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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어떤 식으로든 그 노래를 탄생시킨 사회의 모습을 반영합니다. 그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의 슬픔과 기쁨, 괴로움이 노래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이죠. 그런데 인간이 만들어 가는 역사 중에서 인간 본성의 가장 밑바닥과 고귀함이 동시에 치열하게 발현되는 공간은 바로 전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기획을 통해서 노래를 통해서 전쟁을 새롭게 들여다보는 시도를 하고자 합니다. 따끔한 질책과 반론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편집자말]


옛날 옛적, 천하태평한 떠돌이 하나가
유칼립투스 나무 그늘진 호수 가에서
혼자 노숙을 하고 있었지.
양철 깡통에 찻물을 끓이며,
떠돌이는 노래 한 자락 흥얼거렸네.
"나와 동행할 사람 어디 없을까?
왈칭 마틸다, 왈칭 마틸다
누구, 나랑 길동무 해줄 사람 없소?"


그때, 목마른 양이 강가로 내려왔지.
후다닥 양을 낚아챈 떠돌이,
그 걸 자루에 쓱 밀어 넣고 노래 불렀지.
"어린 양아, 나와 함께 가야겠구나
왈칭 마틸다, 왈칭 마틸다
미안하지만 나와 함께 가야겠구나"


어디선가, 말 탄 목장주인이 나타났네.
기마경찰도 하나, 둘, 셋 뒤따라 왔네.
"자루 속의 저 양은 누구 것이냐?
양을 훔쳤으니 감옥으로 가야겠다
왈칭 마틸다, 왈칭 마틸다
양을 훔쳤으니 감옥으로 가야겠다"


떠돌이는 호수에 뛰어들며 소리쳤네.
"산채로는 결코 날 잡지 못할 걸"
지금도 호수를 지나가면,
그 떠돌이 유령의 목소리 들려온다네. 
왈칭 마틸다, 왈칭 마틸다
누구, 나랑 길동무 해줄 사람 없소?"


'왈칭 마틸다(Waltzing Matilda)'는 호주 사람들에게는 '아리랑'과도 같은 노래입니다. 아리랑이 우리 민족의 한과 애환을 담고 있는 것처럼, 왈칭 마틸다도 호주인들에게는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호주 사람들이 이 노래를 얼마나 사랑하는 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호주 국가를 정하기 위한 국민투표 이야기인데요, 영국 국가인 "신이여, 여왕을 보호하소서"를 독립 후에도 공식 국가로 사용해온 호주가 독자적 국가를 정하기 위해 후보곡들을 선정해 국민투표에 붙였던 것은 지난 1977년이었습니다. 지금의 국가가 된 "Advance Australia Fair"가 43.29%를 얻어 1위를 했지만, 28.28%의 지지를 얻은 왈칭 마틸다는 그 뒤를 이어 당당히 2위를 차지했던 것이죠.



네덜란드의 바이올리니스트 앙드레 류가 시드니 공연에서 연주했던 왈칭 마틸다, 이 노래를 합창하는 관객들의 모습에서 이 노래가 호주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국가가 되지는 못했지만 오늘날도 왈칭 마틸다는 호주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비공식 국가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폐회식에서 연주된 것도 왈칭 마틸다였고, 국가 대항 럭비 경기에서 목이 터져라 불리는 응원가도  바로 이 노래입니다. 심지어는 호주 여자 축구대표팀의 애칭도 이 노래에서 따온 마틸다입니다.



배가 고파 양 한 마리를 훔친 시골 떠돌이가 연못에 빠져 죽었다는 서글픈 내용을 담고 있는 이 노래가 어떻게 호주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대표적인 곡이 되었을까요? 그 이면에는 호주 양모(羊毛) 노동자들의 고달픈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또 두 차례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호주 군인들을 부두에서 떠나보낼 때 군악대가 연주했던 곡도 바로 이 노래였습니다.

전쟁과 노래, 그 두 번째는 바로 호주의 아리랑, 왈칭 마틸다에 얽힌 이야깁니다.

호주의 아리랑 '왈칭 마틸다' 탄생 이야기 : 첫 번째

영국 해군의 아더 필립 대령을 대장으로 하는 11척의 탐험대 선박이 영국을 떠난 지 8달만에 현재의 시드니 항구인 잭슨항(Port Jackson)에 도착해 유니온 잭을 계양하고, '뉴 사우스 웨일즈'(NSW)를 영국의 식민지로 선언한 것은 1787년 1월 26일의 일이었습니다. 

