를 내는 경우는 1회성이 많아 등록이 별 소용이 없다. 황당한 요구를 하는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한 번은 어린이대공원에 가족과 함께 코끼리를 보러 갔는데 코끼리가 우리로 들어가서 나오질 않느다면서 꺼내달라고 전화를 해왔다. 동물원 측에 요청했더니 관람시간이 길어 동물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했다면서…. 동물원에서 안 된다는 걸 우리가 어쩌겠나."

심명숙 부지부장이 직접 겪은 일이다. 그는 2011년과 2012년 연속으로 '최우수사원'에 꼽힐 정도로 탁월한 업무능력을 인정 받은 베테랑이다.

"화가 난 건 이해하지만 다짜고자 화부터 내면 우리도 사람인데 해결책을 찾아주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긴다.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우리 이야기를 좀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마침 내년부터는 시정과 관련이 없는 생활민원은 줄여나가겠다는 서울시의 방침이 전해졌다. 하지만 직접 민원인을 상대해야 할 이들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실효성 있는 대책들이 마련되지 않으면 그 효과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다.

직접고용만이 해결책이다

김영아 지부장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핵심은 간접고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직접고용을 계속 요구할 거다.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이 업무 자체를 민간위탁으로 줄 이유가 없다. 모든 일이 시정·구정과 직접적으로 연계된 일들이고 공무원들이 하던 일이다. 굳이 시예산을 민간위탁업체의 수익으로 줄 이유가 없다."

서울시는 이들의 직접고용 문제를 검토하기 위해 서울시 산하 서울연구원에 연구 용역을 의뢰해둔 상태다. 연구 결과를 보고 판단하겠다는 뜻이다. 김 지부장은 늦어도 11월에 나올 보고서에 대해 "주로 행정적인 연구를 하던 곳이고 노동 관련 연구는 안 해봤던 곳이라 좀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손 놓고 보고서만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 생각이라고 했다.

"2014년 1월에 또 임단협이 있고, 2015년 1월엔 업체의 계약기간이 끝난다. 내년엔 서울시장 선거도 있고…. 서울시도 더 이상 방관자적 입장에 머물 수 없을 거라고 본다. 지금까지 (서울시가 당사자란 점이) 여실히 드러났고,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이곳 다산콜센터의 약 100명에 달하는 저녁/야간근무자들은 이번 연휴에도 평소와 다름 없이 근무를 해야 한다. 휴일근무수당도 지급되지 않는다. 서울시민의 고충을 들어주기 위해 그야말로 불철주야 애쓰는 이들의 이야기에 이제 우리가 귀를 기울여 보는 건 어떨까.


태그:#다산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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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옆 앞 '기찻길옆골목책방' 책방지기.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수도권에서 살다가 2022년 2월 전라북도 익산으로 이사해 지방 소멸의 해법을 찾고 있다. <로컬꽃이 피었습니다>(2021), <슬기로운 뉴 로컬 생활>(2020),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2019), <나는 시민기자다>(2013)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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