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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뭐하고 지내니?"
"네 딸 졸업했다며? 뭐 해?"
"하반기 공채 기간이라는데, 넌 지원 안 하니?"

"뭐하고 지내냐"는 가벼운 인사말이 이렇게 무겁게 느껴졌던 적이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준비생' 신분으로 생활한 지 약 7개월. "아직 취업 안했냐" "생각해둔 직장은 있느냐" 등의 질문을 숱하게 들었다. 취업준비생 생활 초기 때는 대답도 잘 했고 웃어넘길 여유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야속하다. 요즘은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아 애초에 전화를 받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요즘 뭐하니?"... 이 질문만은 제발!

그런데 이런 말들을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하는 날이 왔다.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 얼굴에 반가움보다는 괴로움이 앞선다. 친척들이 해주는 말이 덕담처럼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취업준비생들에게는 일 년 중 최대 고비의 날이다. 인터넷에는 '백수, 명절 무사히 보내는 방법'이라는 글도 돌아다닌다. 나와 같은 취업준비생 신분의 친구들은 추석이 오기 전부터 '추석 걱정'을 했다. 친척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걱정의 깊이는 더 깊어졌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백수, 명절 무사히 지내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유머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백수, 명절 무사히 지내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유머글.
ⓒ 인터넷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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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기 싫어 죽겠어, 고모들 잔소리 장난 아냐."
"밥 먹는 것도 눈치 보인다."
"어디로 취업할 거냐고, 거기 월급은 얼마나 받느냐고 물어보셨다."
"완전 스트레스야, 집에 가고 싶다."

명절을 보내기 위해 친척집을 간 친구들과의 메신저 대화는 대부분 이런 내용이다. '명절 스트레스'는 비단 나와 내 친구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5일 고용노동부 취업포털 '워크넷'이 20~30대 취업준비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87.5%의 사람들이 '명절이 스트레스로 작용한다'고 응답했다.

가장 듣기 싫은 말 1위는 "누구는 취직해서 자리 잡았더라"라는 말이었다. 전체 응답자 중 23.9%가 이 말을 가장 듣기 싫은 말로 꼽았다. 그 외에 듣기 싫은 말도 대부분 '취업'에 관련 이야기였다.

고용노동부 취업포털 '워크넷' 설문조사 결과, 명절 때 가장 듣기 싫은 주제가 '취업'임을 알 수 있다.
 고용노동부 취업포털 '워크넷' 설문조사 결과, 명절 때 가장 듣기 싫은 주제가 '취업'임을 알 수 있다.
ⓒ 워크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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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가 듣기 싫어 아예 집에 있지 않고 밖으로 나오는 친구들도 있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진다. 눈치 보이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간들, 갈 곳이 딱히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집보다는 낫다.

결국 친구와 향하는 곳은 집 근처 카페. 휴일에는 도서관도 운영하지 않기 때문에 갈 곳은 카페밖에 없다. 각자 집에서 들었던 잔소리들을 하소연하며 웃고 울기도 하고, 가지고 나온 책을 읽기도 한다. 하반기 공채를 위해 '자기소개서'를 쓰는 친구도 있다. 눈치 보지 않고 시간을 때울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커피 몇 잔 시켜놓고 시간을 훌쩍 보낸다.

친척들을 마주치는 연휴날이면, 근처 카페로 '피신'해 친구들과 시간을 보낸다
 친척들을 마주치는 연휴날이면, 근처 카페로 '피신'해 친구들과 시간을 보낸다
ⓒ 김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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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도 편히 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에서 추석 특선 영화를 찾아보다가 이내 닫았다. 다음 주에 있을 공채 시험이 맘에 걸린다. 처음 보는 공채 시험이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도 감이 잡히질 않는다. 그렇지만 뭐라도 해야 한다. 풍성한 명절이라지만, 마음은 헛헛하기만 하다.

통계청이 지난 8월 발표한 '5월 청년층 및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년층 미취업자 수는 134만8000명으로 그 중 청년층 취업준비생이 61만4000명이다. 즐거워야 할 명절이지만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나와 같은 처지의 61만여 명의 취업준비생에게 응원을 보낸다.


태그:#명절 스트레스, #취업준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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