1787년 1월 26일 오늘날의 시드니 항 인근에 유니온 잭을 게양하고 영국의 식민지로 공표하는 아더 필립 대령, 호주는 이날을 건국일(Australian Day)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 1787년 1월 26일 1787년 1월 26일 오늘날의 시드니 항 인근에 유니온 잭을 게양하고 영국의 식민지로 공표하는 아더 필립 대령, 호주는 이날을 건국일(Australian Day)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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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호주 총독으로 임명된 필립 대령이 이끌고 왔던 1500여 탐험대 중에는 568명의 남자 죄수와 어린이 13명을 동반한 191명의 여자 죄수가 포함돼 있었습니다. 이후에도 19세기 중반 유배정책이 폐지될 때까지 죄수선을 타고 영국으로부터 유배되어 온 죄수들의 노동력은 호주의 건국과 경제발전의 기초를 놓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되죠.

시드니에서 시작된 초기 개척지가 점차 서부로 뻗어나갈수록 죄수들도 점차 자유인의 신분을 획득해서 크고 작은 농장들을 개척했습니다. 또 남아프리카에서 들여온 메리노양(洋)에서 생산되는 양질의 양모 산업이 호주산업의 근간으로 자리 잡게 되죠. 1851년 발견된 대규모 금광은 '골드 러시' 열풍을 불러와 1850년에 40만 정도였던 백인 인구는 11년 만에 117만 명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하지만 1890년대에 이르러 세계적으로 몰아닥친 경제공황과 극심한 가뭄은 호주 경제에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미국과 유럽 각국의 방직공장이 문을 닫게 되면서 호주의 양모 산업도 큰 타격을 받게 됩니다. 그때까지 전 세계에 양모를 공급해서 엄청난 부를 축적한 부자들은 양털깎이 노동자들의 임금을 줄이는 한편, 중국으로부터 값싼 노동자를 수입하는 방법으로 이 위기를 타개하려고 했죠. 실업률은 30% 가까이 치솟았습니다.

1891년에 접어들면서 양털깎이 노동자들의 대규모 파업이 일어났고, 이런 배경 속에서 왈칭 마틸다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1891년 1월 5일, 퀸즈랜드 바칼딘에서 양털깎이 노동자 1000여 명이 대규모 파업에 돌입한 것을 시작으로 수년 동안 곳곳에서 크고 작은 파업이 줄을 이었습니다.  1894년 9월 2일, 윈튼에서 파업에 참여했던 한 독일출신 노동자가 시신으로 발견됩니다. 프렌치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32살의 사무엘 호프마이스터였습니다. 파업의 와중에 축사에서 일어난 화재로 양들이 타죽는 일이 생겼고, 이 일로 목장 주인과 세 명의 경찰관에게 쫓기던 호프마이스터가 체포 직전 자신을 향해 스스로 방아쇠를 당겼던 것이죠.

1895년 밴조 패터슨이 쓴 시에 여성 작곡가 크리스티나 맥퍼슨이 지은 곡을 얹어 완성한 왈칭 마틸다의 원본 악보.
▲ 왈칭마틸다의 원본 악보 1895년 밴조 패터슨이 쓴 시에 여성 작곡가 크리스티나 맥퍼슨이 지은 곡을 얹어 완성한 왈칭 마틸다의 원본 악보.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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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모닝 헤럴드> 기자였던 밴조 패터슨(1864~1941, 호주 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패터슨은 지금도 10달러짜리 호주 지폐에서 그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은 이 비극적인 사건을 취재하고, 이듬해 호프마이스터를 방랑하는 떠돌이(Swagman)에 비유해 한 편의 시를 지었습니다.

이 시에다 여성작곡가 크리스티나 맥퍼슨이 아일랜드풍의 선율을 빌려 작곡한 곡을 얹어 왈칭 마틸다가 태어난 것이죠. 배낭 하나 매고 일자리를 찾아 떠돌았던 어느 일용직 노동자의 서글픈 죽음이 목축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시절을 가축몰이꾼과 양털깎이 노동자들 사이에서 보냈던 밴조 패터슨의 마음을 움직여 시를 쓰게 했을 겁니다.

간혹 왈칭 마틸다를 '춤추는 마틸다'로 직역하는 경우가 있은데, '왈칭(Waltzing)'은 춤곡 왈츠와는 아무 상관없는, '걷는다(Walking)'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실제 호주인들은 왈칭이 아니라 월씽에 가깝게 발음합니다). '마틸다'도 여성의 이름이 아니라, 담요에 잡동사니를 둘둘 말아 싸서 다니는 떠돌이들의 봇짐이나 보따리를 뜻하는 호주 속어입니다. 혹자는 홀아비 노동자에게 늘 잠자리가 되어주었고, 술이라도 한잔 걸치면 껴앉고 춤도 추었을 물건이기에 마틸다란 애칭이 붙었을 거라 짐작하기도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항상 누군가를 그리워했을 외톨이 방랑자들의 마음을 헤아린 탓인지 이 노래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에는 봇짐을 파트너 삼아 춤을 추는 떠돌이의 모습이 자주 등장하곤 합니다.

다음에는 본격적으로 왈칭 마틸다와 전쟁에 얽힌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태그:#왈칭마틸다, #전쟁과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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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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